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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Sep 30. 2021

뭔가 알듯 말듯한 단계, 드라이브

사람 같지 않은 놈을 사람 만들어 보낸다




"형의 드라이브가 제일 약해요."


젤 약해. 젤 약해. 젤 약해. 젤 약해. 젤 약해. 젤 약해. 젤...

그 말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가슴에 박힌다. 힘이 쭉 빠진다. 더 가슴 아픈 건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다는 거다. 사실이니까. 현실이니까. 알고 있는데 꼭 게임 전에 팩트를 날려줄 건 뭐람.


"드라이브로만 따지면 형이 젤 약해." 

일명 탁구장 분석가로부터 들은 말이다. 분석가는 몇 살 아래 동생 우람이다. 우람은 왕왕 싸가지가 없지만 때때로 촌철살인을 날려준다. 한창 몸 풀고 있을 때였다.

이 말을 들은 직후 우리는 게임을 했고 3대 0으로 내가 이겼다. 3대 0으로 이겨도 전혀 개운하지가 않았다. 우람이에게 이기면 휴우, 겨우 본전을 지켰구나, 가 된다. 게임이 끝나고 우람이 하는 말.

"그러고 보면 드라이브가 온전히 탁구 실력 전부는 아닌가 봐."

병 주고 약주나. 워낙 친해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녀석. 실력면에서 우린 한 부수 차이다. 녀석에게 만일 한 게임이라도 지게 되면 그 후유증은 며칠이고 두고두고 간다. 녀석에게 지면 졌다고 동네방네 탁구장 곳곳에 소문나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과의 게임에 매번 바짝 긴장해서(쫄아서) 신중하게 임한다. 게임이란 건 때론 가벼운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얼마 전 녀석에게 졌을 때 들은 말.

"에이, 이제 실력도 비슷비슷한데 다이다이로 합시다. 핸디 주지 마쇼."

그 말에 핸디를 주지 않고... 질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어서 나는, 이 담에 3대 0으로 네가 이기면 핸디를 없애자, 라고 얼버무리듯 말해두었다. 

그런 참사를 막기 위해 탁구 공격의 꽃인 드라이브를 키워야 하는데.  




실제 보는 것과 다르다.


드라이브 드라이브 드라이브.

언뜻 화면으로 볼 때는 쉽게 보인다. 별 것 없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도 든다. 그러나 막상 탁구대 앞에 서면, 그 쉬워 보이던 상대가 난공불락으로 느껴진다. 쉽게 보이는 드라이브도 결코 쉽지가 않다. 쉽지 않기에 하나씩 기록해보려 한다. 현재 나만의 드라이브에 대한 기술 단계를 스치듯 끄적여본다. 


지금까지는 커트 볼에만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것도 상대의 커트 서브에만 미리 마음먹고 준비하고 있다가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대의 서브가 커트가 아니면 나는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다. 게다가 짧은 커트 공에만 걸 줄 알았다. 이것은 레슨에서 배운 것이다. 레슨과 달리 실전에서는 드라이브 걸기 좋은 적당한 커트 공이 잘 오지 않았다. 짧더라도 너무 짧으면 안 되었다. 길어도 곤란했다. 레슨처럼 느리게 와야 했다.  


그런 내가 얼마 전부터 상대의 민 볼에도 드라이브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서브 말고 랠리 중에도 걸려고 시도했다. 드라이브를 걸기 전에 내가 주문처럼 외우는 문구가 있다. "슝 끌어"라고 읊조린다. '슝'은 백스윙을 확실히 가져가 스냅을 줘 휘두르는 바람 소리를 가리킨다. '끌어'는 스윙이 단 한 점 만을 타격하는 게 아니라 긴 선으로 끌어 가져 간다는 것이다. 

점이 아니라 선으로 타격한다. 

