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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화국'의 딜레마를 한국은 넘어설 수 있을까

부채로 쌓아올린 집값 버블에 잠식된 한국 경제의 과제와 극복방안

by 무딘날

언더스탠딩 채널에 오늘 올라 온 김태유 교수님의 <부동산은 재테크 아닙니다, 남의 돈 뺏는 겁니다> 영상이 매우 인상깊어, 이에 대해 관련 내용을 정리한 내용을 올립니다. 교수님의 인사이트와 전체 내용을 듣고 싶으신 분은 제목 링크를 통해 영상 직접 시청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부동산은 가치 창출 없는 제로섬 게임"


한국 경제는 세계적인 기술력과 제조업 강국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심각한 구조적 모순에 직면해 있다.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되어야 할 가계 자산과 금융 시스템이 생산 활동과 무관한 부동산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인 경제 활력을 저해하고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본 보고서는 서울대학교 김태유 명예교수의 핵심 진단을 분석의 틀로 삼는다. 김 교수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국민 개개인의 '계몽된 이기심(enlightened self-interest)'이 잘 설계된 국가 시스템을 통해 생산적인 활동으로 유도될 때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역설한다. 반대로, 자본이 '불로소득(unearned income)'을 좇아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자산으로 쏠리게 되면, 실물 경제는 투자의 고갈로 신음하고 혁신은 질식하며 국가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이러한 진단은 패권 국가들의 역사적 교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스페인 제국이 새로운 상업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낡은 농업 경제의 논리에 집착하다 몰락한 반면, 영국과 미국은 자본을 생산적인 산업과 금융 시스템으로 이끄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패권 국가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 본 보고서는 현재 한국이 바로 이러한 역사적 기로에 서 있으며,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과거 쇠락한 제국들의 전략적 실패와 유사한 경로를 밟을 위험이 있음을 경고한다.


이에 본 보고서는 먼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을 최신 데이터를 통해 실증적으로 해부하고(1장),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 있는 경제학적 이론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것이다(2장). 이어서 한국 부동산 시스템의 구체적인 병리 현상과 정책 실패를 진단하고(3장), 해외 주요국들의 정책 사례를 비교 분석하여(4장), 최종적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구조적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1장: 한국 경제의 구조적 해부: 데이터가 말해주는 현실


본 장은 정량적 데이터를 통해 한국 경제의 불균형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김태유 교수의 핵심 진단이 단순한 수사가 아닌 냉엄한 현실임을 입증한다.


1.1 가계 자산 구성: 땅 위에 세워진 나라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가구의 평균 자산은 약 5억 2,727만 원에 달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자산의 총액이 아닌 그 구성에 있다. 한국 가계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을 포함한 실물자산이 차지하며, 금융자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이는 국민 자산의 70% 이상이 금융자산으로 구성된 미국과 정반대의 구조다. 2024년 조사에서도 평균 자산이 5억 4,022만 원으로 증가했지만, 이러한 기형적인 자산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이처럼 편중된 자산 구조는 한국 가계의 순자산 가치를 부동산 가격 변동에 극도로 민감하게 만들고, 생산적인 기업 부문의 성장 과실로부터는 멀어지게 한다. 이는 국민적 차원에서 부동산 투자가 부를 축적하는 유일한 경로라는 인식을 고착시키며, 국가 경제 전반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시발점이 된다.


1.2 자본의 흐름: 돈은 어디로 가는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의 산업별 대출금 통계는 자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의 전통적 성장 엔진이었던 '제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은 정체되거나 감소한 반면, '부동산 및 임대업'과 '건설업'으로 유입된 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이러한 추세는 이미 2004년 보고서에서도 지적되었을 만큼 오래된 구조적 문제다.8 특히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경우, 기업대출 증가액이 부동산업에 집중되면서 금융 자원 배분의 왜곡과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데이터는 김태유 교수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생산적 기업에 대한 위험 감수보다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 대출을 우선시하며, 자본을 비생산적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부동산 중심의 자금 배분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작동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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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금취급기관 산업별대출금(잔액 기준)을 바탕으로 재구성. 부동산 및 임대업 비중은 해당 업종의 대출금을 총 대출금으로 나눈 값. 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1.3 부채의 덫: 거품을 키우는 연료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금융협회(IIF)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속적으로 90%를 상회하며 세계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이 부채의 대부분은 주택 관련 대출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말 56.0%에서 2023년 3분기 말 61.9%로 더욱 확대되었다.


