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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Oct 08. 2021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제발 돌아봐. 나 여기 있다고. 내가 얼마나 찾아 헤매었는지



떠난다.



모처럼 집을 벗어나 먼 곳으로 떠난다. 

자전거를 타고, 이어폰을 끼고, 팟캐스트 '쇼킹 미라클' 미스터리 방송을 들으며, 이제 막 퇴근하고 출발한다. 설레는 금요일 밤이 아닐 수 없다. 요즘따라 딸아이는 부쩍 커 자기 방문을 닫는 날이 늘었다. 아내도 뭔가를 내려놨는지 얘기 상대를 잘해주지 않는다. 곁에 있어도 묵언 수행하듯 언저리를 맴돌 뿐. 


나가고 싶다고요! 소리치고 싶다고요! 목줄 맨 강아지처럼 기죽어지내는 나날. 


조금 전 딸아이는 지 할머니 댁에 갔고 아내는 친구랑 약속 있다며 흔쾌히 자유시간을 허락했다. 

몇 년 만이냐! 웬 떡이냐!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렸다. 이 좋은 시간 어떻게 보내야, 보다 황홀하게 보낼 수 있나 바삐 머리 굴렸다. 머리를 굴리는데 시간을 다 허비하면 안 되니 후다닥 압축해서 굴렸다. 그래, 일단 무작정 떠나는 거다. 평소 가보지 못한 곳. 아주 오랜만에 가보는 곳.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아내 입맛, 딸아이 입맛에 맞추느라 먹지 못한 것. 그것을 먹자. 아내나 딸이 봤다면 마구 욕할만한 음식. 기발한 맛을 찾아 떠나는 거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그리운 어딘가를 찾아 떠나자. 차는 됐다. 자전거면 족하지. 맛난 거 먹으면서 맥주도 한 모금 먹어야지. 꺼어억 트림하고 무작정 걸어야지. 걷다가 다리 아프면 자전거 있는 곳으로 돌아와 다시 타야지, 라고 서둘러 계획했다. 

사월의 저녁. 벌써 해가졌네. 어둠이 내리깔린다.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가자. 밤이 깊어지기 전 주말이 막 시작된 이 시간을 즐기는 거다. 배고파도 기분 좋다. 이 기분은 토요일,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만 가능한 기분이니까.


바람을 헤치고 달렸다. 


달리다 보니 배가 더 고프다. 무얼 먹을까? 십수 년 전 다녔던 만화방에 가 라면이랑 볶음밥을 먹을까? 아냐, 좀 더 획기적인 것. 신나는 것. 억눌러왔던 욕망을 충족할만한 것. 그래, 부대찌개다. 아내와 딸아이 때문에 좀처럼 먹지 못했다.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넣어서 햄이랑 소시지랑 잔뜩, 평소 고지혈증에 해롭다고 한 번도 사주지 않던 이놈을 반드시 먹어줄 테다. 기다려라, 부대찌개여, 내가 가리라. 


식당에 들어갔다. 

몇 분이랑 오셨어요? 묻길래 혼자입니다, 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앉아서 메뉴판을 보다가 보다 과감해지기로 했다. 3인분을 시켰다. 밥은 안 먹어야지. 라면사리는 딸려 나오는 거라 햄사리만 추가로 시켰다. 보글보글 끓는다. 찌개 뚜껑을 열어 국자로 한번 휘휘 저어주었다. 그리고 앞접시에 두어 번 알맹이만 건져 놓았다. 국물은 필요 없다. 곧바로 찌개 냄비에 라면사리와 햄사리를 넣었다. 이제 내가 먹을 동안 네놈은 알아서 익거라 하고 숟가락을 들어 먹었다. 햄과 소시지를 한가득 퍼 입안 가득 넣었다. 꽉 차는 입체감. 두둑함. 야채라고는 없는 순수함. 가공된 육류만이 입안에 들어왔다. 씹으니 햄과 소시지 특유의 짭짤하니 짭짤한 짭조름이 은근 달달하게 느껴졌다. 뭔가 나쁜 짓을 하는 쾌감. 될 대로 돼라 하는 심리. 오래간만이니까 괜찮을 거야 하는 논리. 어쩜 몰래 사고 치는 기분이 이럴까?


