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왕리 두 번째 조개구이집

구슬님과 독도님

by 머피


"조개구이 먹고 싶어요."


구슬님이 보낸 문자다. 토요일 저녁. 난데없이 조개구이라니. 나는 조개구이만 먹고 싶은 건지 아니면 조개구이를 파는 바닷가를 원하는지 물었다. 나를 만나고 싶은 핑계인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녀는 당연 바닷가를 원한다고 답했다. 설마 동해는 아니겠죠? 물으니 인천이라는 답장이 왔다. 인천이요? 라고 보내니 을왕리라는 구체적 장소가 지명되어 날아왔다. 을왕리에서 조개구이. 그것도 주말 저녁. 센티하거나 로맨틱하거나. 그녀는 뭔가를 알고 말한 걸까. 기대를 하는 걸까. 아무튼 나는 구슬님을 픽업해 인천으로 갔다. 어떤 저녁이 될지 희망하면서. 어쩌면 진즉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좀 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구, 호기심. 아니면 뭔가 아련한 장면이 층층이 쌓일 거라는 막연한 바람. 그것은 언제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 하는 짐작. 그래서 슬픔. 당신과의 만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추억으로 흐르는 것을 안다. 마치 꿈속에서 꿈인 것을 깨닫는 것처럼.


도로에 을왕리라는 지명 간판이 나올 때부터 길이 막혔다. 가다가 서고 섰다가 갔다. 서쪽 하늘에 해가 지고 있었다. 을왕리 쪽에서 뻗어온 노을이 차창으로 들어와 그녀의 얼굴에 붉은빛을 칠했다.


"왜 이렇게 막히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을왕리를 잘 모르시네요"


라고 말했다. 더 말하지 못한 부분. 잘 모르면서 왜 굳이 을왕리를 콕 집어 말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알려달라고 묻고 싶었다. 내 궁금증을 눈치챈 것인지


"그냥 여기가 맛있다고 해서요"


라고 그녀는 대뜸 얼버무렸다. 그러면 대체 누가 맛있다고 한 건지 어서 말을 하라고까지 나는 묻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연락이 없다가 뜬금없이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연락하면서 을왕리라니. 내가 당신을 위해 스탠 바이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불안과 의심이 뒤섞여 엉뚱한 불만이 생겨났다. 외로운 사람. 나는 서울에서 늘 외로운 사람이었고 나처럼 외로운 이를 외면하지 못했다. 나를 통해 외로움이 상쇠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달려가야 직성이 풀렸다. 부디 당신만이라도 이 지독한 쓸쓸함에서 벗어나길.


"이리 오세요. 잘해드릴게요. 조개구이 먹고 가세요. 싱싱해요. 어서요."


상인들은 띄엄띄엄 서서 호객 행위를 했다. 차들은 마음에 드는 집으로 하나둘 들어갔다. 나는 첫 번째 상인을 지나 두 번째도 지나치는데


"아, 저기 저 집에 가고 싶어요"


하고 구슬님이 다급히 가리켰다. 두 번째 집을 얼핏 보니 주차장에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세 번째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하고 세 번째 집으로 가려는데,


"주차해 드릴게요. 내리세요"


라고 두 번째 상인이 달려와 말하는 게 아닌가.


"괜찮습니다"


라며 거절하고 기어이 세 번째 집으로 들어가 주차했다. 그때부터였다. 구슬님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불안한 눈치로 두리번거렸다.


"혹시 누구 기다리세요?"


라고 물었지만


"그런 사람 없습니다"


하고 단호히 대답할 뿐. 그러면서도 구슬님은 내내 조개구이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마도 처음 접해보는 듯했다. 젓가락을 들고서 어떻게 먹는지, 이것도 먹는 건지, 하고 의아한 눈으로 봤다. 나는 치즈가 뿌려진 조갯살을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휘둥그레 한 눈으로 그녀는 한 점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러자 표정이 환해졌다. 치즈와 조갯살의 조우. 처음 접하는 맛 이리라. 밝은 얼굴로 소주를 마셨다. 마시고는 뒤돌아보며 다시금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왜 그러느냐고 묻지 못했지만 이미 의심이 증폭되어 맘대로 짐작하고 있었다. 두 번째 집이 아니어서 그럴까. 우리는 무사히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대리 기사가 운전대를 잡았고 행선지는 서울.


늦은 밤 어둠 속을 뚫고 차가 달린다. 나는 뒷자리에 구슬님과 나란히 앉았다. 가는 내내 그녀는 말이 없다. 물끄러미 창 밖만 본다. 대리 기사가 있기 때문인지, 지극히 사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다. 조용히 가는데 대리기사가 먼저 입을 뗀다.


"조개구이가 어떻던가요? 요즘은 을왕리보단 소래포구가 나은데 왜 그쪽으로 갔어요?"


그러자 그녀가 대답한다.


