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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ul 16. 2021

불금 저녁 혼자 먹는 남자

돌아보니 나뿐만이 아니더라.


국밥 먹는 시간이 즐겁다




금요일 저녁 혼자다.


딸아이는 처가에 갔고 아내는 약속 생겼다고 한다. 아내와 통화 중 내가 "저녁에 나 혼자 뭐하지? 밥은 어떻게 먹어?"라며 푸념하듯 말하니 아내가 말하길 "아쭈 목소리 떨리는 거 봐라, 좋아 죽겠지?" 한다. 나는 "아니야 아니야, 좋긴 뭘, 다 늙어서 처량하지" 하고 끊었다. 근데 신난다. 이 기분 뭐지? 모두 날 내버려 두고 외면하는데 덜컥 설렌다.


결국 온전히 혼자 몸으로 금요일 저녁과 맞닥뜨린다. 너무 오래간만이잖아. 기분 좋다. 가슴 뛴다. 뭘 할까. 뭘 하며 보내볼까. 그동안 미뤄왔던 거 무어라도 할 수 있는 날. 뭘 하지? 뭘 해야 잘했다고 소문날까? 후회 없이 잘 보내고 싶다. 몰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일탈의 쾌감. 그래 일탈하는 거야. 일탈! 참을 만큼 참았다고!


일주일간 수고했습니다. 나는 나에게 고한다. 일주일간 고생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뭔가 선물을 주어야겠지? 선물 받고 싶은 마음. 보상받고 싶은 심리. 이 정도는 괜찮잖아 하는 기대. 자아를 만족시키는 저녁은 어떤 그림이어야 할까. 기대 잔뜩, 두근두근 모처럼 혼자다. 혼자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기에 선뜻 얼마든 그 무어라도 누릴 수 있다 여겨진다. 그러나 뜻밖에 할 게 없다. 갈 데가 없다. 일탈이 뭐야? 뭔지 까먹어버렸다. 혼자였던 적이 너무 오랜만이다. 늘 곁에 가족이 있다.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다. 셋이서 같이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의외로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최근엔 혼자 먹어본 적도 없다. 혼자서? 혼자 가도 될까? 왠지 내키지 않는다. 갑자기 처량해진다. 그토록 기다린 자유시간이건만 자유를 누릴 줄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점점 시간이 간다. 꼬르륵. 배고파. 어서 저녁을 먹어. 저녁을 먹어야 힘나지. 힘내서 놀지. 잠깐 집에서 먹지 마. 간단히 차려 먹지 마. 평소 먹지 못한 걸로 먹어. 맛있는 거. 특이한 거. 어떤 게 좋을까? 어디 보자. 그래 아내가 싫어하던 거. 싫어해서 내가 먹지 못한 거. 뭐지? 내가 뭘 못 먹었더라? 혼자만 좋아하는 거. 그래 돼지국밥이다. 고기 누린내가 싫다면서 아내는 내가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고개 흔들었었다. 저기 있잖아, 국밥에 부추 많이 넣어도 누린내가 날까? 그럼 괜찮지 않을까? 라면서 부단히 설득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새콤한 깍두기를 함께 먹으면 누린내가 덜 나지 않을까? 라고 애걸하면 예끼 놈! 하고 호통만 받던 음식. 언제부턴가 아내의 입맛이 변했다. 한때는 같이 돼지국밥을 잘도 먹더니 어느 시점부터 돼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냄새가 싫다고 했다. 역하다고 했다. 내가 돼지국밥의 돼, 자만 꺼내도 말도 마 라면서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 그만 집어치우고 차라리 닭갈비를 먹자, 라는 대답만 들었다.


