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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y 31. 2021

갓 구운 김에 밥 싸 먹으면

서울 직장생활 아침식사의 향연




아침을 먹지 않았다.



아침은 건너뛰었다. 귀찮아서다. 집에 있을 때는 먹었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부터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서 자연스레 먹지 않게 되었다. 대신 점심 저녁을 거하게 먹으면 된다, 라고 여겼다. 한동안 배고픈 아침 시간을 견디다가 별안간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 먹게 바뀌었는데 어느 날 동료 직원이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의 메마른 생활 중 아침밥이라는 달콤한 순간도 있었구나 싶다. 


사택에서 지내며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던 시절. 강변도로에 차가 밀리기 전 늘 이른 출근을 했다. 7시 반이면 회사에 도착했다. 출근해서 커피 한잔 홀짝이며 컴퓨터 앞에서 8시를 기다렸다. 8시가 되면 동료 몇몇이랑 회사 앞 식당가로 갔다. 아침 먹는 동료는 6명 남짓. 모두 남자였다. 대개 3명씩 두 테이블로 떨어져 앉았다. 처음에는 총각 다섯만 같이 먹었는데 유부남 형이 뒤늦게 합류했다. 형은, 난 마누라가 해주는 거보다 이 집 아침에 나오는 김이 맛나서 먹는 거야, 라고 말했다. 


당시 회사에서는 식당가의 한 식당과 계약해 식권을 발행했다. 

매달 초가 되면 경리가 사무실마다 다니며 소리쳤다. 자자 식권 신청하세요. 주임님 식권 몇 장 신청할 거예요? 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뭘 물어보고 그러세요? 맥시멈이요, 라고 답했다. 한 달에 최대 신청할 수 있는 매수는 스무 장이었다. 식권 가격은 사천 원짜리. 회사 부담 이천 원, 본인부담 이천 원이다. 스무 장을 신청하면 장당 이천 원씩 도합 사만 원이 월급에서 까지는 구조. 식권 제도는 나름 회사의 복지였다. 아침 먹는 남자들은 죄다 스무 장씩을 신청했다. 스무 장을 신청해도 일단 모자랐다. 식권으로 식당에 가서 하루 한 장씩 점심만 먹어도 한 달치 딱 맞는 숫자가 된다. 거기에 아침까지 먹으면 하루에 두 장씩 소모되는데 그러면 달에 마흔 장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아침 먹는 남자들은 아침 먹지 않는 직원에게 모자라는 식권을 돈 주고 샀다. 더러 외식을 하거나 도시락을 싸오는 직원이 식권을 판매하는 쪽이었다. 우리 부서에는 유독 지방에서 상경한 직원이 많아서 그들을 위해 식권을 사서 되팔고는 했다. 나도 식권을 스무 장씩 사서 지갑에 넣어두곤 했다. 저기요 부장님 과장님 식권 파세요, 라고 말하면 부장님 과장님은 옛다 가져라 하면서 열 장 묶음을 던져 주었다. 식권은 열 장씩 스테이플러로 찍어 지갑에 넣었다. 끼니때마다 식권 묶음을 빼 한 장씩 찢어 마치 현금으로 계산하듯 주인아저씨에게 주었다. 


식권이 열 장씩 도합 네 묶음. 

사십 장이다. 

아침 점심 두 끼씩 한 달 동안 결근 없이 부지런히 먹어야 없어지는 숫자. 식권을 지갑에 넣으면 두둑했다. 그 두둑한 느낌이 좋아서 심심할 때마다 지갑에서 식권 뭉치를 꺼내 파라락 세어보곤 했다. 이제 몇 장이나 남았나. 그럼 몇 끼나 먹을 수 있으려나. 그러면 기분이 좋아졌다. 일단 굶지는 않겠구나. 몇 날 며칠까지 월급날이 멀어 배고파도 식권만 있으면 만고 땡이라는 안심. 더러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으면 오른쪽 엉덩이가 불룩해져서 짝궁둥이로 앉은 기억이 난다. 그래도 식권은 곧 밥이며 현금이라 지갑 말고는 넣어둘 곳이 없었다. 늘 가지고 다녀야 했다. 가끔 저녁도 회사에서 해결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 식당은 저녁이면 삼겹살 집으로 변했다. 삼겹살도 식권으로 계산이 돼요? 라고 내가 묻자 식당 아저씨는 그럼! 되고말고, 라며 흔쾌히 받아주었다. 식권 열 장 정도면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수 있었다. 식권으로 고기에 술값까지 지불할 수 있었으니 그 식권 참 보기만 해도 어찌나 든든하던지.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가서 앉으면 만사 오케이. 

