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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Apr 20. 2021

제가 이 집 가장입니다

마스크 때문에 그렇게 안 보여도요.



나는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십 대 남자다. 


나이는 정확히 사십 대 중반. 중반은 어떤 포지션일까. 사십 대 초반과 또 어떻게 다른가. 이를테면 예전 마흔하나둘 초반일 때는 아직 삼십 대의 기운이 들쭉날쭉 남아서, 어쩌다 곤히 잘 자고 일어난 날이면 드물게 싱그러운 기운이 솟아나곤 했지만, 지금은 이박삼일을 누워 있어도 그 싱그~ 비슷한 기운은 추호도 되살아나지 않는다. 아주 피곤한 사십 대 중반이다. 머리는 온갖 걱정거리로 쉬 잠들지 못한다. 결국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 보면 아침이 된다. 완연한 사십 대 중반. 하루 중 시각으로 환산하자면 나는 오후 네 시 반의 햇볕을 받는다. 볕은 조금 따뜻할 뿐 정오처럼 뜨겁지는 않다. 오후 한낮의 볕. 햇볕은 햇볕이다. 젊다면 젊고 청춘이라면 청춘이다. 어쩌면 여섯 시 이후의 햇볕(더 이상 햇볕이 아니라 노을일지도)에게는 그때가 좋았지, 하는 시절일지도 모른다. 여름이면 아직 뜨겁고 겨울이면 어스름이 뻗어오는 시각. 그래 누가 뭐래도 내겐 소중한 일조량이다. 적당한 햇볕에 피부는 비타민A를 생성하고 시커멓게 그을리기도 한다. 그런데 얼굴이 까매지는 건 햇볕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내장마저 늙어버리는 통에 전처럼 밝은 기운을 뿜뿜~ 얼굴까지 힘차게 내뿜지 못하여 그럴까. 슬프다.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한다. 그래도 아직은 볕을 받는 나이. 볕과 그늘 사이. 그늘이 성큼 눈앞에 어른거린다.


지극히 혼자가 편안한 시대. 여럿이 모이면 불편한 세상. 나는 원래부터 외로웠는데 새삼 모이지 말라고 하니 시류에 발맞춰 혼자라는 습성이 외려 정당화되는 현상. 언젠가부터 혼자 다니는 것이 이상한 모양새가 아니게 되었다. 어? 저 남자, 식당에 혼자 왔어? 정말? 어디? 어떻게 혼자 올 수가 있지? 무지 배고팠나 봐? 친구도 없나? 라고 쯧쯧 혀를 차다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어? 저 남자, 혼자 먹으러 왔나 봐? 친구들이랑 함께 오고 싶었을 텐데 그걸 꾹 참고 기특하게 혼자 왔네. 하물며 가족이나 지인들도 있을 텐데 다 외면하고 혼자 왔구나. 혼자 먹으면 맛도 없을 텐데 굳이 혼자서 잘도 왔네. 참 생각이 없지 않고 있는 사람이야. 암 생각이 있는 사람이지.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건 아닌가 보네. 당연 혼자 와야지. 때가 어느 때인데. 포장해 가서 먹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혼자 왔다는 게 어디야. 칭찬해줄 만 해. 멋지다. 바람직하다. 이 보세요. 아저씨! 어깨 좀 피고 당당하게 드세요! 혼자 오셨잖아요. 둘 이상 같이 왔다면 어깨를 수그리고 눈치 보면서 먹어야 하겠지만, 아니잖아요? 혼자잖아요! 혼자 오기 싫은데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일부러 혼자 오신 거잖아요. 여기 깍두기도 추가로 더 드시고 물도 한잔 더 떠다 드세요! 


바야흐로 개인주의가 미덕인 시대. 마스크로 꼭꼭 감추고 막아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불문율. 나는 감염되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쫓기며 다닌다. 왜 그랬니? 왜 싸돌아 다녔니? 라고 파헤쳐지기 싫어서 사람을 피해 다닌다. 사람이 많은 곳은 되도록 가지 않으려고 한다. 비단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더라도 이놈의 외톨이 습성 때문에 스스로 쫓기고 달아나면서 가쁜 숨을 쉰다. 제발 제 곁에 오지 마세요. 어라 당신도 이쪽 길로 가는 길이라구요? 그럼 먼저 가세요. 같이 가기 싫어요. 저를 왜 쳐다보세요? 쳐다보지도 마세요. 그냥 시선이 가서 본다구요? 시선을 거둬 주세요. 훠이 훠이. 떨어지고 외면받아야 안심이 된단 말이에요. 


