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의 맛있는 이야기
흔히들 알고 있는 장어의 종류는 4가지. 민물장어(뱀장어), 갯장어(하모), 붕장어(아나고), 먹장어(곰장어)다. 이 중 가장 대중적인 장어는 민물장어다. 민물장어는 5~10년을 강에서 살다 먼바다(필리핀 마리아나 해구로 추정)로 나가 산란을 하고 생을 마친다. 알을 깨고 나온 치어는 순수 본능으로 어미가 살던 강으로 돌아온다. 신비로운 생명의 회귀력이다. 이때 치어를 잡아 양식을 한다.
갯장어는 통영과 여수에선 하모라고 불리며, 혹자는 장어의 왕이라고도 한다. 비싸다는 의미다. 양식이 안 되고 여름 한정 어종이니 비쌀 수밖에. 샤부샤부로 살짝 데쳐 양파에 올려 먹는 맛은 장어의 왕이라 불릴 만도 하다.
곰장어로 알려진 먹장어는 다른 장어들과는 배다른 형제다. 기다란 체형은 비슷하지만 심해어라 눈도 없고 턱도 없다. 맛은 있다. 전 세계에서 먹장어를 먹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마지막으로 붕장어. 일명 아나고. 양식이 되지 않는 순수 자연산임에도 서민들의 안주가 되어주었던 고마운 장어. 하얗고 도톰한 클로버잎을 닮은, 회 중에 가장 싼 값으로 먹을 수 있었던 아나고 회(붕장어 회라고 하면 느낌이 안 온다). 장년의 술꾼들 중 포장마차에서 아나고 회 한 접시 안 했던 술꾼이 있을까. 회, 구이, 탕까지. 요리의 폭마저도 다채로운 붕장어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붕장어로 남해 여행을 떠나보자.
먼저 부산이다. 기장의 짚불 곰장어가 명물인 부산이지만 붕장어도 만만치 않다. 백반기행 4회에 방송됐던 부산 편 아이템 중 하나가 용호동 섶자리의 붕장어 구이였다. 해운대에도 유명 붕장어 구이집이 있다. 친구 소개로 가게 된 [수민이네]다. 수민이네의 붕장어 구이는 원초적이다. 거칠게 토막 낸 붕장어를 착화탄 위에 올려 직화로 굽는다. 꾸밈이 없다. 아니 꾸밈이 들어올 틈이 없다. 불 위에 얹힌 붕장어 토막이 꿈틀거리다 숨을 죽이는 현장이다. 어디 꾸밈 따위가 들어올 틈새가 있겠는가. 젓가락 들고 불 위 붕장어의 마지막 순간만 기다리는 인간들의 식탐 어린 눈이 번뜩이는 곳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은 입이 붕장어 구이를 씹는 순간 사라진다. 아! 맛 앞에서 인간은 이토록 나약하구나. 직화구이 된 붕장어는 고소하고 담백하다. 매끈하던 육질에 불맛이 더해져 식감이 포슬포슬하다. 채반 위에서 아직도 꿈틀대고 있는 붕장어를 연실 불 위에 올린다. 산 곰장어 구이는 한 발 떨어져 보면 잔혹한 취식의 현장이지만, 함께 동참하면 원초적 미식의 자리이다. 카니발의 어원이 'Carne Vale 고기여, 안녕'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 어원대로 라면 진정한 카니발은 [수민이네]에서 매일 열리고 있다.
장어는 타 어종에 비해 기름기가 많고 고소하다. 많이 먹으면 느끼할 수 있다. 이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수민이네]는 수제 초장이 있다. 구운 붕장어의 옅은 느끼함을 수제 초장이 지워버린다. 요물이다. 젓가락을 멈추기가 힘들어진다. 붕장어의 순도 높은 맛을 즐기려면 부산식이 좋다. 거침없이, 꾸밈없이, 날 것 그대로 불 위로. 붕장어 본연의 맛을 위해서라면 이 방식이 최고다. 오랜만에 외국에서 온 친구가 있다면 부산식 산 붕장어 구이를 추천한다. 외국에서 먹기 힘든 게 냉면과 산채로 불 위에서 익혀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오랜만에 귀국했던 친구도 너무 좋아했다. 이런 걸 먹고 싶었다고. 생물 직화구이는 한국인의 고유의 식문화인 듯하다.
붕장어를 처음 만난 건 서울의 포창마차에서다. 아나고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포장마차에서 가장 빨리 준비되는 안주였다. 뼈째 씹히는 고소함. 궁극의 소주 안주. 아나고에 대한 추억은 그 정도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일반 횟집에선 아나고를 찾기 어려웠다. 포장마차가 하나 둘 사라지면서 클로버를 닮은 아나고 회도 멀어졌다. 잊혔던 붕장어를 다시 만난 건 제주도였다.
