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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un 09. 2023

심리상담일기① 집에 얌전히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

2021년 12월 4일, 12월 20일 일기 발췌

집에 얌전히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오랜 기간 집에 칩거하고 은둔하며 나아감에 대한 감각들이 뒤떨어져 있었다. 나는 아주 망가지지 않았고 순간의 판단이 흐려지지도 않았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 나에 대한 존중, 못 미더워하는 남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 오랜 기간 나는 정말 나 자신에게 못된 사람이었다. 못되게 굴고 종종 나를 상처주어 아프게 했다. 일종의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었다. 날카로움을 스스로에게 행하는 건 옳지 않아, 나는 오랫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주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다가 꽉 손을 쥐었다가 폈다. 하얗게 질렀다가 다시 붉은빛이 도는 손을 오래 쳐다보았다. 죽음은 어렵다, 그런데 삶은 그냥 흘러간다.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이에 나는 나를 갉아먹는 것들로부터 탈출을 감행했다. 탈출은 경계를 횡단하는 행위이다. 경계를 가로질러 더 큰 공간으로 도약해야 한다.

도약하면 나는 달라질까?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갈망했다, 더 나은 환경을.
무엇이 나를 굳건히 미국으로 유학 가도록 등 떠밀었을까?
떠밀려 온 곳에서 나는 정착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누군가에 의해 궁지에 몰렸나?

확실히 나는 그때 궁지에 몰려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아주 좁고 음습한 우물 안에 가두어 놓았다. 미련 없이 우울 밖으로 곧장 나아가도록 말이다. 훨훨 날아가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그렇지만 돌아갈 곳은 언제나 있다고 말이다. 그리운 고향, 나의 가족, 나의 집, 나의 삶의 터전, 그 속에서 나는 벅차게 행복했고 덧없이 불행해했다. "천국, 가까운 지 알았는데 멀어, 멀어." 천국은 멀었다. 지옥이 훨씬 가까웠다. 


삶은 고동쳤고 나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다가 거대한 해일이 나에게 지옥불과 원망을 선사했다. 불타 죽지 않는 지옥불에 데기만 하고 도통 죽질 않았다. 살이 타들어 가면서 뼈까지 녹아내렸다. 아린 살을 움켜잡고 나는 멀리 떠나갔다. 나는 여기에 있기엔 아쉬움이 많은 사람이다. 나의 부모는 미숙했고 상처가 많았으면서도 자신의 상처가 덧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언제 발병했는지 모를 조울증에 훱싸여 살아가는 그녀와 떠나기 위해 매주 떠날 준비만 하는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다. 섬광처럼 내리 꽂히는 감각, 영적인 예민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알 수 없는 꺼려짐. 나는 대체로 다섯 번째 감각에 의존하여 결론을 미리 지어 놓고 시작한다. 거대한 흐름의 기미를 읽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는 어디론가 떠날 용기를 배웠다. 그는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운명을 타고 태어나 불나방처럼 날아가야 했으나 자식을 위해 정착함을 택하고 오래오래 후회했다.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엄마가 남긴 밍크코트를 들고. 한 번쯤은 내가 원하는 걸 깊숙이 생각하고 성찰하고 결국 웅얼거리는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보호자로 제법 키잡이 역할을 잘했다. 나의 시간이 어리고 젊은 이 잠깐에만 머물지 않도록 나는 이 시간에 나 자신을 꾹꾹 집어넣을 것이다. 나는 북태평양을 유유히 헤엄치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다가 어디 한 곳에 정착해 직접 농사도 짓고 살면서 꽃도 심어서 봄에는 피어오르는 꽃을 볼 것이다. 들꽃처럼 아무렇게나 자라난 것처럼 보이나, 나는 흔들리면서도 피어나는 꽃이었다. 꽃들이 예쁘게 피어나 나는 알싸한 꽃향기에 취했다. 그래, 여기까지 왔구나. 너는 그 먼 곳을 돌고 돌아 여기에서 정착하려 하는구나, 나는 나에게 귀한 사람이다.

 고통은 인간의 몫이니, 여기 두고 가소서.

죽음은 인간의 것이라 본디 덧없이 지내더라도 이미 허망하게 갑니다. 고통은 남은 자들의 몫이니, 그리 그리하여 남은 이들의 고통, 번뇌, 광기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나의 욕심이겠죠, 인간인 주제에 감히 영원한 것을 꿈꾸다니요. 나의 가족이 영원할 줄 아는 건 왜일까요? 영원, 한시적, 찰나, 일시적, 이리 많은 단어가 있을 텐데요. 불발에 그치고 만 나의 불안을 들고 뒷걸음치다가, 어쩌면 바로 보였을 언어의 그림자들이 이제 보인다.

대체 텍스트: 푸른 하늘 그리고 건물숲, 다양한 크기와 색채를 지닌 건물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다.

상황 설명: 심리 상담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지금 상담 선생님은 나의 세 번째 상담 선생님이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나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불안했는지, 그리고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알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않았던 일들이 떠올라 괴로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온하다. 그저 그 일을 있는 그대로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여전히 나도 부족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나로서의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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