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죠?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다고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비밀을 비밀로 남겨두기 위한 마음. 어쩐지 비장하다. 어찌 비장하지 않겠는가. 무겁다. 무거워 견딜 수 없다. 당장이라도 손에 힘을 빼 놓고 싶다. 손바닥을 펴 털어놓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자, 봐라, 이게 내 비밀이다 하고 소리치고 싶다. 비밀을 비밀로 남겨두기 버거운데 내내 힘겹게 버티면서 끝내 비밀로 남겨두고자 마음먹기 이르기까지. 숨 막힐 정도로 그 억누름이 간절하여 종국엔 가여워 보일 지경인데.
화양연화(花樣年華)
꽃 화, 모양 양, 해 연, 빛날 화.
한 글자씩 풀어보면 ‘꽃 모양이 빛나던 때?’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행복한 시절, 화려한 나날’이 된다. 그런데 인생에서 아름다운 때, 행복한 시절, 화려한 나날이란 언제인가?
그것은 대개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속성이 있어서 슬픔을 부르기 마련이다.
지나고 나서야 알다니 아깝기 짝이 없다. 보내고 나서야 알아채고 떠나고 나서야 아차,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란다. 그때였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이미 늦어버렸으니 후회만 줄기차게 이어지고. 그래도 그때가 좋았구나. 아직 철부지였지만 그날이 있었기에, 나는 이따금 어스름 땅거미 질 때 햇볕이 길게 드리울 때 황혼의 빛을 즐기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때 드는 생각은 대부분 회한에 가까운 안타까움, 아쉬움, 슬픔의 갈래이지만 그것도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는 하나의 방법 이리라. 그 순간 아스라이 기억하는 그림, 느낌, 떨림. 스르르 머리에 그리며 어떠한 장면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슴 한쪽이 그득하니 따뜻해지는 단계, 곧 화양연화가 아닐까 싶다.
십 대 후반.
처음 이성을 만날 때 느끼던 설렘. 이 느낌 뭐지? 설렘은 제어되지 않아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올라 금세 차오른다. 그녀를 생각하면 마냥 벅차다. 벅찬 가슴 진정할 수 없어 거실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던 장면. 이게 뭐야? 왜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뛰어? 참기 힘들어.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움푹 파인 피부 같다. 아얏! 아프다! 어라 아팠나? 아팠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 통증이 없다. 들여다보니 피부 속이 하얗다. 처음엔 분화구에 눈이 쌓인 것처럼 덩그러니 하얗기만 하다. 하얗구나 하야니 괜찮은 거라 여긴다. 그러다 서서히 피가 몽글거리며 분화구를 채운다. 피가 나오네? 당황하여 지혈하고 붕대 감는다. 시간이 지나 딱지가 앉고 수면 아래 새 살이 차오르길 기다린다. 피와 딱지, 설렘은 어느새 가득 차더니 한계선을 넘기 시작한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온천수가 흐르는 것처럼,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그만하라고 말해보아도 말 듣지 않는다. 그렇게 폭발하듯 복받치고 복받쳐 설렘은 끝없이 복받쳐온다. 앞뒤 잴 것도 없이 그녀를 당장 만나야 진정될 것만 같은 마음. 아아 폭발할 것 같다. 미칠 것 같다. 지금 당장 필요해. 기승전결 따위는 꺼내지도 마. 시작하는 이야기는 다 부질없고 오로지 그녀를 만난다면 즉각 결(結), 결론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고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그러니 응당 말은 필요 없을지도... 묵묵히 서로를 쳐다보며 눈물 글썽이는데... 눈물은 말한다.
'내가 입 밖으로 언어로 꺼내지 않지만 당신은 내 마음을 알아들어요.'
알아듣는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를 눈물로 표현한다. 내 눈물에 대한 응답으로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몽글거린다. 나는 몽글거리는 방울에 즉각 감격한다. 피와 눈물은 아주 천천히 맺히며 몽글거린다. 그 방울은 입 벌려 말하지 않았지만, 가슴속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응답의 신호이니까. 역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그래서 만나서 다행입니다, 라고 감격한다.
뒤늦게 통증이 느껴진다.
이십 대 후반.
