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린날의 교과서를 믿고 있다

by 무아제로

"누가 일 하는 거 좋아하니. 월급 주니까 하는 거지."


은행 지점장을 하는 이가 내게 말했다. 월급도 많고, 겉으론 평판이 좋아 보이지만, 아내 앞에서 다른 이성과의 잠자리를 언급하기도 하는 등 가정에선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더 많은 돈을 원해서 투자하고 여기저기 대출받다가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맞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훨씬 좋다. 하지만 저런 말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일은 즐겁지 않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냥 지루하기보다 할만하다고 다스리며 과정에 의미를 두지 않을까. 너무 치기 어린 말일까.


20대에는 쾌락을 최대한 많이 추구하는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행동이 구려도 잘 먹고 잘 싸니까. 10대까지는 도덕적으로 생각했으나 20대 중반이 지나니까 세상은 교과서와 다르구나, 생각이 물들어갔다. 현실은 배운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거머쥐었다. 내가 정말 어른들 말대로 현실을 모르는구나, 여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범죄만 아니라면 끝없이 욕망하리라,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30대에 다다르고, 많은 정치적인 일들이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몇 달간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에 나와 촛불을 들었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견고했다. 힘이 있는 자는 법을 빠져나갔고, 내부고발자는 구속되었다. 화력이 강한 가스불이 아닌 은은한 촛불이어서 다행인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과거와 달리 정치에 지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짓밟아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끌어오는 리더가 칭송받기보다는, 윤리를 지키는 선에서 이익을 내는 사람이 사회 곳곳에서 칭송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믿는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어른들은 역사와 고전에서 뛰어난 조상들의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졸업만 하면 배우려 하지 않는 자세로 100년이 안 되는 자신만의 경험이 시대가 오지 않은 시대의 정답을 줄 수 있다고 믿는지.


이제 행복은 절제된 욕망에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쾌락에 있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선이 있는 쾌락이 강도는 덜하지만 은은한 행복을 준다고 생각해 가치관이 바뀌어 가고 있다. 절제 없는 쾌락은 그 강한 쾌락만큼 강한 불쾌함을 가져온다. 절제를 아는 쾌락은 쾌락이 지나도 마음에 거치는 불쾌함이 없다. 늘 고요해진다. 슬기롭게 잘 사는 방법은 초등학교 때 이미 충분히 배웠다.


다시 어린 날의 교과서를 믿고 있다.

슬기로운생활_bluebird5519.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