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
초조해하는 여자.
작은 공원 앞 도로가. 나무 아래 벤치가 줄줄이 나 있는 곳. 망설이는 여자. 삼십 대 초반 정도. 더러 사방을 둘러보다가 폰을 보고 다시 둘러본다. 어디 한 곳을 가만히 보지 못하는 불안함. 외로워 보일까 두려워하는 몸짓. 어쩐지 관심을 갈구하는 눈빛. 사랑을 요구하는 표정. 이 땅에는 유독 사랑받기 원하는 이들이 많네. 사랑은 굳이 뜨겁거나 격렬하거나가 아닌, 지극히 작은 애정, 뭐 그런 것이리라. 친구 사이거나 동료 관계이거나 따위의 편안한 느낌. 결국 이 땅에 사람들은 친구도 없고 동료도 없다. 친구를 벗어나야 온전히 자유롭고 동료를 벗어나야 안정이 찾아온다. 혼자가 편안한 시대. 혼자가 좋지만 이따금 정적이 찾아온다. 정적이 오면 가슴 한편 바람이 들어차 허전해진다. 평일이면 잠을 못 이루는 부작용이 있고 주말이면 끔찍한 공허함이 안전부절 못하게 한다. 아주 작은 관심, 관찰, 애정, 사랑을 원하는 여자. 마침 닉네임도 사랑. 그런 사랑님을 지켜보는 시선. 건너편 차 안에서 그녀를 관찰하는 구슬님. 나는 구슬님으로부터 사랑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랑님은 가로수가 몰려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연신 휴대폰을 확인한다. 그녀는 일어섰다가 앉기를 반복한다. 가로수에 걸린 트리 속 조그만 등이 수없이 이어져 반짝거린다. 이걸 보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랑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똘히 한 영화를 떠올린다.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보지 못한 영화. 스릴러를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영화 모임 카페의 ‘아늑한 극장에서 다 같이 모여 명작을 감상해요’라는 유혹에 급히 댓글을 달아 연락처를 남겼다. 맨 처음 글 남긴 이의 말을 따르면, 극장의 장소가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개인차로 이동해야 하고 거기에 몇몇 회원이 합석하여 출발한다고 했다. 그녀는 차가 없다고 댓글을 달았고 ‘그럼 저녁에 가로수 앞에서 봐요’라는 문자를 받아 이곳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이 근처에 극장이 있다고? 그것도 개인이 영화관과 흡사한 입체적 공간을 연출했다면서 칭찬일색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가고 싶은데 퇴근 시간이 늦어서 못 가네요.’ ‘완전 영화관이랑 똑같던데요. 거기다 아늑함은 옵션이구요’ 등등 찬사의 댓글이 빼곡히 이어졌다. 개인 영화관이라. 사랑님은 호기심이 일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젊은이가 특별한 공간으로 연출했다는 실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이디를 보고 체크해보니 여자회원도 몇몇 참석한다는 글이 있었고 그 전의 모임에서도 여자회원이 참석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정도면 안심이다. 낯선 곳이지만 가봄직하다, 라고 사랑님은 판단했다.
