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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an 26. 2022

다른 탁구장 리그전 원정 도장깨기

하나의 대회, 하나의 경험, 하나의 배움




지방 어느 탁구장에서

리그전을 연다고 한다.



양옥 누님이 한번 참가해보라고 추천했다.


지난 첫 리그전에서 자신은 16강까지 올랐다고 했다. 

"어때? 잘했지?"

양옥 누님은 여자 4부라 남자로 치면 7부다. 나도 7부다. 비록 7부지만 해볼 만할 거라 했다. 선뜻 최하위 부수여서 고민이 됐다.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는데, 영삼 형이 먼저 참가해보자고 말해주어 도전하기로 했다. 양옥 누님이 영삼 형에게도 권했던 거다.


우리 구장 남자 중 7부 최강자는 나, 영삼 형, 태준이다. 나는 태준에게 권했다. 태준은 근래 슬럼프라고 했지만 흔쾌히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 세 명의 도전자가 결성되었다.


타 지역 타구장으로의 원정. 이른바 도장깨기? 우리가?


양옥 누님은 "우리 구장 7부 최강들이 참석하니, 긴장하라고 일러둘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웃음으로 은근 그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래, 우리가 비록 7부지만 오래된 묵은 김치 같은 존재 아니더냐. 고이고 고여 방울방울마다 자욱하게 불순물이 끼여 한없이 밀도 높은 7부가 아니더냐. 이제 막 8부(비공식)에서 7부가 된 해맑은 샘물, 생수들과는 본질부터 다르다. 보여주겠다. 우리의 한 방을, 불순물을, 무거움을, 그리 생각했다.


영삼 형과 태준도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서로 마주 보았다. 혼자가 아니니까, 네가 있어서 든든하다. 마음속으로는 혼자가 아니니 우리 실력이 통하지 않아 무너진다면 다 함께 무너질 테고, 만일 우리 실력이 통한다면 다 같이 비슷한 지점까지 오를 것이라 여겼다. 살든 죽든 함께 하리라. 서로를 보며, 그런 든든함이 있었다.


생즉사 사즉생

도전이다.

수행이다.

이제 막 초보를 벗어난 초보가 초보인지 아닌지 어디까지 통할 런지 시험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리그전이 펼쳐지는 구장은 인근 도시 낯선 동네. 


영삼 형이 손수 차를 몰아 나, 태준을 태워 목적지로 향했다. 네비에 주소를 찍어 찾아가는데 의외로 가까웠다. 가깝지만 처음 가보는 동네다. 산골 오르막 좁은 길을 따라 오르니 탁구장 건물이 보였다. 크게 두 동으로 이뤄진 구장. 탁구 치는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 방역 절차를 밟고 반바지 반팔로 갈아입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는 처음 보는 이. 그곳에 있던 이들은 현지 사람. 우리는 타지 사람. 탁구 치는 이들이 죄다 고수처럼 보였다. 젠장, 괜히 왔구나. 섣불리 온다고 결정한 거였어. 내 주제에, 바보같이, 후회되었다. 움츠러들었다. 마구 추웠다. 긴장되었다. 운영진 중 사모님이 다가와 대뜸 카드 한 장을 뽑으라길래 뽑았다. 하트 6이었다. 나는 6조로 선정되었다. 6조에 이름이 적혔다. 아, 이제 도망갈 수도 없다.



여덟 대의 탁구대에서 일제히 조별 예선전이 치러지는 식.

테이블 1대당 한 조씩. 조당 인원은 4명이다. 4명이 돌아가며 풀리그를 치러 순위를 정한다. 이후 토너먼트로 넘어간다.


나는 6조,

영삼 형은 7조, 태준은 3조로 배정되었다. 조별로 2부부터 5부까지 고수들을 먼저 배정하고 나머지 7부들을 고루 배정하는 식이다.


우리 6조 테이블에 쭈뼛쭈뼛 가니 4부 한 명, 나머지 3명은 7부다.


먼저 4부 고수와 7부 멸치남이 게임에 들어갔다.

