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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Oct 27. 2022

우리 시 공식 탁구대회(1)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느낌




알람이 울린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소리는 어둠을 뚫고 귀에 꽂힌다.

알람벨은 과거 20세기 아날로그 탁상시계 소리다. 어젯밤 폰에서 검색하여 어렵사리 찾았다. 이 소리가 아직 있구나. 내가 중학생일 때 들었던 소리. 알람이 필요한 시기 처음 들었던 소리. 무려 삼십 년 전 아련한 소리. 그리운 소리. 그렇지만 알람이라는 태생적 한계. 


띠디디디~ 띠디디디~

무거운 어둠을 깨고 들려오는 소리. 오래된 소리. 그러나 마냥 즐기며 누워있을 수 없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시간이 되었다. 아침을 더는 늦출 수 없다. 오래전 잠재의식을 콕 집어 들추는 소리. 

7시다. 

평일이라면 벌써 일어났을 시간.

오늘은 토요일이다. 

토요일은 늦잠 자는 날이어서 느낌상 7시는 어쩌면 평일의 5시에 해당할지도.

시합날이다. 

대회날이다. 

중요한 날이 왔다.


일어나 알람을 끄고 화장실로 갔다. 느적느적 양치하고 거울을 봤다. 영웅이 될만한 얼굴인가 하며 봤다. 준수하다. 깨끗해 보였다. 주목을 받아도 될만한 얼굴일까 하면서 안심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주방에서 블랙커피를 타고 믹스커피도 탔다. 한 모금씩 번갈아 마시며 서서히 의식을 깨웠다. 아침을 먹을까 하다가 먹지 않기로 했다. 평소 먹지 않던 아침을 먹다가 혹여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다. 뭐든지 순탄해야 한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 어떤 날보다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 돌아보니 아내와 딸은 아직 한밤중이다. 나는 살금살금 짐 챙겨 대문을 나섰다. 시동을 걸고 믹스 한 모금, 블랙 한 모금 마시며 탁구장으로 갔다. 


7시 반.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낀 시각. 평소 같으면 주말 아침 늘어지게 잘 시각. 동네에 인적이 드물다. 깨어있는 이라곤 나뿐인가? 

탁구장 건물 앞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태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하고 태준이 인사했다.


"그래, 컨디션은 어때?" 내가 물으니


"어휴, 어제 아들 학원 친구의 원장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해서 코로나 검사받고 지금 문자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태준이 말했다.


태준은 주차장에서 탁구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렸다. 

그러던 중 때마침 결과 문자가 왔고 음성이라 했다.

건물 안 탁구장에 들어서니 곧바로 영삼 형이 왔고 효진 씨도 왔다. 모두 대회장에 가기 전 삼십 분 정도 몸풀기 위함이었다. 

탁구화를 신었다. 아직 몸은 굳어있다. 테이블 앞에 하품을 하며 모였다.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거다.


"참, 다들 열심히네요"라고 효진 씨가 말했다.


"그러게, 새벽 탁구는 처음인데 전부 열정이 넘쳐"라고 영삼 형이 답했다. 그들 나름 소박한 마음인 거 같아 기특해 보였다. 누가 시키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 도전하는 정신. 하고자 하는 의지. 하고자 하는 열정. 존경스러웠다. 나이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지만 탁구 하나만을 위해 기꺼이 나섰다. 


나는 영삼 형과 랠리 했다. 랠리가 투박하니 잘 이어지지 않았다. 공기가 차가웠다. 라켓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른 아침, 춥고 긴장되었다. 

8시가 되자 나는 탁구장을 빠져나와 대회가 열리는 실내체육관으로 갔다. 일찍 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다. 부탁받은 돗자리 3장을 가져가 실내체육관 관중석 2층 한쪽에 펼쳤다. 모두 160여 명이 출전하는 시 대회에 우리 탁구장 인원만 해도 15명이다. 

8시 20분. 

탁구장 사람들이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서로 간 덕담을 주고받았다. 

8시 30분. 

안내방송이 나왔다. 남자 c부 예선전을 시작하라고 했다. 남자 c부는 지역 부수 6, 7부가 해당된다. 최하 부수이지만 최근 2년간 대회가 열리지 않아 남자 c부에 고인물이 얼마나 많을는지 염려가 되었다. 이를테면 탁구장 부수 4, 5, 6부도 공식 대회에서는 7부 즉 남자 c부로 출전한다. 공식적으로는 6, 7부지만 실제 실력으로는 5, 4, 3부까지 바닥을 알 수 없다. 2년간 무난히 대회가 열렸더라면 진즉에 승급했을 고수들이 많을 터. 그래서 두려웠다. 그래서,


예선 탈락하지 말자, 가 오늘의 내 목표. 

