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는 현실은 불교의 텅 빈 공(空)이라는 개념 혹은 영화 매트릭스처럼 가상공간일지도 모르겠다. 꿈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때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현실은 가상을 당기고, 가상은 현실을 밀어낸다. 잡으면 안 되는 것을 잡았기에 괴롭고, 잡고 싶은 것을 못 잡아도 괴롭다. 그래서 인간은 괴로운 걸까.
삶의 허무함과 후회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과 가상의 파도를 잘 타야 하지 않을까. 파도를 잘 타려면 파도에 몰입해야 한다. 몰입하는 대상 이외는 블러 처리가 되어야 한다. 열렬히 사랑하면 시공간을 잊는다.
인간이 보내고 있는 지금을 현실이라 부른다. 내 생각은 다르다. 몰입하지 못하는, 사랑하지 못하는 시간은 살더라도 가상이며, 사랑하며 시공간을 잊는 시간만이 현실이다.
현실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삶에 집중하며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때, 몰입할 때만이 진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공간이어도 그 안에서 충실하면 삶을 잘 사는 일이 아닐까. 가상처럼 손에 쥘 수 없는 공간적 개념인 이상이 있다. 현실만 충실하는 것이 잘 사는 일일까? 이상만 추구하는 것이 가슴 뛰는 삶일까?
현실과 이상을 목적지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현실과 이상은 어느 하나가 이겨야만 하는 줄다리기가 아닌, 균형을 맞추려는 방향성, 역동성을 늘 조율하는 게 삶을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근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자연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다.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도 변화하고 있다. 자라거나 쇠퇴한다. 동물은 상황에 맞춰서 진화하거나 퇴화한다. 멈춰있는 것은 없다. 인간의 눈과 편견으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삶을 잘 살아가려면 고이기보다 흘러야 하지 않을까. 상황에 맞춰서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상황에 맞춘다는 것을 뭘까. 인의예지신을 늘 골몰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를 주는 몰입은 말아야 한다. 자연은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현실과 가상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닌, 실존하느냐 하지 않느냐, 몰입하느냐 않느냐, 사랑하느냐 않느냐, 진짜냐 가짜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진짜가 점철되어가는 삶일까. 가짜가 퇴적되어가는 삶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