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만 기다리던 동생과 막내

데려와야 하는데.

by 머피


"이야기 더 듣고 싶어요. 계속해봐요. 그래, 동생, 동생은 어떻게 지내요?"


동생은 얼마 전 브로커를 통해 입국했다고 한다.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느라 구슬님은 못할 일이 없다고 했다. 못할 일 없이 닥치는 대로 돈을 벌게끔 하는 동기는 오로지 가족. 아직 살아있는 가족. 살아 있어야 해.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이쯤에서 불쑥 든 생각. 살아만 있어달라고 빌어본 적이 있던가, 라고 나는 자문해본다. 언제고 돈을 보내서 데려올게. 데려와서 다 얘기해줄게. 네가 모르는 거라고. 몰랐던 거라고. 제발 정신 차리라고. 무엇이 옳고 잘못인지 여기로 데려와서 일단 여기에 도착만 하면 내가 다 얘기해줄게, 라는 마음. 마침내 가족 중 처음으로 동생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성공했는데 동생은 어떤 얘기를 해도 듣지를 못한다고 한다. 왜 듣지를 못해요? 나는 구슬님을 통해 동생의 이야기를 투영해 본다.




동생이 11평 임대 아파트에서 지낸 지 꼬박 한 달. 그간 외출 한번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야 잠들어 정오 무렵 눈뜨기를 반복한다. 눈 뜰 때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여기는 안전한 곳인가? 누군가 갑작스레 현관문을 박차고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저항해도 될까? 아니면 순순히 끌려가야 하나? 동생은 여전히 악몽에서 깨어나질 못한다.


수용소에서 잠이 깨면 언제나 두통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머리가 아파. 아프니까 깨었구나. 깨어나자마자 지끈거리는 통증. 눈은 퉁퉁 부어 반쯤 겨우 떠졌고 의식을 가다듬기도 전에 보위원의 위치를 살핀다. 눈치를 본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혁명노선에 반하는 행동이라 꼬집어 소리치며 교화실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말자. 동생은 잠에서 깬 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파트 구석에서 웅크려 고개 숙인다. 그리고는 가만히 외부의 소리에 귀 기울여 살금살금 숨을 죽인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니야, 언제 내게로 집중돼 닥쳐올는지 모른다. 안심하면 안 돼. 정신 차리자. 조금 있으면 기상시간 나팔이 울릴 테고 보위원 두 명이 나타나 감호소 일시 점검을 하겠지. 지난번 옆자리에서 고구마를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걸 깜빡한 친구는 보위원의 몽둥이에 머리가 깨져 그대로 이부자리에서 절명하지 않았나. 흩뿌려진 핏방울이 자신의 손등에 묻었을 때 흠칫 어찌나 놀랐던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동생은 슬그머니 주머니를 더듬었다. 간밤에 아껴 먹었던 감자 조각이 물컹 손에 잡히자 보위원들의 눈치부터 살폈다.


“아니, 종간나! 어째 아이 깨어나는 기야?”


뒤통수 모서리에 잘못 맞았는지 친구의 몸은 흐물흐물 사지를 뻗었고


“에이! 날래 치우라우!”


라는 보위원들의 호통에 정신없이 친구의 다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고구마와 감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구마는 죽었고 감자는 살아있다. 그의 손에 잡힌 친구와 자신의 차이는 뭘까. 아무리 곱새겨도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차이가 이토록 가까운가, 가깝지 않을 것인데,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난데없이 현관에서 ‘띠띠띠’ 하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동생은 화들짝 놀라 몸 숨길 데를 찾았고 다급히 옷장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데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선다.


“또 어디래 간 거니?”


구슬님의 목소리다. 동생은 옷장 문 틈새로 바깥을 엿본다. 손으로 입을 막아 호흡을 가만가만 진정시키고 모가지에 걸린 침을 삼키지도 못하고 머금는다. 마냥 기다린다. 아무도 없는 척 시간이 가길. 그렇게 구슬님이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만 기다린다.


“뭐이, 어드레 베란다에도 없고, 그럼 화장실에 갔니?”


구슬님이 중얼중얼 두리번거린다.


“청소도 되어 있고 온기도 남았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방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다. 동생은 열한 평 공간에서 현관문이 언제 열릴지 모를 두려움에 떨며 손으로 바닥을 쓸고 닦기를 반복한다. 한 치의 흠결이라도 눈에 띄면 끝장이다.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그는 벽면까지 벅벅 닦고 싱크대에 물기 한 방울, 화장실에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는다. 밥 먹고 해가 질 때까지 그는 방 안 구석구석 철두철미하게 돌아본다.


“아새끼래, 외출했나 보네. 여기다 두고 돌아가야겠네.”


구슬님은 어디 누구든 들으란 식으로 말을 마치고 현관에서 구두를 신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고 ‘삐리리’ 문은 잠겼다. 그러고도 동생은 한참을 더 옷장 속에 고요히 머물다가 옷장 문을 빼꼼 열었다. 살그머니 다리를 내밀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몇 초간, 행여 언제 닥쳐올는지 모를 이단자의 야단에 눈 감았다가 한숨을 내쉬고, 내쉰 숨이 아파트 전체를 거닐다 돌아오면, 그제야 온전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방 가운데에 구슬님이 두고 간 것은 한 달 치의 식량이다.