예탈 하면 탁구장 사람들에게 얼마나 망신스러울 텐가. 걱정이 되었다. 걱정이 시작되자 가슴이 마구마구 떨렸다. 그간 얼마나 열심히 쳤던가. 나랑 만나는 선수는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남자 c부는 총 22조까지 편성되었다. 20조까지는 3명씩이고 21, 22조는 2명씩 도합 64명이다. 3명까지 있는 20조까지는 조당 1명씩 예선 탈락하게 된다. 조 1, 2위는 살아남는다. 21조와 22조는 2명뿐이라 한게임만 치러 1, 2위를 가리고 예탈이 없다. 결론적으로 예탈은 20명이다. 


나는 6조다. 

우리 조는 나포함 3명이다. 3명이 돌아가며 게임해 1, 2위가 토너먼트에 진출하고 3위는 예선 탈락한다. 

3위가 되면 어쩌나. 운이 없어서 초반에 강자를 만나게 되면? 너무 긴장해 평소 실력이 안 나온다면? 그대로 3위, 예탈이 될 것이다. 어떡하지? 지켜보는 이가 많다. 가족들, 친구들, 탁구장 사람들 앞에서 고개 들 수 있을까? 

예선 대진표는 그야말로 운이다. 그저 같은 구장 사람만 따로 떨어뜨려 놓았을 뿐 부수나 실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실력을 고려하고 싶어도 아무런 데이터가 없으니 그냥저냥 섞었을 것이다. 나는 하늘이 도왔는지 얼마 전 치른 디비전에서 만났던, 쉬운 형이랑 같은 조에서 만났다. 


(너무 좋아서)

"어이쿠! 반가워요, 반갑습니다"라고 내가 꾸벅 인사하니

"어? 어어~? 오잉? 그때 그 동생이구만" 하고 떨떠름한 반응이 돌아왔다. 

(쉬운 형은 반가운 듯하면서도 아닌 듯 찰나에 여러 표정이 섞인 채 인사를 받았다.)

"정말 반가워요, 이렇게 만난 건 운명이에요"라고 내가 과하게 소리치자

"그래, 운명이다, 운명! 젠장"이라며 쉬운 형은 함박 미소를 지었다.


얼굴을 보고 금세 알았다. 

예탈은 면하겠구나. 우리는 만나 함성을 질렀다. 나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고 형은 반가움과 뭔가가 교차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오십 대 후반 점잖은 스타일이다. 쉬운 형은 오십 대 초반이라고 했다. 우리는 곧바로 통성명을 했고 형님! 동생! 잘 부탁합니다! 하고 인사 나눴다. 쉬운 형이랑 나는 첫 게임을 했다. 점잖은 분이 심판을 봤다. 삼파전으로 둘은 게임하고 하나는 심판을 보는, 즉 우리끼리 납득해야 하는 시스템. 우리끼리 게임을 하고 우리끼리 기록지에 기록을 써 제출한다. 최종 승자는 빨간 소쿠리에 공과 기록지를 담아 간다. 다들 이런 방식으로 하는구나,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첫 게임.

높이 로빙을 띄우고 저 멀리 뒤로 물러나 수비만 하는 (쉬운) 형. 나는 웃으며 스매싱을 날렸고 형은 "아놔! 전보다 더 강하잖아!" 하면서 장렬히 쓰러졌다. 

겉으로는 웃으며 강타를 날렸지만 공식 대회 첫 게임이라 그런지 1세트에서는 손이 덜덜 떨렸다. 다리도 떨렸고 가슴도 떨렸다. 떨리는 마음은 불길처럼 불안한 상상을 확장했다. 혹시 실수하면 어쩌지? 혹시 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1세트에서 로빙볼에 몇 번이나 실수했다. 실수 때마다 맞은편 (쉬운) 형은 기합을 불끈 내지르며 자극했다. 어쩌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쉬운 형이잖아. 힘 빼고 때리면 되잖아. 할 수 있다. 실수하지 말자. 가볍게 살짝 때리면 된다. 아니, 스매싱은 아니야. 아무리 높아도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라이브로 날려야 해. 팔에 힘 빼고 드라이브 걸 수 있는 높이에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자. 몸을 비틀며 살랑 드라이브를 날렸다. 형은 스매싱을 기다리고 있다가 드라이브에 타이밍을 놓쳤다. 나의 비트는 동작에 움찔거렸다. 그제야 긴장이 가셨다. 


