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 사이

by 무아제로

계획vs무계획, 이성vs감성, 좋아하는 걸 해vs좋아하는 것만 하고 어떻게 사니


나는 근래 2년 간 위 내용과 같이 나누고 어느 것이 중요한지 고민을 했다. 깊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를 만났더라면 나는 더 빨리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간 고립을 자처했다. 열등감이 있어 상처를 잘 받기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단 말에 그간의 관계를 절단했다. 어리숙했다. 책에 나와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텍스트 그대로 적용시켜선 안 된다. 삶은 콘텍스트라는 걸 몰랐다.


이분법적으로 나누되, 극단으로 치우친다는 게 아니라, 나의 본성이 어느 것에 가까운 인간일까를 고민했다. 균형 있게 살면 나의 본성과 개성이 해를 입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계획적이며 감성적이고 좋아하는 걸 하려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를 의심하다가 확신이라기보다는 그래도 되겠다는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 몸은 편한데 어딘지 모르게 우울했다. 감성적인 게 자신이라고 해서 모든 부분에 그렇게 행동하면 책임을 감수해야 했다. 조르바처럼 살려면 자신이 그런 그릇인지부터 봐야 한다. 사회 안에서 그 누가 뭐라 해도 절대 자신을 긍정할 수 있고 행복하다면 그렇게 살아도 되겠지만.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의존하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현 상태에 따라 조율과 배분을 하라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살고 있기에 극단적으로 고립된다면 자신이 아무리 좋아하는 걸 하고 있어도 우울해진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고립된 사람들이 정말 행복해 보이는가. 사람과 사회에게 상처를 극심하게 받은 사람들이 그저 차 선택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들은 행복하다고 애써 위로하면서 한 번 찾아온 방송인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는가. 절에 들어가 승려가 돼도 결국 사람과의 교류가 있어 삶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양 극단 중 어느 것 하나가 중요한 것은 없다. 중용이라고 해서 중간만 지키고 있으라는 게 아니다. 계획적이어야 할 때는 계획적이어야 하고, 무계획적이어야 할 때는 무계획적이어야 한다. 공과 사,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고 때와 장소에 맞게 조화롭게 활용하는 사람이 가장 넓은 스펙트럼에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치면 대단한 걸 낳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마저도 다른 부분에선 극심하게 우울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생이 험난하다. 극단적인 예술가에 속했던 반고흐처럼. 살아 있을 때 행복하지 못한데 죽어서 주목받는 게 과연 얼마나 좋을까. 살아서도 죽어서도 충분히 이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예술가도 몸과 맘이 건강해야 주목받는 시대다. 매일 러닝하는 하루키처럼.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때와 장소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면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 된다. 해야만 하는 일만 하거나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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