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詩)・글을 짓다.
시는 무엇인가.
시서화 삼절에서 시(詩)라는 것은 오래전 사대부 문인들이 정신과 마음을 담은 시조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문학의 범주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면, “문인에게 시는 거의 이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시 형식을 빌려 그림에 대한 감상과 미적 성장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유학과 문을 중시하였던 조선의 건국이념에 따라서 예능을 다소 경시하는 경향과 문과 결합한 교양으로서의 예를 문의 격조로 여기는 중층적인 이해가 동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시, 서, 화가 결합한 종합예술이 높이 평가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돌아와 서양에서 시는 무엇이었고 그 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그리스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지금은 문학이 시, 소설, 희곡 등으로 세분화되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희곡은 원래 시였다. 희곡 뿐 아니라 소설의 원형도 시였다. 외부세계의 자극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고, 그 반응의 태도에 따라, 즉 세계와의 관계 양상에 따라 다시 소설과 희곡으로 구분되지만 운문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는 모두 시였다. 시에 대한 담론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가져와 풀어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접하는 ‘시’의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는 같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다루는 ‘시’라는 장르는 우리가 선행 학습한 운문체계를 갖춘 문학의 한 장르로서 ‘시’가 아닌, 고대 그리스 시대 문학의 전반을 가리킨다.
그리스 시대 ‘시’ 는 서정시와 서사시 그리고 서사시는 다시 비극과 희극으로 구분된다. 서정시와 서사시의 구분은 나와 세계와의 관계에서 갈등과 조화로 그 성격으로 차이를 둔다, 즉 서정시는 세계와 나의 갈등이 아닌 내 자신의 성찰과 감성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사시는 희곡, 인물이 세계와 겪는 갈등을 통해 이야기가 이어지는 양식이다.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의 형식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인의 성격에 따라 비극과 희극으로 나뉘는 것이다.
이처럼 시(詩)는 예술로서 그 역사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예술품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니 그리스 철학자들이 예술로서 시를 바라본 태도가 어땠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시학에서 중요한 것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라는 장르를 통해서도 모방에 대한 사유를 했다는 것이다. 모방은 예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시문학의 본질이 모방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 시작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후라 할 수 있다. 모든 예술작품은 이데아의 모방이라는 이론을 펼친 플라톤과 더불어 이데아를 모방하는 기술에 의해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된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이르기까지 미메시스 즉, 모방은 인간의 존재와 동시에 본래적으로 인간에게 내재되어있는 성질(본성)이다.
모방으로 이루어진 놀이가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 세계에서 일종의 시원적 교육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유아는 어른의 말과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문화적․윤리적․사회적 행동 구조 및 언어를 습득한다. 모방이 본능의 산물이든 학습의 결과이든 모방은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기본적인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과도한 베끼기는 창의적이지도 않고 법적 문제를 야기하지만 말이다. 현대인들을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간 난장이라 표현하는 인문학적 사고를 봐도 세상 아래 완벽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의견이다. 다시 돌아가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를 논할 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요한 인물이다. 에티엔 수리오의 『미학사전』은 미메시스를 ‘무엇인가의 재현’으로 정의하면서 플라톤의 ‘장인과 화가’로 넘어간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따라 “예술 창작의 기본 원리” 라고 정의한다. 미메시스라는 용어는 통상 ‘모방’으로 번역이 되어왔지만 사실, 미메시스의 탄력적인 의미를 담는 단어는 모방이라는 단어보다는 ‘재현’에 더욱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 즉 이 재현이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모방은 사물 자체가 가진 표면적 이미지에 대한 모방이 아닌, 행동하는 인간의 재현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이 재현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기술이며, 이 기술이 어떠냐에 따라 즐거움, 쾌감을 느끼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회화와 비교하자면, 형태와 색채를 사용하는 회화와 달리 시는 리듬이나 말 또는 선율을 도구로 사용하는 춤과 노래에 더 가깝다고 본다는 점이다. 오늘날로 본다면 말과 함께 하면 대사가 되고 노래가 되고 말이 없다면 춤이 되고, 악기를 사용한 공연이 되고, B-boy, Non-verbal 퍼포먼스로 구현된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태도와 탁월하게 맞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