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왜 시서화 삼절인가 -
왜 지금 시・서・화 삼절인가
시ㆍ서ㆍ화 삼절사상의 전통은 일찍이 후한 시대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후한(後漢, 25년~220년) 시기에 이미 시ㆍ서ㆍ화에 능한 사대부화가가 출현하여 그들을 삼미(三美)라 칭하였다고 하는데 문과 화가 결합한 문예양식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변모하였다가 당(唐, 618년~907년) 대 장언원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서는 한(漢)의 채옹(蔡邕)에 대하여 채옹의 글씨와 그림과 찬문은 당시에 삼미(三美)라고 불렸다고 되어있다. 8세기 이후 천이백 년 이상 중국에서 시・서・화 세 가지 예술이 학식과 교양을 갖춘 중국인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 속에서 ‘삼절’은 우리나라에서 문인화의 중요한 양식으로 자리 잡아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추사체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명필가 김정희는 ‘그림도 글씨의 일종이며 서예의 필법과 그림의 필법이 동일하다’고 보았다. 김정희의 글을 모아 놓은 완당집(阮堂集)에는 추사가 글씨 연습은 난초를 그리면서 했고, 난초를 그릴 때는 글씨를 쓰듯이 했다고 적혀있다. 추사가 강조한 난의 핵심은, 글을 쓰듯이 그리는 난이다. 난초의 형상에 묵중하게 들어앉은 문자의 기색을 높이 치는 것이다. 추사에게 글과 그림은 하나였던 것이다.
이렇듯 역사가 오랜 동양의 사상을 왜 지금 끌어와 현대예술을 이해하는 가치관으로 제시하려 하는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의 근대 역사는 서양 중심적 사고 아래 흘러왔다. 기술의 발전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서양사에서 큰 방점을 찍어왔고, 예술사조 역시 서양 중심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K-pop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가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상황이 똑같이 전제되어야 하는 비교ㆍ대조군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과거 비틀즈에 열광했던 세계인들이 요즘 BTS를 쫓는 것을 봐도 한국의 문화를 K-power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손바닥 안의 작은 세상에서 전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기술의 혁신이 가져온 아이러니일까.
또한 근대를 넘어서고 있는 현대의 사유체계는 융섭을 향해가고 있다. 융섭은 다소 낯선 단어이다. 조금 쉬운 말로 풀이하자면 융합이 있을 것이고, 조화와 화합이 있을 것 같다. 이 융섭을 이해하기에 앞서 언급하고 갈 학자가 있다.
마페졸리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명백한 획일화의 저편에서, 온갖 종류의 혼혈적인 관심사와 행동, 종교・철학・음악에서의 다양한 혼합주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인상적이고, 이 모든 것은 삶을 다양한 측면으로 구성하고, 사회조직 속에서 삶이 중심이 되게끔 한다.’다’고 현대의 융섭과 하이브리드 현상이 삶의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는 그동안 미술과 음악, 문학, 연극 등으로 나누던 분리의 경계들이 희미해지거나 무너지고 합쳐지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 것이 노래인지, 문학인지, 예술의 장르를 분류하고 구분 짓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근원적으로 추구하던 즐거움과 재미, 감흥 등이 더 중요해진 현대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놀이하는 인간, 즐기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만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서, 그림이라는 형식, 노래라는 형식, 문학이라는 형식 중에서 어떠한 형식을 사용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식이든 혹은 여러 형식의 혼합이든, 더 나아가 새로운 형식 창출이든지에 상관없이 예술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 현상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이나,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은연중에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이 중요해지고 저녁이 있는 삶을 갈망하며 사회 구조에 대한 불만을 전면에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하는 것처럼 현대사회 속 인간은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 총체적으로 세상을 보고자하는 이런 인식은 시・서・화 삼절에 담겨있는 동양적 융섭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시, 서, 화는 서로를 넘나들며 관계하고 때로는 나누어졌다가도 때로는 조화롭게 합해지기도 하는 융섭을 이루고 있다.
시ㆍ서ㆍ화에서 서와 화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서화동원론’에서 살필 수 있고, 시와 화의 이해를 ‘시화일률론’이라고 한다면, 삼절의 삼각관계를 이루는 시, 서, 화의 관계는 ‘시서화 일률론’를 통해 볼 수 있다. 김백균은 ‘시서화일률론’을 “송대 소식의 “시화본일률(詩畵本一律)”론이 기존의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주장과 결합되면서 보다 더 확대되어 적용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당대에 시와 그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고 있다. ‘시서화일률론의 출현은 시와 글씨, 그림을 하나의 통합된 심미창작규범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매체인 시와 글씨, 그림을 하나의 기준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에 이미 시와 글씨와 그림을 각 예술 형식의 현상적 측면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심미적 효과로 파악하려는 예술 본질에 대한 자각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시서화삼절’이나 ‘시서화일률’론은 글씨와 그림, 시라는 요소들이 함께 등장한다는 형식적인 특징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시서화가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세계가 동일하다는 의미로 시서화삼절이 표현하는 것은 사물의 외표인 형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현현되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이다.’ 단순히 글과 그림과 시를 함께 하는 예술 양식 추구로서 삼절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사유체계의 변화와 발맞췄기 때문에 시・서・화 삼절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 서 화 삼절사상을 어디부터 설명하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김백균이 ‘예술적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시서화일률”론은 그림이 완전히 심미적 표현도구로 자리 잡고 난 다음인 송대에 출현한 것이다. 그림의 예술적 효과가 시나 글씨의 효과와 같은 주관적 서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립되면서 기존의 시와 글씨의 지위와 동등해졌다.’ 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이후에 ‘시서화삼절’이 점차 시와 서와 화가 한 작품에서 어우러지는 동양전통의 예술양식으로서 예술에 대한 사유를 반영하는 용어가 된 것이다. 북송시대 “소식은 왕유의 그림을 두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는 글이 생각났다.
이처럼 그림보다는 시와 글씨를 우위에 두었던 시각이 있었던 것이고, 그림이 비로소 시와 글씨의 위치에 올랐다고 인정하면서 시ㆍ서ㆍ화 삼절 사상이라는 사유가 정립된 것이다. 하여 시에 대한 예술적 고찰을 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