포만감에 배 통통. 


실컷 먹고 배 두드리며 가게를 나와 걷는데 저 앞에 웬 시커먼 짐승이 목줄도 없이 이쪽으로 오는 게 보인다. 얼핏 개 같은데 설마 곰인가? 아니구나, 개구나, 개겠지, 개가 아니면 뭐야? 개다. 지금 내가 보는 게 정말이지? 네발짐승의 키가 족히 내 허리까지는 올듯한데 어째서 주인 없이 혼자 걸어 다니는거니? 혹 주인 손길을 뿌리치고 도망 나온 거니? 주인은 목줄을 잡고 있다가 나동그라졌을 테고 그래서 이렇게 정처 없이 혼자 돌아다니다 외나무다리에서 나랑 딱 마주친 거니? 나는 송아지만 한 개의 눈길을 피하려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렸다. 개의 음울한 눈길. 누구라도 딱 걸려라 하는 시선. 오른쪽으로 보는 척 고개가 돌아가 있지만 시야각을 넓혀 왼쪽 개의 동태를 살폈다. 개는 마치 사람처럼 우측보행을 했다. 길 한쪽으로 붙어서 잘도 걷는다. 그래, 덩치가 큰 만큼 너도 무수한 경험으로 아는 거겠지? 그렇게 사람처럼 무심히 걸어야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다는 걸. 나는 놀라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고 주문 외우며 지나치려는데 내 왼쪽 눈동자를 따라 설핏 본능 따라 고개 돌리니 개도 고개 돌려 나를... 마주 본다. 어이쿠 죄송, 아아, 미안하구나. 안 보려고 했는데 네가 잘 지나가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 돌아본 거란다. 이해해 달라고 마음의 대사를 읊조리는데 녀석이 사뿐 내쪽으로 돌아선다. 돌아서서 나를 바라본다. 걸렸구나! 왜 따라오려고? 그러지 말고 가던 길 가지? 라고 읊조리는데 놈이 한걸음 내쪽으로 딛는다. 아니 왜? 설마 나? 왜 그래?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혹시 내가 아닌 타인을 찍지는 않았을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의미 없는 동작 뒤 퍼뜩 고개 돌려 내갈길 가리라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오지 마, 제발 오지 마 중얼대며 그냥 걸었다. 언제든 놈이 따라와 내 왼쪽 다리를 물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 어느 때고 확 닥쳐올 낯선 감촉에 부디 놀라지 말자는 다짐. 나는 경보 선수처럼 바삐 걷는다. 바삐 걷지만 절대 뛰지는 않는단다 얘야, 그러니 너도 뛰어와서는 안돼. 그게 우리끼리의 정다운 룰 아니겠니? 하면서 뒤뚱뒤뚱 걸음을 옮겨가는데 쑥~ 빠졌다. 거짓말처럼 아래로 몸이 떨어졌다. 데크 난간이 끝나는 지점. 나는 대각으로 치닫다가 그대로 강에 빠졌다. 3미터 높이의 데크에서 떨어져 풍덩~ 소리와 함께 빠졌다. 빠져서 올려다보니 놈이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뭐야? 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사라진다. 놈은 아마 또 다른 이를 탐색할 터다. 