이를테면 배구에서 세터가 토스할 때 공이 손에 오래 머무르면 홀딩이 된다. 비슷한 원리다. 세터가 손가락을 뻗어 빠르게 끌어 잡아서 통~ 하고 사뿐 튕겨내야 바른 플레이가 된다. 순간 공을 끌어 잡지 않고 튕기기만 하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튕기면 스매싱이고 잡아서 튕겨내면 드라이브다. 농구도 그렇다. 드리블할 때 손바닥으로 공을 감싸 쥐듯 잡아서 최대한 손에 오래 머무르게 하고 나서 손이 더 이상 공을 잡고 있는 게 불가능한 시점에서야 비로소 아래로 바운드를 위해 떠나보낸다. 공과 손이 만나는 접점이 '탁'이 아니라 한참 동안인 '끌어'가 되는 것이다. 

탁구로 돌아와서, 탁구라켓으로 최대한 공을 움켜잡아 길게 끈다. 공을 끌면서 마지막에 가서야 '난 여기까지야, 더는 널 잡고 있을 수 없다'하면서 뱉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탁구공은 네트 바로 앞에서 비로소 홀몸이 되어 자신의 갈 길을 내보이는 거다. "저 이쪽으로 가유~" 상대는 이미 네트를 넘고 있는 걸 보고서 아, 탁구공이 저리로 가는구나, 낙담하면서 반응이 늦어 움직이지 못한다. 

슬로비디오로 묘사하자면, 일단 내 몸이 크게 뒤에서 앞으로 제쳐진다. 왼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와중에 팔은 크게 백스윙부터 시작해서 앞 스윙까지 길게 휘두른다. 탁구공은 내가 백스윙 한 직후부터 사라져 라켓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달걀이 라켓이라는 어미를 만나 부화가 된다. 아이가 태어나 사랑을 받고 자라나 학교에 가고 졸업을 해 취업하고 결혼을 한다. 이쯤이면 혼자 살 수 있겠구나. 강해졌구나. 집은 네가 사거라. 이제 독립하거라 하고 내가 말하면 그제야 세상에 등장한다. 열심히 일한다. 이마 끝, 앞 스윙이 끝날 때쯤 공은 부모품을 떠나듯 라켓을 떠나 네트를 넘는다. 공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궁금하겠지만 상대의 반응속도를 초월해 탁구대에 꽂힌다. 사람 같지 않은 놈을 사람 만들어 보낸다. 마침내 한방 드라이브가 완성되는 것이다. 




드라이브 스윙은 스매싱 스윙과 차원? 이 다른 스윙이다. 커트 볼을 아무리 세게 쳐봐야 치는 족족 네트 아래에 처박힌다. 왜 처박힐까? 안 처박히게 때리고 싶은데 어쩌면 좋지? 세게 때리고 싶은데, 그래, 탁구대 위 멀리 보고 쳐보자. 멀리 보고 치면 어느 순간 공은 네트에 처박히지 않고 네트를 넘어간다. 스매싱을 치는 접점에서 탁구대의 상대 영역을 일직선으로 줄 그어서 그 줄에 네트가 걸리지 않아야 한다. 즉 강한 스매싱은 네트보다 위에서 때려야 한다는 한계가 명확해진다. 이에 반해 드라이브는 네트보다 아래에서 묻혀 공을(아이를) 기르고 가르치고 돌봐서 네트를 잘 넘도록 아래 방향이 아니라 윗방향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그러고선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하며 덮어주는 스윙을 한다. 그러면 공은(아이는) 아무리 빨라도(세게 쳐도) 목적지에(상대 탁구대에) 도달한다. 목적지에 꽂히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잘 가도록 온몸을 던져 뒷바라지했기 때문이다. 잘 살아라. (잘 꽂혀라) 이 정도는 보태주마, 집을 사거라. 그래서 드라이브는 품이 많이 든다. 품이 많이 들어서 내 기준, 대략 스매싱 다섯 방 정도의 힘이 소모된다. 이것이 한방 드라이브를 연달아 시도할 수 없는 이유다. 꼭 한방이 아니더라도 반방, 반에 반방 정도의 드라이브를 보내도 되겠지만 그럴 때는 카운터 맞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것은 모쪼록 애를 키워서 내보냈는데 원수가 되어 돌아오는 격이다. 그러면 곤란하다. 한번 내보낸 애는 돌아와서는 안된다. 한번 출가시킨 아이가 싱글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온종일 쳐다볼 때마다 원수 덩어리가 되는 것과도 같다. 드라이브는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아이를(드라이브를) 양육하는 기술은 여러 가지다.

