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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y 27. 2022

보물섬 남해 탁구대회를 다녀오고

2022년 봄, 그 파란만장한 하루



내가 왜 참가한다고 했을까?


대회 며칠 전부터 그랬다. 참가 접수부터가 후회스러웠다. 쉬 잠들지 못하다 새벽녘 잠이 깨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6시 30분. 차 타고 남해로 가는 길. 나는 왜 이 길을 가나? 휴일, 그냥 편히 쉬면 되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나? 되돌리고 싶다. 참가하지 말걸. 쉬어갈걸. 별의별 자책이 뒤따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7시 30분.  

남해 실내체육관 대회장에 도착했다. 남해읍에 들어서자마자 아아, 남해 오랜만이구나~ 했지만 금세 대회장이구나~ 미치도록 떨리는구나~ 로 변했다. 남해를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탁구대가 무려 40대.  

체육관에 빈틈이라곤 없었다. 죄다 몸 푸느라고 빈 탁구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동료와 만나 어느 탁구 테이블, 낯선 누님뻘 동호인에게 청했다. 크로스로 연습 좀 해도 되냐고 물었다. 누님들은 탁구대 오른쪽에서 대각으로 주고받고 나와 동료는 왼쪽에서 대각으로 랠리 했다. 이따금 양쪽 공이 가운데서 부딪쳤다.

"어라? 크로스로 공이 부딪치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우리 인연인가 봐?"

"네? 그러게요."

누님이 웃으며 공을 주워주었다. 모두가 긴장되는 아침. 어떻게든 몸을 잘 풀어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 그나마 같은 테이블 누님들의 표정이 밝아 덩달아 긴장이 풀렸다. 감사했다. 다시 만나면 누가 누군지 알아볼까 싶지만 같은 탁구 동호인으로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아름다웠다.


남자 7부는 모두 47조까지 편성되어 있다. 

조당 3명씩 도합 141명이다. 나는 141명 중에 몇 등이나 할 수 있을까? 몇 등이라고? 몇 등? 지금 내가 순위를 걱정할 때인가? 아니다. 아니야. 당장 예선부터가 문제다.


달달달. 달달달.

나는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왜 이렇게 다리를 떨고 있을까 싶어 내 얼굴을 보니 넋이 나가 있다고 했다. 내가 심판을 볼 때 우리 구장 사람 하나가 넌지시 내 다리를 봤다고 했다. 얼굴이 흙빛이라고 했다.


예선에서 나는 먼저 심판을 봤다.


이른바 죽음의 조.

그렇다, 지옥의 조.

우리 조의 일원을 소개하자면, 한 분은 지난 거제 대회 단체전 우승 멤버고 한 분은 지난 창원 대회 단체전 우승 멤버다. 이 둘은 모두 예전 승급 방식이었으면 벌써 승급했을 점수를 가진 상태다. 두 분 다 개인전도 16강까지 진출한 실력자다. 그리고 중요한 건 두 분 다 자신의 단체전 팀 에이스라는 거다.

(단체전 때 개인전과 복식에 모두 출전하는 걸 봤다.)


나는 어쩌자고 이 죽음의 조에 배정되었는가? 나는 승급 점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주최 측에서 조를 배정할 때 아마도 희생양이 된 것이리라.  

'네가 희생하여 두 사람을 예선 통과시켜라.'  

네, 제가 희생양이군요. 제가 희생양이라... 3명씩 묶인 조에는 한 명씩 예선 탈락의 쓴맛을 보게 된다. 나는 희생양으로 처음부터 정해진 신세. 아아, 왜 저여야만 하냐구요? 왜?


순서대로 먼저 두 분이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심판석에 앉았다. 거제대회 우승자는 노련한 왼손 펜홀더이고 창원대회 우승자는 젊고 싱싱한 오른손 드라이브 전형이다. 두 사람의 기세가 무서웠다. 랠리를 보니 정녕 7부의 수준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연달아 나왔다. 나는 왜 여기 앉아있는가? 라고 물을 때마다 그건 네가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라는 대답이 들리는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젊고 싱싱한 창원대회 우승자가 3대 0으로 승리했다. 경기 내용은 매 세트 듀스까지 가며 박빙이었지만 결과는 3대 0으로 깔끔히 끝났다. 아무래도 거제대회 우승자는 '지금 심판 보는 아주 만만한 사람'이라는 확실한 희생양이 존재하기에 큰 힘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심판 보던 나와 창원대회 우승자의 게임 차례. 

