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상황에서 ‘1조 9천억’ 역대급 달러 장사 벌인 증권계
“내 돈 내가 굴리겠다는데 왜 정부가 막나?”
최근 금융당국이 증권사들의 해외주식 마케팅에 제동을 걸자 온라인이 시끄럽다. 환율 방어를 위해 죄 없는 서학개미를 희생양 삼는다는 ‘음모론’까지 돈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과연 정부가 개미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일까, 아니면 증권사들의 ‘도박판 개장’을 단속하는 것일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학개미 탄압’이라는 프레임 뒤에 숨겨진 증권사들의 탐욕스러운 ‘달러 포식’ 실태를 체크해봤다.
환율 1,480원…
개미는 ‘곡소리’, 증권사는 ‘콧노래’
많은 투자자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환율이 오르면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 건 개미가 아니라 증권사다. 환전 수수료가 ‘정률(%)’이기 때문이다. 1달러를 바꿔줄 때, 환율이 1,200원일 때보다 1,480원일 때 증권사는 수수료를 20% 이상 더 챙긴다.
실제로 주요 12개 증권사의 해외주식 수수료 수익은 2023년 약 5,800억 원에서 2025년 11월 기준 1조 9,500억 원으로 3배 넘게 폭증했다. 환전 수수료 수익만 4,500억 원이 넘는다. 온 나라가 고환율로 비명을 지를 때, 증권사들은 그 변동성을 이용해 역대급 ‘수수료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700만 원 드립니다”의 함정…
도박판 호객꾼 된 증권사
최근 증권사 앱을 켜면 “타사 주식 옮기면 현금 700만 원 지급”, “계좌 트면 달러 지급” 같은 배너가 카지노 전단지처럼 쏟아진다. 정상적인 투자 권유라기보다 ‘현금 미끼’를 던져 수수료 셔틀을 모집하는 꼴이다.
이들이 권하는 상품은 어떤가. 안전한 우량주보다는 수수료가 비싼 ‘3배 레버리지 ETF’나 초고위험 상품 거래를 부추기는 UI를 전면에 배치한다. 마케팅 비용을 수백억 쏟아부어도, 개미들을 회전매매(단타)로 돌리면 수수료로 그 이상을 뽑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계좌 절반이 파란불인데…
‘자유’ 운운할 때인가
증권사가 돈방석에 앉는 동안 개미들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금감원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8월 말 기준, 해외주식 투자자의 49.3%가 손실 구간이다. 두 명 중 한 명은 돈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투자의 자유를 막는다”고? 이는 빚내서 코인 하던 시절, 정부 규제를 욕하던 논리와 판박이다. 당시엔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욕했지만, 루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그게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음을 깨달았다. 지금 증권사들의 행태는 ‘투자’를 권하는 게 아니라, 환율 리스크가 최고조인 시점에 불나방처럼 뛰어들라고 등을 떠미는 ‘약탈적 영업’에 가깝다.
‘서학개미 탄압’이 아니라,
본질은 ‘금융사 배 불리기’ 제동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는 당신의 매수 버튼을 없애는 게 아니다. 과열된 마케팅 경쟁에 제동을 걸어, 증권사가 리스크 관리는 뒷전인 채 수수료 따먹기에만 혈안이 된 구조를 끊겠다는 것이다.
키움증권이 당국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재정비 명목으로 스스로 텔레그램 채널을 일시중지한 것을 봐라. 업계 1위조차 지금 자신들의 해외 투자 마케팅에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단 걸 인정한 셈이다. 1,480원 환율의 파도 속에서, “정부가 우릴 탄압한다”는 증권발(發) 선동에 낚여 흥분할 것인가, 아니면 냉정하게 내 자산을 지킬 것인가.
지금 규제받아야 할 대상은 서학개미가 아니라, 개미들의 손실을 담보로 1조 9천억 잔치를 벌인 증권사들의 도덕적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