데크 아래는 데크를 받치는 기둥이 있고 기둥 너머는 시커먼 절벽이다. 어디든 상륙해야 하는데 올라설 곳이 마땅치 않다. 허우적거리며 개구리헤엄을 치는데 바로 옆 수면 위에서 한줄기 어떤 선이 미끄러지듯 따라와 나란히 간다. 뭐야? 새끼줄인가? 새끼줄이 움직이네? 손댈까 하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뜨악! 뱀이다. 물뱀인가? 뱀은 땅 위에서처럼 강물에서도 꾸물꾸물 간다. 그 특이한 동작이 징그러워 눈 뗄 수가 없다. 뱀이 내 옆에서 나란히 헤엄친다. 달빛과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수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긴 선은 때론 새끼줄이 되고 때론 뱀이 된다. 나는 허우적대다 힘이 빠져서 물 밖으로 잠시 나오지 못하다가 이러다 갑자기 뱀이 내 몸을 돌돌 감지나 않을까 확 닥쳐올 어떤 감촉이 두렵고 무서워 고개를 내밀었다. 눈 떴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네 놈의 차가운 느낌을 나는 견디지 못해. 두려워, 두려워, 제발 노터치! 나는 새끼줄을 뒤로하고 힘껏 헤엄쳤다. 헐레벌떡 가는데 어느 지점에서부터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왜 안 가지? 어어! 떠밀려가네. 강물의 흐름이 나를 절벽 아래로 데려간다. 이것은 통상적인 흐름이 아니다. 그 흐름은 큰 흐름과 배치되는 방향과 속도로 나를 옭아맸다. 겨우 물 위에 동동 떠있는 내게 그 흐름을 헤치고 나갈 동력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물살에 휘말려 빨려 들어갔다. 소용돌이. 이대로 죽는 건가. 어쩌면 포클레인이 데크길 기둥 공사를 한다고 그곳을 파헤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용돌이가 생긴 것이리라. 망할 놈의 포클레인. 얼마나 팠나. 소용돌이는 강바닥 아래 어디까지 연결되었나. 눈 감았다.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이라는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점점 숨이 가빠온다. 이러다간 정말 죽겠다 싶어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어두워. 어서 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쉬고 싶었다. 어디라도 가자. 나는 힘껏 다리를 오므렸다가 쫙 피며 나아갔다. 땅에 손이 닿았다. 그렇다면 반대쪽이구나. 방향을 놓칠세라 마구 올라갔다. 그렇게 겨우 수면을 찾아 솟아올랐다. 푸하~ 가쁘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어라, 수면 아래 발이 닿는다. 얕은 곳이구나. 여기가 어딘가 싶어 둘러보는데 처음 보는 세상이다. 내가 사는 도시가 맞나? 아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여기는 내가 사는 곳이 아니다. 빠진 곳이 아니다. 

그렇담 어디란 말인가? 

피곤해. 돌아가고 싶어.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단 말이다. 간절함이 불쑥 뭉게뭉게 피어났다. 강에서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갔다. 마음이 급했다. 올라가 산을 넘고 길을 찾았다. 걸음은 빨랐다. 길 따라 한참 걸으니 마을이 나타났다. 불 꺼진 마을을 지나 도로로 올라갔다. 도로를 걷다가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다. 정류장에서 기다려도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마냥 걷는 중 저 뒤에서 차 몇 대가 지나쳐 갔다. 그중에 다행히 버스도 보였다. 나는 손들어 버스를 세웠다. 저기요, 세워주세요 소리치며 무턱대고 손 흔들었다. 제가요, 정류장에서 기다릴까 했지만 언제 올지 몰라 걷고 있었어요, 정류장이 아니더라도 부디 태워 주세요, 에둘러 읍소했다. 묻지도 않은 질문에 황급히 답변했다. 

저는 세상 가장 약한 약자니까 이해해 주세요.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시내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보아도 여기가 어딘지 어떤 도시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세상. 나는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택시를 타야 하나? 택시를 떠올리며 보는데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여기로 왔나? 알 수 없다. 강물에 빠져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왔는데 다른 곳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문득 아내가 보고 싶다는 생각. 딸아이가 보고 싶다. 

여보! 나 여기 있어. 나 좀 어떻게 해줘. 데리러 와. 얘야! 아빠 여기 있단다. 그래, 전화를 해보자. 주머니를 뒤적이지만 핸드폰이 없다. 식당에 두고 나왔나? 빌려서라도 전화를 해보자 마음먹는데 주위에 사람이 없다. 도시 한가운데 번화가인데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차도 다니지 않는 것이 마치 멈춰 선 공간처럼 사진처럼 움직임이 없다. 


