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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Oct 27. 2022

우리 시 공식 탁구대회(2)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8강에 안착했다.


이게 웬 떡? 대박! 어쩌면 우승까지? 쿵쾅쿵쾅 '우승'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치 로또 번호를 맞춰보는데 4개까지 맞고 5번째 숫자를 확인하는 것처럼 떨렸다. (일단 5만 원 확보에 하나만 더 맞으면 백 단위) 주식으로 비유하자면 1년 내내 물려있다가 딱 한 번 상승으로 탈출하는 쾌감? (더 오르든 말든 탈출이 목표)


다음 상대는 누구? 설마? 본부에서 장내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4탁으로 가세요!]


나?


우승이라는 말을 상기하자마자 성준 형과 규옥이가 떠오르는데 그 순간 안내 방송이 나왔다.


벌써?


규옥이구나.


나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빨간 소쿠리에 탁구공과 기록지를 담아 4탁으로 갔다. 그리고 탁구대 앞에서 규옥이와 마주 섰다. 드디어 규옥이를 만났다. 규옥이는 탁구장 동료이자 아끼는 동생이다. 더 넓은 체육관에서 하필 우리 탁구장 사람을 상대로 만났구나. 우리 시에 탁구 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이들 죄다 내버려 두고 어찌하여 매일 함께 탁구 치는 규옥이를 만났을까. 그래, 어차피 결승으로 가는 관문. 오르고 오르다 보면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 꼭대기 부근에서, 삐쭉 고개 내미니 네 얼굴이 보인다. 우리는 서로를 만날 때까지 이변을 만나지 않았고 이변을 당하지 않았다. 내가 저쪽에서 산을 오르고 규옥이는 이쪽에서 올라 마침내 정상 문턱에서 만난 것이다.


만날 수밖에 없는 상대.


평소 구장 6부로 치는 규옥에게 나는 핸디 2점을 받고 플레이한다. 핸디 받고 할 때 승률은 6대 4 비율로 조금 앞섰다. 그러나 그간 핸디를 받지 않고 한 적이 없는데.


이기면 4강이고 지면 8강에 머무른다.


1세트를 졌다.


규옥은 새로운 서브를 연마해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평소 탁구장에서 넣던 서브와 사뭇 달랐다. 탁구장에서는 주로 짧은 커트 서브(80%) 아니면 걸기 좋은 너클(20%)이 왔는데, 대회에서는 어정쩡한 중간 길이 커트(탁구대 밖으로 나올랑 말랑)와 커트량 많은 긴 서브를 백으로 보내왔다. 짧은 커트라면 리시브도 짧게 톡! 주면 그만인데 그보다 더 긴 커트이기에 커트로 받으면 다소 길게 넘어가기 마련, 규옥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백이든 포핸드든 묻혀서 선제를 걸어왔다. 상회전이 걸린 공을 내가 블록으로 넘기면 냅다 한방 드라이브로 매조진다. 이러한 패턴으로 나는 수비만 하다 무너졌다.

지금도 커트량 많은 긴 백 서브다. 이것이 너클일까, 커트일까 고민하다 넘기면 여지없이 네트에 걸리거나 찬스 볼을 주게 되었고 그렇게 속절없이 1세트를 내줬다.


2세트.


도박이다.

커트량 많은 긴 백 서브를 기다리고 있다가 한방 드라이브를 걸었다. 두 개중 하나가 들어갔다. 커트로 리시브한 것을 규옥이가 드라이브 걸면 나는 저 멀리 뒤로 옆으로 악착같이 쫓아가 받아냈다. 지면 끝이다. 전부를 걸어야 한다. 비록 나보다 고수지만 혹시 알아? 잡을지도 모르잖아? 최선을 다하자. 따라가 받자. 그렇게 간신히 따냈다.


3세트 그리고 4세트


평소 잘 통하던 서브가 뭐였지?

생각이... 안 나.