누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과 막내가 의주 감호소 철창 안에서 하염없이 노래 부르며 밖을 내다보았지만 해가 지고 밤이 늦도록 돌아올 줄을 몰랐다. 누나는 하루 정해진 일거리를 다 해치워야 했다. 그러고서 한 끼분의 식사를 배급받고 철창 안으로 들어와 배급 예정이 없는 동생과 막내에게 나눠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누나는 다친 팔을 부여잡고 탄광으로 들어가 삽질을 했고 보위원의 “통과!” 소리를 들을 때까지 오로지 밥을 위해, 굶고 있을 동생들을 위해, 아픈 팔로 쏟아부어야 했다. 목표량을 맞추지 못하면 식사는 고사하고 매질만 돌아왔다. 그럼에도 누나는 부상 후 몇 날 며칠을 버티며 동생들을 먹였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어 철창끼리 부대껴 휘파람 소리가 나던 밤,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막내는 감호소 안 마룻바닥을 안고서 잠이 들었고 이튿날 아침, 동생이 아무리 깨우고 두들겨도 눈 뜨지 못했다. 동생은 막내를 안고 흐느꼈다. 누나, 대체 언제 오는 기야요? 우리는 이제, 막내는 이제 어떡하라고. 동생은 울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언제고 누나만 돌아온다면 막내는 다시 살아날 거라고. 의주 감호소 한쪽, 돌무덤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해두었으니 누나만 온다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편했다. 누나는 열여섯, 동생은 열둘, 막내는 아홉 살이었다.




동생은 비닐봉지에서 하나하나 재료를 꺼내 겉면에 새겨진 글귀를 음미했다.

이건 어떤 맛일까? 끓여먹는 건가? 삶는 건가? 호기심 어린 세계 속으로 점점 녹아들었다. 콩나물 묶음, 두부 한 모, 냉동 만두, 계란 한 판, 구운 김, 초코파이까지 그는 찬찬히 재료에 들어간 양념과 유통기한을 체크하고 각 식품의 영양소를 비교했다.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비율이란? 그는 콩나물 대가리를 잡고 오도독 씹어보았다. 요모조모 따지며 글귀를 즐기던 참, 돌연 그의 뇌리에 선명히 박히는 명령.


“동작 그만!”


손에 참치 캔을 들고서 살짝 고개를 틀어 읽다 만 자세 그대로 멈췄다. 움직일 수가 없다.


“내 이럴 줄 알았지비.”


불현듯 현관에서 들린 목소리.


“넌 어째 아이 변하니?”


봉투를 내려두고 이만 돌아가겠다던 조금 전 구슬님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동생의 귀는 그녀의 말소리가 울릴 때마다 쫑긋거린다. 나간 줄로만 알았는데 이 여자가 사기 쳤구나. 괘씸하지만 이내 분노는 연기처럼 날아가고 곧 바르르 떨며 이제 죽었다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야 고통이 덜할까, 단지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각목으로 때릴까? 그러면 팔로 막아야 하나? 그보다는 허벅지를 방패 삼아 희생시키는 게 나아. 머리에 맞는 것만 조심하면 괜찮을지도, 어쨌거나 차라리 이 자리에서 당하는 게 좋겠는데, 다시 교화소에 끌려가면 끝장이다. 혹시 지난번처럼 쇠꼬챙이로 뱃가죽을 꿰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는 공중으로 매달아 그 아래 장작불을 태우지도 않겠지? 그러기엔 내가 너무 컸잖아. 뱃살이 지금의 내 몸을 지탱할까? 그래도 그들이 내 나이를 알아줄지는 의문이다. 나는 이제 소년범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면 알아줄까? 왜 아무 말이 없지? 동생은 자신의 나이를 말하고 싶었다. 오직 그것에만 몰두하며 제 나이가 몇인지 손가락을 세었다. 구슬님은 맨발로 조심조심 다가와 동생의 뒤에서 양어깨를 짚었다.


“텔레비전도 좀 보고 그러라우. 그래야 의식변화가 일어나지. 여태 악몽에서 아이 깨어나면 어쩌니? 병원만 가면 멀쩡한 아새끼가 말이디.”


구슬님은 동생의 앞에 마주 앉아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향긋한 샴푸 냄새가 은은히 다가왔다.


“뭐 다른 거 먹고 싶은 건 없니?”


구슬님의 말에 동생의 고개는 흡사 메마른 나뭇잎이 시베리아 북서풍에 나부끼듯 파르르 흔들렸다. 스멀스멀 구슬님의 로션 냄새가 동생의 코를 감미롭게 자극했다. 누나의 냄새가 아니다. 이건 누나가 아니야.


“다음 달에 또 올게.”


구슬님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혔고 ‘삐리리’ 소리가 들렸다.


번뜩, 정신을 가다듬은 동생은 현관으로 달려가 그녀의 흔적을 지웠다. 그녀의 구둣발에서 떨어진 먼지 한 톨조차 떨어내려 했다. 문손잡이는 걸레로 닦았고 모래 알갱이는 손가락을 눌러 훔치고 침을 뱉어 소맷자락으로 바닥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먹거리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시켰다. 동생은 마음이 바빴다. 웃통을 벗어 팔 굽혀 펴기를 하고 방바닥에 누워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해지기 전 한 시간 동안 서쪽으로 난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었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준비를 해야 한다. 체력을 비축해둬야 한다고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구슬님이 말했다. 그래야만 자신을 구출할 수 있다고, 대한민국으로 데려올 수 있다며 수용소에서 찍히는 일을 그만하라고 했다. 뭐든지 성실하게 임하고 눈에 띄지도 말고 주위에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했다. 동생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누나는 죽었지비요.


그는 임대아파트 안에서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렇게 정해진 공간 안에서 기다린다. 한 달 후 다시 누나라고 주장하는 그녀가 나타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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