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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un 27. 2020

아이가 태어날 때

주차장 알바생이 아이와 처음 만나던 날

안녕 만나서 반가워.





틈새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들어오겠지? 들어와야 하는데. 



작은 주차장 입구에 붙은 조그만 대기실에서 나는 멍하니 작은 창을 바라본다. 작은 것들의 향연. 여기저기 작은 것들이 몰려온다. 창밖엔 빗방울이 세차게 날려 후드득거린다. 춥지만 갑갑하다. 몸이 스산한 기운에 부르르 떨린다. 숨 막혀. 저놈의 창문을 조금이라도 열어젖히고 싶다는 생각. 덜커덩 소리 나도록 열면 비로소 바깥과 소통되리란 환상. 시원한 바람이 들이차겠지 하는 기대. 그러면 답답한 가슴이 뚫릴 것만 같은데. 

저 오래된 철제 책상 위 창문이 열려야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이의 얼굴이 어슴푸레 나타난다. 점점 다른 아이와 구분되는 특징이 영글기 시작한다. 몽실몽실 작은 코와 퉁퉁 부어 뜨지도 못하던 눈. 발가락은 지어미를 닮았고 손가락은 나를 닮았다. 그래 네가 내 딸이구나. 아빠는 잘 있단다. 지금은 말이지. 잠깐 쉬는 거란다. 나중에 네가 크면 널 처음 만났을 때, 만나던 순간을 조곤조곤 들려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렴 하고 나는 다짐하듯 당부한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움직일 수 없다. 의식이 저 멀리 달아난다. 정신 차려야 한다. 아기와 아내를 만나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잠깐 지금 몇 시지? 창가를 보니 밤이 이슥하다. 여기서 잠들면 안 되는데 어서 가야 하는데. 곁에서 화롯불이 타닥타닥 소리 낸다. 온기에 서서히 잠들어간다. 의식이 가물가물 멀어지는데 쾅쾅 두드리는 소리.

"아저씨! 일어나요! 아기 보러 가셔야죠."

매니저 해피의 목소리다.



유리창 너머로만 볼 수 있다. 

아기들은 간호사들만 출입하는 방에 빼곡히 들어가 있다. 복도에서 지켜보는데 그마저도 시간제한이 있다. 그 외 산후조리하는 방에서 티브이로도 잠깐씩 보여준다. 수많은 아기가 다닥다닥 누웠다. 아기는 조그마한 침대에 저마다 뉘어져 잠들었다. 아기를 찾다가 보니 머리맡에 응가 묻은 기저귀가 보였다. 저게 우리 아이의 응가로구나. 아기로부터 혹 시선이 떨어질세라 내내 응시하는데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애가 다른 애와 바꿔치기되면 어쩌나.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걱정은 꼬리를 물고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아기 발목에 산모 이름의 테이프를 감아둔 게 표식의 전부다. 표식을 온전히 믿을 수 있나. 얇디얇은 종이테이프. 언제든 새 테이프에 딴 이름을 적어버리면 그만이다. 이걸로는 부족해. 착오가 생겨 테이프가 바뀌거나 떨어져 버리면 영영 아기를 찾을 수 없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면회 시간 동안 집중하여 아기 얼굴을 눈에 새기려 했다. 그러나 갓난아기들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얼굴만 봐서는 쉬 구분되지 않았다. 더구나 얼굴에 어딘가 특징이라 할만한 것은 볼 때마다 바뀌었다. 이렇게나 똑같나. 어른들 말에 따르면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며칠만 지나도 확확 개성이 드러날 거라고 했다. 나는 아기를 만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조그만 얼굴을 기억하려 안간힘을 썼다. 면회 시간은 짧았다. 출근하는데 조리원 침실에서 아내의 기척이 들렸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많이 아프게 해서 미안해."

아내는 엷은 미소로 답했다.

"자기야, 나 움직일 때마다 배가 흘러내리는 것 같아. 배 좀 돌려주세요."