얼마 후 벤치 앞에 선 검은색 차에서 차창이 스륵 내려오며 “영화?”라는 외침이 들리자 사랑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뒷좌석에 올랐다. 운전석의 빵모자와 조수석의 안경은 돌아보면서 사랑님을 훑었다. 뒷좌석 옆자리에서 구슬님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자도 있었어. 사랑님은 그나마 구슬님의 존재에 안심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임에도 변두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자그마한 동네. 오래된 시장을 중심으로 주택과 상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차를 하고 사람들이 향한 곳은 낡은 3층짜리 빌딩 지하다. 지하 영화관의 출입구에는 ‘백악관’이라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오래전 술집이나 노래방이 그 공간을 차지했다가 폐업의 수순으로 버려진 공간이라고 안경이 설명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영화 카페 주인장이 손수 거금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했다. 허름한 외관과 비교되게 실내는 각종 최신 기자재로 가득했다. 사랑님이 들어서자 대부분 남자들이었고 여자회원은 유일하게 구슬님만 있었다. 그러니까 사랑님과 구슬님, 이렇게 단 두 명이 여자고 나머지 열댓 명은 남자인데 모두 영화라는 공감대로 낡은 변두리 빌딩 지하에 모인 것이다.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구슬님은 남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여기 모임의 ‘스텝’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순수하게 이날 처음 이방인으로서 참석한 이는 사랑님 혼자였다. 그녀는 낯설었다.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했다. 스텝이라는 사람들이 맥주와 오징어를 쥐어주는 바람에 넙죽넙죽,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몇 마디라도 인사차 주고받아야 했다. 편한 느낌이 아니었다. 괜스레 자격지심으로 움츠러들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들킨 것만 같아서 불편했다. 열댓 명의 사내들이 차례차례 다가와 인사를 청했고 그녀는 적이 긴장한 표정으로 악수를 나눴다. 새로운 회원을 환영한다며 사람들은 캔 맥주를 동시에 땄고 ‘브라보!’라는 함성과 함께 벌컥벌컥 마셨다. 푹신한 의자는 영화관보다 컸고 좌우로 나란히 붙어 있었다. 레자 소재의 일인용 가죽 소파가 여섯 개씩 세 줄. 사랑님은 내심 구슬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녀 주위로는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기회가 없었다.
사람들은 영화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사랑님을 쳐다보던 좌우의 안경과 대머리도 영화 속 주인공을 보느라 침을 꼴깍 삼켰다. 이들의 타인을 보는 시선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사랑님은 큼직한 화면과 소리가 고마웠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영화로 옮겨갔다. 따라서 애써 쥐어짜 낸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리벙벙한 표정을 연출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랑님은 영화를 보다가도 힐끔 자신이 들어온 입구로 눈을 돌렸다. 무슨 일이 갑작스레 터지면 저기로 나가야 해. 비상구.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 여기는 극장처럼 많은 이들의 공식적인 컨트롤을 받는 곳도 아니고 어떤 규칙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조금 전 처음 만난 주인장과 스텝들에게 마냥 좌지우지된다. 그리고 열댓 명의 남자들이 자신처럼 정직한 영화 마니아 인지도 확실치 않다. 믿을 수 없다. 진정 지나간 스릴러가 배고파 자신처럼 낯섦을 돌파하여 날아온 이들일까. 얼핏 보니 그들은 저희들끼리 이미 안면을 튼 사이고 어쩌면 그런 순수한 방문은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 너무 민감한 걸까? 사랑님은 영화 속 탕탕! 총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입구 쪽을 쳐다봤고 급격히 화면이 전환, 비틀릴 때도 비상구와 빔 프로젝터 앞의 빵모자를 의식했다. 그가 어떤 장난을 칠지도 몰라. 영화가 끝나고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자 영화는 스릴러만의 맛을 몇 배 더 증폭하여 다가왔다. 실제와 영화가 분간되지 않는 시간. 사랑님은 영화와 자신의 주위를 동시에 살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없다. 지금처럼 평온한 시간이 계속 이어질까.
