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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May 26. 2017

눈 앞의 온도

지난겨울, 카페에서 점원에게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듯한 거 주세요.”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듯한 거요?”

“아! 죄송합니다. 아메리카노 따듯한 거 주세요.”

그 시기엔 고민이 참 많았다. 감정 기복을 잘 다스려야지,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소유는 내가 아니었다. 눈을 뜨고 귀는 열려있었지만 보고 들은 게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단어를 의식하지 않고 뱉어버렸다. 오래된 연인처럼, 익숙해져 소중함을 잊는 가족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입에 붙어버린 단어였다.

낱말들이 소중한 줄 모르고 무심하게 뱉어버렸다. 이 글을 노트북으로 적으면서도, 자판의 터치감을 하나하나 느끼려 충실한다. 항상 눈앞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내 안의 목소리, 바람의 강도, 밤의 온도, 사랑하는 사람의 이목구비.

지금에 충실하면 이야기가 태어난다. 이야기 없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단한 경험만이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니라, 사소하다 여기는 일상에 집중해도 이야기가 태어난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사소한 게 더 이상 사소해지지 는 지혜의 경험이다.

앞으로 낱말들을 소중하게 뱉어야지. 한 음절 한 음절 소중하게 말해야지. 지금을 놓쳐서 낱말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아야지. 눈앞을 열렬히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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