짧게? 길게? 어떤 서브를 넣어야 하지? 다 받아내잖아? 나만의 회심의 서브가 뭐였지? 까먹었다. 잊어버렸다. 생각나지 않았다. 나만의 필승 서브가 뭐였는지 아무리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브를 넣어야 하는데, 어떤 서브를 넣어야 할지 두려웠다. 규옥이는 서브로 3구, 5구를 이끌어 득점하는데 나도 여기서 점수를 내야 하는데. 3구 치기 좋은 공을, 5구 걸기 좋은 공을 유도해야 하는데. 아하, 방금 앞날 긴 너클 서브에 찬스가 생겼지? 그래, 이거다 하면서 나는 규옥의 몸 쪽으로 빠르고 긴 너클 서브를 넣었다. 2세트에서 통했던 서브다. 그러나 3, 4세트 연거푸 그 서브만 넣으니 규옥은 돌아서서 2구 드라이브를 걸어버렸다. 나는 계속 얻어맞는 줄도 모르고 그 서브만 넣었다. 그나마 몇 번은 몸 날려 수비로 버텼다. 3구에 공격을 잡아야 하는데 외려 수비만 했다. 듀스에 듀스가 이어졌다. 어느 순간 규옥의 호선 높은 드라이브가 몸 쪽으로 왔고 나는 라켓을 갖다 대 블록 했다. 블록 한 공이 튕겨서 하늘 높이 떠올랐다. 붕 날아 탁구대 밖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규옥이 얼른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미소와 함께

"정말 지는 줄 알았어요.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오늘 게임 중 제일 어려웠어요. 제가 운이 너무 좋았던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게임이 끝난 줄을 알았다.


게임은 나의 패배로 끝났다. 나는 규옥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 난 만족한다. 정말 만족이야, 축하해. 너무 잘하던 걸. 우승해야 해!" 말하고 규옥이 빨간 소쿠리를 들고 본부석으로 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한 전략 없이 덤빈 게 실수다. 그저 운에 맡기는 것이 온전한 실력 일리가 없다. 하나라도 비장의 무기를 들고 왔어야 했다. 규옥이처럼 새로운 서브라도 시도해야 했다. 되든 말든 공격을 해야 했다. 여러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난 어디까지 왔을까? 돌아보니 한편 안심도 되었다. 첫 대회에 8강! 공동 5위다. 입상이다! 입상의 문턱을 넘었다. 나는 본부로 가 상장을 받았다. 상품으로 탁구공 2박스를 받았다. 내 이름 박힌 상장을 보았다. 이게 얼마만의 상장인가. 탁구를 치기 시작해 오롯이 탁구로 상장을 받다니? 감격스러웠다.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상장을 들고 2층 응원석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미 본부 앞 1탁에서 단체전이 시작된 터였다.




이제 단체전이다.


1탁으로 가니, 분위기가 웅성거렸다. 

우선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다. 1탁은 본부 앞 가장 빛나는 무대다. 코너를 둘러싼 사람들이 왁자지껄 경기를 주시했다. 코로나 때문에 단순히 응원차 오는 이들이 아니라 개인전, 단체전을 마친 인파와 게임에 관련된 탁구장 사람들이 2층에서 내려와 바로 옆에서 응원하고 있었다. 뭐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니? 나는 그들의 시선이 의식되었다.

선수들이 지켜본다. 지켜보는 시선. 시선에 보일 내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나는 7부다. 실력으로 막내다. 지켜보는 저 선수들은 특 1부부터 1부, 2부, 3부, 4부~ 죄다 나보다 고수님들.

"네 차례야!"

내가 도착하니 이제 막 1번 선수로 영삼 형 게임이 끝났다고 했다. 나는 헐떡이며 2번 선수로 나가 랠리를 시작했다. 단체전 방식은 '3 단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2승을 거두면 3번째 게임은 열리지 않는다. 1승 1패가 되었을 시만 세 번째 선수가 나선다. 1번 영삼 형이 이겼다고 했다. 내가 이기면 2승, 곧바로 다음 라운드 진출이다.


나는 처음 보는 얼굴과 탁구대 앞에 섰다.

실력이 어느 정도 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지역대회를 많이 다니노라면 매번 만나는 얼굴을 만난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들 처음 나서는 입장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다. 모르는 이와 몸풀기 랠리를 하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서브를 기다린다. 거기에 수많은 고수들, 본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1탁이다.


