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의 맛있는 이야기
꼼장어를 곰장어 혹은 먹장어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40년 전 포장마차에서 독학으로 술 배우던 시절 최고의 참고서. 한 토막 씹으면 톡 하고 터져 나오는 육즙에 세상살이를 달래던 한 밤의 파트너. 연탄 위에서 꼬물꼬물 익어가며 자욱한 연기를 내뿜고 눈코입이 명확하지 않은 이 녀석을 난 곰장어나 먹장어라 부르고 싶진 않다. 내가 사랑하는 소주 안주인 이 녀석은 비릿 고소한 꼼장어가 맞다.
팍팍한 세상살이 발걸음 더 무거운 날
꼼장어 맵짠 안주에 경계 허문 잔을 들고
우리는 사람 냄새 질펀한 자갈치로 가야 한다
- 손증호의 시, '우리는 자갈치에 가야 한다' 중에서
꼼장어의 고향은 부산이 확실하다. 꼼장어는 원래 식용이 아니라 껍질을 벗겨 가죽을 쓰던 어종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꼼장어 가죽공장이 부산에 세워지고, 껍질을 벗기고 남은 살코기를 배고픈 서민들이 헐값에 먹기 시작한 것이 꼼장어 구이의 시작이라고 한다(2021. 7. 2. 부산시보). 이후로 자갈치 시장은 꼼장어의 성지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아쉽게도 난 아직까지 부산 자갈치에서 꼼장어를 먹어보지 못했다. 부산 사람들에겐 화 날 말이지만, 나의 꼼장어 고향은 포장마차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독서실 친구들을 모아 동네 포장마차로 향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게도 겨울밤은 깊고, 학업의 길은 지겹고, 옆구리는 시렸고, 열정의 뜨거웠다. 고2의 갈망을 해소할 장소는 금기의 영역인 포장마차라고 우리는 의견을 모았고, 얄팍한 용기를 내어 실행에 옮겼다. 마치 대학생인 양 어색한 연기를 하며 포장을 열었다. 쫓겨나면 어쩌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숨기고.
포장마차 유리 진열장 안엔 다양한 안줏거리가 깔려 있었다. 꽁치, 대합, 아나고, 오돌뼈, 닭발, 은행, 꼼장어 등등. 분식집 레퍼토리와는 전혀 다른 어른 먹거리 열전. 우리의 선택은 소주 한 병과 꼼장어. 포장마차가 아니면 도저히 먹어볼 수 없는 바로 그 음식. 녹색 접시에 오이, 당근, 초장과 함께 담겨온 꼼장어는 묘했다. 연탄불 탄내에 뽀얀 살빛. 고등학생에겐 쓰기 이를 데 없는 소주 한 잔을 목젖에 털어내고, 조심스레 꼼장어 한 점을 씹어 보았다. 신세계가 열렸다.
18년 동안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육즙이 혀를 보듬고 있었다. 비릿한데 고소하고, 씁쓸한데 짭조름한 맛이 꼼장어 한 토막 속에 꽉 차 있었다. 25도 소주의 쓰디쓴 흔적을 꼼장어가 고소하게 지워주고, 육즙의 비릿함을 다시 소주가 씻어주는 행복한 순환. 아, 어른들만 이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니. 이기적인 사람들 같으니. 함께한 4명의 친구들 중 오직 한 명, 병륜이만 이 순간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얀 힘줄 같은 내장이 삐죽 튀어나온 꼼장어 토막을 보니 도저히 입에 넣지 못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왜 그런 치기가 고2에겐 있지 않은가. 못 먹겠다고 오이만 씹고 있는 친구 입에 꼼장어를 밀어 넣어보고 싶은 그런 심보.
"우리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로운 맛이다", "이것도 못 먹으면 넌 남자도 아니다. 쪽팔린 거다", "그렇게 오이에 소주만 먹다간 속 버린다" 등등. 넘쳐나는 협박과 조롱에 병륜이는 굴복했다. 깻잎 두 장을 깔고, 가장 작은 꼼장어 한 토막을 올리고, 초장 범벅을 한 마늘 한 점을 얹어 입 속에 밀어 넣었다. "이게 이 맛이었어? 와!". 이 날 우리는 꼼장어 추가에 소주도 추가했고, 병륜이는 "엄마가 불쌍해"라며 눈물을 쏟았고, 형식이는 노상방뇨를 하다 "다리에 기운이 없어"라며 무릎을 꿇었고, 동휘는 말없이 전봇대에 기대어 먹었던 꼼장어를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이후 꼼장어는 나의 최애 안주가 되었다. 특히 포장마차에서는. 연탄불에 거뭇하게 구워지는 꼼장어 향기는 외면하기엔 너무 강렬한 유혹이었다. 그리고 그 유혹은 포장마차 화구가 연탄불에서 가스불로 바뀌면서 사라져 갔다. 야채가 더 많은 양념 꼼장어 한 접시의 빈약함이야 그렇다 쳐도, 직화구이의 쌉쌀한 불향이 사라진 꼼장어는 영혼 없는 허수아비 같았다. 돌이켜 보니 나에게 불맛을 처음 알려준 건 꼼짱어였다.