말이 필요 없다. 따로 메뉴고 주문이고가 없었다. 음식은 미리 준비되었다. 하루하루 번갈아 나오는 주 메뉴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였다. 월화수목을 그렇게 바꾸어 나왔고 금요일은 감자탕이 나왔다. 앞접시가 놓인 곳에 한 명씩 앉으면 되었다. 테이블 당 세명씩 앉았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났다. 식욕을 돋우는 찌개 냄새가 가득 퍼졌다. 이게 아침 먹는 맛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앉아서 침을 꼴깍 삼키며 기다리다 보면 주인아저씨가 개개마다 앞접시에 금방 익힌 계란 프라이를 하나씩 줬다. 대개 흰자는 익고 노른자는 익지 않았다. 그러면 먼저 섬세한 젓가락질로 흰자를 떼어먹었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빙 둘러서 떼었다. 그리고 밥 한 점 떠 밑반찬을 한 점씩 집어 먹었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 아직 메인 찌개가 나오지 않아서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이다. 그저 밥알 몇 개와 흰자와 밑반찬만 건져먹는 예비 식사일 뿐. 드디어 찌개가 나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앞접시에 찌개를 덜어 밥그릇 옆에 놓았다. 비로소 시작되는 본격 식사. 


식당에서 가장 특이한 반찬은 김이었다. 

김을 기름에 구워서 소금을 뿌렸다. 그런 김을 가위로 잘라서 하얀 접시에 놓아주었다. 테이블 당 김 접시는 하나였다. 기름에 구워진 김은 옆에서 봤을 때 다소 울퉁불퉁해서 팽팽히 마른 김보다 입체적이었다. 같은 수를 쌓아도 그 높이가 달랐다. 주인아저씨는 김이 가득 담긴 투명 플라스틱 통을 들고서 손수 집게로 김을 꺼내 배급하듯 접시에 쌓아주었다. 마치 탑을 쌓듯 높다랗게 쌓아서 처음 본 사람이라면 뭐 이렇게나 많이 주지? 할 것처럼 잔뜩 주었다. 기름에 갓 구운 김.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면 바삭바삭 부서졌다. 그리고 이내 스며드는 짭짤한 맛. 그 김을 하얀 밥에 싸 입에 넣으면 그것만큼 환상적인 맛이 없었다. 집에서 내가 아직 학생일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런 김이었다. 부스스 일어나 아무렇게나 식용유를 두르고 김 구워 소금을 우스스 뿌려 잘라서 담아주던 김. 김만 있으면 되었던 아침. 주인아저씨는 학생 같은 회사원들에게 엄마처럼 김을 꺼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먹고 젓가락으로 김을 밥에 싸 먹는 행태. 으레 밑반찬이란 한 숟갈에 한두 점씩 먹고 다음 숟갈에서 다른 반찬을 젓가락 가는 대로 선택하는 방식이겠지만 김은 달랐다. 무조건 선택받아서 무조건 싸 먹었다. 밥숟갈마다 김은 환영받았다. 김을 싸지 않고 맨밥만 먹는 이는 없었다. 그러면 매번, 아저씨 김 떨어졌어요. 김 더 주세요, 라는 주문이 나왔다. 네 갑니다 가요, 라면서 아저씨는 김을 굽기 무섭게 김 통을 들고 나와 긴 집게로 김을 집어 접시에 쌓아 주었다. 그렇게 최소 세 번은 리필해 먹었다. 김을 이렇게나 많이 먹어도 될까, 하면서도 연신 김을 싸 밥을 먹었다. 김 맛있다야! 이 집은 김이 최고야! 김 더 먹어야지, 라는 총각들의 감탄사가 뒤따랐다. 그 외 밑반찬은 뭐가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계란 반숙과 김 그리고 김치찌개 이거나 된장찌개. 하얀 쌀밥. 김이 있어서 총각들은 밥이 달았다. 아저씨 밥 한 공기만 더 주세요. 그러면 총각들은 아침부터 두 그릇은 부담스러우니 너랑 나 반반씩 덜어먹자 하며 반반씩 덜어먹었다. 한 그릇 반이면 그나마 용서된다는 합리화. 더 먹고 싶지만 어쩐지 그러면 점심때 밥맛이 없을 것만 같아서 이 정도에서 참아주지 하는 마음이었다. 