다시금 떨린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 는 조바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든다. 나는 낮출 수 있는 최대로 자세를 낮춘다. 낮춰서 상대를 노려본다. 서브가 들어온다. 커트인가? 걸어야 한다. 내 사전에 커트 리시브는 이미 사라졌다. 걸 준비를 한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멋져야 한다는 생각. 모험이다. 돌아서서 드라이브를 건다. 아아 서브가 낮고 짧다. 아쉬운 탄식이 나온다. 탁구대 밖으로 아주 살짝 나오는 길이. 아아 너무 짧아. 그렇지만... 그 틈새를 타 백스윙하여 라켓을 슝 휘두른다. 스윙 궤적은 탁구대 대각 아래서 출발하여 마치 뱀처럼 쉭! 바람소리 내며 탁구대 위를 감싸 오른다. 낮은 바운드지만 날름 공에 침 발라 올려 네트 위로 넘긴다. 됐다. 살았다. 드라이브 리시브 성공이다. 바람 소리를 띤 공은 상대의 범실을 유도한다. 득점이다. 지켜보는 영삼 형과 병수 형이 환호성을 지른다.

"나이스!" "잘했다!" "멋지다!" "오늘 왜 이래? 미쳤다!"

전율이 온다.

짜릿하다.

짜릿하다는 말만큼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이거구나. 이 맛이구나. 지켜보는 관중들. 응원받는 선수의 마음. 힘이 났다. 예전 같으면 도전 앞에 망설이다 안전을 택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비는 없다. 상대가 공격하면 따라가 기어코 받아낸다. 받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맞드라이브, 맞스매싱을 날린다. 그 어떤 공격이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달려간다. 잡아낸다. 도전한다. 모험을 건다.


상대가 짧게 네트 위 살짝 넘게 공을 보내온다. 간신히 넘은 공을 루프 드라이브로 넘긴다. 루프는 좀 더 바운드가 큰 상회전 공으로 돌아온다. 찬스다. 나는 완전히 옆으로 몸을 눕혀 최대한 강하고 파워풀한 스매싱을 때린다. 얼마나 세게 휘둘렀는지 끝 스윙 뒤 몇 바퀴나 제자리 돌기를 할 정도다. 마치 코를 잡고 빙글빙글 도는 '코끼리코 돌기'를 하는 것처럼 돈다. 공은 정확히 상대 탁구대를 맞고 득점된다. 공이 깨질 것처럼 타~악! 소리마저 명쾌하다. 전율과 쾌감. 나는 코끼리코 돌기를 하다 넘어질 것처럼 비틀댄다. 또다시 환호성이 터진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그냥 적당히 쳐도 득점인데 뭘 그렇게까지 세게 치냐고 영삼 형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데 나도 뭐가 씌었는지 흡사 한구한구에 혼을 바친 것만 같았다. 관중의 힘, 응원의 힘 때문에 일종의 쇼맨십이 아니었나 싶다. 지켜보는 이들이 나보다 고수라는 생각에 어지간히 플레이해서는 그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는 염려도 한몫했으리라. 어떻게 하면 어필이 될까. 어떤 쇼맨십으로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할까. 기왕이면 멋지게 이겨야 하는데 하는 압박감, 긴장감, 쇼맨십, 쇼타임으로의 발전.

혼자가 아니니까 여러모로 단체전은 즐겁다.



두 번째 팀을 만났다.

그 팀의 누군가가 부탁하듯 말했다. 두 번째 게임에 2대 0 승패가 확정되더라도 세 번째 게임까지 하자고 제안해왔다. 우리는 계속 1번 영삼 형, 2번 나, 3번 병수 형 시스템으로 갔다. 오케이 했다. 우리 팀은 3대 0으로 완승했다.


세 번째 게임 때 드디어 개인전 4강에 든 고수가 나타났다.