나는 첫 세트에서 듀스까지 갔지만 지고 말았다. 1대 0으로 지다가 1대 1을 만들었다. 2대 1로 지다가 2대 2를 만들었다. 내가 어떻게 게임을 치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없이 공 주으러 멀리멀리 다녀온 게 생각난다. 젊고 싱싱한 창원대회 우승자는 백푸시와 드라이브가 보통 날카로운 게 아니었다. 평소 우리 구장 5부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대는 고수의 여유를 뿜으며 내게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상대는 고수의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당연히 승리한다는 저 얼굴. 미소 띤 표정. 넌 왜 그렇게 평화로운 거니? 온몸에 땀이 쥐어짜듯 흐르고 흘렀다. 평소 땀이 많은 체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


우리 테이블 위치가 맨 왼쪽 통로에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탁구장 사람들도 여럿 응원해 주었다. 나는 예선 첫 게임부터 접전을 펼쳤다. 세트 스코어 2대 2에서 마지막 5세트는 9대 10으로 끌려갔다. 아아, 한 점만 더 내주면 지겠구나. 허무하다. 순간 주변이 아득해졌다. 나는 우리 탁구장에서 나름 잘한다고 가능성 있다고 칭찬받는 유망주인데,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나? 두렵다. 예탈(예선 탈락)의 멍에가 채워지는 순간 헤어날 수 없는 바닥으로 가라앉겠지. 나는 어쩌자고 여기에 서 있나? 주변에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시선이 내 얼굴로 옆구리로 박혔다. 동정의 눈빛. 나는 동정받는 플레이어구나. 불쌍하다. 안타깝다. 사력을 다했건만 이제 한 점만 남았구나. 이대로 끝나는가? 누군가가 게임이 끝났다고 말했다. 정신 차려 고개를 드니 내가 이겼다고 했다. 기적이었다. 12대 10으로 역전했다고 했다. 아아, 콜록콜록 소리 지를 힘도 남지 않은 상태. 나는 예선 첫 게임에 모든 걸 쏟아부었고 극적으로 승리했다. 운이 좋았다.


이어지는 게임.

거제대회 우승자, 노련한 왼손 펜홀더와의 게임. 이 분은 한마디로 만만디 스타일이다. 느릿느릿 코스를 빼고 랠리를 이어가다가 순식간에 한방 드라이브를 꽂아댔다. 나는 이미 걸을 수 조차 없을 지경. 저 멀리 공이 굴러가면 터벅터벅 걸어가 철벅철벅 돌아왔다. 회복해야 하는데, 회복하지 못했다. 나는 2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무너졌다. 체력이 남아나지 않아서, 좌우 코스를 빼면 따라가지 못하고 멍하니 공만 주으러 갔다.


결국 우리 조는 모두 1승 1패가 되었다. 

서로 물고 물렸다. 누가 1위인가? 세트 득실을 따지니 창원대회 우승자가 1위가 되었고 나는 2위였다. 왼손 펜홀더 분은 낙담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다행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미 우리 구장 사람들은 저마다 조 1위로 통과해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조 1위는 으레 부전승의 혜택을 누리겠지만 나처럼 조 2위는 본선 1회전을 더 치르고 나서 다른 조 1위와 만날 터다. 그래도 좋았다. 어쨌거나 예탈은 아니니까. 예탈이 아니어서 너무도 다행이었다. 만세~ 나 예탈 아니다아아아아~ 휴우~~~~




본선 1회전.

64강전.

조별 예선 1위로 올라온 분이다.

차분하게 생긴 청년이다. 수비형이다. 맨 러버로 주세혁처럼 커트를 해댔다. 깎고 깎고 또 깎다가 내가 붕 띄워주면 다가와 한방 스매싱을 날렸다. 아하, 저걸로 올라왔구나. 본선에 진출한 이들은 저마다 한 가지 이상의 무기가 있다. 이 청년의 무기는 깎기였다. 나는 커트에 커트로 응수하다가 커트 드라이브를 올려 스매싱을 때렸다. 한 점 한 점이 소중했다. 첫 세트에서 듀스까지 가다가 겨우 이겼다. 이후 내리 이겨서 3대 0으로 승리했다. 청년은 매너가 좋았다. 이길 때면 우렁찬 기합소리를 냈지만 질 때면 나이스를 외쳐주었다.