두 번째 이성을 만날 때 걸리던 걸림돌. 키가 작아서 걸리고 키가 커서 걸린다. 빼빼 말라서 걸리고 뚱뚱해서 걸린다. 머리가 짧아 걸리고 다리가 짧아 걸린다. 학교에서 걸리고 직장에서 걸린다. 집 문제에서 걸리고 나이에서 걸린다. 과거가 있어 걸리고 미래가 없어 걸린다.
나는 걸리는 게 많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무던히 애를 썼다. 와중에 잠시 숨 고르며 숨 고르는 그대 앞에 털썩 앉는다. 앉아야 하는데 어디에 앉을까? 어디라도 앉자. 저 멀리 구름이 떠 있다. 앉을 수 있을까? 앉으니 앉아진다. 나는 구름에 앉아 그대를 내려다본다. 구름 의자는 두둥실 떠오르다가 힘없이 가라앉는다. 앉으니 구름은 사라지고 의자만 남았다. 의자는 등받이와 받침대가 없어서 불편하다. 구름은 이미 사라졌건만 나는 여전히 구름 의자에 앉은 척 힘든 자세로 그대를 경계한다. 그대는 축구하듯 공을 찬다. 나를 발로 걸러내고 차고 감히 건너뛰지 못하게 지켜보지만 나는 그대의 발길질을 요리조리 피한다. 간혹 피하지 못한 발길에 우리는 걸러지고 또 발길로 걸러낸다. 서로가 서로를 차고 피하고 찬다.
보기 좋게 그대의 다리 사이 내 다리가 들어가고 다리 사이 내 다리와 그대 다리가 착착 교차하여 존재할 때 공존할 때 느껴질 때 그제야 짧은 숨을 고르고 그대 얼굴을 올려다본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대 다리와 내 다리 길이의 비율이 알맞아서 우리는 더 이상 차고 차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딱 맞는 사람은 도통 만나기 힘든데, 선뜻 감사하다는 마음마저 든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그려왔던 얼굴은 아니지만 그나마 만족입니다. 자꾸 보니 정들고 애당초 내가 생각했던 얼굴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몰랐던 얼굴이기에 내가 생각하지 않았어도 생각한 만큼의 가치가 있는 얼굴이라 여기고 적응하렵니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며 그대에게 나를 맞춰봅니다.
삼십 대 후반.
세 번째 이성을 만날 때 나는 그대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얼굴만 본다. 월요일의 나를 보고 화요일의 나를 본다. 아침의 나를 보고 밥 먹을 때 나를 보며 잠잘 때 나를 살핀다. 수요일의 나를 보고 목요일에야 잠깐 허전함을 느낀다. 금요일이 되면 절실해진다. 밥 먹을 때 먹었던 찬을 또 먹다가 에이 맛없어, 하며 숟가락을 팽개친다. 싱크대 안 설거지거리가 쌓여도 마냥 귀찮아질 때 나는 당신을 떠올린다. 허전과 맛없음은 허무로 귀결된다. 허무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한편 허전과 맛없음은 재밌고 재미없고의 차이와 결이 같으리라. 더 재미있는 일상을 나누고 싶어 당신을 떠올린다.
당신 또한 재미있는 상대를 찾고자 이 자리에 나왔으니 우리는 재미있는 사이가 되고자 연신 말을 한다.
말을 해야만 무엇을 재미있어하고 재미없어하는지 알 수가 있다. 사실 처음에는 스스로 뭐가 재미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당신의 말대로 그렇게 하니 재미있고 저렇게 하니 재미가 있다. 몰랐던 걸 알려주는 당신이 고맙고 의지가 된다. 문득 궁금하다.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탐하고 싶다. 지금이 아니라면 재미있는 이것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불현듯 급해진다. 나는 커피를 들이켜 목을 축인다. 말을 많이 해 입이 텁텁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재밌는지 당신과 나는 말하고 말 들어 말을 섞는다. 섞은 말은 하나하나 뜨개질되어 차츰 형태를 만들어간다. 얽히면 다시 풀어 차분히 얼기설기 실을 엮는다. 마침내 하나의 스웨터가 되어 당신과 나를 감싼다. 힘들었지만 인고의 시간 뒤 실은 비로소 옷이 되어 오래도록 전해진다.