펜홀더 치는 김홍규 님이다. 대략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르신이다. 김홍규 님은 앞서 우리 시 디비전에서 한번 맞붙어본 상대다. 그때 영삼 형이 졌었다. 영삼 형을 꺾은 자라면 일단 내 기준 고수다. 김홍규 님은 오늘도 조금 전 개인전 4강에서 규옥이와 게임을 치렀다. 물론 규옥이가 이겼지만 김홍규 님도 보통이 아니다. 역시나 4강까지 갔구나. 문제는 김홍규 님이 과연 몇 번으로 나설까 였다. 우리 팀은 김홍규 님을 피해야 했다. 머리를 굴렸다. 서로가 보이지 않게 대진표를 작성했다. 우리는 망설이다 그냥 지금껏 해온 대로 하자고 했다. 1번 영삼 형, 2번 나, 3번 병수 형이다.

상대팀이 오더를 펼치는데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김홍규 님이 3번이었다. 김홍규 님도 웃으며 "아이고 대진표를 잘못 짰네" 했다. 김홍규 님은 "어쨌거나 우리 팀 1, 2번 중 1승만 하면 좋겠는데"라며 팔짱을 끼고 게임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1번 영삼 형이 승리했다.

나는 50대 초반의 아주 노련해 보이는 분과 2번째 게임을 했다. 노련해 보이는 이 분은 앞서 디비전에서도 뵈었는데 탁구 경력이 엄청 오래되어 보였다. 일종의 머리 좋은 분석가, 라고나 할까. 실력보다는 전략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데 자꾸 그분의 서브를 놓치고 3구를 얻어맞았다. 편안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1세트를 내줬다. 영삼 형과 병수 형이 불안한 눈으로 봤다. "너 왜 그래 인마! 파이팅!" 나도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편안하다고 만만히 봤는데, 나보다 경기력이 떨어진다고 봤는데 실제 게임에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분의 나를 파고든 패턴에 자꾸만 휩쓸렸다. 2세트도 열세로 뒤지고 있었다. 뭐가 문제일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알 수 없었다. 위기다. 그래, 위기가 오면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전부를 걸자. 그러려면? 바로 드라이브 리시브다. 나는 다시금 모험을 걸어 돌아서기 시작했다. 드라이브 회전을 늘려 루프로 리시브했다. 루프로 보내 4구 강타를 보냈다. 나만의 시스템도 가동했다. YG 서브 모션으로 통통 튀는 공을 보낸다. 똑같은 높이로 2구가 돌아온다. 그러면 3구를 냅다 휘두른다. 스매싱이다. 조금 위험은 있지만 의외로 꽤 잘 통하는 나만의 3구 시스템이다. 그리고 성공하면 기선제압의 효과도 크다. 강타로 득점하는 기분. 스매싱으로 이기면 그만큼 기분이 상쾌할 수 없다. 거기에 민볼 드라이브가 꽂히면? 상대는 스매싱 박자를 기다리고 있다가 움찔, 주춤하다가 받아내지 못한다. 민볼 드라이브는 스매싱보다 느린 박자지만 일종의 페인트 모션이 들어가 있어 움찔하게 만든다. 주춤거리다 정신 차려보아도 상회전이 많이 걸려서 바운드 후 종속이 빠르다. 빠르기에 공의 변화도 심하다. 거기에 바운드 높이도 낮게 깔린다. 그제야 내 패턴으로 게임을 이끈다. 내 패턴대로 되면 랠리도 내가 좋아하는 박자로 진행된다. 랠리 박자가 익숙해지면 스매싱이든 드라이브든 연습한 대로 구사된다. 그렇게 나는 3대 1로 역전했다.



우리 팀은 4강에 안착했다.

이기면 결승이 기다린다. 상대팀에는 공포의 장재민(6부)이 있다. 앞서 디비전에서 장재민은 나, 영삼 형, 태준을 모두 꺾은 강자다. 장재민 외 2명도 쉬워 보이진 않았다. 앞서 장재민과 짝지어 나왔던 6부 한 분(예의 바른 분)과 왼손 펜홀더(처음 보는 분)가 팀원이다. 6부 예의 바른 분은 서브가 좋다. 디비전에서 만났다. 어지간하면 서브를 타지 않는 영삼 형도 서브를 탈 만큼 서브가 희한한 변화가 있다. 예의 바른 분은 서브득점을 하고서 매번 "죄송합니다"라며 꾸벅 인사했다.


먼저 순번을 짜야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댔다.

"장재민이 오더에 몇 번 쓰는지를 봐야 해!"