아내는 부탁했다. 당신의 따뜻한 손바닥으로 배를 문질러 달라고, 그러면 아프지 않을 것 같다며 어서 돌려달라고 했다. 나는 손으로 살살 아내의 배를 갖다 대 문질렀다. 그래, 당신의 배를 돌려줄게. 배를 돌려서 아프지 않다면 얼마든지 돌려줄게. 아프지 않게, 내 손을 세상 전부로 믿는 배, 살결을 부드럽게 문지르면 아프던 배가 아프지 않다고 하는 아내.



"아저씨! 기운 내세요. 저런 진상이 어디 한둘인가요?"

매니저 해피가 계단을 내려와 말했다. 그녀는 제법 어른 티를 내지만 아직 이십 대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이 계통 일을 해와서 나름 직책에 맞는 적절한 포용력으로 알바생들을 관리했다. 스무 명 가량 남녀 대학생이나 그즈음 또래들이 주방과 서빙을 담당했다. 삼십 대는 나를 비롯해 주방장과 총매니저뿐이었다. 사십 대는 딱 한 명 최상위 책임자인 점장뿐이었다. 까다로운 점장은 툭하면 알바생들을 울리기 일쑤였다. 나는 귀띔으로 점장이 노처녀라고 전해 들었다. 점장이 노처녀여서 집에 가도 할 일이 없어서 가게에 종일 붙어 있는 거라고, 그래서 점장이 된 거라고 누군가 덧붙였다. 알바생들에게는 늘 히스테리 마녀 같지만 나는 일찍이 보았다. 어느 날 진상 고객이 진상을 피워 알바생은 난처하여 얼굴이 빨갰다.

"우리가 먼저 왔는데 옆 테이블부터 음식 내준 이유를 대보란 말이야!"

남자 고객은 거듭 소리쳤다. 알바생은 중얼중얼 더듬거렸다.

"고객님, 이건 주방의 착오로..."

"됐고 점장 나오라고 해!"

진상들은 걸핏하면 점장부터 찾았다. 당신 말고 더 높은 사람 나오라고. 당신 하고는 할 말 없어. 당사자인 당신은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어쩌면 바로 그 점,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배제되는지도 모른다. 더 높은 사람은 뒤늦게 불려 와서 상황 설명을 듣지만 어쨌든 상황 설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시시비비는 알 필요도 없다. 점장은 고객을 힐끔 보고는 대뜸 무릎부터 끓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모든 손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점장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어떤 변명도 필요치 않다. 죄송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이것이 서비스, 고급 레스토랑의 접객 문화에 있어 아무렴 닳고 닳아서 당신이라면 믿고 맡길만하다 하여 점장이 되었을진대 그녀가 선택한 행동은 덮어놓고 사과하는 것. 억울하더라도 다른 변명이나 설명은 필요 없다. 손님과 직원은 1대 1 당사자가 아니다. 손님은 몇 계단이나 높은 곳에 있는 신분.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이를테면 사람 대 강아지다. 강아지가 아무리 억울한 심정을 토로해봐야 사람 앞에서 통할 리가 없다. 사람이 먼저 노려봤기에 나도 노려봤을 뿐이에요. 사람이 먼저 내 발을 밟았기에 저도 사람의 손을 깨물었어요. 분쟁이 생겼다면 앞뒤 사정은 됐고, 강아지가 잘못했구나. 강아지는 어떤 착오로 어떤 행동을 했기에 사람을 화나게 했을까. 결국 사람이 화났으니 강아지가 실수했구나. 강아지 딴에 속사정이 있을까, 라고 궁금해하는 이는 없다. 강아지 대표는 사람과 강아지 사이를 통역하는 위치쯤 된다. 대표는 점장이다. 점장은 우선 사람에게 사과한다. 사과하고 나중에 강아지를 데리고 가서 네가 왜 사람인 척 하니? 사람과 더불어 산다고 사람인 줄 알면 사람이 싫어한단 말이야. 아하, 네가 잠시 까먹었구나. 여기 와서 근무복으로 갈아입으면 강아지가 된다는 걸 잊었나 보네. 거울을 보렴. 네가 강아지지 사람이니? 라고 점장은 알바생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이때 알바생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한쪽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강아지가 되어야 하는구나 하며 수긍하는 데 반해 다른 쪽은 제가 왜 강아지예요? 강아지 옷을 입었지만 엄연히 사람이라구요. 사람에게 왜 강아지 보듯 함부로 해요? 저도 집에서는 귀한 자식이라구요. 뭐라구요? 귀한 집 자식이면 귀한 집에 머물 것이지 왜 여기 와서 강아지처럼 사료 따위를 달라고 손 내미냐구요? 휴, 그래요. 실은 잘 몰랐어요. 멀리서 보니 강아지 흉내쯤은 낼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근데 강아지 흉내를 내면서까지 돈 벌긴 싫어요. 엄마는 왜 강아지만큼도 용돈을 주지 않는 거냐며 눈물 콧물 짜면서 그만두었다. 카랑카랑한 점장의 야단에도 해피는 굳건히 당찬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러한 점장 아래 매니저와 알바생들의 주 근무지는 모두 가게 2층이다. 알바생들은 진상 고객에게 당할 때마다 해피를 찾았고 해피는 점장까지 찾기 전에 어르고 달랬고 어르고 달랜 노고를 풀고자 주차 대기실로 내려왔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일개 주차요원으로 이따금 담배 피우러 내려오는 해피가 반가울 따름이다. 으레 강아지는 강아지를 반긴다. 크든 작든 위든 아래든 늙었든 어리든 동류니까. 동류는 동류를 물지 않는다.

