그 누나가 좋아하면 나도 좋아해야 해?
작년 이맘때는 생일인 언니와 가로수길에서 점심으로 인도음식을 먹고 햇빛 내려쬐는 곳에서 기포가 톡톡 터지는 와인을 마셨다. 우리가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다며 한창 까르륵 웃을 때였다. 올해는 같은 모임의 동생이 그 언니의 생일이었다면서 연락이 와서 알았다. 고작 일 년 사이에 엄청 친해졌다가 지금은 언제 그랬다는 듯. 멀어졌다. 그 언니와의 사이가 불편하다고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자꾸 언니와의 화해를 종용하며 같이 만나기를 바란다. 알고 보니 되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서 너무 안쓰럽다고... 같은 모임에 있어서 사정을 대략 말했는데, 그때도 뭘 그런 거 가지고 서운해하냐 라는 식이라, 입을 닫았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게 너무 불필요해 보였다. 내가 같이 보기 불편한 것뿐이지 동생과 언니의 사이까지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 둘이 만나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언니를 만나기만 하면 동생은 내게 전화를 한다. 오늘 받은 전화가 두 번짼가 세 번짼가. 부재중이 뜨면 무슨 일이지?라고 의아해할 정도로 자주 전화하는 사이도 아닌데, 전화를 할 때마다 꼭 그 언니의 이야기를 해서 이제는 이 동생한테 전화가 오면 덜컥한다. 분명 기분이 나빠질 테니까. 얼마 전에 같이 보자고 하길래, 나는 이번 달에 바쁘다고 좀 불편하다고 '내가 나중에 편해지면 따로 볼게'라고 한 게 바로 엊그제. 오늘 그 언니 생일이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좀 화가 풀린 것 같다 했다니 그 누나가 너무 좋아했다면서, 같이 보자고... 순간 확, 욱했다. 그 언니한테 내 얘기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 누나가 먼저 물어본다고 '그 누나는 좋아하는데, 왜 누나는 싫어해요?' 란다... 하... 속으로 내가 왜 싫어하겠니? 란 말이 차올랐지만 그냥 삼켰다.
왜 이 동생은 불편하다는 내 말을 무시하는 걸까. 나와 같은 시선으로 그 언니를 대할 필요는 없어도. 내가 불편하다는 데 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이건 나 무시하는 거 아냐? 이성적으로 그 언니를 좋아하는지 의심도 해봤다. 아 뭐 그렇다면 그럴 수 있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닌가. 자꾸 그 언니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내가 피해잔데, 그 언니가 사람 좋은 얼굴로 얼마나 나쁜 사람 만드는지는 진짜 가까이에서 겪어봐야 안다. 사람에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건 당연하지만 나는 내 사람에 대한 인내심이나 이해력이 깊은 편이다. 보통 같은 일을 세 번 정도 겪어야 말을 한다. 내 기분을. 서로 예민했었고 그 언니도 힘든 시기였다는 걸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다시는 그 언니와 예전과 같은 사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 동생이 자꾸 언니의 이야기를 종달새처럼 전달해줄 때마다 더 그 마음은 확고해진다. 이 동생이 한 번만 더 그 언니 얘기를 하면 나도 이제 더는 못 참을 것 같다. 오늘도 뒤척이며 잠들었다가 금세 깨버렸다.
내겐 아무리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매섭고 추운 바람일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시원한데 너는 춥냐고 외투를 벗으라고 종용하는 거와 대체 뭐가 다르냔 말이다.
왜 자꾸 나를 가해자 만들고 그 사람을 피해자 만드냔 말이지. 그렇게 안쓰러우면 자기만 잘하면 될걸 왜 내가 위로해 줘야 하지? 내 힘듦은 이해하려도 노력이나 해봤나? 후.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