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뒷집에는 70대 중후반의 부부가 산다. 나는 5살 때 같은 동네 안에서 한 번 이사한 것 빼고는 서른 가까이 쭉 이 집에서 살았다. 그때부터 이웃이었다. 뒷집 부부를 친근함을 실어 늘 존재하는 '뒷집'이라고 부른다. 혹은 뒷집 할머니네.
어릴 때는 어른들의 삶에 자세히 관심이 없었다. 근데 나는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파악해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 중반이 지나서 세상이 마음대로 안 돼가는 걸 느낄 때쯤 사람과 사회를 알고 싶었나 보다.
뒷집 부부는 여름에는 내방 창문 너머에 조그만 하우스와 텃밭에서 열일을 한다. 뒷집 할아버지는 내가 방 창문으로 몰래 관찰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했다.
가령, 자기네 덩치 큰 믹스견을 목줄에 매달고 나와 우리 집 조그만 믹스견에게 싸움을 붙이곤 했다. 나이 80 가까이 돼도 저런 면이 있구나. 우리 집 믹스견에게 무례한 행동에 대해 나는 화가 났지만, 할아버지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해서 그 순간에 신나서 글로 적었다.
우리에게 친절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얌전한 할아버지지만 내면에 그런 모습이 있다니. 아마 그런 착한 모습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나 보다.
오늘 초등학생 때 이후로 굉장히 오랜만에 동네 경로당에 갔다. 그 이유는 상당히 길어서 생략해야겠다. 통장(이장·동장)님을 찾아봬야 했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가끔 노인정 겉을 지나치며 아무도 안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안을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사회가 존재했다.
뒷집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곳에 계셨고,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아주머니 아저씨였던, 내가 더 나이 먹고 그 이후로 보이지 않았던 어른들이 그곳에 존재해 있었다. 중년이 아닌 노년으로.
때마침 점심때였는데, 할머니들은 밥을 하고 상을 차리고 계셨고, 할아버지들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계셨다. 좀 더 나이 드신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들은 비교적 젊은 할아버지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계셨다.
부엌에서 접시가 부딪고 쟁반이 투닥거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경쾌했다. 그 어르신들은 끊어진 마을 공동체의 삶을 추억하고 자기들끼리라도 유지하고 싶어서 모여서 밥을 하고, 나누고, 치우고 계셨다.
뒷집 부부는 여름 빼고는 일이 없을 텐데, 다른 계절에 불편한 몸으로 어딜 저렇게 다녀오지 했는데, 그 궁금증이 풀렸다. 매일, 아니면 이틀에 한 번, 서로 약속을 잡고 경로당에서 점심을 먹는 아주 중요한 일과였다.
통장님의 싸인을 받고 돌아서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말없이 내게 사과 두 조각을 손에 쥐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