나는 KF94만 쓴다. 처음에는 아내가 내 몫이 남았으니 허락할 때만 KF94를 썼는데 지금은 매일 쓴다. 처음에는 KF가 아닌 일반 일회용 비말 마스크만 썼다. KF는 아내와 아이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아주 저렴한 일회용, 가격이 얼만지도 모를 만큼 저렴한 종류만 썼다. 있잖아요, 저 이거 그냥 일반 눈치보기용 마스크예요. 생긴 것만 마스크일 뿐 실제 효능을 장담할 순 없어요. 침 있잖아요, 딱 침만 막아요. 바이러스도 막아줄 수 있을까요?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KF가 붙은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다. 비로소 KF가 붙은 걸로 승급한 거다. 마스크가 뭐라고 뭔가 당당해지는 이 기분. 거리에 나다니는 이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기분. 

어때? 이 마스크 보여? 멋있지? 어이 아저씨! 아직도 그리 얇은 마스크를 써요? KF는 아내와 아이들이 다 쓰고 아저씨는 그런 거나 써요? 비말이 뭐야 비말이, 더럽게, 그리 얇아서야 원, 마스크 끼는 보람이라도 있겠수? 나는 KF마스크를 매일 1장씩 쓰는 사람이다 이거야.  

아침마다 아내가 KF 마스크를 식탁 위에 고이 놓아둔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 듬뿍 담아 조심스레 포장지를 뜯고 착용한다. 아아 이 새 것의 냄새. 새 거에서만 나는 냄새. 새 차에서 나는 특유의 은은한 냄새가 좋듯 새 마스크에서만 나는 냄새도 은근 중독성 있다. 향수를 뿌린 것만 같은 감미로운 냄새. 청결한 기분. 내 코와 입술과 턱 주변이 뽀송뽀송 보호받는 느낌. 피부가 대접받는 느낌. 아침마다 새 것을 만날 때면 어쩐지 사치하는 기분이 든다. 나쁘지 않은 사치. 이 정도는 된다 하는 으스대는 기분.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리자 나는 티브이를 보던 중 급히 대문을 열어젖혔다. 대문을 열기 전까지 한창 재밌는 걸 보는 중이었다.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에 빠져 자연을 탐닉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다소 성의 없는 말투로 누구세요? 라고 물으니 대문이 빼꼼 열린 틈새로 아주머니는 '거주인 조사'를 하러 왔다며 내 얼굴을 보면서 어른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어른은 어디 있어요?"


아주머니는 나의 어른 된 육체를 보면서 아니 왜~ 저런 황당한 질문을 던질까? 왜 그러지? 그리 안 보이나? 그때 나는 집에서만 입는 내복을 아래위로 입고 있었는데 급히 대문을 여느라 겉옷을 착용하지 못한 채였다. 다만 마스크는 썼다. KF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설마 남자 어른이 몸에 착 달라붙는 내복만 입고서 머리는 금방 감고 말려 아무렇게나 팔랑 거리며 외부인을 맞이하러 나왔으리라 생각지 못했기에 아마도 얼굴과는 다르게 겉만 늙었지 실제 속은 철부지처럼 어린놈이겠거니 보았을 터다. 그렇게 봐야 납득이 간다고 자신을 안심시키는 듯한 아주머니의 눈빛. 의혹의 눈망울. 점차 자신의 추측이 부디 맞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스러운 눈빛. 다시 보니 얼굴이 제법 나이를 먹은 거 같지만 그런데도 어딘가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니 내 짐작이 맞을 거야, 어서 어린 말투로 대답하란 말이야 하는 속내. 나의 이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 줘. 내 생각이 맞으니 까만색 타이츠 내복만 입고서 대문을 열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눈치였다. 내 추측이 틀렸다 해도 네 놈의 그런 복장이 문제란 말이야 하며 일순 변명하는 눈빛.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계속 눈빛으로 말했다. 타이츠 하의를 힐끗 내려다보며 속으로 말했다. 그 아래에 불룩한 부분은 또 뭐냐? 그 부분을 자연스레 외부인에게 드러내 노출하지 않았느냐? 불룩한 그것은 어른의 것이 아니더냐? 불룩한 그것을 나 말고도 바깥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내보이며 다닐 수 있는 것이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랬으니 너는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는 말을 한 것과 다름없다, 어서 대답을 하거라 하는 눈빛.  


