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보아도 알아보지 못해

지하철에서.

by 머피



꽁꽁 언 강을 달린다.


구슬님의 본래 이름은 묘진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 발 디딜 때부터 구슬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만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지도를 본다. 줌을 당겨 확대하고 확대한다. 시간을 맞춰 원하는 장면으로 들어간다. 들어가 초점과 주파수를 맞추니 서서히 보인다. 카메라 앵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 익숙한 사람. 가족을 위해 묘진은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아직 구슬님이 되기 전이다. 아아, 지금 탈북중이구나. 두만강을 건너 도망치고 숨고 배고프고 무서운 시간. 나는 줄곧 묘진의 옆에서 그녀를 지켜본다. 가녀린 얼굴. 어두운 새벽. 달빛이 구름에 가린 즈음. 하얀 얼굴에 하얀 입김. 읍읍. 억지로 입 막아 숨소리도 나지 않게 달린다. 헉헉. 나는 내내 옆에 붙어서 그녀를 지켜본다. 그녀 또한 내 손을 잡고 달린다. 지금이야. 빨리. 어서. 달려. 조금만 더. 이제 거의 다 왔어. 저기까지만. 털퍼덕! 그녀가 쓰러진다. 돌아보니 무릎에 피가 흐른다. 소리 없이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그녀가 울자 나도 운다. 우린 울면서 고개를 가로젓다가 끄덕이면서 말한다. 괜찮아. 다 왔어. 안심해. 살았어. 내가 연신 끄덕이자 묘진은 힘을 짜내 비틀비틀 일어선다. 일어선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달린다. 숨이 차 온다.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쿵쾅쿵쾅. 힘들어. 언제까지 뛸 수 있을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어디까지 가야 할까. 어디를 향해도 그곳은 타국. 멈출 곳은 어디에.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길. 어둠 속을 향해 마구 뛴다.


묘진과 나는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면 걸어서 이동했다. 추적을 피해 몇 날 며칠이 지났다. 어느 한낮, 허름한 농가의 헛간에서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어두워지려면 멀었다. 나갈 수 없다. 헛간에서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지켜본다. 잘해오고 있어. 그런 말이 시선과 시선에서 오간다. 다 네 덕분에. 그런 대답을 하려는데 그녀가 다가온다. 서로를 마주 보는 간격이 점점 가까워진다. 어? 왜? 갑자기. 나는 그냥 당신을 보고 있을 뿐인데. 내가 보여? 속으로만 생각하는데 묘진은 스르르 기대어 와 나를 안는다. 나를 꼭 껴안다가 고개를 얼굴 바로 앞까지 가져와 쳐다본다. 왜 그러는 건데? 서로의 호흡이 닿은 것처럼 가까이 느껴진다. 내가 숨을 뱉으면 그녀가 삼키고 그녀가 뱉으면 내가 삼킨다. 한없이 가까운 거리. 처지를 가늠할 수 없다. 눈뜨면 당신의 얼굴이 가득 들어와. 벅찬 느낌 조절할 수 없다. 왜, 라는 말이 떠올랐을 때부터 눈물이 났다. 우리가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몸을 온전히 지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까. 당당히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얘기할 수 있을까. 밥 먹을 수 있을까. 편히 누을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든 질문의 답. 한마디로 기약할 수 없다, 를 나는 알고 있다. 당신도 알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만나는 거조차 어려울지 몰라. 그러니 지금 같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감사하자. 지금을 영원처럼 기억하자. 그런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난다. 내가 그리 생각하자 그녀도 그리 생각하는 듯, 다가온다. 이이상 좁아질 수 없는 틈새. 비로소 닿았고 느껴졌고 만났다. 우리는 왈칵 키스했다. 키스하면서 당신의 숨결, 울고 있는 마음, 절박한 심정, 약속할 수 없는 현실이 스쳐간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시간. 차원을 초월한 공간. 나의 두 손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녀 또한 내 어깨를 꼭 잡는다. 단단히 지탱한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키스한다. 키스하면서 호흡하고 키스하면서 대화한다. 아주 짧은 찰나. 아쉬운 순간이 영원 같은데. 언제까지고 이어지면 좋겠다, 했는데 그 잠시는 판판이 쪼개져 어느새 오래된 과거가 되어버렸다. 과거는 냉철하다. 냉철하게 우리를 갈라놓았다. 결국 묘진은 헛간에서 들켰다. 붙잡혀서 팔려가고 시골 중국인에게 강제로 시집갔다. 허름한 집에서 묘진은 중국 남자를 피해 발버둥 쳐 봤지만 끝내 당하고 당했다. 그녀는 감내하고 감내하여 중국 남자 아래서 온갖 멸시와 괴롭힘을 견디며 때를 기다렸다. 도망가다 잡히고 탈출하다 실패했다. 그러다 묘진은 중국 남편에게 버림 당하고 어느 조선족에게 팔려갔다. 처음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말이 통하지 않겠는가. 조선족이니까 내 사정을 얘기하면 들어주겠지. 묘진은 조선족 남자를 보고 두 번째 결혼이라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그녀를 돈 주고 산 남자는 탈북 여자 6명을 창고에 가둬두고 날마다 돌아가며 품었다. 짐승이었다. 묘진은 밖으로 연락할 길을 찾으려 했다. 창고에는 밖으로 연결된 창이 없었다. 창문도 없는 실내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 당하는 것. 죽어가는 것. 6명의 여자들은 절규했고 절망했다. 오늘은 내 차례야? 아니 어제 끌려간 묘진이가 오늘까지 하루 더 연장되었대. 무슨 일이람? 어디가 많이 상했나. 얼마나 때렸길래. 쯧쯧. 우편물을 배송하던 우체부가 신음소리를 듣고 신고했다. 그 신고에 중국 공안이 출동해 조선족 남자는 체포되었고 6명의 여자들도 구출되었다. 그러나 6명의 여자들은 죄다 탈북이라는 미명 하에 북송되었다. 북송되면서 묘진은 딸을 기어이 찾아서 데리고 갔다. 딸은 중국 남자와의 사이에 났는데 호적에 오르지 못하고 버림받았다. 복지시설에 있던 딸. 다섯 살 난 아이. 공안에 호소하여 딸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 가슴을 뜯으며 외쳤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내 딸이란 말입니다. 내 핏줄이오. 살든 죽든 내가 책임지겠소.




