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까지의 나는 꽤 우유부단하고 뭘 제대로 해내질 못했어. 요즘 정신건강의학과도 많이 가잖아. 난 뭐 하나를 꾸준히 집중해서 해내질 못할까 스스로 좌절 많이 했지. 서른 초반에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본 적 있는데 우울증은 아니었고, 불안증이 너무 높다고는 했어. 성인 ADHD 증상을 얘기하셨고, 집에 돌아와서 신경이 쓰이는 거야. 이걸 이겨내려기보다는 뭔가 일이 잘 안 될 때면 병원에서 들은 말들을 핑계로 삼고 싶어지고 그랬지...
아무튼 20대 중반 너머 인턴으로 언론사 기웃거리다가 내 전공인 광고를 살려보려고 압구정에 광고 학원 비슷한 데를 등록했어. 내가 딱히 공모전 수상 경력이 없었으니 같이 하면서 스펙 한 줄이라도 만들어 보려고 했고, 업계 사람들도 알 수 있으니까.
그 아카데미엔 명문대 나온 또래도 있었고, 나처럼 지방 사립대 나온 이도 있었어. 내가 사는 경기 북부에서 압구정까지 대중교통으로 편도로 2시간 반 정도를 다녔지.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목표 의식도 있었고, 일은 따로 병행을 하지 않았으니 그리 몸이 고되진 않았어. 가끔 발표 앞두고 밤 새긴 했지만 밥벌이에 비하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
6개월 과정이었나. 거의 다 끝나갈 때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우리 조가 국가기관 상대로 하는 광고 캠페인에서 대상을 받았어. 그래서 과천이랑 코엑스 가서 상도 받고, 꽤 흥분했지. 앞으로 좀 나아질 줄 알고...
근데 뭐 내가 워낙 현실성이 없었으므로, 예술가 기질을 합리화해서, 그 당시 나는 아마 사회화 안 된 INFP였을 거야... 영어 점수도 없지, 학교도 지방이지,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정말 개노답이었어.
뭐... 취직이 잘 됐겠어? 그 후로 고향에서 서울에 대한 희망을 접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며 은둔했지. 사실 핑계였던 거 같아. 나를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했어. 그래서 명절엔 친척집에 가지도 않았고, 관련 경조사에 점차 모습을 감췄어.
그리고 술을 꽤 마셔댔고, 술에 취해 글을 끄적거리고 그런 거에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하고 위안하며 보냈던 거 같아. 부끄럽지만 그런 생활을 하다가 29살에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