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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Nov 08. 2022

탁구 대회 예선 탈락의 묘미

산에서 바다를 지켜보는 망부석




예탈 하면 어떡하지? 

가슴이 쿵쾅, 다리가 후덜덜.


중독성이 다분하다. 공포의 예선전. 3명씩 한 조가 되어 예선전을 치른다. 일명 3파전이다. 여기서 1명이 탈락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거의 모든 탁구대회 예선전에서 볼 수 있는 국룰이다. 1명이 탈락하고 2명이 본선에 진출한다. 만약 3명 모두 1승 1패 동률, 물고 물리게 되면 세트 득실을 따진다. 도합 몇 세트를 이기고 몇 세트를 내줬는가? 따라서 지더라도 3대 2로 져야 한다. 혹 3대 0으로 지게 되면 다음 게임을 이기더라도 위험해진다. 지더라도 '졌잘싸'로 잘~ 져야 한다. 반대로 이길 때는 가차 없이 이겨야 한다. 3대 0으로 이기는 게 제일 좋다. 보통 첫 게임을 이기면 이긴 자가 남고 진 자는 심판석으로 간다. 때로는 이긴 자가 힘들다면서 진 자에게 먼저 게임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같은 조 3명은 누가 장렬히 죽을 것인가, 를 두고 치열히 경쟁한다.  


예선전에서 떨어지면 이른바 '예탈'이 된다. 예탈이 주는 공포. 스멀스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오늘 누가 예탈 했어?"


"응, 딱 보면 모르겠냐? 저기 저 고개 숙이고 있는 저분 혼자 예탈 했대."


"헐, 어떡해~ 안됐다, 저 처량한 얼굴 좀 보라지, 불쌍하다."


"그러게, 혼자 예탈이면 아침 내내 그리고 오후 늦게 단체전 할 때까지 집에 가지도 못하고 기다려야 할 텐데."


"맞아, 온종일 멍하니 다른 사람들 게임하는 거 쳐다보기만 해야지."


"더구나 예탈 하면 동네방네 소문이 나지. 벌써 우리 탁구장 사람들이 알고서 다들 난리가 났대."


"아이고 그러게 잘 좀 하지, 예탈이 뭐야? 구장에서는 기세가 등등하더니 역시 구장용인가 봐?"


"그러게, 구장에서는 잘하던데 실전 대회장에서는 새 가슴이라서 실력의 반에 반도 안 나오네."


"멘털이 그렇게나 약한가?"


"구장에 복귀할 때 얼굴은 들 수 있으려나 몰라."


뭐 이런 말들을 듣게 된다. 


예탈은 곧 망신이다. 예탈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런 강박이 떨림으로 연결되는데, 처음에는 이게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차츰 중독성 있게 변했다.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일단 압박감이 엄청나다. 예탈 하면 큰일이다. 죽음이다, 라는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이 예탈을 면하게 되면 비로소 살아났다는 기분이 든다. 바로 살았다는 사실, 그게 중독성을 유발한다. 예탈을 면하게 되면 괜스레 기분이 좋다. 뭔가 성공한 거처럼 웃음꽃이 피어난다. 부담을 한시름 떼어낸 안도감. 이제 뭐 어떻게 되든 괜찮아. 예탈은 면했으니까. 오늘 컨디션 괜찮은데? 역시 오늘 대회에 참가하길 잘했다. 뭐 이런 생각이 든다. 예탈과 본선 진출의 경계. 3명 중 누가 희생양이 되려나? 어휴 저 옆에 저분 예탈 했구나. 얼굴이 흙빛이네. 위로해줘야지. 어느새 나는 위로하는 신분. 예탈자는 위로받는 신분. 탁구 대회장에서 그 차이는 삶과 죽음 사이만큼이나 크다.


얼마 전 어느 대회에서 병수 형과 우람이가 예탈을 당했다. 예탈이 확정된 시각은 아침 9시. 그때부터였다. 그 둘은 아래위 두어 칸 떨어져서 각기 앉았다. 그러고선 오전 내내 경기가 벌어지는 쪽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마치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듯했다. 망연히 초점 없는 눈으로 봤다. 둘 다 힘없이 한 손으로 턱받침을 한채 보았다. 구장 사람들이 게임을 치르느라 응원하느라 정신없을 때도 그들은 고요했다. 우리가 이따금 그들 쪽을 보았는데 한 시간 전에도 한 시간 후에도 그들의 모습은 변화가 없었다. 턱을 받친 손도 그대로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저기 저 둘, 그림인가?"