아주머니가 찰나의 순간 아랫도리를 스쳐 보는데도 나는 차마 손으로 가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자연인이다'가 문제였을까. 부끄러움을 인지하긴 했다. 순간 가리는 동작을 취하게 되면 뭔가 인정하게 되거나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말없이 정적은 이어지고 아주머니는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당신은 우리가 마치 어릴 적 남매지간이라서, 한 겨울 내복만 입고 아웅다웅 고구마를 먹던 것처럼 거리낌 없이 바깥과 조우했잖아요? 나는 바깥 아주머니로서 지금 이 순간 당신과 처음 만나는 사이가 아니던가요? 당신과 내가 남매지간도 아니고 더구나 어린 나이도 아니지 않나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미처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아니 이 바쁜 와중에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지금 외로운 할아버지가 예전의 처자식을 그리워하는 중요한 부분인데, 프로그램 전반부의 삼십 분을 그 때문에 기다려왔는데, 개그맨 이승윤이 지금 어렵사리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여쭈어 봐서 대답하려는 순간인데, 그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지, 라는 그의 몇 마디에 몇십 년의 인생을 즉각 들여다볼 수 있는데, 남의 인생이 젤 재밌는데, 그가 산에 간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니 제가 당황해서 그런 게 아닙니까요? 라고 읍소했다. 


가만, 아주머니께서 어른이라고 말했지요? 어른을 찾는다구요? 외부인에게 우리 집의 내력에 대해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잖아?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우리 집 내력을 샅샅이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나다. 따라서 대문 안쪽 모든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이도 나다. 그런 내가 당신 눈앞에 섰는데 당신은 대체 누굴 찾는단 말인가. 나는 아주머니에게 응답하고 싶었다. 우리 집 모든 부분을 이 몸이 알려줄 수 있음에 마땅한 어른의 신분으로, 대체 나 말고 누구를 찾는다는 말인가. 어험, 이 몸은 KF마스크를 하루에 한 장씩 쓰는 사람이란 말이오. 나는 아주머니에게 보무도 당당히 말했다.


“제가 이 집 가장입니다.”


그 대답에는 물어볼 게 있다면 다 물어보세요. 제가 전부 대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저를 앞에 두고도 다른 이를 찾는 실수를 범하였으니 어서 정신을 차리고 물어보세요, 하는 의미를 담아 목소리도 굵직하게 깔아서 말하였는데, 아주머니는 순간 당황하면서 다시금 나를 응시하였다. 그 불룩한 걸 내보이고도 어찌 그런 발칙한 대답을? 그녀의 눈빛이 내 시선 아래로 내려가다가 급히 올라왔다. 그리고는 흔들리는 눈빛을 바로잡고 내게 용지를 건네며 해당 칸에 사인하라고 말하였다. 저쪽 거실의 화장실 안에서 아내는 그 대화 내용을 듣고는 끄윽끄윽 배를 잡고 웃었다면서 나중에 말해주었다. 이후 '이 집 가장입니다'라는 말은 하나의 어록이 되어 주변에 널리 널리 전파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 틀림없다.




나는 처량하게도 ‘도망자’인 신세다. 


왜 사십 대 중반이나 되어 도망가냐고 묻는다면 도망가는 게 꼭 나이랑 관계있냐고 반문하고프다. 늙음으로부터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곤란할 때는 반문하는 게 우리네 습성이지 않은가. 그러나 생각해보니 나는 반문할 시기도 지나버렸다. 그것도 젊을 때나 아니면 좀 더 어릴 때나 하는 처세다. 이제 나는 그저 대답 없이 피할 뿐이다. 단순해졌다.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그것은 비겁하거나 삐뚤어져서가 아니라 여러 환경적인 사회적인 복합적 요소가 뒤섞여 오묘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하면 될까? 당부하고 싶다. 부디 제 곁으로 오지 마세요. 


