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며 멈추기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생명의 고마움에 대해, 삶의 무상함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 날엔 벚꽃나무 아래를 관심 없이 뛰놀다가, 꽃잎이 흩날리는 것을 보며 그 앞에서 멈춰질 때가 있다. 피고 진다는 것에 아름다움과 아쉬움 사이에서 삶을 느꼈기 때문이다.
20대엔 오늘을 유보해서 내일 행복해진다는 말을 믿었다. 각자가 팔자가 다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하니 행복하지 않았다. 내일은 또 내일이기에 행복에 대해 꿈만 꾸다 죽을 것 같았다. 철없는 얘기라 생각한다면 현재를 산다고 해서 방탕하고 나태하게 산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자기가 행복한 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맹목적으로 사는 것은 의문이다. 절에 가면 물고기 문양이 많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들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 즉 잠시도 마음을 나태하게 가지지 말고, 유혹에도 빠지지 말고, 깨달음을 얻는 일에만 모든 생각을 집중하라는 경계의 의미로 물고기 문양을 사용하는 것이다.
늘 눈을 뜨고 있다는 것, 깨어있다는 것은 삶의 궁극적 목적이자, 해탈이자, 자유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기대가 아닌 현재를 감사히 살아가는 것이다. 매달 돈 나갈 걱정 때문에 눈앞의 삶을 괴로워하는 건 자신의 결정이다. 어떻게 그런 걱정을 안 할 수 있나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눈앞에 자기 삶을 집중하려고 연습하다 보면 나아지고 점점 마음이 단단해진다.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하고, 눈앞을 확실하게 뜬 눈으로 살아가는 것. 오늘 하루하루 눈앞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 스스로 내면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 바깥의 무수한 인정들이 나를 정말 충만하게 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