높은 부채 수준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자 결과다. 이는 가격 상승이 소득 증가가 아닌 신용 팽창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한국 경제는 금리 충격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되었으며,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대규모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시스템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국은행 스스로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성장률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4 감당 불가능한 가격: 벌어지는 격차


KB부동산의 장기 시계열 데이터는 주요 대도시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극적으로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세부적인 수치는 조사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예: 2020년 서울 PIR 5.22 16, 대출 기반 PIR 11.3 17), 주택 가격이 가계 소득 증가율과 완전히 괴리되었다는 추세는 명백하다.


높은 PIR은 부동산 거품이 야기하는 사회적 긴장을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지표다. 이는 젊은 세대와 저소득층을 주택 시장에서 배제시켜 세대 갈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또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가계가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게 만들어, 1.3절에서 설명한 부채의 악순환을 더욱 가속화한다.


결론적으로, 이 데이터들은 '비생산적 자본의 파멸적 순환(Unproductive Capital Doom Loop)' 구조를 명확히 드러낸다. 가계 자산의 부동산 편중(1.1)은 집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압력을 형성한다. 이러한 '안전 자산' 인식은 은행이 제조업보다 부동산으로 자금을 몰아주게 하는 유인이 된다(1.2). 생산 부문으로의 자본 공급 위축은 실질 임금 상승과 경제 성장률(g)을 둔화시킨다. 둔화된 임금 상승과 신용으로 부풀려진 자산 가격(1.3, 1.4)은 평범한 가계에게 부동산 투기를 부를 쌓는 유일한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고 자산 거품과 부채만 쌓여가는, 바로 김태유 교수가 경고한 국가 쇠퇴의 전형적인 경로에 들어서게 된다.



2장: 자산 불평등과 경제 침체의 이론적 조명


본 장은 1장에서 제시된 실증적 데이터를 세계적인 경제 이론의 틀로 해석함으로써, 김태유 교수의 진단을 학술적으로 심화하고 한국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론적으로 규명한다.


2.1 한국적 맥락에서의 피케티 r > g: 주택이 주도하는 불평등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앞지를 때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한국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의 자본수익률(r)은 압도적으로 부동산 자본이득과 임대소득에 의해 견인되는 반면, 실질 경제성장률(g)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가들의 자산 수익률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기여도는 근로소득자의 주식 투자 수익률을 압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피케티 이론에 대한 정교한 비판들은 그의 모델이 주택 자산을 자본에 포함함으로써 결과가 왜곡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비판은 한국의 상황에 적용될 때 오히려 논지를 강화한다. 매튜 로글리(Matthew Rognlie)나 지아니 라 카바(Gianni La Cava)와 같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자본소득분배율의 상승은 주택 공급이 제약된 지역에서 저금리에 힘입어 나타나는 '주택 현상'이라는 주장은 한국의 현실을 정확히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r은 산업 자본에서 나오는 '생산적' 수익이 아니라, 자산 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추출적' 수익이다. 이는 피케티의 틀과 김태유 교수의 진단을 통합하는 지점이다. 즉,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자본수익률(r)은 바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지 않으면서 불평등만 심화시키는 '불로소득'인 것이다.


