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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발이 Jun 19. 2020

애호박 부침

엄마의 레시피


애호박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

호박의 단맛을 고기의 기름진 맛 만큼이나 좋아하셨던, 아버지.


애호박은 밥상의 중심인 적은 없지만, 빠진적도 없는 감초같은 친구다. 일단 각종 찌개에 빠지지않고 들어간다. 된장찌개에도 풍덩, 매운탕에도 텀벙, 부추전에도 송송, 야채튀김에 지글,  새우젓국에도 퐁당. 국물이 빠지지 않는 한국인의 밥상에 애호박은 제법 감초 역할을 해낸다. 적당한 단맛에, 부드러운 식감에 노르스름한 색감까지 갖추었으니 이 정도 조연을 찾기 쉽지 않다. 애라는 명칭에 비해서는 야무진 활약이지만, 그렇다고 주연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는 없다. 말 그대로 ‘애’이기 때문에 늘 조연이다. 그런 녀석이 주연을 맡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아버지를 만날 때다. 물론 아버지도 기름진 고기가 없을 때 애호박을 찾지만, 선생님 외벌이 살림에 늘 고기가 있을 수는 없는 법. 아버지 밥상에 가장 자주 등장한 주연은 애호박이 였다. 노릇하게 구워진 애호박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나름 자수성가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아버지의 식탐은 대단하셨다. 평소 자린고비를 존경하셨던 분답게 외식보다 집밥을 강력히 선호하셨다. 물론 배경에는 엄마의 훌륭한 음식 솜씨가 있었고. 그런 아버지 식탐의 종착점은 기름짐이었다. 갈비찜의 달달한 국물은 최고의 비빔밥 소스였고, 된장찌개에 버터 한스푼은 훌륭한 감미료였다. 그러니 기름기 없는 반찬은 아버지에게 헛헛하기 이를데 없는 구성이였고, 이럴 때 엄마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몇가지 반찬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파괴력있고 자주 등장했던 녀석이 애호박 부침이다.  


애호박 부침 레시피

애호박을 얇게 저민다

들기름을 둘러서 중불에 노릇하게 지진다


애호박 부침을 드시는 아버지 표정에는 아쉬움이 없었다. 만족 그 이상의 표정이셨다. 아마도 들기름의 고소한 맛과 애호박의 단맛,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엄마의 비법 간장양념이 더해진면 애호박 부침은 흰쌀밥에 얹혀져서 꽤나 위력을 발휘한다. 밥 한공기 뚝딱은 기본이거니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딱히 맛투정을 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호박 부침을 베스트의 맛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딱 있으면 심심치않게 먹는 그 정도의 맛. 없어도 그닥 찾지않는 그 정도의 매력. 식탁 이곳저곳에서 발견되지만, 눈에 띄지는 않는 그 정도의 위치. 우리내 모습처럼.          


애호박 만능 양념장 레시피

집간장(조선간장)

청양고추 약간

고추가루 약간

다진마늘 약간

실파/깨소금 약간

 아버지는 사람을 참 좋아하셨다. 동창은 동창이라 좋아하셨고, 제자는 제자라고 좋아하셨다. 이웃사촌은 이웃이라 좋아하셨고, 친척은 친척이라 좋아하셨다. 반기문은 고향사람이라고 좋아하셨고, 학교 소사 아저씨는 그냥 좋아하셨다. 이런 분들의 특징이 좋아만 하는게 아니라 욱하고 화도 잘낸다라는 단점에, 싫은 사람도 참 많다는 특징을 지니지만, 어째 아버지는 사람을 참 좋아하셨다. 소탈하게, 누구라도, 본인의 까다롭지 않은 취향에만 맞으면 누구나 아버지에게는 중요 인물이었고, 좋은 사람이었고, 친한 사람이 되었다. 정확히 애호박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취향 그대로의 모습이다.

부재료로 자주 사용되는 대부분의 식재료가 본연의 맛과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 두부는 늘 찌개 속이며, 양파와 마늘은 말 그대로 양념이고, 애호박은 밥상위의 감초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재료를 주연으로 등장시키면 숨겨진 진미가 부각이 된다. 애호박 부침이 그렇다.

천연 식재료 중에 들기름과 불을 만나 이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맛을 내는 식재료가 있을까? 심지어 값도 싸다. 짙은 간장양념을 만나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진한 간장양념 속에서 달달고소한 애호박 맛의 핵심을 놓지 않는다. 입 안을 부드럽게 감싸며, 밥의 단맛과 어우러져 내 혀를 정복한다. 물론 혀는 의식하지 못한다. 너무나 스무스하게, 은은하게 혀를 사로 잡으니까.

가치는 대상의 본질에 있을 것이다. 뻔하다. 그 본질과 두루두루, 편견없이 친해지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놓치고 지나가는 인생이 또한 우리네 삶일 것이다.

기억해보니 아버지는 참 두루두루 좋아하셨다. 사람이건 애호박이건 그 본질을 참 두루두루 좋아하셨다.  내가 유전받지 못한 부분이다. 애호박 부침을 맛나하는 것만 유전됐다.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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