4부 고수는 키 크고 덩치도 있고 특히 말이 많았다. 뭔가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겼다. 4부는 자신이 고수로서 7부 셋을 어떻게든 잘 아울러 무사히 예선전을 치러내는 임무를 담당한 것처럼 말이 많았다. "자! 우리 모두 잘~ 해 보자구요!" 나는 그가 운영진인 줄 알았다. 그는 "자아~파이팅!" "나이스!"를 연신 외쳤다. 그러면서 한방 드라이브를 날리는데 어찌나 빠른지 공이 탁구대에 꽂힌 건지 아닌지 가늠이 힘들 정도였다. 나는 심판을 보면서 4부 고수의 얼굴을 보고, 그의 의기양양한 표정에 '아 꽂혔구나' 하고 점수판을 올렸다. 

  

7부 멸치처럼 빼빼 마른 남자는 4부 고수를 상대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3대 0으로 패했다.


우리 조 두 번째 게임은 나와 7부 여자의 대결.

7부 여성은 짧은 커트머리로 20대 초반처럼 보였다. 처음 테이블 앞에 서서 랠리 하는데 여자가 말했다.

"저, 뒷면 핌플이에요."

"네?"

랠리 할 때는 앞면 민 러버로 쉽게 보여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뽕이라니. 나도 모르게 주책없이

"헉! 나 뽕에 약한데!"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7부 뽕 여성은 환한 얼굴로 하하하! 웃었다. 아마도 뽕에 약한 일반 7부를 예상했으리라.


아아, 첫판부터 잘못 걸렸구나.

뽕이라면 일단 구력이 상당할 텐데. 아마 여자 4부겠지. 옆 테이블을 흘낏 보니 영삼 형은 5부 아저씨에게 정신없이 드라이브를 얻어맞고 있었다. 아아, 영삼 형도 고생하는구나. 우리 구장 7부 대표 세 명이 돌풍을 일으키러 왔는데 돌풍은커녕 작은 잎새 바람도 일으키지 못하고 집에 가게 생겼구나, 했다. 암담했다.



랠리가 끝나고 드디어 게임 시작!

낯선 이와 게임에서는 첫 스코어가 가장 중요하다. 

첫 점수. 

기선 제압도 있겠지만 기선 꺾임도 양립한다. 제압이냐 꺾임이냐, 기세의 갈림길과 분수령이 바로 즉 첫 스코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첫 점수를 보고서, 이기겠다 지겠다가 나오거나, 해볼 만하다 어렵겠다가 딱 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뽕 여자가 선제 서브를 넣었다.

공이 넘어오면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려 준비하고 있는데, 웬걸 공이 생각보다 빠르다. 바운드되니 속도가 더 빨라져 짐작보다 더 길게 쭉 뻗어 나온다. 나는 놀라 라켓을 갖다 대지만 이미 늦어서(스윙 박자가 늦어서) 공이 오른쪽 공중으로 붕 떠버린다. 1대 0 선취점을 뺏겼다. 뭐지? 첫 판부터 상회전 서브를 보내네? 마치 내가 하회전 서브 기다리는 걸 뻔히 알고 있는 것처럼. 