마주 보던 시절
1962년의 홍콩.
절제되면서도 단조로운 영상. 원색에 가까운 질감이 영화의 수준을 드높인다. 양조위는 그 시대 이상적인 신사로 나온다. 그에 대조되는 집들과 회사와 거리는 너저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수많은 이들이 꿈을 찾아 홍콩으로 이주하던 때. 좁은 땅 아파트도 좁고 계단도 좁다. 낡아서 스러져가는 건물 안에서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와 겨우 신사의 품격을 펼치니 이 어찌 역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말하랴. 우리네 일상과 비교되는 장면. 혹자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야만 사회적 예의와 격조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먹고살기 바쁜데 예의나 격식은 개나 줘 버리라지 하는 이들은 그만큼 자신과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며 자포자기 상태로 현실 속 짜증과 자조를 내뿜는다.
양조위는 시종일관 머리에 기름을 발라 8대 2 가르마를 단정히 유지한다. 장만옥은 또 어떤가. 양조위를 압도하는 덩치? 임에도 나긋나긋 걷는다. 결혼한 유부녀의 그 올림머리는 거추장스러움의 표상이다. 서로의 남편과 아내에게 배신당하면서도 쉽사리 가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굴해지지 않고 구차해지지 않는다. 결혼에 대해서는 신사답게 부인답게 무엇보다 신중하며 절제의 아름다움을 연기한다. 쉽게 이혼하고 버림의 미학을 가르치는 이 시대와 너무나 판이하다. 그 낯섦에 동경을 느낀 것일까. 때론 그들의 절제가 답답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왕가위 감독은 감각이 넘친다. 절제는 여유로이 격조를 드높인다. 양조위가 모르는 척 말한다.
"핸드백 어디서 사셨나요? 아주 예쁘네요. 부탁드리지만 그 가방 좀 사주시겠어요?"
장만옥도 그에 질세라 말한다.
"그 타이 너무 멋지네요. 어디서 사셨나요? 저도 하나 부탁드릴게요."
속 마음을 감춘 채 이웃의 부인과 남편에게 그들은 그 시대의 방법으로 자문한다. 양조위의 부인과 장만옥의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이들은 이리 표현했다. 치가 떨리는 배신감과 절망감을 화사한 미소로 승화시켜 그 시대 상대방을 배려한다. 장만옥이 대답한다.
"이 핸드백은 외국에서 남편이 산 거예요. 여기선 살 수 없는 거라고요."
양조위의 미소는 여전히 유지되지만, 뜻밖의 대답이 나온다.
"사실 그 핸드백을 아내가 가지고 있더군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만옥이 대답한다.
"사실 그 타이도 남편이 하고 있더라고요."
슬픔과 절망이 그들을 뒤덮지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양조위는 내뿜는 담배 연기로 뿌옇게 표현하고 장만옥은 두 손에 힘주어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그것을 표현한다.
슬픔과 절망. 나란히 슬픔과 절망을 공유하며 양조위와 장만옥은 서로에게 끌린다.
할 말 있어요. 할 말 있다고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좁은 골목
삐걱삐걱 좁은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양조위. 반대쪽에서 하이힐로 자박자박 내려오는 장만옥. 마주칠 때 양조위는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장만옥은 가만히 고개 숙여 그 선을 지킨다.
무언가 두 사람만의 공감을 위해 어떤 공간이 필요한 시점. 양조위는 글 쓴다고 말하며 도와달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둘은 같은 방에서 얘기하고 글 쓴다. 그러다 집주인과 그 가족들로 인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좁은 방에 갇히게 된다. 행여나 방에 같이 있던 장면을 들킬 수는 없다며 꼬박 하루를 버티게 된다. 장만옥이 말한다.
"우리만 떳떳하면 되지. 남의 눈을 살필 필요가 있나요."
양가위는 묵묵히 끄덕인다.