장재민이 몇 번째 순서인지가 관건이었다. 그것이 승부처였다. 만일 장재민과 우리 팀 병수 형이 만나면? 우리 팀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장재민이 영삼 형이나 나랑 만나게 된다면? 우리가 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만큼 장재민은 확실한 1승 카드다. 실력을 100점 만점 숫자로 나타낸다면, 장재민은 90점, 나와 영삼 형은 80점 정도 레벨이다. 물론 개인전이라면 후회 없이 전력을 쏟아부어 후회 없는 한판 도전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단체전은 다르다. 개인보다는 단체의 승리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상대의 필승카드를 잠재워야 한다.

영삼 형, 병수 형과 나는 눈치를 보았다.

"야! 언제 'ㅈ'를 쓰는 거 같은지 살펴!" "몇 번인 거 같아?" "빨리 봐요, 몇 번이에요?"

우리는 비굴했다. 장재민의 'ㅈ'을 언제 쓰는지 보려고 저쪽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우리끼리 눈이 마주쳐 "에이~ 그냥 소신껏 하자"라며 금세 커닝을 포기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더가 승부처라니!


결국 우리는 변화를 줬다. 1번 영삼 형, 2번 병수 형, 3번 나로 정했다. 이것은 저쪽 팀이 2번으로 장재민을 내세우지 않을까 하는 짐작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2승이면 끝나는 룰이니 2번에 으레 에이스가 등장하기 마련. 우리는 확률에 패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패를 깠다. 아뿔싸! 장재민은 3번이었다. 이제 승리하려면 1번 영삼 형, 2번 병수 형이 연달아 승리하는 수밖에. 나는 자신이 없었다. 1, 2번 게임이 두 탁구대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나는 앞 탁구대 영삼 형 게임에 심판으로 앉았고 장재민은 뒷 탁구대 병수 형 게임에 심판으로 앉았다. 내가 중간중간 돌아볼 때마다 장재민과 눈이 마주쳤다. 영삼 형과 병수 형 둘 다 이겨라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싶었지만 일단 심판 보는 입장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게임이 진행되자 2층 응원석에 있던 우리 탁구장 사람들도 어느새 내려와 가까이서 응원했다. 그 덕인지 병수 형은 내리 2세트를 주고도 2세트를 따라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1승 1패라도 해야 내게 기회가 올 텐데. 기회가 오면 80점으로 90점에 비벼볼 텐데, 했다.


영삼 형은 듀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석패했다. 상대 6부의 예의 바른 서브를 탄 게 패인이었다. 이어서 병수 형은 결승 5세트에서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돌아보며 "형! 평소 나한테 넣던 그 서브를 넣어요!"라고 속삭였다. 나한테 넣던 빠르고 긴 커트 서브. 그것을 상대가 커트로 받으면 회전량 많은 드라이브 걸기. 그것이 병수 형의 필승 시스템이다. 우리 탁구장 사람들 전부가 응원했다. 모든 게 병수 형의 어깨에 달렸다. 병수 형 얼굴이 시커메져갔다. 병수 형은 까만 얼굴로 알았다는 듯 고개 끄덕이고는 그 서브를 넣었다. 몇 번 통했으나 금세 간파당했다. 5세트 듀스. 12대 12. 병수 형의 얼굴이 너무 까맸다. 까만 바탕에 두 눈만 반짝였다. 안경 속 반짝이는 눈동자. 어쩐지 피곤해 보였다. 내가 쳐다보니 '미안, 난 여기까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내 병수 형은 장렬히 패배했다. 우리 팀은 2승을 먼저 헌납해 세 번째 게임은 자동 사라지게 되었다. 나와 장재민은 앞뒤로 나란히 앉아 서로를 째려만 보다가 맥없이 승부가 나버렸다. 장재민과 어떻게 승부해야 하지? 쥐어짜던 고민도 사라졌다. 장재민의 팀은 단체전 공동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공식 3위.

우리 팀 성적이다.

단체전은 상장과 상금이 있다.

그래, 3위가 어디더냐!

얼쑤~!

영삼 형, 병수 형과 나는 환호했다. 얼싸안았다. 소리 질렀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만족했다.



