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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07. 2023

애도일기 ① 시간만 허락한다면 나는 더 잘할 수 있다

2023년 2월 13일, 3월 8일 일기 중 발췌

시간만 허락한다면 나는 더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내 편이다. 계속 해내기만 하면 된다. 겁먹을 필요 없다.


그렇게라도 소리를 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잖아.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 강을 건너고도 뗏목을 머리에 이고 가면 안 된다.


다시 쏟아지는 우울감에 잠식되었다. 나는, 목구멍으로 넘치게 흐르는 터져 나오는 한탄 섞인 한숨소리에, 그만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대는, 나를 사랑했던가. 나는 그대를 그리워한다. 영원히, 사랑해.


있잖아, 엄마, 나는 엄마가 죽고 난 후에 종종 엄마가 그립고 그리움 탓에 내 머리에서 엄마가 남긴 흔적조차 없애고 싶다가도 저주하고 사랑한다. 엄마는 이미 내 나이에 집을 장만한 아주 건실하고 착실하게 살아갔던 젊은 여성이었다.


유교식 가부장제가 무슨 소용인가 싶을 정도로 성실하고 대단했다. 엄마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봄이 오기 전에, 겨울만을 보낸 뒤 봄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나는 여기에서 엄마를 대신해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엄마를 대신해서, 나는 엄마를 대신해서 엄마 몫까지 짊어지고 오늘도 다시 살아간다.


엄마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 나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 다짐했다. 절대 되돌아보지 않겠다고, 결코 엄마처럼 외롭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나는 여전히 너무 여리고 봄이 오는 것이 무섭고 단단하질 못했다.


엄마, 나는 봄이 무서워, 새 생명이 무서워. 사계절 중 봄은 쓸쓸했던 겨울이 끝나고 나무들이 새 싹을 틔우는 시기이다. 그 가장 찬란한 순간에 나는 항상 충동적으로 봄의 생동감을 피하고 싶어 한다. 매일 아침 창문으로 나무에 잎이 났는지를 확인하지만 새싹이 싹트는 순간 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지루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이것저것을 싫어하는 척하다가 다시 불안해하고, 다시 괜찮아지면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침울해져서 내 방 침대로 돌아온다.


몸이 진짜 떨려왔다. 나는 공포와 밤새 싸우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미쳤고 만물을 향해 다정함을 유지하며 그 힘을 무기 삼아 나아갔다. 나 스스로에게 달콤하게 속삭였다. 괜찮다고.


장기가 다 썩어 문들어질 때가 돼서야 나는 드디어 만족해했다. 괜찮지 않았다. 더는 표현할 것이 없는데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갔다. 엄마, 나는 봄이 무서워서 더 열심히 살아갔다.


나는 스스로를 봄의 대표라고 생각했으니 나는 결코 실패하면 안 된다. 내가 실패하면 봄에 대한 편견이 영영 깨지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나는 또 방 안에 혼자 남아 봄의 죽음과 두려움과 싸웠다. 그래도 봄을 맞이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살아서 또 이렇게 새로운 새싹을 발견했다. 그래, 이것이 봄이야.


나는 일주일을 또 살아갔다.

대체 텍스트: 맑은 하늘, 푸른 잔디밭, 그리고 나무가 봄을 맞이한 듯 새싹을 키우고 있다.


상황 설명: 미국 동부에서 거진 8개월 간 햇빛조차 제대로 못 보고 살아갔다. 일주일 내내 눈과 비가 내린 적도 많았다. 비타민 D를 섭취하면서 매일 창문 밖에 있는 나무를 보면서 봄을 기다렸다. 갑자기 날씨가 화창한 날이 찾아와 햇빛 보러 밖에 나갔다가도 앙상한 나무 탓에 아직 겨울임을 실감했다. 그리고 드디어 봄의 계절이 시작되었는지 창문 밖에 있는 앙상한 나무 가지에 녹색 한 방울이 맺어 있었다. 기다린 봄이건만 나는 봄이 싫어졌다. 8개월의 겨울은 소소하게 생각하고 두 달의 봄은 깊게 생각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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