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진주까지
규모가 크다. 공간이 넓다. 크면 클수록 내 갈 데는 멀기만 하다. 담배 피우러 가야지. 의자에 앉아있다가 가방을 들고 가야 하나 놔두고 가야 하나. 망설여진다. 에라 그냥 들고 가야지. 맡아놓은 자리를 뺏기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안전하게 피우고 와야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담배 피우러 나간다. 한참을 걸어 문 열고 나가 모퉁이를 찾는다. 그러곤 부스럭 담배를 꺼내 라이터를 켜 흐읍 빨아들인다. 목구멍을 지나 어느새 가슴팍을 돌고 나와 입 밖으로 내뿜어진다. 내쉬는 날숨에 하얀 연기가 자욱하다. 한 모금 빨고 한 모금 내뱉는다. 차츰 담배가 짧아진다. 이제 몇 번 빨지도 못하겠구나. 목이 답답해지고 가슴이 조여 온다. 입안이 텁텁하고 힘이 빠진다.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서 탁탁 담배 끝을 털어 버린다. 불씨가 바닥에 떨어진다. 다가가 발로 밟는다.
빗소리가 터미널 주위를 에워싼다. 터미널 공간에 많은 사람이 오간다. 표 파는 사람. 표 받는 사람. 매점. 가판대. 분식점. 그리고 수많은 여행객. 타고 내리고 타러 가고 내려서 들어오고 주변을 맴돌며 담배 피우는 사람들. 그래 담배 하나 피우러 가야지.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가 다시금 담배 피우러 나간다. 작은 우산을 꺼내 쓴다. 우산을 쓰니 작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우산 든 손으로 라이터를 켜 불 붙인다. 담배를 피운다. 맛이 다르다. 담배는 비와 섞여 다른 맛을 낸다. 이를테면 축축한 맛이라고나 할까. 축축함이 담배연기와 섞여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가슴속에 축축한 기운이 퍼진다. 나는 축축한 담배를 빨고 축축한 얼굴로 담배를 피운다. 내뿜는 연기가 우산 속 작은 공간에 퍼진다. 나는 우산에 갇혀 담배를 피운다. 우산 속 낡은 틈으로 빗물이 고인다. 한 방울씩 떨어진다. 하필이면 피우던 담배로 참방 떨어진다. 담배가 빗물로 신문지 색처럼 변한다. 그래도 구멍이 생긴 건 아니잖아 하면서 나는 담배를 빨아들인다. 괜찮겠지 하면서 흐으읍 빤다. 확연히 다른 맛. 구멍이 난 건 아니지만 구멍이 난 것처럼 다른 세계의 물질이 함께 섞인다. 들어온다. 다른 세계와 소통한다. 소통을 막던 종이가 젖어서 차단하는 기능이 사라졌다. 온전한 담배맛이 아냐.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숨어 있기를 원했다. 온전한 담배맛이 아니기에 좀 더 온전함을 느끼려 힘차게 빤다. 담배가 잘근잘근 씹힌다.
그제야 탈 버스가 승강장에 들어온다. 일제히 사람들이 줄 선다. 나는 줄에 서 있다가 내 번호를 찾아 앉는다. 머리 위에 가방을 올리고 의자 기울기를 맞춘다. 사람들이 줄지어 탄다. 버스는 승강장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탈 사람 다 타면 더 기다리지 않고 떠난다. 버스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사람은 기다림을 기대하지 않는다. 쫓기듯 간다.
버스가 후진할 때 나는 차창너머 머물렀던 터미널을 본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곳.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며 담배 피웠던 곳. 담배 피우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으니까 그곳도 그리운 장소가 되리라. 이런저런 생각이란 어떤 것일까. 담배 피우며 떠올린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남겨두고 오면 안 되는데 하는 사람. 그래서 외로움을 느꼈던 장소. 외로움을 느끼면 거기가 내 고향이 된다. 고향은 가고 싶은 곳. 담배 피우며 떠올리는 곳. 딱히 고향이라고 명쾌한 곳은 없지만 내가 담배 피우며 생각했던 모든 배경이 고향이 된다. 종국에는 터미널에서 담배 피우던 시간마저 그리워진다.
터미널이 그립다. 이곳에 도착하기를 고대하던 나의 생각들이 그립다. 나는 외로웠으니. 외로움에 사무쳐 담배 피웠으니. 담배 피우며 이곳을 생각했으니. 도착하면 다시금 반대쪽을 떠올린다. 출발했던 곳이 떠오른다. 아아 담배 피우던 내가 그립다. 그 사람이 울던 나날. 나는 담배를 끊었으니까. 담배 끊은 내가 담배 피우던 나를 마치 다른 사람 생각하듯 떠올리고 있다.
담배 피우던 터미널 한쪽 구석진 모퉁이.
거기에 가면 그 시절 그때 갈망하던 내가 있으리. 힘겹게 떠나던 그날의 내가 있으리. 남겨둔 사람 남겨진 마음 있으리. 마냥 아파하던 그 마음 만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