"아, 저는 잘 몰라서요. 독도님."


나더러 대신 대답해 달라는 뜻인가.


"아직도 저를 독도님이라 부르시네요."


내가 말하자


"그냥 입에 붙어서요"


한다.




살고 싶어요.


서울에서 함께 있던 날. 그녀는 그녀의 숙소에 머무르고 나는 내 숙소에 머무르며 언제든 연락 가능한 한 때. 평화로운 밤. 모르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날이 될 줄은.


늦은 밤 구슬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살고 싶다니. 어떤 뜻일까. 중국에서 만난 빵모자와 대머리, 안경 패거리들이 가만두지 않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무리들이 그녀를 잡고 흔드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알아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무기력하다. 참담한 심정으로 뭐든 그럴 수도 있다면서 지켜볼 뿐. 흡사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 현실과 동떨어진 괴리감이 피부에 닿고 피부 곁을 지나친다. 환상 속의 그대. 살고 싶다는 말. 하필이면 내게 그런 말을. 혹시 미끼일까. 나는 온갖 상념 속에서 머리를 쥐어짰다. 결정해야 한다. 강제로 보내버리자. 영화관을 나와버리자. 텔레비전을 꺼버리면 된다.


밖으로 나가 차에 올랐다. 그녀가 사는 곳으로 달려가 나오라고 했다.


"떠나는 거예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대답에 다그쳤다.


"정신 차려요. 지금이 아니면 못 떠나."


남부 터미널에 가니 심야버스가 기다렸다. 서울에서 진주행. 내가 무슨 생각으로 표를 끊었는지 모른다.


"진주로 가서 사천으로 가는 거예요. 따라 해 봐요. 다솔사."


"... 다솔사."


구슬님은 맥없이 웅얼거렸다. 나는 그리 가라고 했다. 주지 스님에게 머물게 해 달라, 재워달라 부탁하라고 했다. 달리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방으로 피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손길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살아 있지만 언제고 변을 당할 것이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터. 어쩌면 정상적인 사고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늦다. 늦기 전에 실행해야 해. 새로운 삶. 새로운 인식. 새로운 인생. 새로운 세계. 그곳이 굳이 서울일 필요는 없다. 한적한 시골이 최적의 장소. 그리 생각했다.


"진주행 한 명이요."


나는 표 한 장을 사 그녀에게 내밀었다.


"같이 가는 거 아니에요?"


라고 그녀가 물어왔다. 같이? 나는 어물쩍 내일도 모레도 출근이 있어서 동행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까짓 회사야 휴가 내면 그만인데, 같이 갔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도 든다. 왜 그랬을까. 거대한 어둠처럼 느껴졌다. 경남 사천 다솔사로 가는 그녀의 뒷모습. 가녀린 걸음걸이. 버스에 앉아 창으로 보이는 얼굴. 망망대해에 내려놓는 암담함. 그녀는 헤엄쳐서 육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밀물에 밀리고 밀려 운명처럼 어딘가 안착할 수 있을까. 엔진 소리와 함께 버스가 떠난다. 떠나는 뒤를 보며 드는 생각. 수없이 많은 번민이 뒤따를 것이다, 하는 짐작.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이해조차 어려운 과거. 알아듣지만 공감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었다.


주말을 맞아, 다솔사로 찾아갔다. 스님에게 물으니 벌써 남해로 갔다고 한다. 남해 어디로 갔냐고 하니 한참 뜸을 들인다. 나는 안심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순간 나는 어찌하여 안심해도 되는 사람인지 헷갈렸다. 문득 막연히 나에 대한 사대주의적 발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빵모자나 대머리나 안경이 아니어서 내가 착한 사람일까. 중국 남편이나 조선족 인신매매범이 아니어서? 수용소 보위원이 아니어서? 북한 사람이 아니어서? 단지 그녀를 힘들게 한 나라의 사람이 아니어서, 라는 선입견이 먼저 작용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죄다 나쁜 사람들이다. 나 또한 그녀와 같이 외롭다는 이유로 처지를 잠시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스님은 먼 산을 보면서 침묵을 지켰다. 더 묻지 못하고 다솔사 위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봉명산, 이명산을 따라 산길을 걷는데 그녀도 이 길을 걸었을까 그려봤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그녀가 머무른 느낌 그대로 느끼리라 여겼다. 어떤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보는 풍경을 똑같이 보면서 그녀가 품었던 이미지를 회상해 봤다. 더없이 맑음, 청정한 풍경, 깨끗한 공기를 통해 낫기. 산에서 어떤 치유라도 얻었으면 좋으련만. 걸으면서 치유받고 쉬면서 치유되는 곳. 상처가 아물고 흉터 위 새살이 돋아나는 힘. 빼곡한 나무와 숲의 힘을 그녀가 느꼈다면 더는 실수하지 않겠지 하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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