제주도에서 회를 먹는데 서비스라며 몇 점 먹어 보란다. 반투명한 고운 살결이 처음 본 육질이었다. 아나고란다. 어라? 아나고를 포를 떴다고? 살만 포를 뜬 아나고 회는 포장마차의 것보다 훨씬 고소했다. 뼈도 씹히지 않으니 먹기도 편했다. 고소함으로만 치면 갈치나 도미보다도 윗길이었다. 서비스라고 몇 점만 준 주인장이 서운할 정도였다.
붕장어든, 갯장어든, 먼 친척 먹장어(곰장어)든 바닷장어는 남해 어는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리지 않는다. 고흥 벌교 시장에 가면 꼬막 도매점들이 줄 지어 있다. 대부분의 꼬막 상점에서 붕장어도 취급한다. 붕장어의 주요 산지 중 한 곳이 고흥 앞바다다. 제주도에서 먹었던 포 뜬 아나고 회 생각이 나서 붕장어 몇 마리 회를 떠달라고 부탁했다. 도매상점답게 씨알 좋은 붕장어 껍질을 능숙히 벗기더니 뼈째 썰어낸다. 어라? 저게 아닌데. 손이 워낙 빨라 막을 겨를도 없이 세꼬시가 되고, 미니 탈수기에 들어간다. 물기 빠진 붕장어 세꼬시를 면포에 싸더니 뜨거운 물을 붓는다. 붕장어 숙회였다. 면포를 펼치니 클로버 잎을 닮은 뽀얀 아나고가 있다. 예전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그 모습이다.
"사장님 제가 생각했던 붕장어 회는 이게 아니고 포를 뜬 건데"
"그렇게 하면 몇 점 못 드세요. 기름기 땜에 날로 많이 먹으면 설사해요. 물이 좋아 숙회도 꼬수워요"
비밀이 풀렸다. 서울의 포장마차에서 다루던 아나고 회는 숙회였다. 변질 위험이 적고 보관이 용이해서 포장마차 메뉴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숙회여도 붕장어 산지에서 먹는 숙회는 질이 달랐다. 현실의 맛이 추억의 맛을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고흥의 아나고(붕장어) 숙회는 달랐다. 살집이 두툼한 게 고소함이 포장마차 기억의 두 배였다. 소주도 평소의 두 배. 맛의 부작용이다.
여수로 가보자. 남해 연안 전라도에서는 장어탕이란 멋진 해장국이 있다. 전라남도 소울 푸드를 선정한다면 반드시 포함될 음식이다. 여수에서 해장을 할 때면 [남원식당]을 찾는다. 깨장어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깨장어는 상품으로 팔기 어려운 작은 붕장어를 뜻한다. 멀쩡한 장어로 끓인 장어탕도 좋지만 깨장어탕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장어탕에 들어간 커다란 장어살이 거북하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깨장어탕은 다르다. 작고 하얀 살이 초보자도 부담스럽지 않다. [남원식당]은 된장과 시래기 베이스로 탕을 끓여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국물을 뜨다 보면 땀과 함께 숙취는 사라지고 새로운 음주 욕구가 솟는다. 술꾼 아내들에게는 탐탁지 않을 집이다.
붕장어 여행의 종착지는 완도다. 부산과 정반대인 남해 서쪽 끝이다. 이곳에 작은 노포인 [동백식당]이 있다. 삼겹살도 팔고, 간자미회도 파는 [동백식당]의 붕장어 구이는 부산식과 정반대다. 자연스러운 꾸밈으로 붕장어의 고운 맛을 끌어낸다. 붕장어 손질부터 다르다. 곱게 포를 떠, 직화가 아니라 프라이팬에 굽는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불맛 대신 기름맛을 입힌다는 점이다.
달궈진 팬에 커다란 돼지비계로 기름칠한 후 붕장어를 굽는다. 붕장어 살이 팬에 달라붙지도 않고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허영만 선생은 [동백식당]의 붕장어 구이에서 '달고 고소한 맛'이 난다고 평했다. 단맛의 지방의 단맛이다. 돼지기름으로 천연 조미료를 치는 것이다. 끝이 아니다. 돼지와 붕장어 기름으로 코팅된 팬에 묵은지와 갓김치를 구워 함께 먹는다. 매콤, 시큼, 달달, 고소. 꾸밈도 이런 꾸밈이 없다. 부산의 붕장어 구이가 직선적인 로큰롤이라면 완도는 풍성한 맛의 재즈다.
어디서 어떻게 먹든 붕장어는 맛있다. 남해의 푸르름 옆에서 구워도 먹고, 회로도 먹고, 끓여도 먹으니 어찌 맛이 없을까. 붕장어(弸長魚)는 '기다란 몸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에 ‘활시위 붕(弸)’자가 붙었다'(2021. 6. 2. 농민신문)고 한다. 몸을 축축 늘어트리는 무더운 장마철이다. 붕장어 한 점으로 활시위처럼 팽팽해질 수 있을까? 입맛은 그럴 것 같다.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