음식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시청자가 무섭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소개된 식당 중에서 레벨이 다른 맛집을 시청자는 귀신같이 알아낸다. 방송 후 문의 전화가 쏟아진다. 그런 집 중 하나가 논현동의 '짱이네 산곰장어'였다. 웬만한 집들은 껍질이 벗겨진 뻘건 꼼장어를 다루지만 '짱이네'는 부산에서 공수한 산곰장어를 취급한다. 국내산에 사이즈도 크다. 더 좋은 건 직화구이로 굽는다는 점. 불향이 살아있다. 옛 포장마차의 낭만까지는 아니지만 강남 한 복판, 심야에 굽는 직화 꼼장어의 맛엔 특별한 정취가 있다. 후식으로 꼭 추가하게 되는 꽁치김치찌개와 김밥도 제법이다. 단점은 웬만한 고깃값 보다 비싼 가격. 셋이서 대충 먹어도 10만 원을 넘기기 십상이다. 꼼장어라고 그 값을 받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다. '꼼장어 한 점에 소주 한 잔으로 무거운 삶을 덜어내고 정을 나누려는..(나도원, '꼼'장어의 문화사적 접근 중에서)' 정서가 꼼장어 살토막에 촘촘히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낙원상가 길모퉁이 돌아
파고다 극장 앞
맑은 샘물 같은 포장마차 있어
그곳에 하나둘씩 찾아 들어와
낯설거나 말거나 꼼장어 한 접시에 쐬주잔 기울이며
주거니 받거니 넋두리를 나눠 가져도
뒤 끝 깨끗하게 싸아하고 씻어주는 정겨움
훈훈한 인심 퍼주는 곳 있어
나는 참 좋다
- 최인기의 시, '그곳에 가고 싶다' 중에서
세월이 흘렀다. '낙원상가 길모퉁이 돌아'서 익선동 포차거리는 mz세대들의 명소가 되었다.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고, 평일에도 젊은 친구들로 가득하다. 익선동 포장마차에서 꼼장어 한 접시에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예나 다를 바 없지만, 그 대부분이 20대라는 점이 사뭇 다르다. 나 같은 아재들이 낄 틈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크게 서운하지는 않다. 어차피 50대 중반에 다가서니 술자리가 많이 줄었다.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로 나서니 술 먹자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고, 어쩌다 마시는 술자리도 체력적 한계에 종종 부딪치곤 한다. 1차로 충분하니 2,3차 주력 메뉴였던 꼼장어와의 거리는 더더욱 멀어졌다. 꼼장어를 억지로 먹였던 병륜이도, 노상방뇨하다 무릎 꿇은 형식이도, 먹은 걸 확인하던 동휘도 본 지 오래다. 그렇다고 홀로 꼼장어를 씹자니 너무 비릴 것만 같던 참에 새로운 술친구가 등장했다. 아들이 꼼장어에 소주 한 잔 하잖다. 앗싸!!
둘러보면 꼼장어는 여전히 서민들의 삶 근처에서 구워지고 있다. 내가 사는 안산 선부동에도 '황소숯불꼼장어'라는 상호의 꼼장어 구이집이 두 곳이나 있다. 수입에 냉동 꼼장어를 해동해서 요리하기에 육즙이 많이 빠져 있지만 그래도 먹을만하다. 숯불에 익어가는 꼼장어를 사이에 두고 아들과 도란도란 소주잔을 나누는 순간은 아비에겐 '행복' 그 자체다.
며칠 전엔 종각의 '공평동 꼼장어'에서 세 식구가 함께 했다. 양념구이 3인분에, 소금구이 2인분 추가. 돌이켜보니 아내와 꼼장어를 먹은 게 처음이었다. 심야의 술자리를 즐겨하지 않는 아내가 꼼장어에 김치칼국수까지 추가한다. 심야 도심의 정취에 숯불 꼼장어의 고소함, 그리고 아들까지 더해지니 아내라고 행복에 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꼼장어의 비릿 고소함에 새로운 추억 하나가 더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