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안에서 발견한 로도스

by 무아제로

뒷집 할아버지가 내게 말한다. "저게 뭔지 아니? 두릅이야. 두릅. 신기하게도 저 안에서 자라네." 밤나무 절간에 흙이 자연스레 매워졌고, 두릅나무 씨앗이 바람에 날아와 안착한 것일까. 엄마는 "우와. 신기하다. 자연 분재야. 자연 분재."라고 흥미로운 듯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댄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 닿은 곳에서 /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 이렇게 시작해보거라'라는 고은 시인의 시가 생각이 났다. 대도시에서 떠내려가다 닿은 자리는 내 풀냄새 그득한 고향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두릅나무는 내게 말했다.


그 옆엔 샛노랗고 청초한 들꽃이 함께 피어있다. 나는 엄마에게 꽃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엄마는 "똥... 똥... 뭐였더라..."라며 난처한 음절만 반복했다. 나는 사진을 찍어 지식인에게 물었더니 애기똥풀라는 답변이 달렸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꽃은 5~8월에 황색으로 핀다. 자연은 거짓말처럼 약속을 지킨다. 분포지역은 한국·일본·중국 동북부·사할린·몽골·시베리아·캄차카반도. 각자 떠내려간 자리에서 언어와 환경은 달라도 계절에게 책임을 다한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인용한 이솝우화 내용이 떠올랐다. 한 허풍쟁이가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여행하고 나서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로도스섬에서 멀리뛰기 세계신기록을 세웠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자 한 사람이 코웃음 치며 답한다. 멀리갈 것 있나. 자,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IMG_20170501_131818.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