멀리 체육관 한쪽에서 단체전 마지막 게임이 펼쳐지고 있었다. 

개인전에서 공동 우승한 성준 형, 규옥의 팀이 4강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기면 공동 우승, 지면 공동 3위다. 2게임이 진행 중인데 규옥의 상대는 박순성이었다. 박순성은 개인전(8강전)에서 내게 3대 0으로 진 선수다. 나는 규옥에게 개인전(4강전)에서 졌다. 규옥은 나를 이기고 김홍규 님을 이기고 공동 우승했다. 성준 형은 우승후보 정병중을 누르고 공동 우승했다.


알아보니 1게임에서 태준이 졌다. 규옥은 박순성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규옥이 이겨야 1승 1패 동률이 되어 세 번째 게임이 진행될 터였다. 세 번째 게임은 정말이지 200% 확실한 카드 성준 형이 기다리고 있기에, 규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해야 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규옥을 응원하는 우리 탁구장 사람들 열댓 명. 박순성을 응원하는 그쪽 탁구장 사람들은 무려 이삼십 명. 응원하는 인파 규모가 달랐다. 박순성이 득점할 때마다 체육관이 떠나가도록 응원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자아~~~!" 박순성은 득점마다 허리까지 제치며 괴성을 질렀다. 그러면 응원하는 인파가 "와아아~~~!" 하고 맞장구를 쳤다. 반면 규옥은 자꾸만 무거운 땀을 흘렸다. 득점해도 파이팅 소리가 작았다. 규옥이는 착하다. 이겨도 조그맣게 "앗!" 이런 소리만 낸다. 큰 소리는 상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규옥이 궁지에 몰렸다. 규옥의 얼굴 표정이 말했다. '내가 이겨야 하는데 나만 이기면 우리 팀이 승리하는데. 내 뒤 성준 형에게 바통을 이어줘야 하는데.' 압박이라는 이름의 귀신들이 규옥의 등에 올라타고 올라타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3대 2로 졌다.

우리 탁구장 출신 c부 단체전 a팀과 b팀 둘 다 공동 3위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회식.

우리 탁구장 출전 선수들이 모였다. 단체전 입상으로 딴 상금을 모두 회식비로 냈다. 거기에 십시일반 찬조를 보태 회식비로 충당했다. 나는 처음 나간 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 두 장의 상장을 받았다.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 달여 시간이 지난 후 지난 기억을 떠올려 대회 경험을 기록해본다.

이제 두어 달 뒤 3월이면 또다시 새로운 대회 일정이 시작될 것이다.

무사히 대회가 열린다면 재미난 추억이 쌓이겠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탁구는 섬세한 운동이다.

아주 조그만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정말 미세하게 깻잎 한 장 차이인데도 부수로는 두세 부수 차이 나기도 한다. 단지 서브를 못 받을 뿐인데도 그 서브를 받아낼 때까지 단 한 번 이기기 힘든 게 탁구다. 커트인 줄 알고 라켓을 눕히면 여지없이 너클로 공이 붕 뜨고, 너클인 줄 알고 라켓을 세우면 영락없이 네트에 처박힌다.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커트 너클 구분이 안 된다. 공을 봐도 모른다. 그렇담 무엇을 봐야 할까? 무얼 봐야 할까요? 물어보고 물어본다. 그러면 이런 대답이 들려온다. 사람을 봐야 한다. 감각을 봐야 한다. 임팩트가 있으면 커트고 없으면 너클이다. 어떤 이는 그마저도 감춘다. 임팩트 넣는 척 라켓을 휘두르다가 너클을 보내기도 한다. 너클을 보내는 척 커트를 보낸다. 그게 기술이다. 구력이고 실력이다. 이겨내야 한다. 몇 번이고 두드려 맞아야 비로소 커트를 커트로 너클을 너클로 볼 수 있다. 어쩌면 몇백 번 몇천 번 몇만 번 얻어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멘털 게임.


그게 탁구다.




아직 탁구를 잘 모르는 초보가 탁구라는 세계를 접하고서


탁구 치는 이들 속에 섞여 치고받는 과정에서

첫 대회를 치르고서

나름 느낀 바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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