본선 2회전.

32강전.

조별 예선 1위로 통과한 분이다.

옆에서 심판 보던 젊은 청년. 안면이 있었다. 구장을 보니 진주 사람이다. 작년 디비전에서 우리 팀과 게임했다고 했다.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몸이 날렵했다. 드라이브가 매서웠다. 그래도 실수가 많은 스타일이라 나는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이 분도 해당 조에서 1위로 진출한 사람이다. 반면에 나는 2위 출신이다. 조심하자. 조심하자 하면서 나는 신중히 게임을 풀어갔다.




본선 3회전.

16강전.

역시 조별 예선 1위로 통과한 형이다.

바로 영삼 형이다. 형은 조 1위로 진출해 본선 1회전도 통과하고 이제 2회전을 맞았다. 아아, 우리 구장 사람을 만나다니. 그것도 나랑 가장 친한 형이다. 평소 탁구장에서 형과 나는 동부수에서 최대 라이벌이다. 그야말로 혈투. 아득하다.




본선 4회전.

8강전.

당연 조별 예선 1위 출신이다.

젊은 청년. 눈썹이 진하다. 마른 몸매. 어딘가 진중한 표정. 이 분도 역시 예선에서 1위로 진출했고 본선 3회전까지 왔다. 무엇이 주 무기일까? 궁금했다. 헉, 서브가 이상하다. 포핸드로 서브를 넣는데 얼굴이 라켓 가까이 다가와 마치 땅을 파듯 공을 찍는다. 찍힌 공이 내 포핸드로 날아오는데 그것이 커트인지 횡회전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도박할 수밖에 없었다. 커트겠지 하면서 나는 밑에서 퍼올렸다. 가끔 횡회전을 퍼올리다 실점하고 횡회전을 냅다 때리다 처박히며 실점했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

내가 횡회전을 퍼올리다 공이 로빙볼처럼 높이 떠 갔다. 그러자 청년이 야호~외치며 껑충껑충 기뻐했다. 그런데 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테이블 끝에 맞았다. 청년은 깜짝 놀라며 공을 손으로 잡았다. 껑충껑충 뛰다가 딸꾹거리며 공을 잡았다. 기뻐 날뛰다 공을 잡고는 급 시무룩해졌다. 환희가 슬픔으로 변하는 찰나의 순간. 게임 중인데 나는 우습기도 하고 안도하면서 그 장면을 보았다.

게임이 끝난 후 그쪽 코치님이 말하길, "이 친구는 서브로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런데 그쪽이 정말 잘했어요"라고 칭찬해 주었다.




본선 5회전.

4강전.

합천에서 온 젊은 친구. 탁구를 엄청 잘 치게 생겼다. 대학생 같다. 역시 4강전에 올만했다. 드라이브가 장난 아니게 꽂혔다. 나는 저 멀리 뒤로 물러나 수비만 했다. 대학생에게 모자란 건 경험뿐이었다. 실력이 워낙 뛰어나 정신 차릴 수 없었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