2.2 주택의 금융화: 안식처에서 투기 자산으로


OECD와 IMF의 연구들은 주택이 본래의 사용가치(안식처)를 넘어 교환가치(금융상품)로 변모하는 '주택의 금융화(financialization of housing)' 현상을 경고한다. 이 과정은 주택 부문에 금융 시장, 금융 논리, 금융 주체들이 깊숙이 침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에서 이 현상은 주택담보대출의 폭발적 증가(1장 1.3절), 주택과 연계된 복잡한 금융상품의 발달, 그리고 부동산이 부의 축적과 노후 대비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인식되는 것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IMF는 금융 심화가 초기에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부유층에게만 이익을 주고 불평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미국 주택 시장을 경고 사례로 드는데, 이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주택의 금융화는 주택 가격을 지역의 실물 경제(임금 등)와 분리시키고, 대신 글로벌 자본 흐름과 금리 사이클에 연동시켜 변동성과 리스크를 증폭시킨다.


2.3 헨리 조지의 유령: 불로소득과 '완전세'의 딜레마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의 가치는 토지 소유주의 노력이 아닌 사회 공동체의 발전과 공공 투자에 의해 창출되므로, 이 '불로소득(unearned increment)'은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 LVT)를 통해 공공이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론적으로 토지의 공급은 완벽하게 비탄력적이므로, 토지가치세는 경제 활동을 왜곡하거나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을 발생시키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세금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론적 우아함에도 불구하고, 토지가치세는 현실에서 구현되기 매우 어려웠다. 특히 20세기 초 영국에서의 실패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토지 소유주들의 격렬한 정치적 반대와 함께, 건물 가치와 분리된 '순수 토지 가치'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끝없는 소송을 유발했다.


이러한 헨리 조지의 논의는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종합부동산세 등)를 둘러싼 논쟁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는 목표는 타당하지만, 그 방법론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임을 보여준다. 조지주의적 관점은 왜 기존의 재산세를 단순히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정책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세 가지 이론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곤경을 설명하는 인과적 사슬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주택의 금융화(2.2)'는 시스템에 신용을 펌프질하여 주택을 투기적 자산으로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이 신용이 만들어낸 투기 열풍은 헨리 조지(2.3)가 지적한 막대한 '불로소득'을 발생시킨다. 생산적 노력 없이 발생하는 이 막대한 부동산 수익률은 실물 경제 성장률을 훨씬 초과하여, 피케티(2.1)가 설명한 폭발적인 불평등을 야기한다.


이 모든 과정은 자본이 비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가 불로소득을 창출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생산 경제를 고사시킨다는 김태유 교수의 핵심 명제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이 이론들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한국 부동산 문제의 '어떻게'와 '왜'를 설명하는 상호 연관된 논리적 틀을 제공한다.



3장: 시스템의 병리: 투기, 정책 실패, 그리고 외부 충격


본 장은 이론적 분석을 넘어, 현장에서 문제를 지속시키는 구체적인 기능 장애와 정책적 실패를 진단한다.


3.1 불로소득 추구: 실패한 조세 시스템


한국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러나 조세 제도는 이러한 투기를 억제하거나 이익을 효과적으로 재분배하는 데 실패했다. 다수의 연구들이 부동산 소득이 불평등의 주된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KIPF)의 분석에 따르면 종합부동산세는 주택 가격 안정에 "매우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그쳤다. 양도소득세는 이익의 일부를 환수하지만, 주택 소유자가 매각을 꺼리게 만드는 '동결 효과(lock-in effect)'를 유발하여 오히려 공급을 제약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결국 보유세와 거래세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조세 시스템은 정치적 딜레마에 갇혀 있다. 투기를 억제하기에는 너무 약하고, 이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자산가들의 거센 정치적 반발에 부딪힌다. 이는 1장에서 지적한 '파멸적 순환' 구조가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3.2 증상적 위기: '갭투자'와 '전세사기'의 해부


'무자본 갭투자'를 이용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은 한국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병리가 낳은 가장 파괴적인 증상이다. 검찰 수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그 범죄 구조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무자본 매입: 사기범들은 자신의 자본 투입 없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만으로 주택을 매입한다.


가격 부풀리기: 전세가는 실제 주택 가격뿐만 아니라, 중개업자 및 컨설팅 업체에 지급할 거액의 리베이트까지 포함하여 부풀려진다.