자정이 가까워 올 무렵, 드디어 영화는 끝났다. 상영 중간에 누군가 손 들면 구슬님이 캔 맥주와 안주를 가져다줬다. 구슬님은 충실한 스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술과 안주가 떨어질 무렵 영화와 함께 모임도 종료에 임박했다. 먼저 맨 앞줄 중년들이 손 흔들며 입구를 통해 나갔고 중간 줄의 존재감 없던 이들도 줄지어 사라졌다. 세 번째 줄의 사랑님도 일어섰다가 바로 나가는 줄에 바로 서지 못하고 인사라도 할까 싶어 돌아보는데 구슬님이 다가와 영화가 어땠냐며 맥주를 권했다. 그녀의 청에 사랑님은 거절하려다가 내내 얻어먹었고 영화까지 잘 본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스텝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모두 친절한 인상으로 그녀를 대했고 차후 그들만의 취미생활에 동조할 것이냐 아니냐의 잣대로 가늠하는 눈치였다. 때마침 구슬님이 비닐봉지를 흔들며 맥주가 다 떨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빵모자는 탁자 밑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듯 커다란 포도주 병을 꺼냈다. 구슬님과 스텝들은 박수를 쳤고 빵모자는 그래도 새로운 손님인 사랑님에게 첫 잔을 권해야 하지 않겠냐며 쪼르르 따랐다. 사랑님이 잔을 들고서 홀짝! 한 모금 들이마시자 빵모자는 와인용 잔이 그거뿐이라 얼른 마시고 옆으로 돌리세요, 하고 구순하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입만 쳐다보는 스텝들의 눈초리에 꿀꺽꿀꺽 포도주를 마셨고 한 줄기 입가에 흐른 것을 손등으로 닦으며 구슬님에게 잔을 넘겼다. 사랑님은 불쑥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잠시 앉아야겠어요.”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의자에 앉자 푹신한 레자 표면이 따스하게 온몸을 받아주었다. 소파가 좋네. 아늑하다. 까짓 포도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둥둥 뜨지? 섞어 마셔서 그런가? 그녀는 문득 입구를 보았다. 대머리가 다시 들어오고 그 뒤로 맨 앞줄의 중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아까 갔던 인간들이 왜 다시 나타났지? 몰라, 머리 아파, 뭐 술이라도 더 사들고 왔나 보지. 사랑님은 그렇게 잠이 들었고 어느 순간 눈부신 천장의 형광등 빛에 가물가물 눈을 떴다. 어슴푸레 기척이 일순 사라진 느낌. 아무도 없는 골방. 환하게 불 켜진 방 가운데 자신만 누워있고 문이 닫힌 상태다. 여기가 어디지? 사랑님은 기억을 더듬었다. 영화 보러 들어오던 중 봤던 입구 옆 골방? 그러자 번뜩 정신이 들어 자신의 몸을 살폈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며 일어났다. 문손잡이를 보니 안에서 잠긴 상태라 달칵 돌리려다 그녀는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검은색 승용차로 자신과 함께 왔던 대머리가 트렁크에서 가죽 가방을 꺼냈는데 그 가방이 구석에 덩그러니 보였다. 그녀가 가방을 열어보니 단도를 비롯하여 날카로운 칼 서너 개가 있다. 칼에는 핏빛이 영롱하다. 지하극장은 불이 환하게 켜진 채 아무런 인적도 없다. 그녀는 재빨리 계단에 올라서 밖으로 나가 안도의 숨을 길게 쉬고는 풀썩 쓰러졌다. 쓰러진 사랑님 셔츠의 단추가 풀어진 채 속살을 내보였다. 배꼽 좌우로는 집도에 들어가기 전, 스케치 선이 빨갛게 그어져 있었다.
"사랑님이 죽었나요?"
나는 구슬님에게 물었다. 바보 같은 질문인가? 구슬님은 멍하니 창가 밖 거리를 바라보았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린다. 대답을 기다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다. 사랑님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님은 사랑받는 꿈을 꾸고 있을까.
나는 사랑님이 사랑받기를 고대하면서 구슬님을 보았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 큰일이다. 이미 늦었나? 나 역시 외롭다고 실토했는데. 외로우면 잡혀갈 텐데. 외롭지 않아야 했다. 외로운 것을 들키면 잡히기 좋은 사냥감. 외롭지 않은 척을 해야 살아남는 시대. 너무 외로워서 타인이 외롭던 말던 상관 않는 도시.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져 간다. 다 같이 함께 있거나 혼자 있거나. 어쩌면 처음부터 혼자일지도.
저마다 사랑님처럼 사랑받기 원하는 그대.
구슬님은 아직 창가 밖 외로운 이를 찾는 중 아무런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