불 켜진 상점으로 다가가니 불이 꺼진다. 내가 가니 가로등도 꺼지고 조명도 꺼지고 어둠이 따라온다. 뭐지? 저기 보이는 곳은 화이트 빛에 화려한데 내가 서 있는 여기는 흑백처럼 어두컴컴하다. 답답하다. 힘들어. 나는 걷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 길거리 벤치에 아무렇게나 누워 자다가 일어났다. 일어나 걷고 또 걸었다. 똑같은 세상. 괜히 떠났다. 그러다 눈을 떴다. 갑자기 보이는 광경. 저 앞에 아내와 딸아이가 걷는다. 겨울 외투에 모자를 썼다. 아내는 아직 젊고 딸아이는 아직 어리다. 나는 뒤따라간다. 가는데 그들은 갈대밭 사이 데크를 잘도 간다. 다행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구나.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모르지만 운명이겠지. 드디어 아내와 딸을 만났구나. 아내와 딸의 뒷모습. 근데 얼굴이 안 보여. 저기 어떤 게 있는지 보러 가자 라며 아내가 말하고 딸아이는 응 가보자 하며 엄마손을 잡고 간다. 제발 뒤를 돌아봐. 내가 여기 왔다고. 내가 뒤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 좀 해, 라고 소리쳐도 그들은 돌아보지 않는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빠가 블랙홀에 빠져 4차원 책꽂이 뒤 세상에서 책꽂이 앞 딸에게 소리치는 것처럼 답답해진다. 소리쳐도 듣지 못한다. 그저 막연해진다. 

그리운 이들. 

들리도록 말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행여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 걷는데 발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발이 땅에 닿아 몸을 앞으로 밀어내야 하는데 땅에 닿지 않는다.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며 팔다리를 휘젓는다. 아직 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나? 앞으로 가지 못한다. 기력을 짜내 움직이지만 자꾸만 뒤처진다. 거리가 멀어진다. 

가지 마. 

돌아봐. 

안 돼. 

나를 두고 가지 마. 




몸살이 났다.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지? 머리가 어질 해서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잤다. 식은땀이 났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동안 현실과 구분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과 깨어난 상태의 괴리감. 힘이 하나도 없다. 왜 돌아보지 않는 거야? 왜 나만 두고 가버리는 거야? 왜 듣지를 못하는 거야? 원망은 가시질 않는다. 방문 밖 거실에서 티브이 소리가 들린다. 아내와 딸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두런두런 어떤 대화를 하는지? 가만 여기가 어디지? 의식이 밝아진다.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꿈과 생시가 헷갈린다. 꿈이라 느끼니 외려 편안해진다. 돌아왔구나. 몸에 힘이 없으니 그저 포기하게 되는구나. 죽는 느낌이란 이런 거겠지? 의외로 죽는 건 편안한 거구나. 내려놓는 것. 같이 있으려 애쓰는 것과 포기하는 것. 네 곁에 가야 비로소 안심되는 것. 그제야 내려놓는 것. 이제 괜찮겠지 하는 것. 아무렴 어때, 가 되는 것. 


아프고 나니 입가에 물집이 잡혔다. 아내가 서랍에서 연고를 꺼내 주었다. 거울을 보니 흉하다.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겠네. 


다시 밤이 되었다. 


딸아이가 침대 옆에서 잔다. 딸아이는 제방에서 자기를 몇 번 도전했다가 안방이 그래도 제일 편하다고 안방에서 함께 잔다.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잔다. 음냐 음냐, 자그맣게 자는 소리도 낸다. 잘 때는 아직 아기 같다고 아내가 말한다. 그 말에 우리는 함께 웃는다. 딸아이의 숨소리가 평화롭다. 

아늑한 순간. 

내가 낮잠을 자서 쉬 잠들지 못할 거라 말하던 아내가 먼저 잠들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잡으니 비로소 안심이 되어 가슴 한쪽 뭔가가 편안히 긴장의 끈을 놓았다. 그러고 스르르 잠들었다. 

안녕.


소중한 나의 한때. 


금요일의 노곤함. 


그리운 장면.


아직 젊은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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