"아저씨, 많이 추워요? 이거 드시고 모자라면 올라와서 더 드세요."

그녀는 살갑게 말하며 주차 대기실에서 독한 담배 하나를 피우고 올라갔다. 춥냐고 물어보는 해피는 반소매 차림이고 제법 춥네, 라고 답하는 나는 파카 차림이다. 해피는 실내 근무자고 나는 실외 근무자다. 저녁 피크 타임이 지나자 그녀는 스테이크와 수프를 접시에 담아 쪽문으로 내려왔다.

"아저씨, 이거 좀 드셔 보세요. 옷 좀 두꺼운 거 입으시지, 주차장은 꽤 쌀쌀하네요."

해피는 두 평 남짓 대기실 책상에 음식을 놓고 팔짱을 꼈다. 반소매 유니폼을 입고 서글서글 웃는 그녀를 보자니 일하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렸다. 나는 고기 한 점을 수프에 찍어 우적우적 씹었다. 해피는 나의 먹는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일어나면서 내 어깨를 치며 파이팅! 기합을 넣고는 다시 쪽문으로 올라갔다. 매장 근무자는 겨울이든 언제든 반소매 차림이다. 주차요원인 나만 잠바를 입었다. 12월의 대기실에는 이렇다 할 난방장치가 없고 낡은 화덕 하나만 있었다. 그저 좁고 밀폐되었다는 것이 위안이 될 뿐. 칼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나는 주차장 일을 했다.


"억! 뒤로 오지 말아요! 정지!"

나는 급히 손 뻗어 외쳤지만 차는 추돌해버렸다. 주차장에서 나가려던 차와 후진해서 들어오려던 차의 충돌이다. 주차요원인 나는 사고에 어안이 벙벙해서 눈이 휘둥그레져 서 있다. 후진하던 차가 뒤차를 보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고 당연히 후진한 차가 가해자였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다른 차를 안내하다가 뒤늦게 달려오던 길이다. 후진한 차에서 사십 대 남자가 내렸다.

"왜 주차 안내를 안 해줘요?"

남자는 난데없이 따지고 들었다. 처음부터 나의 안내를 받지도 듣지도 않고 제멋대로 마구 기어를 바꿔 움직이지 않았나. 게다가 나는 정지하라고 크게 소리쳤다. 분명 남자는 주차요원인 내게 덮어 씌우려는 의도였다. 나가려다 사고를 당한 차에서 아주머니가 내렸다. 아주머니는 두 손을 벌리고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가해자 남자를 보았다. 그런 아주머니는 안중에도 없이 남자는 날 보고 말했다.

"당신이 미리 내 차부터 안내했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겠어?"

