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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un 08. 2023

내면 아이 일기 ① 내가 엄마한테 듣고 싶은 말은

2021년 10월 31일, 11월 3일 일기 발췌

나도 다정한 엄마가 필요했다. 안아주고 지지해 주고 내가 무대 위의 주인공일 수 있게 바라봐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아이가 한 일이니, 한 번만 더 봐달라고 부탁하는 다른 아이의 엄마는 그 자체로 좋은 존재처럼 보였다. 나는 그 부탁을 수용했다. 아이의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귀여워서였을까? 아이가 잘할 수 있게 지지해 주는 엄마의 모습에 내가 진 것이다. 아이에게 좋은 경험만, 세상이 이렇게나 따뜻하다는 경험만 시켜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내가 엄마한테 제일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한 말은 한 문장, 두 마디로 족하지 않다. 나의 엄마는 사업 수완이 좋았고 투자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고 자기 절제력이 좋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돈들을 모아 태산 같이 쌓아 올렸다. 그동안 나는 그 옆에서 엄마의 관심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지쳤고 그래서 멍해졌다.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천사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나의 탄생은 그녀에게 기쁨이었는데 나의 더딘 성장 속도는 지옥이었나 보다. 어릴 땐 내가 훨씬 더 사랑스러웠다고 말하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언니는 엄마를 대신해서 나의 육아를 꽤 도맡아 했다. 어릴 때 언니 손을 꼭 붙잡고 문방구에 간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나에겐 언니가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언니마저 없었다면 내 유년시절은 더 엉망이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잿더미에서도 불씨가 살아나듯 나는 다시 타올랐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쳤고 상실의 슬픔으로부터도 나를 지켜냈다. 내가 나의 언니한테 듣고 싶은 말은 분명하다: "이만하면 잘 견뎌왔다, 대단하다." 그러나 엄마한테 듣고 싶은 말은 모호하다.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다, 나의 그녀가 그럴 일이 없어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내가 내 또래 친구네 어머니를 뵌 적이 없으니 딸을 가진 엄마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마주했다. 잘했다고 환호해 주고 배려해 달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엄마 말이다.


나는 나의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없고 대신 질문할 거리는 아주 많다. 그리 가시니 이제는 좀 평안하신 지, 그곳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내가 있는 여긴 생지옥이니 그리 알아두라고 말이다. 아빠가 좀 더 다정했나? 든든한 품은 언제나 아빠가 제공했다. 단지 그의 삶도 눅눅치 않아 늦은 밤엔 술과 슬픔에 취해 있어서 무엇이 그의 진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내가 밤에 만난 그는 현실을 그리 싫어하고 항상 어디든 떠나고 싶어 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했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자유로운 젊은 날의 그를 붙잡은 건 나였을까? 달이 떠 있는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청춘을 이리 보낸 걸 후회했다. 나는 부모에게 잠깐은 기쁨이었고 대체로는 바닥에 널 부러져 방치되었다. 집에 있는 오브제였다. 미관상 가끔은 먼지를 털어줘야 하는 오브제였던 셈이다.


당신은 살면서 자기 자신을 놓아버린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나는 그들의 업보를 짊어질 준비가 되었던가? 전혀 아니었다. 그들의 업보가 타고 내려와 나에게 발화되었으니, 나는 달리 선택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순 없었다. 나는 매일 자기 자신을 조금씩 놓아버리는 사람을 보고 자랐다. 날씨가 추워지고 자기 방에 갇혀 그저 계절이 끝나길 바라는 무기력한 나그네의 모습을 보며 떠나지 못하는 그의 운명을 탓해야 할지 아니면 날을 탓해야 할지 고민했다. 용서라는 말은 가벼이 여길 순 없다. 나는 누구를 용서해야 이 업보의 사슬을 깨뜨릴 수 있을까? 이 죄책감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묻다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왔다.


나 자신을 환히 비추어 나의 티끌을 주우면서 살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 나는 그 업보보다 더 어린 사람이다. 나는 업보를 묵묵히 감당하며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삶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더 과감한 삶을 살고 싶었다. 바람의 저항을 추진력 삼아 훨훨 날고 싶은 것이다. 날아가는 하늘, 그 허공이 반복적일 수 있지만 나는 그 반복성마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늘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는 괜찮다. 모든 일이 잘 되기 위해선 사람의 힘을 들여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애쓰고 또 애쓰는 것이 나의 인생이다. 애쓴 만큼 돌아오진 않지만 그걸 바라고 애쓴 건 아니다. 나는 단지 내 삶의 업보를 거부하고 싶었을 뿐, 그 이상을 바라본 적이 없다. 소소한 일상이 연속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 텍스트: 어느 도시, 얇은 가로수를 감싸고 있는 초록색 물주머니가 대조적으로 크게 보인다.

상황 설명: 아이 있는 집에 초대되어서 어른과 아이가 한 곳에서 모여서 게임을 했다. 아이는 게임 규칙을 대체로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아이에게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도 게임 규칙을 잘 모르는 척 한 번 더 봐주고 싶어졌다. 아이가 어른들의 눈가림 속에서 이겼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문뜩 내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아마 다정한 엄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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