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나를 아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샀다.

by 내일 만나

손을 씻으려는데, 따끔했다.

어느 날부턴가 가 손가락에 살이 베이고 페이는 상처가 늘어났다. '도대체 어디에서 다친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볍게 여겼던 상처라 연고도 바르지 않고 그저 물이 닿을 때마다 따끔한 가벼운 통증을 참았다. 이틀 삼일 지나고 나면 나아지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어느 날, 옷장 안에 오픈 서랍의 제일 안쪽 옷을 꺼내려다가 서걱, 살이 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오픈 서랍은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는데, 그 구멍이 꽤 날카로워서 잔뜩 구겨져있는 옷들 사이에서 안쪽 깊숙히 있는 옷을 꺼내려다가 손가락의 살이 페인 것이다. 그동안 내가 손가락을 다친 게 이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삼일이면 낫던 상처가 이번에는 피도 나고 눈에 보일 정도로 깊게 페여서 일주일 동안 따꼼거려서 나를 무척이나 신경 쓰이게 했다. 그 뒤로도 옷을 꺼낼 때마다 크고 작은 베이는 상처를 입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너무 짜증이 났다. 그깟 옷장 한 칸이 얼마나 한다고 이 작은 옷장에 옷을 잔뜩 구겨 넣어서 매번 꺼낼 때마다 손가락을 베이는 게. 어느 날 밤에도 옷을 꺼내다가 '아' 하는 또 베인 그날, 바로 옷장 두 칸을 주문했다. 분명 이 작은방에 옷장을 추가하면 방문을 활짝 열지도, 운동 매트 하나 깔면 끝일 공간밖에 안 나오는데도 말이다. 실수로 어쩌다 다친 게 아니라 계속 상처가 나는데도 한참이나 몰랐던 게 나를 방치해놓은 것 같았다. 너무 바보 같았다.

새로 산 옷장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배송되었다. 내 손가락에 매번 상처를 냈던 서랍 칸은 베란다로 옮겼다. 상자 속에 접어서 잔뜩 구겨 넣었던 옷들을 하나씩 꺼내서 옷장에 걸었다. 정리를 하다 보니 내 가을 겨울 옷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었다. 오랜만에 발견한 반가운 옷. 작년 이맘때는 단추가 잠기지 않았던 옷들. 혹시나 싶어 입어보니 이번엔 단추가 잠긴다. 괜스레 기분이 좋다. 보자마자 떠오르는 추억이 있는 옷들을 보니 정리가 오래 걸렸다. 반나절은 꼬박 옷장 정리만 한 것 같다. 내친김에 계절별 옷까지 다 정리했다.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보니 요즘은 옷 고르는데만 한참이 걸린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옷들이 보기 쉽게 찾기 쉽게 걸려있으니 요리조리 잘 코디해서 입고 싶은 마음이랄까.

내가 외식하는 거 몇 번만 참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옷장 한 칸이었는데, 진작 살 걸이란 생각이 들었다. 쌓여서 쓰러질 것 같았던 운동복들이나 작은 공간에 잔뜩 걸려있어 구겨져있던 원피스들을 한결 여유롭게 놓을 수 있었다. 옷들 사이마다 여유로운 틈을 보니 이제야 옷들이 편히 숨을 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옷장은 정말 잘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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