말 그대로 그림 같았다.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일말의 미동도 없이 같은 자세 그대로 경기장을 지켜보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으리라. 나중에 병수 형이 말하길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다들 경기장 안에서 신나게 움직이고 땀 흘리는데 나 혼자 여기서 뭐 하는 건가, 하는 깊은 고독에 빠졌다고 했다. 우람이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 '이 시간 집에서 애들이랑 놀면 좋았을 건데' 그런 따위의 생각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 했다. 구장 사람들은 그들의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저거 좀 봐. 아직도 움직임이 없어. 뭐 좀 먹고 있으라 하지? 둘이 같이 앉아 있든지 하지 떨어져서는 뭐야? 


그들은 한참 뒤 점심시간이 되어서 밥 먹으러 가자고 하니 그제야 움직였다.    




지난 대회 예선전 첫 게임에서 나는 3대 2로 정말이지 극적으로 승리했다. 이윽고 두 번째 게임을 졌다. 1승 1패가 되었지만 두 번째 게임에서 2대 3으로 잘~졌기 때문에 안심했다. 결국 2대 3으로 연달아 진 분이 탈락했다. 예탈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예탈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러고선 말했다.


"두 분 본선에서도 파이팅 하세요.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얼굴을 보니 새카매진 피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나는 꾸벅 인사하며 두 손을 잡아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힘없이 손을 놓고는 소속 벤치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망부석이 되었다. 단체전이 시작되는 오후 3시까지 대략 6시간 정도는 족히 기다려야 하는 형벌. 이것이 바로 예탈이 주는 잔인한 현실이다.


.

.

.

 

나는 첫 대회부터 여러 대회를 거치면서 한 번도 예탈을 하지 않았다. 

강자와 묶인 죽음의 조에서도 죽어라 버텨서 예탈을 면했다. 그러다 지난 밀양 대회에서 드디어 첫 예탈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나는 몹시 건방졌다. 게임하기 전에 몸을 풀지도 않았다. 영삼 형이 "너 몸 안 풀어?"라고 물어도 "예선이 곧 몸 푸는 시간이잖아요?"라고 답했다. 나는 건들거리며 누워있다가 이름이 호명되고 탁구대 앞에 섰을 때 그제야 기지개를 켰다. 팔다리를 쭉쭉 펴고 인사치레 랠리를 몇 번, 그마저도 내가 먼저 끊고 게임하자고 청했다. 그러다 '어어? 이게 아닌데? 1세트는 몰라도 2세트 3세트에 가서도 왜 자꾸 지는 거야?'가 되었다. 3대 0으로 지고 심판석에 앉았다가 두 번째 상대와 붙었다. 그때는 그나마 몸이 풀려서 괜찮은 상태가 되었지만 멘털이 엉망이었다. 이미 3대 0으로 졌기에 내가 3대 0으로 이기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었다. 3대 0으로 이겨야 한다는 압박. 결국 2대 3으로 지고 말았다. 나는 주위 구장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렬히 예탈 하고 말았다. 밀양은 먼 곳이다. 중간에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놀리고 희롱했던 존재. 이제 내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 나는 망부석이 되었다. 무얼 봐도 의욕이 없었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멍하니 지켜보는 자세. 어느 누가 농담을 걸어와도 웃기지가 않았다. 다 귀찮았다. 그러다 누군가가 말했다. 


"어? 우리 구장 사람들한테서 연락 왔네? 너 혼자 예탈 했다는 소식이 벌써 전해졌나 봐? 다들 웃고 놀리고 난리가 났대?"


비참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지옥 같은 오전 시간을 버티고 점심때가 왔다. 이후 나는 밀양시내를 정처 없이 쏘아다닌 기억이 난다. 어딜 어떻게 다녔는지는 모른다. 정신이 들고 보니 단체전 첫 게임을 치르고 있었고 그마저도 패했다. 이러다 오늘 전패하겠구나 위기감이 닥쳐왔다. 


예탈을 모면하는 재미. 이것은 반대로 예탈에만 얽매이는 나의 현주소를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승급하고 끝 모를 정체기에서 방황하고 있다. 좀 더 위를 노릴 때가 아닌가? 아래만 보고 가슴 쓸어내리는 짓은 이제 그만.


"오늘은 누가 예탈 했지?"


예탈을 당한 이는 여러 짓궂은 농담에 응대해야 한다. 


"왜 그랬대? 어젯밤 뭐했대? 이게 무슨 일이고?"



아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예탈의 공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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