나는 형을 3대 0으로 이기고, 이긴 사람이 계속 플레이한다는 관례를 따라 곧장 오십 대 점잖은 분이랑 두 번째 게임을 했다. 조금 까다로웠지만 점잖은 분 공의 속도가 빠르지 않아 비교적 쉽게 적응, 상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3대 0으로 이겼다. 응? 엉겁결에 예선 통과. 엉겁결에 조 1위. 정말? 벅찼다. 놀랐다. 이런 거구나? 난 이런 위치로구나? 정신이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탁구장에서 탁구 할 때와 달리 실내체육관에서의 탁구공은 그 느낌이 너무 달랐다. 처음에 나는 탁구공이 바뀐 줄 알았다. 같은 타그로 제품인데 어떻게 된 거야? 뭐야? 왜 이렇게 느려? 체감상 차이가 엄청났다. 평소 쓰던 절반 정도의 무게. 스매싱이나 드라이브를 날려도 느리게 가는 느낌. 내가 날린 공이 새털처럼 가벼이 붕붕 떠 가는 듯한 가벼운 위력. 상대가 때린 공도 천천히 날아왔고 내가 때린 공도 느리게 갔다. 탁구장과는 완전히 다른 탁구. 슬로비디오 같았다. 


이윽고 나는 심판석에 앉았다. 두 분이 게임을 했고 점잖은 분이 승리했다. 쉬운 형은 그대로 예선 탈락했다. 형은 약간 독특한 면이 있는데 지더라도 한점 한점 이길 때마다 파이팅을 크게 외쳤다. "아자아~!" 목소리가 우렁찼다. 스물다섯 개의 탁구대가 놓인 체육관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고함이 컸다. 그렇지만 졌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 형은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몇 초간 예선 탈락의 어둠이 얼굴을 스쳤지만 금방 웃는 얼굴로 "날 이겼으니 우승해!"라고 북돋아줬다. 


나 1위(2승)

점잖은 분 2위(1승 1패)

쉬운 형 3위(2패) (예선 탈락!)


나는 빨간 소쿠리에 탁구공과 기록이 적힌 용지를 담아 본부석에 제출했다. 예선 1위로 본선 진출!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1위다. 이제 쉬운 상대는 없을 테지. 


점점 실감 났다. 나의 탁구 대회 시계도 가기 시작한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알람이 울리면, 이제 연습은 그만, 마침내 나는 상대를 만나 게임한다. 이긴다. 점점 앞으로 위로 나아간다.


드디어 본선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64명 중 20명이 예선 탈락하고 이제 44명이 남았다. 


한게임이라도 지면 그대로 끝, 이기면 다음 라운드 진출이다. 대회본부에서는 토너먼트에 진출한 44명을 다시 3명씩 짝지어줬다. 자투리는 조 1위 부전승이다. 어떤 방식으로 3명씩 토너먼트 대진을 꾸렸을까? 예선 성적은 토너먼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예선 성적 조 2위 출신 2명과 조 1위 출신 한 명씩이다. 예선에서 1등으로 진출한 것과 2등으로 진출한 것의 차이는 크다. 예선 2위는 마치 출신성분을 따지듯 성적이 발목을 잡는다. 반면 1등은 큰 혜택을 받는데 보다 쉬운 상대, 그러니까 2위 출신과 만나게끔 된다. 정리하자면 조 2위 2명이 먼저 경기하여 승자가, 부전승으로 기다리고 있는 조 1위와 게임해 올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예선이라고 설렁설렁 게임했다가 자칫 2위로 떨어지면 그 영향이 본선 토너먼트에까지 이어져 초반부터 강자를 만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2층 관중석.

돗자리에는 가방과 짐, 물병 기타 초콜릿 과자 등 먹거리가 자리했다. 

계단식 관중석에는 금방 예선전을 치른 이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예선에서 떨어진 사람 없죠?"

내가 물으니, 여성 1분이 예탈 했다고 했다. 그 외 전원 본선에 진출했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와 호각인 영삼 형과 태준이 예선 2위로 통과했다고 한다. 더 불행한 건 본선 1차전(44강)에서 영삼 형과 태준이 서로 만난 것이다. 아니 우리는 같은 구장 출신인데? 이렇게 빨리 만나면 어떡해? 각조 2위는 서로 승부해 이기면 조 1위 출신과 대결한다. 따라서 조 1위는 부전승의 혜택을 누리는데 비해 조 2위는 다른 조 2위와 한 번 더 게임해야 하는 중압감을 피할 수 없다. 한판이라도 지면 그대로 끝나는 룰. 이것이 이른바 토너먼트의 냉정함. 지면 모든 게 끝나는 압박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우리 탁구장에서 남자 7부 최강자 자리를 놓고 영삼 형, 태준, 내가 각축전을 벌였다. 토너먼트에서 우리끼리는 만나지 말자고 빌었는데 첫판부터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 남자 c부(6,7부)에 참가하는 우리 탁구장 선수. (실력순)