나는 멍하니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여러 대의 차가 동시에 진입했을 때 일일이 주차요원의 지시를 기다리는 손님은 드물었다. 빈자리가 보이면 우선 쑤셔 넣고 봤다. 없으면 그제야 한번 쳐다보거나 안내를 기다릴 뿐. 내가 저쪽에서 안내를 하고 있으면 다른 쪽에서는 제각기 빠져나가든 들어가든 알아서 움직였다. 주차장은 누군가의 관리를 받는 공간이다. 고객은 누군가의 관리를 받지 않고 행동하지만 누군가의 관리를 받는 공간이기에 누군가의 책임을 물었다. 나는 사고당한 아주머니가 내 편이 되어줄까 슬쩍 쳐다보았다. 피해자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했다. 

"주차 아저씨한테는 잘못이 없어요. 하지만 여긴 패밀리 레스토랑이잖아요. 확실히 저 분이 정신없이 사고를 낸 거지만 뭐 서비스업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않겠어요?"

아주머니는 귀찮아했다. 또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레스토랑에서 하든 남자가 하든 어쩌면 대놓고 책임 전가하는 남자보다 레스토랑이 더 편할 거란 눈치였다. 점장이 2층에서 내려와 남자와 아주머니에게 연신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보상하겠습니다."

"당연히 보상해야지."

남자는 당연하다는 말을 한 후

"저 주차요원이 후진하라기에 사고가 났네요"

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계속 딴청을 피우는 사이 아주머니는 차를 몰고 사라져 버렸다. 떠나는 피해자를 지켜보며 남자는 점장에게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제 차도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유유히 식사하러 올라갔다. 이윽고 매니저 해피가 계단을 내려와 말했다. 

"아저씨, 기운 내세요. 저런 진상이 어디 한둘인가요? 그래도 요번엔 좀 신박하네요."


9월부터 나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태어날 아기를 떠올렸다. 이렇게 도중에 관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나는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아내의 배는 불러갔다. 더 쉴 수는 없었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당분간 여기서라도 버티자 하고 시작하였다. 아이가 태어날 때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산모의 보호자란에, 아빠의 직업란에 뭐라고 적는단 말인가. 뭐라도 적어야 했다. 공란으로 둘 수는 없었다. 태어날 아이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한편 나는 주차요원 일을 하면서 알았다. 그동안 줄곧 손님으로 고객으로서 대접받고 살아왔구나. 누군가의 희생 위에 고객이란 신분으로 과분한 접대를 받았구나. 희생과 대접을 당연하다 여겨왔는데 그냥 단순히 한번 더 웃으면 되고 한번 더 숙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주차요원은 대형마트 백화점 식당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직업이지만 막상 그 처지가 되어 사람들을 대하니 놀라웠다. 그저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가? 결코 아니다. 서비스업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칭해야 할 정도로 정신적 소모가 큰 세계다. 온갖 인격 모독에도 놀라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먼젓번의 알바생처럼 눈물로 쫓겨나리라. 때때로 놀라움은 급격하게 팽창하여 스트레스가 되었다. 나는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배출구를 열었다. 그래, 너는 떠들어라, 지랄하네, 지랄도 가지가지다, 정말 가지가지하는구나, 진상 고객들의 여러 패턴에 놀라면서도 떠들어라부터 가지가지까지 나는 읊조리며 배출하고 인내했다.                                                



산달이 되자 아내는 힘들어했다. 

는 아침마다 뱃속 동영상을 틀어보며 신기한 눈으로 아침을 먹었다. 점심 전 출근해서 자정이 가까워서야 퇴근하는 주차요원의 하루 일정 때문에 부부는 아침나절만 함께 지냈다. 내가 밥을 먹는데 아내가 손을 대 보라고 했다. 아내의 배에 손을 대자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감촉은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 딸, 그만 꼼지락대고 얌전히 있어야지."

내가 말하자 정말 알아들었다는 듯 움직임이 멈췄다.

"우와 이것 좀 봐. 벌 아빠 말을 아나 봐."



"제가 주차해 드릴 테니 식사하러 올라가시지요?"