큰일이다. 설마 7부의 마음을 간파하는 고수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두 번째 서브가 날아왔다. 뭐야? 나는 또다시 어정쩡하게 대하다 실점했다. 2대 0. 기선 제압을 당했다. 기선이 꺾여버렸다. 상대는 역시 리그전에 참석할만하구나. 20대 초반으로 보여서 가볍게 본 게 실책이었다. 지겠다. 질 것 같다. 농락당할 것만 같다. 나는 병아리였어. 병아리 주제에 돌풍이라니. 돌풍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이고 여기서 개망신당하고.. 쭈그러져 집에 가게 생겼네... 예선 첫판에 지면... 양옥 누님에겐 뭐라고 말해야 돼? 우리 구장 사람들에게 소문날 텐데... 오랜 시간 남들 탁구 치는 거 구경만 하다 가겠네, 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역시 중원에 나오니 각양각색의 강자들이 즐비하구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어. 우물 안 몇 없는 개구리들을 꺾었다고 우쭐거렸어. 내 아래 올챙이들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고 있었지. 바보같이... 우물을 벗어나니 세상에 강자가 이리 많은데. 자책하고 자책했다. 내가 사는 우물에 돌아가고 싶었다. 예선 첫 게임부터 뽕을 만나다니... 외려 뽕은 영삼 형이 강한데... 왜 내게 뽕을 주셨나이까? 운영진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어쩌자고 하트 6을 뽑았을까?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크게 떠 회전을 봤다. 봐야 한다. 하회전이 많은지 적은 지가 관건. 많으면 커트 드라이브나 커트로 받아야 하고 적으면 너클로 여겨야 했다. 몇 번의 조심스러운 랠리 후 나는 커트량에 어울리는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최대한 고개를 쭉 내밀어 코앞에서 공을 봤다. 너! 회전하고 있느냐? 공이 뚫어져라 노려봤다. 회전하고 있구나. 그리고 과감히 드라이브를 걸었다. 서서히 통했다. 뽕이지만 이처럼 진지하게 대하니 의외로 쉽다. 여자는 뽕을 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탁구는 멘털 게임. 결과는 3대 0. 쉽게 첫 승리를 거뒀다.


다음 게임은 7부 뽕 여자와 7부 멸치남이 벌였다.

나는 심판석에 앉았다. 결과는 3대 2로 멸치남이 승리.

이제 4부 강자와 내가 게임할 차례. 

떨렸다. 

조별 순위의 분수령이다. 4부 강자는 여전히 우리 7부 조무래기들을 잘 다독거려 무사히 예선을 치러내는 데만 관심이 있다. 나와의 승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당연히 자신이 이기리라 하는 얼굴이다. 나 역시 어떻게 지면 잘 질까, 하는 것만 생각했다.


게임 시작.

나는 한껏 자세를 낮췄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고수와의 대결. 상대는 4부다.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낮춰서 다리 벌린다. 벌려서 잔발 스텝을 뛴다. 아주 얕은 스텝으로 재빨리 이동한다. 라켓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긴 서브와 짧은 서브를 동시에 준비한다. 어떤 서브가 올지 몰라 허벅지 종아리가 빠른 박자로 꿈틀거린다. 언제라도 꿈틀 뛸 준비를 한다.

4부 강자의 서브가 온다. 나는 2구를 드라이브로 받았다. 강자의 3구가 온다. 나는 4구를 스매싱으로 받았다.


"와아~!"


심판 보던 뽕 여자가 놀란다. 멸치남도 놀라 탄성 지른다. 함성의 주파수를 볼 때 모두 날 약자로 본 게 틀림없다. 자신들과의 게임에 나오지 않은 파워. 그래서 놀란다. 힘 빼고 찰싹! 강타를 날린다.


나는 구사할 수 있는 서브를 고루 섞어 보냈다. 되도록 똑같은 서브를 연속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랬더니 4부 강자가 서브를 탔다. 나는 조금이라도 걸기 좋은 공이 오면 죄다 걸었다. 걸어서 득점하니 4부 강자는 내게

"나이스!"라며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러다 차츰 "나이스"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2세트를 먼저 따내고 3세트에서도 이기고 있었다. 핸디 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4부 강자가 불쑥 말했다.


"제가 이제부터 따라잡아서 이겨도 되겠습니까?"


이 목소리가 제법 컸는지 옆 테이블 영삼 형도 그 말을 들었다고 했다.


4부 강자는 말이 많았다. 뭔가 비책이 있는 것 같은 뉘앙스였다. 아니면 지금껏 자신이 열심히 치지 않아서 봐준 것 같은 상황극을 펼치려 하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일종의 심리전을 개시하려는 지도... 나는 얼떨결에

"네, 그러세요"라고 답했다. 좀 살살 이겨달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4부 강자의 눈빛이 반짝거려 말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 유린당하는 시간인가?


4부 강자의 서브가 바뀌었다. 횡회전이었다. 커트가 2 정도 섞이고 횡이 8 정도 담긴 서브. 내가 포핸드로 받자 공은 붕 떠서 오른쪽으로 아웃되었다. 연달아 리시브를 실패했다. 4부 강자가 미소 지었다.