하회전이 많고 바운드가 낮으면 루프 드라이브를 보낸다. 루프는 다음 공에 대한 한방 드라이브나 한방 스매싱을 위함이다. 한방을 위해 유혹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긴 하회전 공을 한방으로 걸지 못했다. 밑에서 위로 루프 드라이브만 걸었다. 요즘따라 느낀 바, 낮고 커트량이 많아도 한방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겠다는 거다. 짧은 커트 공처럼 바운드되자마자 빠른 박자로 거는 것이다.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바운드되어 솟아오를 때 뒤에서 앞으로 슝 걸어 버린다. 네 놈이 제아무리 문제아라고 해도 나는 무조건 네 놈을 사람 만들어 사회에 내보낼 테다. 사람 만들어 출가시키고야 말 것이다 하면서 왼발을 힘차게 딛고 온몸을 비틀어 라켓에 딱 붙여서 끌고 가 버릴 테다. 그러면 네놈이 아무리 낙오하고 삐뚤어지고 싶어 몸을 비비 꼬아도 네트에 꽂히는 일 따위야 벌어지지 않겠지 하는 단계다. 

이처럼 "슝 끌어"는 위에서 빠른 박자로 거는 드라이브다. 또한 나는 느린 박자, 공이 정점에서 떨어질 때 아래에서 거는 드라이브에도 주문을 만들어 두었다. 이른바 "뱀 휘릭"이다. 탁구대 저 밑에서 뱀이 휘릭하고 솟구쳐 올라 네트를 살짝 넘어 휘리릭 꽂히는 드라이브다. 이것은 오래전 1, 2부 드라이브 고수들이 걸던 종류다. 아직 상상만 하는 중이라 꿈의 드라이브라 할 수 있다.


먼저 맨 공을 거는 게 순서다. 바로 너클이나 상회전 공이다. 상회전 공은 문제아가 아니다. 멀쩡한 자식이다. 얘는 겉으로 봤을 때 멀쩡한 어른처럼 군다. 나도 이제 어른이라구요. 기침하셨어요 아버님! 하면 나는, "안, 기침했다 이 자식아, 네가 아무리 어른처럼 굴어도 넌 내 못난 자식일 뿐이다. 내가 바르게 크라고 했지, 어른인 척 네 멋대로 크라고 했냐, 자식아!" 하면서 움켜잡아야 한다. 상회전 공이 "왜 이러세요? 아버님! 저도 이제 다 컸다구요" 하면 "그동안 몸이 어른인 거 같아 그냥 쇼트나 스매싱으로 넘겼는데 아니야, 아니었어, 좀 더 가르쳐서 드라이브로 넘겨야 돼" 하면서 나는 드라이를 건다. 걸면 될까 의구심을 가졌는데 실제로 걸면 걸린다. 다만 얘는 머리가 굵어져 버려서 라켓을 붕! 스윙해 엉덩이를 팡! 때리면서 파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살짝 때리면 반항심만 커지기 때문이다. 아주 큰 임팩트로 철썩! 튕겨 때려야 녀석이 붕 떠서 넘어가는 것이다. 이 드라이브 주문은 "붕 팅가"다. 



나는 이제 짧은 공, 긴 공, 하회전, 상회전 즉 모든 공에 드라이브 걸기로 마음먹었다. 드라이브 걸기 좋은 예쁜 아이만 잡는 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모든 아이를 잡으려 한다. 


상대의 정지된 동작, 서브뿐 아니라 랠리 중에도 언제든 마음먹기에 따라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한방 드라이브의 맛. 드라이브도 강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9월의 마지막 날. 그 맛을 알듯 모를듯한 계절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아마도 초입에 초반 어느 단계인 거 같은데 마치 미지의 영역 어떤 곳에 도달한 그 느낌 같아서, 그 영감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기록해 둔다. 


계절의 변화에 변하는 마음처럼 기술도 변하고 이래저래 변하는 것 투성이의 나날. 


드라이브를 잘 걸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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