사람들이 오면 슬금슬금 뒷걸음친다.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도망친다. 혹시라도 저놈이 날 잡지는 않을까. 잡히면 어떻게 될까, 두려움에 떤다. 동선 공개가 되지 않는 세상. 누가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는지 아무도 모르는 현실. 무서운 세상. 겨우 아내를 만나 아이를 낳았고 겨우 직장에 나가 돈벌이를 한다. 나는 월급을 쪼개 겨우 아이를 키운다. 몇 년째 겨우 피아노 학원을 보낸다. 마트에서 아이가 먹고 싶다는 체리를 들었다 놨다 카트에 넣었다 빼며 겨우 사 먹인다. 


아내는 아이 옷을 인터넷에서 저렴한 중고로 사 택배로 받는다. 대문 앞에 택배가 보일 때면 아이는 환호성을 지른다.


“와~ 선물이다.”


아이는 종종 엄마에게 택배 냄새가 난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개씩 엄마의 택배가 늘 문 앞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놈의 택배를 왜 그리 많이 시키냐고 오죽하면 택배 냄새가 다 나냐며, 간 큰 말을 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적이 있다. 가장이 애걔 고작 겨우 고만큼 벌어오니 그런 게 아니냐는 말씀. 나는 재빨리 아 그러셨군요, 제가 깜빡했네요, 잘못했어요 하고 사과했다. 아무튼 엄마에겐 택배 냄새가 난다고 말하기에 그럼 아빠에겐 무슨 냄새가 나지? 물으니 아이는 대뜸 담배 냄새가 난다고 했다. 녀석아. 아빠 저번에 담배 끊었잖아 잘 좀 맡아봐 하니 아 맞다 그랬지 음 아빠는요 요새는 기름 냄새가 나요, 라고 했다. 그리고는 담배 대신 과자만 먹고 자주 튀김도 부쳐 먹으니 기름 냄새가 난다며 나더러 저리 가라고 한다. 담배 냄새가 난다고 저리 가라고 해서 담배를 끊었는데 인제 와서 기름 냄새가 난다니. 그래서 나는 냄새를 흩날리려 몸을 움직인다. 도망간다. 바람에 냄새를 날려 보내고자 쿵쾅쿵쾅 내달린다.


이 나이에 잡히면 다시 도망갈 힘도 짜내기 힘들어진다. 그러면 끝이다. 끝장이다. 그러면 대체 누가 날 잡으러 온단 말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야속한 세월. 늙어가는 육체. 약해지는 마음. 죽음에 이르는 시간. 다양한 종류의 사고. 떨어지는 힘. 엷어지는 자신감. 줄어드는 기회. 어쩌면 망한 인생. 나는 왕왕 아직은 망하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어느 때고 망해 버릴 수 있음을 이따금씩 상기한다. 세월이 흐르면 차츰 좀 더 짧은 구간으로 그런 것들을 상기할 터다. 쫓기는 인생. 잡히면 죽는다. 죽으면 끝이다. 힘이 다 떨어져 고개 떨구면 모든 게 끝난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걸 알지만 도망갈 노선이,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발걸음을 옮겨 도망치기를 멈추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다리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고개 숙여 아래를 보면 다리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다리를 오른발 왼발 순서대로 내디뎌야 한다. 


그래. 어디 한번 잡아봐라. 나는 늘 도망쳐야 함을 상기하고 그때마다 있는 힘껏 달리기 한다. 가다가 숨이 차면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긴다. 몸은 지치고 헐떡거리지만, 다음 텀에 상기할 때를 기다려 가만히 숨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쫓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가끔 지겨울 때가 있다. 비록 쫓기는 몸이지만 내게도 남는 시간이 있다. 한참이나 전속력으로 거리를 벌려두었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아이고 숨 차, 저 멀리 있겠지? 놈의 위치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짐작이다. 어쩌면 지척에 와 있을 수도 있다. 숨 고르며 쉬고 있을 때 내 몸을 와락 안거나 덥석 잡아 버릴 수도 있다. 쫓기면서 사는 일상. 혼자이길 강요하는 시대. 혼자라서 외로운 시간. 문득 지금 몇 신가 궁금해져 


시계를 보니 네 시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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