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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Dec 16. 2022

탁구대회 긴장하는 순간

나만의 루틴이 만들어진다



돌아서면 마렵다. 


마려워. 금방 화장실에 다녀왔는데도 그렇다. 목이 탄다. 물 마신다. 다리를 달달 떤다. 긴장이 멈추지 않는다. 소변이 마렵다. 다음 게임은 언제지? 차례를 살핀다. 화장실에 간다. 소변기를 고를 때 되도록 맨 안쪽 소변기에는 서지 않는다. 입구 쪽부터 전부 사람이 찼고 맨 안쪽 하나만 남았다 하더라도 섣불리 거기로 가지 않는다. 맨 안쪽에 서면 그것이 마지막 화장실행이 될까 봐서다. 두 번째나 세 번째에 서면 아직 세 번째나 네 번째가 남았기에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 하는 마음. 그래서 나는 맨 안쪽에 가지 못한다. 맨 안쪽에서 볼일을 봐버리면 이제 그곳에서의 여정이 끝났다는 의미가 될까 봐.


시합 직전 탁구대 우측 아래 바닥 가운데에 케이스를 가로로 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생수통을 한가운데 올려놓는다. 물은 생명이다. 생명이 대회장 바닥에 덩그러니 놓이면 생명의 불꽃이 꺼질까 싶어서 나는 반드시 물통을 라켓 케이스 위에 올려다 둔다. 케이스는 물을 지킨다. 지키면서 토너먼트의 연장을 지원한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면 토너먼트가 끝난다. 한 번의 패배가 곧 실패를 의미한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생명의 물을 지킨다. 나는 세트가 끝날 때마다 생명의 물로 생명을 채운다.


이제 상대의 서브가 올 차례다. 

과연 어떤 구질의 공이 올 것인가. 두렵다. 이상하게 튀는 횡회전만 아니면 좋겠는데, 혹은 쇼트로 받으면 가라앉고 커트로 받으면 떠오르는 너클만 아니면 되는데, 어떡하지? 어떤 서브가 올까? 너는 어떤 놈이냐? 같을 수는 없다. 사람마다 서브는 모두 다르다. 서브 하나에 게임의 명운이 걸렸다. 서브 하나를 못 받으면 게임 내내 서브를 탈 테고 서브를 타면 결국 승부에서 지게 된다. 이 서브 하나를 받아내야 한다. 박자를 빠르게 가져가자. 가만히 멈춰서 기다리다간 순식간에 변화를 일으키는 서브에 당황하게 된다. 평소보다 더 빠른 박자로 다리를 달달 떨면서 라켓을 정중앙 가슴팍에 올려둔 채 서브를 기다린다. 빠른 거든 느린 거든 받아낼 테다. 반드시 서브를 잘 받아서 4구 6구로 연결할 테다. 랠리로 연결만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 있다. 때리자. 그리고 막아내자. 이쪽으로 치는 척 저쪽으로 빼고 저쪽으로 치는 척 이쪽으로 뺄 것을 다 생각하고 있다. 너는 웃으며 페인트를 걸 테고 나는 웃으며 전부 다 감안할 테다.


다행히 한 세트를 이겼다. 

이기면 목이 마르더라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 이 갈증 이 느낌 그대로 템포를 가져가기 위해서다. 

젠장, 한 세트를 졌다. 지면 그제야 물을 마신다. 마셔서 새로운 기운으로 생명으로 몸과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다. 마시자, 정신 차리자. 나는 진 세트의 사람이 아니다. 물을 마셔서 다른 사람 다른 선수로 거듭날 것이다. 


이제 한 점이 남았다. 

한 점만 더 얻으면 승리다. 이 하나의 게임, 얼마나 승리를 원해왔던가. 한 점만이 남았지만 나는 이 악물고 덤빌 테다. 덤벼서 멋지게 한방 스매싱을 날릴터다. 또한 멋지게 한방 드라이브를 날릴 것이다. 날려서 득점으로 연결되는 순간 나는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면서 "빠샤~!" 하고 크게 외칠 테다. 준비하자. 세리머니. 그 맛에 탁구 하는 것 아니겠니? 물론 곧바로 돌아서서 상대에게 공손히 "잘 배웠습니다" 하고 인사할 것이다. 


이기면 연속으로 게임에 임하지 않는다. 나는 체력이 약한 편이다. 이겼다고 흥분해서는 곧바로 다음 게임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땀이 식고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아야 한다. 심판을 봐야 해. 쉬어야 해. 연속으로 하면 무조건 진다. 체력에 과신하지 마. 


이제 곧 올해의 마지막 대회.

고성에서 경남 협회장배가 시작된다.

어쨌거나 우승이 목표다. 

집중하자.

지고 나서야 아~저렇게 해볼걸,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복기하는 건 싫어.

중간에 밀리면 내가 할 수 있는 패턴을 다 써보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커트 서브가 통하지 않으면 회전 서브로.

스톱 리시브가 통하지 않으면 드라이브로.

다 해보기도 전에 패배하면 그만큼 쓰라린 게 없으니까.

내 가진수를 다 동원하여 버티고 버틸 테다.


가자. 

내 마지막 승부의 대회로.

일요일.

해피 선데이가 되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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