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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07. 2023

연애이별일기 ① 내가 원하는 건 경험

2022년 12월 16일 일기 중 발췌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원하는 건 경험 같다. 어깨 가득 짊어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저 가만히 있기에만 급급하던 나날들이 아니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공간 내에서 실수도 하고 그저 즐기기만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앞날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면 좋겠다.

호흡하기, 짧게 가기, 즐기기, 내가 누릴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


엄마가 남겨진 보물과 상처 잔상들 사이에서 싸우다가 그만 기력을 다 쓰고 말았다. 내가 감당하기엔 벅찼고 나는 지쳤다. 그 순간에도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달려 나갔다. 그것만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착각했다.


꽤 진지하게 만났던 연인이 헤어지면서 나에게 남긴 말이 기억에서 떠올랐다. "네가 날 더 좋아하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거야. 결국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지."


맞다, 나는 그와의 관계에서 적당히 진지했고 적당히 좋아했고 적당히 즐겼다. 그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종종 신경에 거슬렸지만 그에 대해 크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내가 감쌀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라서 일찌감치 포기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이미 진지한 관계에 대한 발전 여부는 내 쪽에서 거절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나의 거절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그 연인과 함께 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깨닫고 진심으로 싫어했다. 그러나 그건 내 입장에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끝장을 보지 못하고 흐지부지 살아가며 원가족을 원망하는 그런 종류의 것을 나는 무척이나 곤란해했다.


나의 예민한 성격 탓에 나는 호흡을 더 길게 하고 나른하게 연인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가직 오감은 무척이나 강렬한 탓에 무엇이 맞고 무엇이 맞지 않는지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으나 오감으로 연인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그를 상심시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노력했다.


그러다가 폭발했다. 또 타인에게 선을 그었다. 그를 떠났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타인을 또 쉽게 믿어버렸다. 새로운 사람은 언제나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나는 그것이 참 좋다. 나의 실수에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와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솔직해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가기 전에 나에 관해 미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


결심하기까지 오래 걸린 탓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건강함과 강인함이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한껏 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좀 대단하다고 여겨줬으면 좋겠다.


나의 대단함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구김은 좀 있지만 그래도 자라났다는 데 있다. 한국에서 홀로 살아가는 건 너무 어려워. 사실상 너무 고난도라 견뎌내는 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할 정도이다.


그 공안에서 살다가 내가 제정신이 아닐 것 같았다. 외국으로의 도망침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 만했다. 그니깐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가 한국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보다 쉬웠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 미안해. 또 이별을 고했다.


대체 텍스트: 보라색 배경, 그리고 꽃과 바람모양으로 새겨진 금속으로 된 장식구가 전시되어 있다. 그 옆 엔 네모 모양에 22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상황 설명: 학교도 적응하고 언어도 익숙해지면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섰다가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왔다. 역시 타인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 진지한 관계를 맺는 건 너무 어렵다. 내 쪽에서 한 거절이지만, 나는 그가 나를 거절했다고 생각한다. 왜인지는 말해줄 수 없지만 또 이별을 말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 소소하게 여겼고 그와 진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절대적으로 어렵게 여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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