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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Apr 15. 2021

해질녘 노을을 보다가

문득 돌아갈 곳을 떠올리니 안심이 된다




급히 창가로 달려갔다. 


저 멀리 붉은 해가 보이세요? 너무 예뻐요. 그 말에 돌아보니 보일락 말락 작아진다. 찍어야 해. 바로 지금! 어쩌면 늦었는지도 몰라. 지금 찍어야 한다. 나는 카페 테이블 앞에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나는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데 사람들은 깊은 대화 속 태양의 현 위치가 카페에서 볼 때 서쪽인가 서북쪽인가를 두고 토론 중이다. 사람들은 핸드폰에 나침반 어플을 열어 각기 저쪽이 서쪽이라고 주장하며 손 내민다. 팔을 쭉 뻗어서 아니야, 저기가 서쪽이에요, 한다. 복숭아꽃이 피는 계절. 하지를 막 지난 터라 서쪽을 넘어서 서북쪽까지 태양이 넘어간 거라고 한다. 어쩐지 해가 한참이나 올라가 있더라니.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저기가 서쪽이면 어떻고 북쪽이면 어떤가. 해가 콩알만 해졌는데, 그 찬란하던 해에서 붉은 기운이 쭉 뻗어 나는데 지금이 아니면 저 붉은 태양을 만날 수가 없는데.  


이러한 풍경 속에서 어쩌면 다시 못 볼 광경 앞에서 산 너머 구름 아래 태양을 가만히 지켜본다. 커다랗던 얼굴이 작아지고 작아진다. 붉은 기운이 더없이 장렬하게 뻗어 난다. 멀리 산 아래는 바다다. 사천 앞바다 왼편에 서포 대교가 보인다. 대교를 건너면 그 역시 사천이지만 산자락이 그 뒤에 뒤를 연결한다. 붉은빛의 방향으로 보아 사천을 지나 하동, 하동을 넘어 산청까지 이르렀다. 붉은 구름 뒤, 그곳에는 지리산이 우뚝 서서 기다릴 테다. 나는 문득 지리산을 상상한다. 언제 가보고 안 가봤지? 하늘과 맞닿은 그림자, 어떤 것이 당신인가 물어본다. 그러자 지리산이 선뜻 대답한다. 


이 사람들아, 지금 내가 보이는가. 아무려면 보이지 않겠지. 다들 내가 서 있는 방향을 쳐다보지만 나는 쉬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련다. 


보이지 않기에 더 인상적으로 떠올린다. 그리워한다. 누군가 말한다. 바다를 건너 계속 가다 보면 당신이 나타나겠지요. 저 콩알만 한 태양에 다다르기 전 당신이 서서 기다릴 것을 알지만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기다려줄 거죠? 제가 갈 때까지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구요? 모르겠어요. 저도 언제 출발할 수 있을지. 그래도 마음 한쪽에 늘 묻어놓은 바람. 만나러 가고 싶다는 생각. 그것으로 버텨요. 해가 지고 또 져도 그거 하나로 참아요. 언제고 해지기 전 그곳에 가 있을 나를 그리며.




바다에 이르기 전 논과 도로와 비닐하우스. 


그리고 사람 사는 마을. 볼 때마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퇴근하며 지나치는 마을. 나는 아직 마을 속 아기자기한 골목길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짙은 빛 아래 길은 그저 새카맣다. 낮이면 모르기에 지나치고 밤이면 알면서도 가지 못했다. 어두워서. 가로등은 드문드문 없는 곳이 더 많다. 밝아지면 가야지 하고 미루기만 했다. 언제가 되어야 가볼 수 있으려나. 


차에 올라 네비를 본다. 집에 가야지. 매일 가는 집인데 나는 지금도 집에 가야지, 얼른 가야지 생각뿐이다. 집에서 기다릴 그대. 묵묵히 반겨줄 사람. 나만을 바라보는 당신.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 수도. 매일 빛나고 매일 깜깜 어두워지는 일상. 매번 해가 지고 뜨지만 해지고 뜨는 것에 겸허한 마음 느껴본 적이 언제인가. 아침이면 눈 뜨고 밤이면 누워 잠드는 일상,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염원하는지 궁금하고 궁금하다. 나만의 착각이라도 좋다. 


아는 걸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더러 겁 날 때가 있다. 시간이 흘러서 바다가 다 말라버리고 산이 다 깎여나가서 덜컥 큰일 났다며 가슴 치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사천 앞바다에서 와룡산 백천사로 들어가는 길. 


저녁을 먹고 산자락 카페에 서서 일몰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차 마시고 커피를 홀짝이며 풍경을 본다. 먹으면서 유리창 너머 바다를 본다. 해를 본다. 구름을 본다. 마을을 본다. 그리고 당신을 본다. 지금 앞에 앉은 그대. 내가 찾던 사람. 그래, 잊고 있었다. 매일같이 팔에 부대껴 뒤척이는 존재. 그리워할 대상은 바로 지척에. 



나는 왼쪽에 벽과 아내 사이에 누워있고 아내는 내 오른쪽에 누워있다. 아내는 늘 내게 벽 쪽으로 붙으라고 한다. 내가 자꾸 밀쳐내 자기가 침대 끝에 떨어질 거 같다고 한다. 나는 억울해서 벽에 아예 붙어서 왼쪽 어깨가 닿았다고 말한다. 벽지의 찹찹한 감촉이 느껴져 싫다고 한다. 꿈꾸다가 손톱으로 벽지를 긁은 적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럼에도 아내는 가운데로 넘어오지 말라고 한다. 이따금 잠이 오지 않는 밤 새벽, 눈이 떠져서 나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있다가 옆으로 돌아 눕기도 하고 엎드려보기도 한다. 어떤 자세를 하든 당신은 때마다 이불을 끌어 다시 덮어주길 반복한다. 내가 깨어있는지도 모르고.



시동을 건다. 

나는 곧장 집으로 간다. 어둠 속 거리를 헤쳐 하늘과 산을 뒤로하고 집으로 간다. 골목길은 다음에 가야지. 지리산도 다음에. 


집에 가니 아내가 말한다. 늦게 온다더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러면서 복숭아를 깎는다. 이거 시장에서 샀는데 되게 맛있어. 먹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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