내가 세트스코어 2대 1로 이기고 있었고 4세트에서 8대 7로 앞서고 있었다. 이기고 있지만 차츰 따라 잡히는 형세였다. 그때 대학생이 송곳 같은 드라이브를 연속으로 날려댔다. 나는 계속해서 물러나기만 했고 그러다 발 뒤쪽에 펜스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랠리 도중 펜스 3개가 연달아 무너졌다. 나는 어정쩡 펜스를 밟았기에 공을 받지 못했다. 와중에 심판이 중지를 외쳤다. 그러자 저쪽 팀 코치가 벌건 얼굴로 달려와 마구 따졌다.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수비하다가 혼자 밟은 거를 가지고 게임을 중단시키면 어쩌냐고. 득점으로 인정해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대학생도 눈을 치켜뜨고 심판과 내게 뭐라 뭐라 따졌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물러나다가 펜스를 밟은 죄밖에 없는데 마치 억지를 쓴 거처럼 비난받았다. 곧장 실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는데, 돌아보니 심판이 보이지 않았다. 심판은 벌써 본부석으로 떠난 뒤였다. 심판이 올 때까지 겨우 한숨 돌리는데 그쪽 코치와 선수가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내었다. 나는 심판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실점을 인정한다고 거듭 말해주었으나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상대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마침내 심판이 돌아왔다. 본부석에서는 심판의 재량이라고 판단했다. 그대로 전달하니, 그쪽 코치와 선수는 "심판이 당신네 지인이잖아요"라고 항의했다. 그 말에 나는 심판 교체를 요구했고 실점을 다시 한번 인정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심판이 들어왔고 8대 8이 되었다. 나는 수세에 몰렸다. 심판에게도 미안했고 뭔가 쫓기는 마음에 어쩌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기서 내가 이 세트를 잡힌다면?? 아마도 5세트에서 지겠지? 하는 예감이 들었다. 무조건 잡아야 했다. 나는 수비만 하면 안 되겠다 싶어 공격했다. 다행히 더 이상 한 점도 주지 않았다. 11대 8로 승리했다. 세트 스코어 3대 1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악수를 청했지만 대학생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후 이 대학생과는 여러 차례 대회장에서 만나 정답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본선 6회전

준결승전.

예선전에서 창원대회 우승 출신이 귀띔해 주었다. 오늘 이모모와 예모모를 조심하라고. 이 두 사람은 기필코 피해야 한다고. 그들은 구장에서 3부 놓고 치는 이들이라고. 그 둘만 피하면 될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는 알겠다고 끄덕였다. 이모모와 예모모만 피하자. 그리고 이제 준결승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났다. 예모모였다. 딱 보니 키가 얼핏 196은 되어 보였다. 떡대가 훤칠하니 농구선수와 씨름선수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턱이 커다랗게 각이 져 군인처럼 보였다. 나이가 대충 내 연배와 비슷해 보였다. 그럼에도 무조건 형 같은 이미지였다. 형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형! 왜 그렇게 화내시는 거예요? 화 좀 내지 마세요. 제가 뭘 잘못했죠? 형이 적으로 맞은편에 서 있다. 그것도 무서운 얼굴로 동생을 나무라듯 노려보았다. 무시무시했다. 일단 기세에 눌려 움찔거렸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형은 커다란 덩치로 딱 가운데 서서 쇼트로 이쪽저쪽 코스 빼는 플레이를 했다. 나는 안 그래도 바닥난 체력에 이쪽저쪽 쫓아다녔다. 아예 상대가 안되었다. 세트당 6점 정도를 뺏은 게 다였다. 형은 양쪽으로 코스 빼는 기술이 탁월했다. 그리고 이따금 바운드가 높으면 백푸시로 강타를 날렸다. 서브는 백으로 커트와 횡회전을 섞었다. 나는 횡회전에도 당황했고 양쪽 코스 빼기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결과는 3대 0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나왔다.




마침내 패배한 모습





나중에 알고 보니 예선전에서 우리 조 1위로 진출했던 창원대회 우승 출신은 본선 1회전에서 이모모를 만나서 일찌감치 떨어졌다. 그러나 나와 함께했던 창원대회 출신과 거대회 출신은 각기 자신의 팀과 단체전에서 빛을 발했다. 그들은 결국 나란히 결승에 진출하여 단체전 공동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고 2연속 오픈대회 단체전 우승으로 당당히 승점 2점을 더해 6부로 승급했다. 나는 47개 조, 총 141명 중 3위를 했지만 승점은 1점만 얻는데 그쳤고 단체전도 3위에 머물러 0.5점을 더해 1.5점이 되었다. 승급에는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예선 같은 조 사람들은 모두 승급했고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전 단체전 모두 3위로 입상하였고 상품과 상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뭣보다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았다는 자부심이 컸다.




 

단체전 이야기 하나.