집에서 나는 그 맛을 잊지 못해 김을 구웠다. 

우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부어 데운다. 김을 깔아 굽는다. 한 장 한 장씩 더해 열 몇 장을 굽는다. 일일이 뒤집기 위해 왼손 엄지와 검지로 (뜨거운 걸 참으며) 김 모서리를 잡고서 앞뒷면 골고루 식용유를 묻힌다. 김은 적당히 오므라들고 부풀어 오른다. 소금을 흩뿌린다. 큰 접시에 놓아 가위로 자른다. 김을 수북이 쌓아두고서 밥을 펀다.   


요즘은 식권이 없어도 점심은 자동으로 급여에서 차감된다. 출장을 가거나 외식을 하거나 입맛이 없어 먹지 않아도 까인다. 식권을 내지 않아서인지 한 끼 식사가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살찔까 봐 조금만 먹어야지, 건강을 생각해서 야채를 먹어야지 하는 정도. 대체로 건조하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원래처럼 아침을 먹지 않는다. 아침을 먹지 않지만 이따금씩 아침이 생각날 때가 있다. 아침을 먹지 않은지 오래됐는데 아침에 배 고플 때가 있다. 입 안이 메말라 식욕이 없는 상태. 그저 물 한잔이면 족한데 문득 갓 지은 밥 내음이 고개를 돌리게 한다. 하얀 밥에 금방 구운 김이면 침을 꼴깍 삼킨다. 김을 싸  먹으면 그냥 그것으로 족하다. 다른 찬이 필요할까. 그냥 그것이면 된다. 짭조름한 소금 맛. 식용유의 푸짐한 맛. 익숙한 김 한 장. 뚜껑 연 밥솥에서 모락모락 나오는 하얀 김. 밥그릇에서도 김이 난다. 이 김이 아침 안개인지 밥에서 나는 김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김 나는 밥을 김에 싸 먹는다. 밥이 모자랄까 싶어 갈수록 조금씩 떠 김에 싸 먹는다. 어느 순간 나는 밥을 먹기 위해 김을 먹는 게 아니라 김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 김 맛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밥을 먹는다. 김 맛을 살리기 위해 계란 프라이를 먹고 김치를 먹고 찌개를 떠먹는다. 그리고 우물우물 꿀꺽 넘기면 다음 김을 찾는다. 같은 맛을 위해 동시에 새 맛을 위해 김을 집는다, 싼다, 그리고 먹는다. 


식권을 내고 아침 먹던 그날이 떠오른다. 

입 안 가득 김은 밥을 품고 입천장에 닿는다. 

그 감촉 기분이 좋았던 순간. 

생각하다가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오늘 반찬에 김이 나왔으면 좋겠다.   

 









ps. 헉 이럴 수가, 너무너무 신기하다. 놀랐다. 위 글을 쓰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점심 메뉴에 진짜로 김이 나왔다. 비록 생으로 구워 간장에 찍어 먹는 김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김이 딱 나올 수가 있는지. 아침에 일하다가 틈틈이 이 글을 마무리했는데, 김이라니! 너무 반가워서 열몇 장 넘게 먹은 거 같다.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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