1. 구장 4부 성준 형(공식 7부) (이른바 20년 차 고인 물 7부)

2. 구장 6부 규옥(공식 7부) (젊은 피, 5년 차 고인 물 7부)

3. 구장 7부 나, 영삼 형, 태준(공식 7부) (치고받고 3년 차 고인 물 7부)

4. 구장 7부 병수 형(공식 7부)(5년 차 고인 물) (구장에서 몇몇 고인 물 8부와 핸디 없이 치기도 함)


그 외 우리 탁구장에는 7부 8부가 무수하다. 많지만 구장 7부 최강자는 나, 영삼 형, 태준이다. 구장 4부 성준 형과 구장 6부 규옥이는 별개로 한다. 그들은 실제 타 탁구장 출신 공식 4~6부를 압도한다. 다만 코로나 시국 때문에 여차저차 진하디 진한 고인 물이 된 것이다. 



영삼 형은 

가벼운 스텝으로 연속 드라이브를 힘차게 날리는 것이 장점이다. 형의 드라이브는 대부분 라인 끝에 떨어져 강자들에게, 여성들에게 잘 통하는 편이다. 시원시원한 스윙에 공도 시원시원하게 잘 들어가, 아무리 고수라도 사뿐히 받아내는 이가 드물다. 일단 드라이브 스윙이 시작되면 재차 삼차 연속 드라이브도 호쾌하다. 그리고 수비 또한 일품이다. 반사신경이 빨라 웬만한 강타는 전부 따라가 받아낸다. 리시브도 좋다. 실제 우리 구장 자타공인 7부 중 최강자라 할 수 있다. 다만 대회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약점이다.


태준은 

앞서 몇 달 전, 디비전에서 그만의 강렬한 파워 드라이브로 대회장 전체를 들썩이게 한 이력이 있다. 디비전 대회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넋 놓고 그의 드라이브만 지켜봤다. 보면서 침 흘리며 감탄했다. 이른바 파워 드라이브 쇼타임이랄까? 파워 드라이브가 꽂히면 지켜보는 이들이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저게 7부의 드라이브야?" 

"아냐 아냐 저건 3부, 2부, 1부보다 더해" 

"저런 드라이브는 본 적이 없어" 

우락부락한 근육질로 온몸이 강철처럼 단단하다. 그러면서도 쭉 빠진 몸매. 안경 낀 시야에서 나오는 섬세함. 드라이브를 걸 때마다 "우욱!" 하고 터져 나오는 괴성. 타 구장 6부들과 핸디 없이 치르는 디비전에서, 파워 드라이브 하나로 모든 시선을 끌었다. 

비록 지고 있더라도 한점 한점 천천히 따라간다. 커트 볼이든 민 볼이든 코스를 빼 강력한 구질로 보낸다. 우리 탁구장 고수인 특 1부, 1부, 2부, 3부, 4부들도 태준의 드라이브를 쉬 받아내지 못한다. 태준의 드라이브는 누구도 쉽사리 받지 못한다. 낮은 호선. 코스를 뺀 방향. 총알 같은 스피드. 힘, 무게. 모두 갖췄다. 

다만 약점이라면 파워 드라이브에 비해 다른 기술들이 부족한 편이다. 

태준은 평소 게임이나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지더라도 자신만의 기술 연마에만 신경 쓴다. 드라이브를 점검하고 백푸시 백드라이브를 다듬을 뿐이다. 자신의 맞수나 고수 하수와도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쩔 때면 9부, 10부에게도 진다. 우리 구장 사람들은 말한다. 태준의 본모습은 실전에서 나올 것이다. 실제 공식 대회에서는 다를 터다. 역시 다르겠지, 라고 짐작만 한다. 그러다 지난 디비전에서 한번 터졌다. 이 정도인가? 하고 우리 구장 사람들도 놀랐다. 

전에는 내가 태준과의 게임에서 3, 4세트에서 승리했다면, 요새는 꼭 5세트까지 가곤 한다. 내가 컨디션이 나쁜가, 어딘가 이상하다? 하고 갸웃거리다 겨우겨우 게임이 끝나곤 한다. 그걸 보면 태준은 본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게 틀림없다. 감춘다기보다 어쩌면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맞는 말일 테다. 듣기로 요즘은 힘 빼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영삼 형과 태준은 우리 구장에서 각기 멋진 드라이브로 강자들을 곧잘 잡는다. 