줄곧 영화는 그들의 속내를 감춘 채 그들의 만남을 차츰 확대한다. 비 내리는 오후. 집 앞 어느 골목길에서 비를 피해 건물 한쪽에 서 있는 장만옥. 퇴근 후 비를 피해 집으로 뛰어 들어오는 양조위. 양조위는 집에 들어가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만, 장만옥은 양조위의 우산을 자신이 쓰면 남의 오해를 받는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만 떳떳하면 되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이번엔 양조위가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말한다.
"사실 난 떳떳하지 않아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장만옥은 짐짓 놀라다가 선뜻 자신도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저도 그래요."
양조위가 말한다.
"우리 이별 연습을 해요."
장만옥은 이별 연습 중 울음을 터뜨리고 비로소 그녀의 속내를 표현한다. 단순히 이별이 슬퍼 우는 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이 가여워서 운다. 여기서 전율을 느끼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타인과 부모와 사회와 만남과 위치와 시간과 공간 따위 여러 인자가 모여 결혼했지만, 결혼의 인자 중 사랑이 빠졌다. 사랑이 빠져 그들의 배우자는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났고 남겨진 이들도 각기 사랑을 찾았다. 사랑을 찾았지만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 예의와 위치와 도리와 격조에 갇혀 사랑하지 못함을 알고 선 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라니, 아직 채 지나지 않았지만 양조위와 장만옥은 느끼고 알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은 가벼운 미소를 잃지 않는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반갑거나 사랑하거나. 미소를 무덤까지 짊어지고 갈 것만 같은 신사였는데 이처럼 감정의 폭발에 답답함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한다. 이별하고 세월이 지나, 양조위는 동남아 일대를 헤맨다. 여러 나라를 거치며 그녀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장만옥이 그랬듯 이번엔 양조위가 기둥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창문틀에 낀 먼지가 세월이고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는 있지만 (여기서 밖은 과거고 추억이다) 먼지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그 먼지의 수는 많아져 창을 통해 밖을 볼 수 있는 시야는 흐려진다. 그러나 사람은 과거의 아픔을 추억으로 기억하고 그것을 회상하는 데 행복을 느끼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 먼지를 손에 잡을 수는 없지만, 존재를 볼 수 있고 비록 흐릿하지만 과거를 볼 수 있다. 인생의 가장 화려한 때 끝자락에서 그들은 만났고 헤어졌다. 당신의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때는 언제였던가. 창문 안에서 바깥을 보는 처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이가 흐느낄 때 같이 울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당신 괜찮아?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사오육칠팔구십 대 후반.
개체는 에너지를 찾아 움직인다. 힘이 없어 힘을 찾고 힘을 얻고자 꿈틀거린다. 오롯이 힘을 좇고 힘을 맹신한다. 그러다 쭈르륵 미끄러지고 넘어져 쓰러진다. 쓰러지고 넘어져 생각한다. 십 대 후반,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후반을 떠올린다. 내가 어떤 사랑을 했나, 어떤 사랑이 소중한가, 어떤 사랑이 가장 안타까웠나 생각하지만 그것은 고작 흔적만 더듬는 수준. 드문드문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오지만, 다시 연기처럼 떠나갈 뿐이다. 그저 어스름 저녁 지는 해를 보며 그때의 느낌이 어떠했나 짐작해볼 뿐이다. 잘 모른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잘 몰라서 더 아련할지도 모른다. 모르고 모르는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 느낌. 떨림. 설렘. 잠을 자 꿈속에서야 만나는 사람.
내가 가장 아름다웠고 그대 또한 아름다웠으며 우리가 맺어지지 못해 더 아름다웠던 나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때를 가리켜 화양연화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나이 먹으며 화양연화를 그리워하고 들춰가는 재미를 목말라한다. 설렘과 두근거림, 눈물이 어느덧 재미로 점철되는 나이. 하지만 아주 가끔 기억이 메말라 내가 누군지 오늘이 며칠인지 나이가 얼만지 이름이 무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우연히 서쪽 하늘과 마주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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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비밀로 고이 지킨 자신이 대견하여서 벅차오르는가? 그러면 구름 뒤 붉은 원색이 폐부를 찌를 테다. 찌르며 알려준다. 사람, 느낌, 떨림, 설렘을... 이윽고 가슴속 메시지가 꿈틀 날숨을 타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