4부 강자의 말이 진심이구나. 역시 지금까지 봐준 거구나. 어떻게 받아야 하나? 수를 생각해야 했다. 오래전 처음 횡회전을 대하던 때를 떠올렸다. 각 맞춰서 아웃된 쪽 반대로 밀어라. 포핸드 리시브가 안되니 커트 아니면 쇼트다. 나는 횡회전 서브를 쇼트로 받았다. 방향을 맞췄다. 쇼트로 받으니 다행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앞서고 있었기에 나는 2개의 서브 중 하나 꼴만 이겨내면 되었다. 그렇게 강자가 따라잡을 여지를 주지 않고 다행히 3대 0으로 이겼다.


"어이쿠, 강하시네요, 졌습니다."


4부 강자는 쿨하게 승리를 축하해줬다.


이제 마지막 게임, 7부 멸치남과 붙었다.

멸치처럼 빼빼 마른 남자.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곁에서 지켜볼 때는 쉽게 보였는데 막상 게임하니 쉽지 않았다. 내가 한점 앞서면 바로 따라와 동점이 되고 내가 앞서 가지 못하면 반대로 한점 앞서갔다. 두 점 앞서서 드라이브 컨트롤을 이만큼? 이렇게? 시험해보면 곧바로 따라와 동점, 역전이 되었다. 아, 지금 시험할 때가 아니구나. 멸치남의 공은 생각보다 느리고 힘이 없지만 정확했다. 느리게 오니 나는 실수를 연발했다.

겨우겨우 한두 점 차 세트를 쌓아 3대 0으로 승리했다.

결국 나는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이제 됐구나. 양옥 누님이 돌풍을 일으킬 거라 소문냈다고 하던데 다행히 망신은 당하지 않게 되었다.




조별 예선리그가 끝나고 돌아보니

영삼 형과 태준도 각기 조 1위로 통과했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핸디라는 하수 어드밴티지가 제법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7부다. 6부에게는 2점을 받고 5부에게는 3점, 4부에게는 4점을 받는다. 이 핸디는 고수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하수에게는 날개를 달아준다.

핸디의 맹점. 핸디는 만일 하수가 핸디를 다 까먹고 동점, 역전이 되면 되려 압박을 받아 그대로 포기하는데 윤활유 작용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는 최하위 부수 7부들이 아닌가. 7부이면서 각 조 1위로 예선 통과했다는 거 자체가 의미 있다.


조별리그가 끝나자 리그전 운영진이 추첨 이벤트를 열었다.

추첨제로 스포츠 양말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테이블 위에 상품으로 양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태준이가 옆에서 말하길

"형! 양말이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거 같네요. 아무리 추첨운이 안 좋다 해도 이번에는 이름이 불리겠죠"라고 했다.

역시나 추첨운 좋은 영삼 형이 호명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양말이 다 팔려나가고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는데 태준의 이름이 들렸다. 그럼에도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태준이 내 얼굴을 보며 와하하 웃었다. 이놈의 추첨운이란. 그런데 조 1위에게도 양말을 준다고 한다. 나는 얼른 뛰어가 양말 한 켤레를 받아왔다.


이윽고 본선 토너먼트 게임이 시작되었다.



<32강전>



나는 6조 1위로 7조 4위를 만나게 되었다.

7조는 영삼 형 조다. 형은 7조 1위로 6조 4위를 만났다. 나는 5부 아저씨를 만났고 영삼 형은 우리 조 7부 뽕 여자를 만났다. 옆 테이블에서 형의 게임이 먼저 진행되었다. 흘낏 보니 영삼 형이 1세트를 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원래 뽕에 강한 형인데, 아마도 뽕 여자의 이질적 스타일에 애 먹는 것이리라. 뽕도 다 같은 뽕이 아니구나. 아무리 약한 선수라도 자신만의 가시가 존재하기 마련. 형은 낯선 가시에 찔려 헤맸지만 금방 가시를 빼내고 3대 1로 일어섰다.


나는 겁에 질렸다.