내가 말하자 남자는 차창을 쪼르르 내리더니

"됐습니다. 기다렸다가 직접 주차할게요"

하고 거절했다. 주차장에 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었다. 내가 만난 다양한 유형 중에 이처럼 자신의 차를 결코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을 피하는 사람도 더러 보았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빈자리는 한참을 기다려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재차 물어볼 요량으로 차창을 두드렸다. 그러나 남자는

"신경 끄시고 볼일 보세요. 기다린다고 했잖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때 매니저 해피가 무전기로 전했다.

"주차 아저씨! 고객 님 지금 내려가니까 차 빼놓으래요."

"알았다 오버."

나는 현황판에서 해당 차 키를 집어 출구로 차를 뺐다. 식사를 마친 고객이 계단에서 내려와

"감사합니다"

말하고 나갔다. 그렇게 한 군데 생긴 자리. 오래 기다렸던 빈자리. 기다리던 남자의 검정차가 막 그곳에 진입하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경차가 잽싸게 그 자리에 쏙 들어갔다. 나는 당황하여 경차의 차창을 두드렸다.

"고객님, 저기 저 차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가 차를 빼라고 말했지만, 경차는

"먼저 대는 사람이 임자죠"

하고 서둘러 계단으로 쫑쫑 올라가버렸다. 나는 황당하다는 듯 두 손을 들고 검정 차를 봤다. 검정 차는 윙~ 차창을 내리더니

"야! 이 개자식아! 일을 그따위로밖에 못해!"

라고 소리쳤다. 내가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해보지만 남자는

"됐어, 멍청한 놈의 자식!"

말하고 독 오른 얼굴로 차창을 올렸다. 나는 대기실 벽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검정 차를 멍하니 봤다. 검정차는 서행으로 주차장을 벗어나려다 별안간 후진기어를 넣고 급히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 뒤꽁무니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렇게 급발진처럼 찰나의 순간 부릉! 큰 소리와 함께 후진하는데 벽 앞에 서 있는 나는 그만 차에 부닥칠 뻔했다. 끼익! 하면서 타이어가 밀리며 내 배꼽 앞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나는 몸을 움츠리며 배꼽 앞을 내려다보았다. 검정차의 빨간 불빛이 옷 위로 옮겨 붙었다. 빛 때문인지 뱃속까지 얼얼해졌다. 남자는 차창을 내려 무표정하게 돌아보았다. 돌아보며 '어때? 놀랐냐? 쫄았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표정을 보다 내 몸 저 밑에서부터 분노가 부글부글 솟아올랐다. 까딱하면 차와 벽 사이에 끼어 죽을 뻔했다. 나는 차 앞에서 무력해진 내 몸뚱어리에 놀랐고 자칫 아이를 만나보지 못할 뻔했다는 것에서 다시 놀랐다.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는 상상이 소름 끼쳤다. 나는 들고 있던 무전기를 냅다 바닥에 던져버리고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검정차는 차창을 올리고 소통을 거부한 채 다시 급출발로 부우웅 주차장을 벗어나 큰길로 달아났다. 바닥에는 박살 난 무전기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까만 플라스틱 조각과 금속 덩어리의 형체. 나는 배를 문지르며 혼잣말을 했다.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눈을 질끈 감을 정도의 위협. 이것도 배출될 수 있을까 하여 나는 중얼거렸다. 

'너무 하시는 거, 너무 하시는, 너무 해.' 

나는 비를 가져와 무전기 잔해를 쓸었다. 머리 한쪽이 부서져 퀭한데 다른 머리 한쪽이 고개 숙이며 일을 계속했다. 진입하는 차에 다가가 자리가 없으니 주차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안녕히 가세요, 하며 허리 숙였다. 그저 빨리 밤이 왔으면 하는데

"어라, 최 서방! 여기서 뭐해요?"

라는 말이 들렸다. 아내의 친구였다.

"아, 안녕하세요. 알바하고 있어요."

나는 엉거주춤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뭐야? 자기 아는 사람이야?"

그녀의 옆자리에서 남편으로 보이는 이가 물었다.

"응, 우리 고등학교 친구 신랑이야. 인사해."

그들은 차에서 내려 나의 발끝에서부터 찬찬히 시선을 올려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기가 곧 태어날 거라고 하더니 최 서방 고생이 많네요."