그래 그거다. 돼지국밥. 때마침 집 앞에 새 가게가 생겼다. 이름은 사천 형제 국밥. 내가 사는 곳은 진주다. 그런데 굳이 사천이라고 지칭된 가게가 진주에 있다. 그만큼 사천 형제 국밥이 유명해서다. 나는 사천에서 형제 국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형제가 나란히 국밥집에서 일한다는 거겠지? 형제가 함께 국밥에 덤벼들었다는 건 아마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일 테지? 그 형제가 어찌나 열심히 국밥을 끓였던지 사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먹고 칭송했을 터. 그 자자한 소문이 진주까지 올라와 마침내 분점을 열었으니 내 어찌 마다하랴. 가겠다. 가서 먹겠다. 먹으며 먹는 쾌감을 느끼겠다. 잘근잘근 고기를 씹어주겠다. 씹어서 든든한 배 부여안고 나오겠다. 힘내서 불금을 보내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당당히 가게 앞에 섰다. 막상 서니 불안감이 엄습한다. 들어가도 될까? 혼잔데? 아아 불안해. 혼자 왔다고 이상하게 보지나 않을까. 금요일 저녁인데 같이 먹을 이 하나 없다고 욕하면 어쩌지? 밑반찬이 아깝다며 굳이 함께 먹을 이 데려오라고 하면? 어떡할까. 나는 망설인다. 그래도 빨리 먹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빨리 먹기에는 국밥이 뜨거울 텐데. 먹다가 입천장이 다 까지면 어쩌려고. 발걸음이 돌아서다가도 다시 앞으로 향하고 옆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온다. 결심한다. 먹자. 까짓 거. 설마 문전박대야 당하겠어?


"어서 오세요."


서빙하는 아줌마가 인사한다. 아줌마는 활짝 웃으며 고개 숙인다. 반가운 표정.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깔끔하게 묶었다. 신세대 아줌마구나. 눈가에 주름이 보일락 말락 한다. 선한 인상 서구형 미인이다. 입구 옆에 작은 방이 있는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가 보인다. 그곳에 초등학생 하나가 드나든다. 아들인가. 저만한 아들이 있는 거 보니 삼십 대 중반이겠지. 삼십 대 중반 아줌마가 생글생글 웃는다. 왜 저렇게 웃지? 어디서 봤나? 정감 가는 미소. 그리고 혼자 오셨어요? 라고 묻지 않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혼자 먹기 적당한 곳이 어디려나 테이블을 고른다. 적당히 구석 테이블에 앉는다. 벽을 등지고 실내 전체를 볼 수 있는 각도다. 거기서 고개 들면 주방에 아줌마가 보인다. 몇몇 손님이 돼지국밥을 먹는다. 돼지국밥이 금세 나온다. 깍두기에 부추무침, 새우젓, 마늘, 양파, 고추, 쌈장. 보글보글 끓는다. 수저를 담가 소독한다. 부추무침을 한 움큼 집어 국밥 위에 얹는다. 얹어서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부추는 금세 빳빳한 기운이 흐무러져서 젓가락에 돌돌 말린다. 먹자 부추를 먹자. 몸에 좋은 부추. 어디서 들었더라. 며느리가 서방에게 주려고 뒷마당에다 몰래 부추를 키우다 시어머니에게 들켰다. 며느리는 제 서방에게만 부추를 먹였다. 부추 먹은 서방이 치솟는 기운 감당하지 못해 밤마다 어찌나 괴롭히던지. 아이쿠 아랫방은 오늘도 행사를 치르네 그랴. 그 후 시어머니는 몰래 부추를 뜯어다가 시아버지에게 먹이는데... 나는 부추 먹을 때마다 그런 상상을 한다. 몸에 좋다는 거.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를 괴롭혔을까. 요강이 깨졌을까. 나는 국밥 속 부추를 홀랑 건져먹고 한 접시 추가를 외친다. 미소 예쁜 아줌마가 새 부추를 가져다준다.


"어머!"