아니 6조 꼴찌를 만난 건데 왜 5부 아저씨가 나와? 영삼 형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걱정 마! 약하더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약하다고? 아까 보니 드라이브가 장난이 아니던데? 게다가 5부잖아?


가위바위보를 졌다.

5부 아저씨가 먼저 서브 넣었다. 커트였다. 나는 커트로 받았다. 그러자 느닷없이 번개 같은 전진 드라이브가 꽂혔다. 공은 내 포핸드 모서리에 정확히 꽂혀 저만치 굴러갔다. 선취점을 빼앗겼다. 뭐지? 약해? 이런 드라이브가? 나는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다. 7부가 보기에 5부는 5부다. 뭐라도 특출 난 게 있으니 5부라고 본다. 어쩌면 이제야 몸이 풀린 건지도 몰라. 예선에서는 꼴찌지만 어차피 예탈 없는 예선리그가 아닌가. 이제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를 해보려는 건가? 


나는 조심조심 리시브하며 랠리를 이어갔다. 그런데 5부 아저씨는 영락없이 주야장천 '한방'만 추구했다. 그러니까 연결 능력보다는 오로지 커트 드라이브 한방만 노렸다. 내가 리시브로 회전을 풀어 루프 드라이브로 넘겨주니 그마저도 빵! 하고 세게 때렸다. 모든 공을 한방으로만 치니 실수가 잦을 수밖에.

어라?


나는 3대 0으로 생각보다 쉽게 이겼다.

게임이 끝나고 내가 "잘 배웠습니다" 하고 인사하자, 아저씨는 "어휴, 이게 무슨 7부야? 4부는 되겠다"라고 말해주었다.



<16강전>



어려 보이는 학생.

설마설마하는데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17세란다. 친구사이인 17세 학생 둘이서 32강전을 펼쳤다. 내가 심판을 봤다. 둘의 승자와 내가 16강에서 맞불을 예정. 심판을 보면서 느낀 건 '잘못 걸렸구나'였다. 드디어 내가 죄를 받는구나 싶었다. 고등학생 둘은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실력이 어찌나 좋은지 서로 질세라 서브를 넣고 한방 드라이브를 보기 좋게 꽂아 넣었다. 스텝을 밟아 아주 자신 있게 확 돌아 자유자재로 커트 드라이브를 날렸다. 몸놀림도 레슨을 제대로 받았는지 경쾌했고 폼도 멋있었다.

 

둘은 친구이자 라이벌이라 했다. 서로가 서로의 장점과 약점을 꿰차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랠리는 품격과 내용이 있었다. 네트 위로 조금이라도 쉽게 붕 떠오르는 찬스 공이 없었다. 죄다 네트 위를 살짝살짝 넘어가는 공격성 다분한, 컨트롤된 공들이었다.

이를테면 고급 탁구라고 할까?

아, 내가 잘난 척 강한 척 탁구 치고 다니다 이제야 망신 망신 대망신을 당하겠구나. 학생에게 아버지뻘 어른으로서 쩔쩔매는 모습이란... 눈앞에 아른거린다. 고등학생이 이리 잘 치다니? 하긴 요즘 '이승수'처럼 초등학생도 어른 선수를 팍팍 이기는 시대인데. 탁구 실력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구나.

심판을 보다 말고 화장실 간다 말하고 달아나고 싶었다. 긴장되어서인지 냉수를 꿀꺽꿀꺽 마셨다. 배가 찌르르 아파왔다. 이대로 집에 가고 싶었다. 나 혼자 온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없고.


둘은 핸디 없이 게임을 치렀다.

딱 봐도 4부 이상의 실력이다. 이건 아무리 봐도 아니야. 내가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싶었다.

둘은 라이벌답게 5세트까지 치러 하얀 티 학생이 승리했다.


덜덜덜 내가 탁구대 앞에 서니 학생은 땀 닦으며 맞은편에 섰다.

심판석에는 이미 16강전을 치르고 승리한 인상 좋은 5부 펜홀더 형님뻘 되는 분이 앉았다. 핸디를 몇 점이나 받을까? 궁금하여 나는 학생에게 물었다.

"저기, 학생! 몇 부에요?"