남녀는 야릇한 미소를 짓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언젠가부터 자격지심을 키워갔다. 고객이 쳐다보는 눈빛의 미묘한 변화를 망상의 세계에서 점점 확대했다. 차 키를 던져주고 또각또각 계단을 오르다 말고 슬쩍 돌아보던 시선. 그들의 차에 올라타 그들의 손때가 묻은 핸들을 돌리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과 싸웠다. 처음의 마음가짐은 어디로 갔는가. 그렇게 나 자신을 괴롭히곤 했다.



"자기야! 어떡해, 양수가 터졌어. 애가 나오려나 봐요."

나는 잠결이지만 번쩍 정신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필요한 것들을 후다닥 챙겼다. 새벽녘 아내는 형광등 아래 어정쩡하게 서서

"어, 어, 어떡해, 어떡하지?"

하며 당황해했다. 나는 아내를 부축하여 차에 태워서 흥분된 운전을 했다. 산부인과에 도착해 급히 계단을 올랐다.

"간호사님! 양수가 터졌어요. 빨리 좀 봐주세요."

나는 크게 소리쳤다. 간이 커튼이 쳐진 여러 병상 중 하나에 아내를 눕혔다. 이제 막 도착한 우리를 다른 예비 부모들이 쓱 쳐다봤다. 자기네들은 오랜 진통으로 이미 어느 정도 산전수전을 겪었노라. 우리가 왔던 길을 어디 어떻게 걷는지 한번 지켜나 볼까, 그런 표정들이었다. 살짝 알 듯 모를 듯 여유도 얼굴에 스쳐 보였다. 내가 잠깐 병실 밖으로 나가보니 예비 할머니들이 중얼중얼 기도 중이다.

“아이고, 우리 손주가 건강하게 태어나야 할 텐데.”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나는 병실 아내 곁으로 돌아가 상태를 살폈다.

"자기 괜찮아? 배가 계속 아파?"

나는 아내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잡았다.

"어떡하지? 그냥 수술해 달라고 해. 나 자신 없어. 무섭단 말이야."

아내의 말에 나는 고민했다.

"자기야, 빨리 간호사에게 말해. 그냥 수술시켜 달라고."

아내는 다그쳤다.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남편의 손을 잡은 아내의 얼굴. 나는 급해졌다. 노산인 아내에게 모험을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간호사에게 달려가 수술을 부탁했다. 그런데 간호사가 담당 의사는 아직 출근 전이라고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급한 대로 신임 의사에게라도 수술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그저 난감하여 발을 동동 굴렀다. 시간이 되어 어느 때라도 자연스러운 태동이 오면 곧장 수술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나는 간호사와 얘기하다 말고 아내의 상태가 염려되어 갔다. 아내는 얼굴이 노래져 진통과 싸움을 했다. 어차피 전부터 수술을 염두에 둔 터라 나는 결단을 내렸다.

"신임 의사라도 좋아요."

아내는 이동 침상으로 옮겨져 수술실로 향했다. 입구까지 가는 중에도 나는 아내의 손을 놓지 못했다. 한창 진통을 느끼며 땀범벅인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서기 전 말했다.

"자기야,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게, 안심해, 한숨 자고 나면 끝날 거야."

옆에서 간호사와 의사가 조용히 지켜보았다.

"자기야, 나 지켜 줄 거지?"

아내가 울먹이며 손을 잡았다.

"그래, 아무 걱정 말고 나만 믿어요."

마침내 간호사들이 침상을 밀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내는 고개 들어 날 쳐다보았다. 나는 중얼거렸다. 내가 대신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내 배를 째야 하는데, 저리 약하디 약한 배를 어찌 찢을 수가, 얼마나 아플까, 내 배를 째야 하는데, 하고 혼자 머리를 감싸 안았다. 벌써 시작되었으려나. 잠들었을까. 눈에 눈물이 가득하겠지. 닦아주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수술실과 대기실 중간 문이 스르륵 열렸다. 뭐지? 쳐다보는데 가슴이 뛰었다. 설마 혹시 하는데 간호사가 웬 아기를 안고서 걸어 나왔다. 얼굴에 하얀 분이 덕지덕지 묻은 아기. 내가 간호사를 보는데 간호사는 양손으로 아기의 등과 목을 잡고 날 바라봤다. 설마 혹시 정말? 이 애가?


