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나서는 모르는 게 힘이다

by 무아제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며칠이나 할지 모르겠다. 나는 번뇌가 많았던 편이라 감정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작심삼일은커녕 이틀만 해도 내 오랜 안 좋은 습관으로 되돌아갔다. 그랬던 내가 작년 겨울에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61일을 스스로 했다. 헬스장에 가서 트레이너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혼자 했다. 왜 혼자 한 걸 강조하느냐면 학원에서 수업 들을 때와 아무 감시도 안 하는 내 방에서 홀로 인강을 듣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유혹에 훨씬 잘 넘어간다.


66일 매일 하면 그게 무의식에 저장돼 습관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런데 61일을 하다 왜 그만두었느냐.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현실 상황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해 내 마음을 조절하지 못한 탓이다. 그 후 죄책감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해왔던 걸 흉내만 했다.


내 마음에 충실하자,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내가 있고,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걸 몰랐다. 감성적인 나뿐만 아니라 감정을 제어하는 이성적인 나도 나란 걸 간과했다. 힘들고 서툴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든다는 건 내게 습관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게 정말 나에게 나빠서 내 안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물이 생성되는 수원지가 있다. 바위틈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그 물은 흐르게 한다. 그 물과 주위로 생명들이 탄생한다. 동물 그리고 꽃과 나무들의 목을 축여준다. 그래서 물은 지혜를 상징한다. 아무리 수원지라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물의 양이 부족할 것이다. 비를 내리게 하는 건 태양의 일이다. 태양은 생명을 상징하고 식물들을 자라게 한다. 수분을 끌어 모으며 적절할 때 대지에게 돌려준다.


물처럼 지혜만 추구한다고 해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성을 상징하는 바위가 있어야 하고 열정과 생명을 상징하는 태양도 있어야 한다. 물만 존재한다면 금세 마르고 그 누구 하나도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 물을 풍요롭게 만들려면 이성과 열정의 힘이 동반되어야 한다. 조절하고 해나가는 힘이다.


해야 할 일 앞에서 하기 싫다는 욕망이 올라올 때 '몰라'를 연속적으로 되뇌며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깨어있음'이라는 말이 이런 것과 같다. 깨어있다는 건 오랜 무의식의 안 좋은 잡생각들로부터 '모른다'라고 하고 눈앞의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 모른다고만 하면 된다. '재밌다'라고 하면 '뭐가 재밌는데. 거짓말하고 있네'라며 오히려 반감이 강하게 올라온다.


좋은 일, 안 좋은 일은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다시 안 온다는 것도 아니다. 삶은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 앞에서도 '모른다'라고 하며 스스로 조절해야 함이 현명하다. 상황에 마주했을 때 해결하면 되는데, 왜 미리 걱정해서 평생 반복되는 괴로움에 집착할까. 그대는 깨어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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