새 부추 접시를 내 등 뒤로 돌아와 놓고 빈 접시를 집어 가져가려는데 그 새를 못 참은 내가 후다닥 새 부추를 집으려다 참사가 벌어졌다. 내 오른 팔꿈치가 아줌마의 가슴팍에 닿은 것이다. 스윽! 아주 살짝 닿았다. 찰나의 순간. 뭔가 포근한 느낌이 팔꿈치를 스쳤다. 스치며 폭 들어갔다. 얼마큼 들어갔을까. 당황스러울 만큼? 팔꿈치가 움직인 만큼과 아줌마가 앞으로 숙인 만큼이다. 우리는 함께 신비한 접촉을 만들어냈다. 팔꿈치가 부추를 집으려 뒤로 젖혀지는 각도와 부추 접시를 집으려 앞으로 숙인 각도에서 만난 접점. 나는 놀라 아줌마를 돌아본다. 아줌마도 놀라서 쳐다보는 나를 본다. 우리는 동시에 눈 마주친다. 마주쳐서 어떤 표정인지를 살핀다. 죄송해요. 닿은 걸 당신도 아시나요? 알겠죠? 아는 걸 들킬까 싶어 바라본다. 아는 척할까 걱정스럽다. 아줌마가 먼저 반응한다. 활짝 웃으며 가슴을 움츠린다. 웃으며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무슨 뜻일까. 안다는 뜻? 괜찮다는 뜻? 실수라는 뜻? 당신의 가슴이 닿았건만 외려 아하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피해본 게 없는데 피해자가 도리어 피의자의 눈치를 본다. 피의자는 당황스러워 피해자가 된다. 먼저 미안하다는 뜻 표현하지 못해 민망하다. 마치 개인적 영역을 감싸는 보호막 너머로 침범한듯한 기분. 그 감촉이 아직 팔꿈치에 남았다. 푹신한 느낌. 이것은 옷 감촉이지 맨 살의 감촉까지는 아니다. 흐음 확신할 수 있니? 그래 어쩌면 옷이 다가 아닐지도 몰라. 혹시 설마 상상하면서 감촉을 더듬는다. 그러나 그게 뭐 중요하랴. 나는 사고 친 팔꿈치를 들어 돼지국밥을 먹는다. 고기부터 집어 양파와 고추를 반찬삼아 우적우적 먹는다. 큼직한 깍두기를 한입에 씹어 먹는다. 마늘도 쌈장에 찍어 먹는다. 매운 삼총사. 역시 맵다. 매운 기운이 찡하니 올라온다. 눈물이 맺힐락 말락. 국밥에 얇은 고기가 수북이 들어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뭐 이렇게 많이 줘? 이래서 사천 형제 국밥인가. 형제는 푸짐하다. 먹다가 국물도 한 숟갈씩 떠먹는다. 뜨겁다. 온기가 얼굴에 확 퍼진다. 고개 드니 아줌마가 부지런히 서빙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새 손님이 늘었다. 가만히 보니 손님들은 죄다 혼자 온 남자뿐이다. 나랑 합쳐 다섯 테이블인데 전부 혼자다. 웃음이 난다. 이게 무슨? 금요일 저녁 대체로 처자식들은 바쁜가 보다. 안 바쁜 이는 남자뿐. 늘 처자식만 바라보는 그대. 돼지국밥이 언제부터 남자 혼자 먹는 음식이 되었다냐? 대개 사오십대로 보인다. 아빠이자 남편인 사람들. 처자식이 각자의 시간을 보낼 때 이들은 저만의 시간을 때운다. 금요일 저녁 혼자 국밥 먹는 남자들. 돼지국밥을 먹거나 순대국밥을 먹거나 섞어 국밥을 먹거나. 숟가락을 뜨면서 아후 뜨거워 아후 뜨거우니 천천히 먹어야지. 급할 것도 없으니 폰 보면서 아니면 아줌마 보면서. 모두 외로운 존재. 외롭지 않은 이 누가 있으랴. 같이 먹으면 불편해. 그냥 혼자가 좋아. 밥 차려 먹기 싫은 저녁. 그렇지만 잘 먹고 싶은 저녁. 누린내 눈치 볼 필요 없는 낭만과 평화. 국밥 그릇을 비스듬히 세워서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박박 긁어먹는 남자들. 알뜰살뜰 냠냠 쩝쩝. 남기지도 않는다. 맛있구나. 맛있어. 더 먹을 게 없을 때까지 숟가락질한다. 국밥 그릇은 진즉에 다 내주어 더 내줄 게 없다. 어느샌가 덩그러니 비었다. 다 먹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 뭘 하나. 결정하지 못했지만 일어나야 한다. 문득 다가온 시간. 뿔뿔이 흩어질 시각. 일어나 계산대로 간다. 어디 한번 밤을 거닐어 볼까.  


집 반대 방향으로 가볼까 하다가 슬며시 집으로 돌아간다.

처자식과 함께 할 다음 일주일을 위해 충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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