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목탄 같은 가을 하늘과 일요일 오후 4시가 만나면 무척이나 권태롭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운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해보려 발버둥 치지만 몸은 쉽게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 앞에서 미루고 미루다 스스로를 자책하게 될 때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두려운 첫 문장에 덜컥 겁이나 덮어버립니다.
문학을 자유롭게 읽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문학적 글쓰기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식을 통한 사유를 적을 수는 있으나, 내 감정을 토로하지 못하는 글쓰기만을 하다 보면 마음이 공허해집니다. 산재한 일 앞에서 부족한 능력으로 마주하는 나날은 우울해집니다. 그래도 저만은 저를 다독이고 괜찮다,라며 외면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한심하다 여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하다고는 여기니 어찌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어 갑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방법을 묻고 싶으나, 상황이 변변치 않아 물을 곳이 없습니다. 구글에 검색해봅니다. 생각보다 미루지 않는 방법들에 대한 의견들이 많습니다. 공통적인 것은 완벽주의를 버리라는 것과 차근차근해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완벽주의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찝찝하고, 그러다 너무 일이 많아져서 지쳐버린 경험이 많습니다. 알면서도 잘 안 고쳐집니다. 장점이 된 순간도 있었으니 쉬이 내려놓질 못하나 봅니다.
소설 쓰기처럼 해야 하나 봅니다. 잘 써야겠다, 한 번에 많이 써야겠다가 아닌 그냥 쓰자, 조금이라도 매일 쓰자는 마음과 비슷한가 봅니다. 머리론 알겠는데, 마음이 막막한 일 앞에서는 벽처럼 느껴져 머리와 몸이 굳어버립니다. 이런 글을 적어야 마음이 다소 풀리고, 다시 하게 되는 동력이 됩니다. 우울한 글을 적는다고 해서 우울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울을 마주함으로써 우울을 탈피하기 위한 저만의 치료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