그러자 학생은

"저 7부입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흠칫 놀라 "뭐? 7부라고요? 말도 안 돼! 사기 치지 마!"라고 소리쳤다.

학생은 웃으며 앞서 수준 높은 게임이 나온 이유는, 친구와 라이벌이라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알아서 랠리가 좀 빠른 거뿐이라 했다.

옆에서 심판 형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볼 땐 두 분 다 7부가 아닌데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랠리를 시작했다.

한방 드라이브를 몇 방이나 맞으려나. 운은 여기서 끝이구나. 그러나 내가 학생을 두려워하듯 학생도 나를 두려워했다. 우리는 서로 처음이었다. 나는 학생의 실력을 잠깐 엿봤지만 학생은 내 실력을 모른다. 학생은 내 액면만 보고 한참 고수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고 먼저 16강에 진출한 점이 경계를 산 거 같았다.

이상하게 학생은 내 서브에 힘들어했다. 고마웠다. 내가 자세를 낮춰 학생의 드라이브를 몇 개 받아내자 스윙에 힘이 들어가 실수가 늘어났다. 우연히 몇 번 블록 한 게 보기 좋게 들어가 득점했다. 그게 운인데, 학생은 그게 내 실력인 줄 알고 놀라워했다. 학생의 정말이지 멋진 폼 드라이브를 내가 포기한 채 라켓을 갖다 대었는데 그게 운이 좋아 들어간 것. 그게 더하고 말고도 없이 진실인데 학생은 착각에 빠졌다.

여간해서는 뚫기 어렵겠구나.

하늘 저 높이 떠오른 고수로, 우러러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게 아닌가. 어이? 내가? 아니야, 사람 잘못 봤어.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밑천을 들키기 전에 빨리 끝내고만 싶었다.

 

2대 0으로 이기다 3세트에서 듀스까지 갔다. 만일 3세트에서 졌다면 나는 밑천을 털려 역전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 좋게 듀스에서 이겼다.

게임에 이기고서도 나는, 아무리 봐도 내가 이길만한 실력이 아닌데, 운 좋게 몇 개 블록이 성공하는 바람에 상대가 긴장해서? 우러러봐서? 이겼다고 본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다.



<8강전>



심판 보던 펜홀더 5부 형이었다. 구력이 상당해 보였다. 사십 대 후반 아니면 오십 대 초. 인상이 동네 어디서나 많이 본 것 같은 편안한 인상이지만, 어딘가 고수로써 하수를 냉정히 대한다는 위압감, 범접할 수 없는 압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아 지금 좀 바쁘니까 이따가 시간 있으면 탁구 좀 쳐 줄게, 하는 그런 냉담함이었다.

 

펜홀더 형은 그냥 사정없이 냅다 쳐버리는 스매싱이 일품이었다. 나는 스매싱을 얻어맞고 멀리 공 주으러 다녀오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아이고 고수님 저랑 탁구 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계속 굽신거리는 행태. 비공식 8부 시절 행색으로 돌아가 있었다. 펜홀더 형은 그런 아우라가 있었다.


1세트를 졌다.

1세트가 끝나니 형은 "자리 바꿀까요? 그대로 할까요?" 하고 물어왔다. 나는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자리를 바꾸고 서브의 수를 바꾸자 의외로 내가 이겼다. 형은 몇 번의 스매싱을 미스하자 내 얼굴을 다시 보고 다시 보고는 했다. 형이 때마다 "파이팅!"을 외쳤지만(고수로서 하수를 독려하는 느낌) 나는 반응하지 않고 묵묵부답 서브를 넣고 랠리를 이어갔다. 상대의 박자와 리듬에 붙잡히고 싶지 않았다. 

서브는 커트와 너클을 섞어 보냈다. 그리고 훅 서브도 간간히 구사했다. 나는 한방 때리는 플레이가 아니라 오롯이 연결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상대가 스매싱에 성공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점수를 내줬지만 그 외는 모두 나의 득점으로 이끌어갔다. 수비다. 수비만이 살길이다 하는 전술.

결과는 3대 1.

