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포지셔닝 Case Study 06.
광고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광고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때 당시의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광고 이후 경로석에 앉는 젊은이가 없어졌다던 박카스의 ‘지킬 것은 지킨다’ 캠페인, 휴머니즘의 가치를 불러왔던 SK의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 브랜드가 중요하던 아파트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 이편한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캠페인(아이러니하게 지금은 다시 아파트 브랜드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지만) 등 참 좋은 캠페인들이 생각난다.
그런 멋있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 광고인이 되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 좌절할 때 즈음에는 브랜드 액티비즘이 광고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다시 유행이 지나갔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법안까지 통과시키는 해외의 사례들을 보며, 나는 여전히 광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모 브랜드의 ESG 캠페인을 과제로 받아 기획하던 중에 당시 화제가 됐던 지역소멸 이슈를 해결하는 캠페인을 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광고주 제안이 잘 되어 실제 캠페인까지 잘 만들어졌지만 아쉽게도 일회성 캠페인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게 못내 아쉬워서 멘토링 중인 주니어보드에서 생활 포지셔닝 과제로 소멸지역의 리포지셔닝 캠페인을 주고 있다.
소멸지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멘티들에게 낼 과제를 고민하면서 한국의 여러 지역의 슬로건과 특산품, 관광자원 등을 돌아보았다. 특산품이 겹치는 지역도 꽤나 많았고, 대개 비슷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었다. 특산품이 비슷하면 진행하는 축제도 비슷했고, 아젠다가 다른 축제도 내용은 먹거리 장터와 트로트 가수들의 초청 공연 등의 비슷한 수준인 경우도 많았다.
지역마다 발굴해 보면 특색이 없진 않을 텐데 예산이나 인력이나 발굴의 여력이 부족한 인상을 받았다. 백종원이 자신의 콘텐츠로 여기저기 지역의 축제를 컨설팅해주는 게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
그래서 김천의 이번 김밥축제는 뜻 밖이지만 반가웠다.
이전에 김천 하면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마 김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대개 포도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포도 하면 떠오르는 지역만 당장 안성, 입장, 영동 세 곳이다. 포도의 품종이 아예 다르거나, 품질의 차이가 월등하지 않은 이상 네 지역의 포도 축제는 대개 비슷할 것이며 크게 관심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천의 김밥축제 배경에서도 이런 고민이 보인다.
축제의 배경은 이렇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김천에서는 10년 넘게 포도 축제, 자두 축제(자두가 특산품인지는 나도 몰랐다)를 진행했으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외부 관광객들의 유입을 끌기는 부족했다. 그래서 SNS를 통해 ‘김천 하면 뭐가 떠오르는지’를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우습게도 ‘김밥천국’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라면 그냥 웃거나 혹은 씁쓸해하며 넘어갔을 텐데, 전국적으로 이렇게 인지되고 있다면 오히려 활용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 라는 역발상으로 김밥 축제를 기획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것들을 보면 다소 황당하지만, 적당히 맥락은 있는 것들이 많은데 김밥 축제도 MZ 세대들의 이 코드를 건드렸다.
모자란 인지도는 모든 브랜드의 약점이다. 여러분이 접하는 대부분의 캠페인의 제1 목표는 ‘브랜드 인지도 제고’이다. 김천시는 모자란 인지도를 역으로 활용했고, 아래의 데이터 검색량만 보더라도 김밥 축제를 공개함으로써 평소의 김천시의 검색량보다 급등하는 걸 보여준다. 무관심의 도시에 관심을 끌어온 것이다.
그동안의 지역 축제, 지역의 브랜딩은 지역의 개성을 발굴하기보다는 지역의 특산물, 주요 문화재를 중심으로 다소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었다. 먹는 것도, 파는 것도, 내세우는 것도, 거기서 거기이다 보니 각 지역의 대표 지역에만 사람들이 몰렸다. 관광 수입이 적으니 예산이 줄어들어 할 수 있는 게 더 적어져 효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악순환의 고리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불거진 지역 소멸 이슈 속에서 지역들의 각자도생 전략이 눈길을 끈다. 특히 SNS에서 회자되는 지역을 보면 이전과 같은 방식이 아닌, 지역을 비꼬거나 풍자하는 온라인상의 밈을 역으로 활용해서 도시의 이미지를 젊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걸 볼 수 있다.
대전의 노잼도시 밈이 그렇고, 김천의 김밥 축제가 그러하다. 김천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내년, 내후년에도 지속가능한 축제로 만드는 걸 목표라고 천명했다.
올해의 축제는 축제의 홍보가 대성공하여 김천시의 인구보다 더 많은 10만 명의 인파가 모여들었고, 그 정도로 많이 올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탓에 축제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전의 지역 축제에 대한 비난이 아닌 내년에 더 잘 준비해서 개최해 달라는 응원도 쇄도했고, 김밥축제 이후 김천시를 찾는 주말 관광객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축제가 끝난 후 모 신문사의 칼럼에서는 특산물, 명소가 아닌 이름만 남긴 족보 없는 지역 축제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지금의 지역 소멸 이슈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형세에 가깝다. 지역 소멸이 워낙 심각해진 만큼 ‘뭐라도 해야 한다’는 지자체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기존에 잘해왔던 좋은 것,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으나, 대전이나 김천처럼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비틀어서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포지셔닝 전략이 가장 큰 매력을 가질 때는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비틀어서 포지셔닝의 무기로 활용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천의 김밥 축제가 내년, 내후년에도 성황리에 개최되어 새로운 족보를 만들어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