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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Jan 04. 2016

마음의 영하

아침을 잃었다. 영하는 아침을 버렸다. 새벽과 아침 사이, 노을의 붉음과 노랑빛의 사이, 그 애매함이 주는 숭고함. 수도승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주는 순순한 산소의 온도. 그런 아침을 버렸다. 6개월이 넘도록 영하에게는 직업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영하는.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럴 용기는 없다. 정신적 소시민이라서. 생존한다는 것만으로 주변에게 미안하지만, 흔적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에게 음울함의 무게를 추가하기 때문에. 깊게 박혀 죽을 때까지 그들에게 상처로 남기 때문에. 그런 상처들이 그들의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침투하기 때문에. 영하는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강렬함에 자살을 미루었다.


영하는 제법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대학을 다닐 때는 오리엔테이션에서 MC를 하기도 했고 웃음을 주고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에 열정을 쏟았다. 그런 그였다. 하지만 영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나면, 혼자 있을 때 많은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자신이 원해서 했던 것들이 자신에게 흉터로 자리잡았다. 영하는 늘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옮겨 다녔다. 가까운 사람에게 예민함을 표출했다. 대외적으론 착한 사람이었지만, 주변에겐 이기적인 그였다.


그런 자신이 두렵고 괴물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독립적이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그 누가 욕을 해도 만나지 않으며 상관하지 않기로. 그렇게 영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혼자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게 되었고, 신념은 굳건해졌다. 


하지만 영하의 주변인들은 이상해져 간다고 했다. 사회의 평균적인 룰을 따르지 않는다며. 삶의 규칙을 위반하지 말라며. 영하는 그들의 말에 많은 상처를 받고, 오히려 그들이 갇혀있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오래될수록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오히려 반대편에서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영하는 몇 날 며칠이고 이 의문에 시달렸다.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인들의 평가는 자신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 뭐라고 한 것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삶의 작품을 걱정해주어서 한 말들일까. 비판일까, 비난일까. 그 중간쯤의 무엇이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 영하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걸 가끔 잊기 위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인들에게 웃음을 팔았다. 현실에 적응하려 웃음을 주었는데, 적응하려 하면 할수록 돌아오는 건 영하를 알지 못하는 비난뿐이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타인을 잘 안 다고 착각했다. 나이가 아닌 진짜 어른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 가깝고 안 보이는 것일수록. 평일 오전 9시. 영하는 잠과 죽음의 사이에서 눈을 떴다. 여전히 괴롭다. 다시 감고 싶을 뿐이다. 그 마음의 온도, 그처럼 여전히 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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