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괴로울까 일희일비란 뭘까

by 무아제로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괴로운 상황이 벌어진 다음에 덜 괴로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나'라는 존재가 '어떤 피해를 입었다'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결국 '나'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되는 것인데.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욕망을 품게 된다. 그 욕망으로 인해 이루어지면 기쁘고,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면 괴롭다.


'현대인으로서 욕망을 품지 말고 종교인처럼 살라는 건가요'라고 묻는다면 답을 생각해보았다. 욕망은 부족함을 채우려는 걸 너머 탐하는 태도이다. 그 기준은 각자 주관적이어서 자신을 성찰하는 데 달려있지만. 욕망은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고 한다. 쾌락을 느낄 땐 좋지만 욕망으로 인해 몰려오는 얽히고설킨 복잡한 감정들이 온 정신을 괴롭게 만든다. 그걸 잊기 위해 다시 욕망의 순간으로 도피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이상은 고요한 마음 상태, 평정심, 온화함이다. 고요한 마음 상태를 추구하기 위해선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해야 하는 일 앞에선 이성적 태도로 임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본능과 감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변하는 건 당연하다.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그렇다. 안 좋은 것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누구나 늙어가니까. 꽃은 잠깐 피어서 아름다운 거니까. 다음 계절 필 꽃은 지금 피어있는 눈앞의 이 꽃이 아니니까.


그러니 모든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서 꽤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좋은 상황 앞에서도 좋음을 절제할 줄 알고, 안 좋은 상황 앞에서도 분노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까.


안 좋은 상황 앞에서는 분노를 절제하는 게 조금은 납득이 갔지만, 굳이 좋은 상황에서까지 환희에 찬 감정을 절제하라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요즘에서야 '내가 일희일비를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건 즉시의 감정을 컨트롤하라는 것이라기보다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되, 감정 후의 행동을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것이 아닐까.


좋은 상황이 계속 일어났다고 해서 그 후에도 들뜬 감정으로 앞일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한다거나,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난 후에도 좌절감에 빠져있는 것처럼 감정에 매몰돼 있지 말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