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의 맛있는 이야기
오징어 맛이 나지 않는 오징어찌개가 있다. 시커먼 법랑 프라이팬에 담긴 오징어찌개에는 오징어 맛 대신 쿰쿰한 신맛이 있다. 대체 이게 뭐야라며 몇 수저 뜨는 동안 오징어 맛이 사라진 오징어찌개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전국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마성의 맛. 대전 [소나무집]의 오징어찌개다.
대전 구도심 대흥동의 소나무집은 외경부터 노포다. 단층 사각형의 회색 건물에 녹색 글씨가 선명하다. 궁서체의 ‘소 나 무 집’.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사람보다 냄새가 먼저 반긴다. 지독한 군내다.
어릴 적 땅에 묻은 김장독 김치에 골마지가 끼면 어머니 걱정이 시작됐다.
“이거 어쩌냐. 벌써 골마지가 꼈네. 김치에 군내 나겠네”
군내의 사전적 의미는 본래의 제맛이 변하여 나는 좋지 아니한 냄새다. 김치에 군내가 나면 그 김치는 종말을 예고한 것이다. 그 군내가 소나무집에 가득하다. 백반기행 촬영 때 허영만 선생이 “어이쿠. 사장님 가게에 군내가 엄청나네요”라고 하니 여사장님은 “그려요. 그 냄새 때문에 손님들이 와요”라며 받아치신다.
맞다. 쿰쿰한 군내와 시큼한 맛에 중독된 사람들로 가게는 언제나 만석이다. 허영만 선생도 지인들과 재방문 후 가게 벽에 흔적을 남겼다. “아! 반갑다. 2년 전 강렬한 그 냄새! 그 맛!”이라고.
소나무집 오징어찌개에는 오징어와 얇게 저민 총각무 김치가 전부다. 이 총각무가 쿰쿰한 냄새와 시큼한 맛의 주인공이다. 고춧가루 넣어 바글바글 끓고 있는 국물 한 수저 먹으면 “캬~” 소리가 절로 난다. 시큼함에 침이 고이고 속이 개운해진다. 간간이 씹히는 오징어가 구수하다. 푹 익혀진 총각무와 오징어는 막걸리를 부른다. 쿰쿰, 시큼한데 맛있다. 처음인데 낯설지 않고 정겹다. 수저를 멈출 수가 없다. 기묘한 매력이다.
김치가 시어져 먹기가 어려워지면 어머니는 김치를 볶았다. 들기름 넣고 자작하게 볶아내면 신김치는 새로운 밥도둑으로 환생했다. 갓김치나 총각무도 마찬가지다. 들기름으로 볶아주면 신맛은 줄고 구수한 맛이 더해진다. 김치가 시어질 때 우리의 어머니들이 하시던 조리법이다. 소나무집 오징어찌개도 그렇다. 얇게 저민 총각무를 들기름에 달달 볶다 오징어, 고춧가루 넣고 물 부어 끓이면 끝. 군내에 시큼털털한 이 맛이 낯설지 않았던 건 어머니가 길들여 놓은 입맛 덕분이다.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맛이 소나무집 낡은 프라이팬 안에서 끓고 있다.
사람이 몰리면 소나무집 단골은 알아서 움직인다. 다 먹은 손님은 그릇을 주방에 가져다주고, 기다리던 손님은 받아온 행주로 테이블을 닦는다. 홀을 담당하는 며느리 한 명과 주방을 맡은 딸 한 명이 종업원의 전부라는 걸 단골들은 알고 있다. 주인과 손님이 함께하는 이 풍경, 멀리서 보면 우리네 잔칫집 모습이다. 어머니는 음식을 하고, 고모는 상을 닦고, 누나는 그릇을 나르던 그때 그 풍경. 소나무집엔 옛정서가 있다.
소나무집 오징어찌개는 먹는 단계가 있다. 처음 국물을 즐기다 국수를 넣는다. 얼큰 시큼한 칼국수 한 프라이팬이 생긴다. 면이 사라지면 자작해진 국물에 밥을 볶는다. 게임 끝. 오징어찌개 7,000원, 사리 1,000원, 공깃밥 1000원, 인당 9,000원으로 행복 지수 만 점이다.
소나무집은 호불호가 강하다. 리뷰에 악평과 극찬이 공존한다. 어쩔 수 없다. 개성 강한 음식의 숙명이다. 음식 너무 쉽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오징어에 시어 빠진 무 넣고 끓이면 되지 않냐고. 소나무집은 매년 해남에서 5톤 트럭으로 총각무를 공수해 김장을 한다. 양도 양이지만 한결같이 군내 나고 시큼하게 발효하고 숙성시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작년 이맘때였다. 장맛비 내리는 입구 자리에서 쿰쿰하고 시큼한 오징어찌개에 땀 꽤나 흘렸다. 개운하고 시원했다.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장마철이 시작됐다. 소나무집 오징어찌개에 사리를 말고 싶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대전에 갈 구실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