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이 되어가는 과정
북녘의 땅.
구슬님이 처음 국경을 넘을 때의 이야기다. 얼어붙은 두만강. 한밤중 달도 뜨지 않은 새벽. 두만강을 건너자 둑이 나오고 둑을 넘자 1차선 도로가 나왔다. 캄캄한 도로 옆으로 산자락이 이어지는데 일단 아무 데나 올라가 나무 밑에 숨었다. 무서워서 꼬박 3일을 숨어있었다. 숨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도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더러 뒤에서 차 오는 소리가 들리면 수풀에 숨었다가 지나가면 다시 도로에 나왔다. 그렇게 걷기를 이틀, 도시가 나왔다. 배가 고팠다. 사방에서 중국말이 들렸다. 온통 두려운 것 투성이. 다리가 아픈데 어디도 앉을 곳이 없었다. 그저 막막했다.
국경을 지난다는 건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국경을 넘자 신분이 사라졌다. 신분이 사라지자 난민이 되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난민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낯선 타국에서, 사람이 난민이라도 되지 않으면 뭐가 될까요? 라고 구슬님이 불쑥 눈을 반짝이며 묻길래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구슬님은 한숨을 쉬며, 곧장 짐승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사람이 짐승 취급을 받는 게 어떤 건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상상이 안 간다고 했다. 구슬님은 말해주었다. 사람이 짐승 취급을 받으면 간혹 진짜 짐승이 되어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데 그것은 짐승 취급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짐승으로 대하고 부리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한다. 감내하고 감내하고 감내하다가, 감내하면서 감내를 감내하려 한다. 그러나 감내하려 해도 도저히 그게 안될 때가 있다. 그때가 인내의 한계점이다. 쌓이고 쌓여서 둑이 막 터지면, 한꺼번에 폭발하듯 미치게 된다. 미치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아무거나 마구 공격해서 물어뜯어버린다. 뜯고 할퀴고 찢어발긴다. 이윽고 거대한 물줄기가 다 흘러가 바닥이 드러나면 그제야 얌전한 짐승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둑에 물이 가득 찰 때까지 다시금 감내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짐승론이 시작된다.
서쪽 하늘.
해가 유난히 붉게 물들어 저무는 시각. 두만강변, 지린 성 뒷골목에서 조선족 남자 셋은 고민에 빠졌다. 빵모자와 대머리와 안경. 그들은 일찍 시작된 음주 덕분에 적당하니 오른 흥을 어디서 이어갈는지 궁리했다. 이미 돼지고기에 고량주를 대여섯 병씩 비웠다. 밖에서는 곤란하다. 방금 작업을 마쳤기에 옷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어디라도 실내를 찾아 들어가야 했다. 셋 중 비교적 덩치가 작고 빵모자를 쓴 놈이 “내가 물어보고 오지” 하고 길 건너 낡은 건물의 노래방으로 갔다. 빵모자는 주인과 흥정을 벌였다. 노래방 룸에서 기다리는 남자들. 그중 덩치가 가장 큰 대머리는 달달한 분 내음을 상상하다 몸을 베베 꼬아가며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급하다. 여자가 필요하다. 이윽고 남자들의 기대치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도우미 세 명이 들어왔는데, 때마침 옆방에서 나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대머리가 문 앞에서 어정거리다 보게 되었다.
먼저 안경이 마이크를 잡아 노래를 불렀고 도우미들은 각기 사내들의 옆에 붙어서 파트너를 정했다. 빵모자의 옆에 앉은 도우미가 탬버린을 치기 시작하자 빵모자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스펀지 만지듯 주물럭거렸다. 부드러운 감촉에 좋아서 웃는데 도우미는 손등을 치면서 “그러지 마오!”라며 가볍게 거부감을 표시했다.