승리했다. 펜홀더 형은 눈가에 주름이 많았다. 내가 파이팅이라든지 한마디 외침도 없이 게임이 끝나자 형은,

"뭐 그냥 대충 치는데도 이기네요"라며 덕담 아닌 덕담을 해주었다. 나는 "아닌데요, 사력을 다했습니다, 형님!"이라 대답했다.



<4강전>



옆 테이블에서 영삼 형이 2부 젊은 남자와 게임하고 있었다.

그 테이블 승자와 내가 4강전을 펼치게 되었다. 문득 주변 모든 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왜 다들 게임하지 않고선 구경만 하지? 그렇구나. 어느새 토너먼트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이미 탈락하여 게임하던 이들이 구경하는 인파로 변해있었다.


많은 시선 속에서 영삼 형은 2부 젊은 남자와 혈투를 벌였다. 2부 젊은 남자는 구경하는 인파의 응원을 등에 입고 한 점 한 점 힘겹게 따라갔다. 내가 예상하길 핸디를 6점씩이나 많이 받기 때문에 무난히 영삼 형이 승리할 거라 보았다. 그러나 2부 젊은 남자는 죽을힘을 다해 쫓아갔다.

매 세트마다 영삼 형이 10점(게임 포인트)에 먼저 도달했지만 중진에서 2부 남자는 온몸을 던져 수비하고 날카로운 드라이브를 걸어댔다. 드라이브는 호선이 크고 옆으로도 휘었다. 2부 남자는 체육교사라고 했다. 교사는 경쾌하게 호선을 그리며 공격했다. 한점 한점 따라붙을 때마다 "아자! 아자! 아자아!" 하고 파이팅을 외쳤다.


딱 한 점만 더 따면 승리하는데 영삼 형은 점점 그 파이팅에 잠식되어갔다.

이제 한 점만 더 얻으면 승리인데 설마? 설마? 이곳은 타구장이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곳. 2부 교사의 '아자아!'는 일종의 텃세 같은 파장으로 영삼 형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자아'는 '설마'로 변질되어 가슴을 찔러댔다. 그렇다고 교사처럼 타구장에서 큰소리 내어 파이팅을 외칠 수는 없었다. 영삼 형은 점잖은 회사 이사님이다. 응원 상대라 해봐야 나와 태준뿐이었다. 2부 교사가 득점할 때마다 주위에 지켜보던 관객이 "와아아!" 하고 열렬히 반응했다. 영삼 형은 외로웠고 교사는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홈 그라운드 영웅이었다. 영웅이 핸디라는 불리함을 딛고 올라설 때마다 주변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영삼 형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관중에 섞여 파이팅을 외쳤지만 형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영삼 형은 3대 2로 졌다.

2부 교사는 사력을 다했다고 했다. 으하하하 내가 영웅이다! 하면서 흘낏 다음 상대인 내 얼굴을 보고는,

더 이상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영삼 형과의 게임에 전부를 쏟았다고 했다. 


곧장 4강전이 시작되었다.

2부 교사는 내게 한두 점만 빼앗겨도 칭얼거렸다. 이게 무슨 7부냐고. 이제 힘이 없다고. 핸디가 너무 많다고. 앞서 8강전에서 다 쏟아냈다고. 마치 하소연하듯 말이 많았다. 한 점 한 점 뒤처질 때마다, 벌써 포기했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내게 들으란 듯 말했다. 그럼에도 간간이 걸어오는 드라이브는 날카로웠다. 간혹 그가 득점하면 관중이 환호했지만 나는 개념치 않았다. 무심의 탁구. 박자와 리듬을 빼앗기지 않겠다.   

결국 3대 0으로 승리.



<결승전>  

   


태준은 4부 뽕 아저씨와 만났다.

랠리 중 4부 뽕 남자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7부야? 다들 이 드라이브 좀 봐!"


