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이라는 이름의 유배지에서 발견한 나만의 문장
지도를 펼쳐 중심부에서 한참을 밀려난 외곽, 나는 지금 세상의 시계와 조금 다르게 흐르는 어느 변두리 섬에 머물고 있다. 불규칙한 삶의 궤적은 나를 자꾸만 일상의 바깥으로 밀어낸다.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일과표는 나의 계획을 번번이 무너뜨리고, 나는 도심의 활기찬 모임 대신 막차가 끊긴 정적 속에 남겨지는 쪽을 택하곤 한다.
최근에는 오래된 관계의 방 하나를 스스로 닫고 나왔다. 타인의 날 선 피해의식을 묵묵히 받아내기에 나의 마음 그릇은 이미 일상의 피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문을 닫은 직후에는 창문을 연 것처럼 홀가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빈자리는 서늘한 질문이 되어 돌아왔다. 먼저 손 내밀지 않는 내가, 이대로 영영 혼자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립의 공포였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밤마다 헤드셋 너머로 거친 언어를 내뱉는 소년들을 마주한다. 타인의 부재를 욕하며 자기 안의 결핍을 고백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저 아이들은 나쁜 말을 배우는 게 아니라, 아직 자기 이야기를 말할 적절한 문장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그 시선은 이내 나를 향한다. 텅 빈 단톡방의 침묵과 외곽의 정적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 어쩌면 나 역시 '고립'이라는 거친 외피 뒤에 '성숙'이라는 여린 진심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억지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소란스러운 방에 앉아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 차라리 고독한 섬의 등대지기가 되어 나만의 빛을 닦는 것이 낫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나를 세상으로부터 격리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거리는 내가 나 자신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통로가 되어주었다. 억지로 관계의 양을 늘리기 위해 애쓰기보다, 내 안에서 빚어내는 문장들과 정성껏 차려낸 식탁의 온기에 집중하기로 한다.
나는 이제 나를 가두고 있던 이 소외된 공간을 '창조적 유배지'라 부르기로 했다. 등대지기는 외롭지만, 그가 켠 불빛은 폭풍우 속을 헤매는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된다. 내가 오늘 쓴 이 글이, 나와 닮은 고립을 겪는 누군가에게 작은 등대 불빛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 또렷해지고, 고립이 깊어질수록 나만의 문장은 선명해진다. 나는 더 이상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 줄 인연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가장 나다운 빛을 준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