세 명의 도우미들은 새침데기 모드로 일관했다. 살살 웃으며 남자들의 스킨십을 요령 있게 거절했다. 대머리는 상투적인 그들의 대응을 보며 옆방에서는 어땠을까 짐작했다. 순결하지 않은 주제에. 대머리는 맥주잔에, 양주를 채운 온더록스 잔을 빠뜨리고 달그락 돌려서 들이켜고 있었다. 옆에서 제법 노련해 보이는 도우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안주를 집어주었으나 대머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술잔에만 열중했다. 안경과 개중 어린 도우미가 노래를 부르려고 모니터 앞에 섰다. 그러자 대머리의 눈빛이 번쩍이더니 벌떡 일어나 어린 도우미를 껴안고는 소파에 냅다 눕혀버렸다. 그는 거대한 덩치로 도우미가 움직이지 못하게 자신의 몸을 포개어 깔았다. 대머리는 술에 인사불성이 되어 옆에서 다른 도우미들이 말리는데도 개의치 않고 어린 도우미의 몸 여기저기를 주물럭거리는 데만 열중했다. 뒤에서 노련한 도우미가 대머리를 말렸다.
“이러지 마시라오. 계속 이러시면 우린 돈 필요 없습네다. 그냥 갈 테니 놓아 주시라요.”
그러나 들은 척도 않는 대머리의 밑에서 어린 도우미는 아기 사슴처럼 버둥거렸고 빵모자와 안경은 그저 덤덤하니 지켜만 보았다. 대머리는 어린 도우미에게 입을 맞추려고 했다. 치마를 벗기려고 했다. 어린 도우미는 비명을 질렀고 노련한 도우미는 대머리의 등을 마구 두들겼다. 그 복잡한 상황에서 대머리의 손놀림이 차츰 느려지는가 싶더니 그만 자신의 육중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노련한 도우미는 널브러진 어린 도우미를 일으켰고 나가자고 했으나, 어린 도우미는 조금만 더 채우면 약속한 시간이니 괜찮다고 했다.
노련한 도우미가 시계를 보며 마이크를 건넸다. 어린 도우미는 홀로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얼굴에 눈물 한 줄기가 가늘게 흘렀다. 노련한 도우미는 빵모자에게, 오늘 처음 나온 아인데 많이 놀랐을 것이라고 했다. 어린 도우미가 한 곡을 다 불러갔을까. 대머리가 정신이 들었는지 갑자기 일어나 이번엔 어린 도우미를 뒤에서 껴안고는 넙데데한 얼굴을 그녀의 뺨에 밀착시켰다. 어린 도우미는 잠시 꿈틀댔지만 더 이상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노랫소리도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나머지 도우미들과 일행은 그냥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머리는 노래가 끝나자 이번엔 어린 도우미를 앞으로 돌려 부둥켜안았다. 두 팔로 도우미를 감싸자 도우미도 스스럼없이 대머리를 안았다. 흔들흔들 그들은 스텝을 밟았다. 음악소리가 끈적하게 흘렀다. 커플의 움직임은 모두 육중한 대머리의 안배 하에 있었다. 어린 도우미는 그에게 내내 몸을 맡겼다.
노련한 도우미는 중국인 남편에게 떠밀려 나온 어린 도우미를 타일렀다.
“겁날 것 하나 없지비, 기래 노래와 춤으로 놀면서 돈 버는 거이. 어서 돈 벌어 남편한테 갚아야 하잖음? 거기다 동생도 구해야 지비. 까짓것 걱정할 것도 없음 매.”
빵모자가 복도로 나가서 화장실로 가는데 건너편에서 어린 도우미가 기다리고 있다. 빵모자가 이름을 물었다. 어린 도우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빵모자는
“내래 미제 말을 좀 알지. 곱상한 얼굴이니까 ‘구슬’이라고 부르면 되겠네”라며 그녀의 턱을 집어 올렸다. 어린 도우미는 고개를 비틀어 다시 숙였다.
“몇 살?”
“스물입네다.”
어린 도우미는 빵모자의 물음에 꼬박꼬박 답했다.
“어디서 왔나?”
“북에서 왔습네다.”
“역시, 내 짐작이 맞군. 남편은 중국사람?”
“예!”
빵모자는 그녀의 가냘픈 몸을 아래위로 훑었다.
“혹시 임신한 거 같은데 맞나?”
“삼 개월 됐습네다.”
어린 도우미, 즉 구슬님은 빵모자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돈이 필요합네다. 큰돈이요.”
큰돈 앞에서 구슬님은 주저앉았다. 어느 날부터 얼굴 아래 깊은 곳이 아팠다. 만져보니 뭔가가 생겼다. 무심코 거울을 봤다. 입안에 이게 뭔가 해서 보니 양쪽에 어금니가 돋았다. 그것은 사람을 무는 칼이었다.
결국 칼이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