몸풀기 랠리 중 터져 나온 말이었다. 실제 태준의 드라이브는 강력하다. 근육질 몸에서 "우욱!" 하고 뿜어져 나오는 드라이브는 테이블 꼭짓점을 찍고 LED 등 불이 켜지듯 팟! 하고 지나가 버린다. 내가 뒤에서 응원하자 태준이 울상으로 다가와

"어쩌죠? 저쪽 분 뒷면 뽕이래요"

라고 했다. 태준은 뽕에 약하다. 뽕과 아직 많은 게임을 해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뽕을 탄다. 나는 말해줬다.

"생각하지 말고 모두 약한 커트 볼이라 생각하고 넘겨."


이번엔 민 볼이고 다음엔 커트라고 생각하다가는 게임을 망칠 게 뻔했다. 

그리고 게임 중 태준이 밀리자 나는

"포핸드 쪽으로 승부해! 백으로 주지 말고!"

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4부 뽕 아저씨는 오른쪽 포핸드 끝에 서서도 라켓을 돌려 뽕으로 받았다. 결국 3대 1로 태준이 졌다.


이윽고 4부 뽕 아저씨와 4부 꽁치처럼 마른 학생이 4강전을 펼쳤다. 나는 그 게임에 심판으로 들어갔다. 둘 중 승자와 내가 결승전을 치른다. 게임이 길어지자 지켜보던 영삼 형이 내게 (심판석에서) 나오라고 했다. 태준이 나 대신에 심판석에 앉았다. 나는 영삼 형과 몸을 풀었다. 행여 몸이 굳어 결승을 망칠 거라는 형의 염려 덕이었다.    


게임은 5세트 접전 끝에 4부 꽁치 학생이 승리했다.


4부 꽁치 학생.

종종 우리 탁구장에도 원정 왔었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그랬다. 수많은 대회의 우승자라고. 유튜브에도 시합 영상이 많다고.

'발이 빨라 모든 공을 포핸드로 잡는다'

뭐? 그 정도야? 하며 나는 경이의 눈으로 멀리서 지켜보았었다. 그런 선수와 내가 결승에서 맞붙다니 믿기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3대 0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 탁구장의 모든 선수들이 결승전을 지켜보았다. 나는 수많은 관중 속에서 수많은 시선을 등에 지고 게임한 적이 없었다. 몸이 굳을 대로 굳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의 강타에 그대로 얼어 따라가지 못했다. 나만의 다양한 게임 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이쪽으로 안되면 다른 쪽으로 시도하던 나만의 시스템을 죄다 까먹고 속절없이 같은 패턴으로만 응수했다.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길 비는 안타까운 심리. 그리고 패배. 찍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반면 꽁치 학생은 매 포인트마다 혼잣말을 했다. 내 귀에 들리도록!

"집중하자!"

"상대는 결승까지 온 분이다!"

"파이팅! 힘 내! 까먹지 말고!"

"안돼 안돼 긴장 늦추면 안 돼!"

"한 점씩 따라가자!"

"정신 차려!"

학생의 집중력이 부러웠다.


학생은 정신을 차렸지만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 졌다.




영삼 형과 태준이 8강 진출, 공동 5위를 기록하고 

나는 준우승, 2위를 기록했다. 

애당초 우리는 모두 7부. 최하위 부수로서 놀라운 성과였다. 즉시 우리 탁구장 사람들에게 긴급 타스 통신을 타전했다. 그중 양옥 누님이 가장 좋아했다. 저마다 잘했다고 다음에 다시 우승에 도전하라고 격려해줬다. 

자평할 때 도장깨기라기보다는 도장에 실금을 살짝 그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우리 셋은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낯선 곳에서의 탁구.

가슴 뛰지만 좋은 공부가 되었다.

이것도 하나의 수행.

내가 배운 건,


실전에서 기술이 잘 나오지 않은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설프게 돌아서고 마음만 앞서 스윙했기 때문이다. 힘만 준다고 공이 넘어가지 않는다. 비슷하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확 들어가야 한다. 확실히 돌아서야 한다. 치기 좋은 위치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백스윙부터 끝 스윙까지 스무드하게 스윙해야 한다. 스윙이 끊기면 실패한다. 상대의 심리전에 휘말리지 않은 건 잘한 거다.


'끝까지 들어가 한 방 부드럽게 휘두른다.'


또 하나 새로운 깨우침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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