'깡통전세'의 구조화: 이로 인해 계약 시점부터 부채(전세보증금)가 자산(주택 가치)을 초과하는 '깡통전세'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투기적 베팅: 이 구조는 오직 주택 가격의 지속적인 급등에만 의존하여 유지될 수 있으며, 사실상 임차인의 전 재산을 담보로 한 순수한 투기적 도박이다.


이러한 사기 행각은 일부 범죄자의 일탈이 아니라, 집주인에게 무이자, 무규제 레버리지를 제공하는 '전세' 제도의 독특한 구조적 취약점에서 비롯된 병리 현상이다. 이는 시장을 휩쓴 금융화와 투기 열풍이 가장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발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3.3 글로벌 통화의 조류: 종속 경제의 한계


한국 주택 시장은 진공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사이클과 같은 글로벌 통화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이어진 전 세계적인 양적완화와 저금리 기조는 한국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이는 자산 가격 폭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반대로, 미국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은행 역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 압박을 받는다. 이는 변동금리 대출을 보유한 수백만 가구의 이자 상환 부담을 급격히 증가시켜 소비와 경제 성장을 위축시키고 금융 안정을 위협한다.40 이처럼 외부 요인에 대한 높은 종속성은 국내 정책의 자율성을 제약하고, 시스템의 변동성과 리스크를 한층 더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병리 현상들은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위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느슨한 글로벌 통화 정책(3.3)'은 불을 지필 '값싼 연료'를 공급하는 거시적 조건이다. '실패한 국내 조세 시스템(3.1)'은 이 연료에 의해 타오르는 불길을 막을 방화벽을 구축하지 못했다. 투기와 손쉬운 신용이 만연한 환경은 '전세' 시장과 같은 독특하고 규제받지 않는 시스템의 취약성을 극대화한다. 결국 이 압력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전세사기'라는 미시적 재앙(3.2)으로 폭발한다. 전세사기는 더 큰 시스템적 실패를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와 같은 경고 신호인 것이다.



4장: 국제적 패러다임: 주택 정책의 비교 분석


본 장은 실행 가능한 교훈을 얻기 위해 세 가지 다른 국가의 주택 정책 모델을 평가하고, 이를 통해 구체적인 정책 제언의 기반을 마련한다.


4.1 개입주의 국가: 싱가포르의 HDB 탈상품화 모델


싱가포르의 주택개발청(HDB)은 공공 주도를 통한 대규모 주택 소유 모델의 전형이다. 국가가 직접 주요 개발자 및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며, 현재까지 120만 호 이상의 주택을 건설했다.45 이 모델의 핵심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공급 지배력: HDB가 주택 재고의 압도적 다수를 통제하며 시장 가격을 안정시킨다.


투기 방지 규제: 구매자에 대한 소득 상한제, 가구당 1주택 소유 원칙, 최소 거주 의무 기간 등 엄격한 규제를 통해 HDB 주택이 투기적 상품으로 변질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사회적 목표: 이윤 창출이 아닌, 시민, 특히 신혼부부와 청년층에게 저렴하고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명시적인 목표로 삼는다.


4.2 사회적 인프라 모델: 비엔나의 고품질 혼합소득 주택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주택을 상품이 아닌 '사회적 인프라'로 간주한다. 이 정책은 폭넓은 계층의 시민에게 고품질의 저렴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이원적 시스템: 시가 직접 소유·운영하는 시영주택(25%)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제한영리 주택조합'(협동조합 등)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강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영구적으로 저렴한 대규모 임대주택 부문을 유지한다.


사회 통합(Social Mix): 입주 자격을 소득 하위계층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 인구의 80%까지 포괄하도록 넓게 설정하여 사회주택의 슬럼화를 방지하고 통합된 공동체를 조성한다.