"예쁜 공주님이 왔습니다."

간호사가 말했다. 나는 일어서야 하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신은 아직 앉아 있는데 저절로 몸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분명 예쁜 공주님이라고 했다. 예쁘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포함되었나. 이상이 없다는 뜻 이리라. 팔다리가 정상이고 손발 가락 개수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겠지. 얼굴도 멀쩡하고 반응도 정상이라는 뜻이겠지. 분명 예쁘다고 했다. 예쁜 공주라고 했는데 부디 예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정상이라는 말이면 좋으련만. 나는 떨리는 걸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낯선 아이가 간호사의 품에 안겨 제 목을 붙잡힌 채 얼굴을 드러냈다. 퉁퉁 부어 뜨지도 못하는 눈. 나는 눈에 흰 막이 쳐진 듯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네가 바로 내 아이란 말이니. 처음 만나는구나. 아아 고맙습니다. 다행이구나, 다행이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나는 내심 불안했었다. 불안에서 해방된다는 상상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는데 다행이었다.

"산모는 괜찮습니까?"

나는 다급히 물었다.

"네, 수술은 무사히 끝났어요. 건강합니다."

그제야 아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별안간 눈 감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기특한지 내 귀엔 참으로 크게 들렸다. 옆에 앉아 빙그레 웃던 할머니가 말했다.

"아, 그놈, 목청도 크네, 큰 사람 되겠구망."

간호사는 내게

"자, 아빠가 안아보세요"

하고 선뜻 아이를 안겨주었다. 나는 어설프게 아이의 목을 받치고 안았다. 떨렸다. 품에 안긴 아이를 가까이 보며 말했다. 네가 내 딸이니? 반갑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러자 아이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조그만 아이의 무게감이 아빠의 손을 떨게 했다. 수술실에서 병실로 옮겨져 의식을 찾은 아내가 말했다.

"애는 어때? 예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아내는, 배 속에 내장이 다 꺼내졌다가 한꺼번에 억지로 밀어 넣은 것 같다고 했다.



해피가 커피를 들고 내려왔다.

“아저씨! 한 시간만 더 있다가 퇴근하세요. 주말인데 고객이 띄엄띄엄 오네요.”

“왜? 열두 시까지 있어야 하잖아?”

“아니에요. 점장님이 아저씨 피곤해 보인다고 한 시간 일찍 퇴근하래요. 어차피 이 시간엔 차도 별로 없잖아요.”

확실히 주차장에는 대여섯 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다. 주차공간이 이 정도면 굳이 내가 있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단체고객이라도 올 때를 대비해서 주말에는 자정까지 보통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한다. 주차장은 계단에 오르는 곳만 불빛이 환하고 양쪽 구석은 어두컴컴하게 흰 선만 겨우 보였다. 겨울 초입을 알리는 바람이 한바탕 불자 낙엽이 으스스 소리 내며 굴러왔다. 나는 썰렁한 공간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았다. 차갑고 냉정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찬바람과 함께 가슴에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나는 다시 주차 대기실로 들어갔다. 화덕의 불씨가 여태 남았다. 누가 볼세라 대기실 문도 꽁꽁 닫고 창문도 닫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으흐흐 몸을 떨며 멍하니 하얀 벽면을 쳐다봤다. 한 시간만 더 있으면 퇴근이다. 문득 근무 일지가 손에 잡혔다. 직전 근무자가 하루하루 출퇴근 시각을 표시한 흔적이 보였다. 몇 장을 뒤적거려보니 작년, 재작년, 삼 년 전의 기록까지 있는데 하나같이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근무자 이름이 바뀌어있었다. 내 이름은 언제까지 남을까? 얼마나 더 일할수 있을까? 화덕의 연기가 매캐하니 좁은 대기실을 채워갔다.


설핏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드디어 다른 아이들 속에서도 구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이제 알아볼 수 있다. 어서 보고 싶다. 집에서 자고 있겠지. 퇴근하면 볼 거야. 가까이 밤새 쳐다봐야지. 


나의 눈 감은 얼굴 주위로 미소가 번져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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