일명 오더 찌기의 제왕인 영삼형이 오더를 전담했다. 상대를 살피고 1번부터 4번까지 세심히 짰다. 우리는 어려울 거라 예상한 팀들을 연파하고 4강에 올랐다. 준결승전에서 거제대회 우승팀을 만났다. 그 팀에는 나와 같은 조였던 만만디 왼손 펜홀더가 존재했다. 그는 팀의 주축이자 에이스였다. 나와 그는 나란히 4번으로 다시 한번 격돌하게 되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나는 예선전에서 그에게 2대 3으로 역전패했다. 그는 내게 이겼지만 개인전에서 예탈을 당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내가 또다시 그에게 진다면? 어떻게 될까? 경남은 좁다. 오픈대회가 줄줄이 열리는 시국이다. 둘 다 5부로 승급하기 전까지 수없이 만나고 만날 테다. 그런데 한 대회에서 2연속 패한다면 설핏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겨야 했다.  

그는 만만디 스타일로 천천히 코스를 가른다. 그리고 내 포핸드 끝으로 공을 보내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쪽으로 쉼 없이 보냈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코스를 바꿀까 싶어 포핸드로 확 가지도 못하고 힘겹게 무릎 굽혀 하나하나 받아냈다. 탁구를 딱 알고 치는 느낌이랄까? 그의 서브를 커트를 받으면 어김없이 내 백핸드로 3구 드라이브가 꽂혔다.  

이번에도 나는 2세트를 앞서가다가 2대 2로 잡혔다. 그리고 대망의 5세트. 다행히 네트와 에지가 겹쳐서 5대 0까지 달아났다. 그때부터 그는 힘 조절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그렇게 내가 이겨서 단체전 단식 결과 2대 2가 되었다. 이제 다섯 번째 게임으로 복식이 남았다. 복식에서 상대 팀은 왼손 펜홀더와 오른손 펜홀더가 나섰다. 결론적으로 나는 복식에서 그렇게 멋진 호흡을 본 적이 없었다. 상대 팀은 정말 날아다녔다. 단식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만만디 왼손 펜홀더가 서브 넣으면 오른손 펜홀더가 드라이브를 날렸다. 그걸 받으면 왼손 펜홀더가 멋지게 코스를 갈라 낮게 보냈다. 우리 팀은 아예 상대도 되지 못했다. 애당초 복식까지 가면 안 되는 거였다. 결국 우리는 3대 2로 졌고 3위에 머물렀다.


단체전 이야기 둘.

뒤에서 익숙한 기합소리가 나길래 돌아봤더니, 나랑 8강전에서 붙은 상대와 4강전에서 붙은 상대 둘이서 게임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이 들어 내가 파이팅! 하고 소리치니 둘이 나란히 고개 끄덕이며 화답의 파이팅을 외쳤다. 어라, 좀 전에 내가 상대했던 사람들이잖아? 저 둘이 왜 게임해? 웃겼다.

정말이지 탁구 상대는 돌고 돈다. 개인전에서 만나지 못해도 이렇듯 단체전에서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강자는 결국 다 만나게 되어 있다는 진실. 우리는 승급할 때까지 아니 승급하더라도 여러 대회에서 끊임없이 만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징글징글한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




누가 누가 강팀인가?  

단체전 강팀의 윤곽이 도드라지는 대회였다. 우승한 팀 둘과 3위 팀 둘. 거기다 8강에 든 팀 넷. 8팀은 누가 우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전력. 요새는 창원팀과 통영팀이 압도적이다. 탁구대회의 꽃은 역시 단체전이다. 단체전에만 상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 상금은 딱 회식하기 좋을 만큼의 금액이다. 개인전은 명예지만 단체전이야말로 탁구대회의 백미가 아닐까. 팀원들끼리 합심하여 서로의 게임을 응원하고 도전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이기든 지든 함께 뒤풀이를 통해 대회 전후를 여감 없이 즐긴다. 단체전에만 상금이 걸려있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야 열리기 시작한 탁구대회가 그저 반갑다.


예선에서 심판 보던 내 다리가 달달달 떨린 것처럼, 비록 긴장되지만 그래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다. 지금은 고인 물들의 전성시대다. 고인 물은 탁구 구력이 오래된 이를 가리킨다. 물길을 터 고인 물이 흘러내려야 신선한 물이 흐를 터다. 탁구장에서 3부 치는 이들이 7부 대회에서 우승하고 4부 치는 이들이 4강에 들고 5부 치는 이들이 8강에 들며 6부 치는 이들이 16강에 든다. 요즘의 대회에서는 고인 물들이 서로 나가려고 아우성친다.


자~ 그러면 나도 가볼까?



단체전 입상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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