품질 중심 철학: '가난한 자를 위한 주택은 저렴해 보여서는 안 된다'는 철학 아래, 사회주택이 높은 건축적 품질과 생활 수준을 갖추도록 한다. 옥상 수영장, 커뮤니티 가든, 통합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비용뿐만 아니라 품질을 기준으로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이를 구현한다.


4.3 경고적 사례: 독일의 임대료 규제와 불평등 심화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의 임대료 급등에 직면한 독일은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임대료 상한제(Mietpreisbremse)'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공급 감소: 연구에 따르면, 임대료 규제는 집주인들이 주택을 임대 시장에서 철수시키거나 매각하도록 유도하여 주택 부족을 오히려 심화시켰다.

투자 위축: 수익률이 제한되자 유지보수 및 개선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었다.

자산 불평등 악화: 이 정책은 주택 '가격' 상승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자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린 주택 소유주와 자산 축적의 기회를 갖지 못한 임차인 간의 자산 격차가 극심해졌다. 역설적으로 임차인을 돕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 자산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비교 분석을 통해 성공의 핵심 결정 요인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구조적 분리'에 있음이 드러난다. 성공적인 모델들은 투기적인 민간 시장을 규제하려는 시도에 그치지 않고,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거대한 비투기적 주택 부문을 병행하여 구축했다. 독일은 근본적으로 민영화된 투기 시장에 가격 통제를 적용하려다 시장 참여자들의 공급 철수라는 예측 가능한 반작용에 부딪혀 실패했다.


반면 싱가포르와 비엔나는 단순히 규제하는 대신, 투기적 시장 압력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절연된 거대한 공공·사회주택 부문을 육성했다. 이 비투기적 부문은 전체 시장의 가격 안정판 역할을 하며, 대다수 시민에게 저렴하고 질 좋은 주거 환경을 보장한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핵심 교훈은 기존의 투기적 시스템에 규제를 덧대는 것(독일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이 아니라, 비엔나와 싱가포르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의미 있는 규모의, 구조적으로 분리된 비투기적 주택 부문을 구축하는 장기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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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자본과 지속가능한 주거를 위한 새로운 항로


본 보고서는 한국의 부동산 문제가 단순한 시장의 순환적 이슈가 아니라, 자본 배분 모델의 깊은 구조적 결함임을 밝혔다. 이는 김태유 교수의 진단과 피케티, 헨리 조지, 그리고 주택 금융화 이론을 통해 다각적으로 입증되었다. 이 거대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미봉책이 아닌, 다음과 같은 다각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적 방향 전환이 필수적이다.


전략적 명령 1: 자본 흐름의 재정렬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금융 시스템의 유인 구조를 개혁하여 자본이 부동산에서 생산적인 산업으로 흐르도록 물길을 바꾸는 것이다. 은행 대출 심사 시 부동산 담보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상향 조정하고, 반대로 기술 기반의 산업 대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등 금융 규제 개혁을 통해 이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금융 자원이 더 이상 비생산적인 자산 거품을 키우는 데 낭비되지 않고,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데 쓰이도록 하는 핵심 조치다.


전략적 명령 2: 자산 과세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

기존 세제를 미세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토지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효과적으로 환수하고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장기적인 조세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이는 헨리 조지의 이상에 부합하면서도 경제적 왜곡과 정치적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보유세, 거래세, 상속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를 통합적으로 검토하여,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는 근본적인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전략적 명령 3: 비투기적 주택 부문의 구축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장기 해법은 비엔나와 싱가포르 모델을 본받아, 민간 시장과 구조적으로 분리된 대규모 고품질 사회주택 부문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건설하는 것이다. 이 부문은 폭넓은 입주 자격을 부여하여 사회 통합을 도모하고, 공공기관과 비영리 단체가 협력하여 관리하며, 영구적으로 저렴한 주거 옵션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단기적인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주거 안정을 달성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러한 개혁들은 단순히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을 넘어,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부동산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날 때, 한국은 비로소 그 자본과 국민의 에너지를 혁신과 생산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딜레마를 해결하고, 21세기 진정한 선진국으로서의 번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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