나는 구슬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들으며 빠져든다. 마치 함께 도망치는 것 같은 환상. 헛간에서 키스하고 그녀를 지켜본다. 보는데 점점 희미해진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그러다 하얗게 안개가 생겨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세월. 이야기를 듣던 시간도 어느새 순간이 되어 과거로 흘러버렸다. 비 내리던 술집에서 이야기를 들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몇 해 전 볼일 때문에 서울에 들렀다. 지하철 신도림역. 계단을 따라 내려가 환승구간을 향하는데 설핏 그녀를 보았다. 당신의 이름은 묘진이었고 이 땅에 와서 구슬님이 되었던 사람. 내가 저를 알아보는 낌새를 보였지만 그녀는 나를 보고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지나쳐갔다. 못 봤구나. 아니겠지. 나는 몇 발자국 가다가 돌아섰다. 잘못 본 게 아니야. 돌아서서 그녀를 찾아보았다. 그녀는 저 앞쪽 사람들 무리에 섞여 걸어가고 있었다. 2호선에서 갈아타는 구간. 사람들의 속도는 일정했다.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는다. 그 속에서 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 나는 몇 미터 뒤에서 따라갔다. 이윽고 그녀가 플랫폼에 섰고 나는 뒤에 도착해 서 있었다. 어떡할까. 한 번쯤 돌아볼까 싶어 그녀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5분쯤 지났을까. 비로소 그녀가 돌아보았다. 돌아보면서 내 얼굴을 봤다. 나는 줄곧 당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는 눈으로 봤다. 마침내 우리는 시선을 마주쳤다. 마주치는 장면. 거꾸로 시간이 영원에서 순간으로 돌아간다. 찰나가 다시 시작된다. 나는 지금 알고 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이 역시 과거 속으로 묻히겠지. 꿈속에서 꿈인 것을 알듯 현실에서 현실임을 안다. 너무나 소중하니, 지금을 기억하자, 고 자각했다.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확인해야겠다. 어쩌면 영원토록 만나지 못할 사람이니.



지하철이 들어오는 알림이 울린다. 저 앞에서 바람이 분다. 이제 막 지하철이 들어온다. 시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보고 있으며 당신이 나를 보고 있으니.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내가 당신을 보는데 당신은 나를 몰라보는 듯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당신이 나를 알아도 나는 당신을 몰라본다. 몰라보는 척 그저 보고만 있다. 그렇게 지켜보면서 서 있는데 눈물이 맺힌다. 그녀도 눈물이 맺힌다. 지하철에 문이 열리고 곧 문이 닫힙니다, 라는 안내가 나온다. 아직 타지 않는다. 순간이 영원처럼 이어지는데. 지하철에 탈 사람이 다 타고 이제 문이 닫히려는데.


그녀가 말한다. 말하는데 지하철 문이 닫혀서 들리지 않는다. 왜 지금에서야. 들리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데 막상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다. 지하철이 서서히 출발한다. 나는 플랫폼에 서서 움직이는 화면을 바라본다. 장면이 어두워진다. 그녀의 입이 무언가 말하는데 입모양을 보고서 그저 짐작할 뿐이다.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잘 지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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