역으로 말하면 강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7부다. 자신만의 드라이브로 당당히 강자들을 물리친다. 객관적으로, 적어도 5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긴 세월, 얼마나 갈고닦았던가. 단지 대회가 없어 승급하지 못했다. 수많은 7부들 중 최강 자리를 놓고 나, 영삼 형, 태준이 다툰다. 3파전을 하면 할 때마다 결과가 뒤바뀌었다. 나는 그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싸우고 싸웠다. 지면 이기려 노력하고 이기면 계속 이기려 애썼다. 최근 2년간 대회가 없어서 탁구장에 새로 등록한 이들 대부분이 7부~10부다. 7부들이 고수들을 이겨도 7부는 7부다. 올라가야 할 7부가 대회가 없어서 올라가지 못하고 7부에 머물러 있다. 때때로 7부가 실력이 앞선다고 해도 상위 부수에게 핸디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실제는, 7부보다 못한 5부도 부지기수다. 그런 5부는 7부를 슬슬 피하기까지 한다. 7부가 5부를 3대 0, 퍼펙트로 매번 이겨도 5부는 5부고 7부는 7부다. 이것이 작금의 7부다. 




오후에 벌어질 단체전 얘기를 먼저 하자면, 

우리는 우리 탁구장 두 번째(세컨드) 팀이다. 나, 영삼 형, 태준 이렇게 세 명이 b팀을 짜 관장님에게 제출했다. 

"우리 세 명을 같은 팀으로 출전시켜 주세요." 

그러나 관장님은 우승후보 a팀에 한 명이 모자란다고 우리 b팀에서 한 명 차출한다고 통보해왔다. 우승후보 팀을 먼저 만들어놓고 나머지 b팀을 꾸리는 것. 그것이 관례라고 했다. 우리는 반대할 수 없었다. 우리 세 명의 실력은 비슷하다. 누가 가장 앞서있는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의논 후 막내 태준을 보냈다. 태준은 우승후보 a팀으로 뽑혀갔다. 우승후보 a팀은 성준 형, 규옥, 태준으로 정해졌다. 성준 형은 우리 구장에서 4부를 놓고 친다. 4부로 쳐도 거의 모든 게임을 승리한다. 그런 그가 공식전에서는 7부다. 성준 형은 작년 (5~7부 디비전)에서 핸디 없이 우승한 경력이 있다. 규옥이는 우리 구장에서 6부를 놓고 친다. 6부로 치는 규옥이가 밀리는 상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누구에게 밀릴까? 우리 구장 최강자 공식 특 1부와 공식 4부 펜홀더 그리고 성준 형뿐이다. 규옥이는 올해 디비전에서 우승했다. 최강 중의 최강인 성준 형과 규옥이, 그리고 파워 드라이브로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태준이. 그것이 바로 7부 단체전에 출전하는 a팀이다. 수많은 팀 중에서 단연 우승하리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면 b팀은? 

영삼 형과 나는 병수 형(7부)을 스카우트했다. 대회에 나갈만한 이들 중 단박에 떠오른 이다. 병수 형은 요즘 드라이브에 푹 빠졌다. 투박하지만 늘 열심히 드라이브를 건다. 예컨대 얇은 드라이브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오래된 전통 드라이브다. 라켓 각을 얇게 하여 회전을 많이 주는 드라이브다. 거기에 한방 스매싱이 일품이다. 병수 형의 3구 시스템을 보면, 백으로 길게 커트와 너클을 섞어 서브를 보낸다. 커트로 2구가 오면 짧든 길든 다가가 드라이브를 건다. 그게 잘 통할 때는 곧잘 강자를 잡기도 한다. 그런 병수 형을 우리 b팀에 넣었다. 단체전은 3 단식으로 2승을 먼저 하면 이긴다. 나, 영삼 형, 병수 형 이렇게 b팀이 오후 단체전에 출전한다. 




남자 개인전에서 영삼 형과 태준이 본선 1차전에서 만났다. 

영삼 형이 먼저 세트스코어 2대 1로 앞섰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대로다. 그런데 11시가 되자 대회 개회식을 한다며 진행 중이던 게임을 멈추게 했다. 개회식은 무려 삼십 분간 진행되었다. 시장, 의원, 대표의 인사말과 경품 추첨이 있었다. 그중 40만 원 상당의 화장품 상품권에 영삼 형이 뽑혔다. 이런 경사가? 또 40만 원 상당의 엑스레이 건강 상품권에 우리 팀 병수 형이 호명되었다. 경사가 연거푸? 그러한 경사 속에서 영삼 형의 어깨는 차갑게 식어갔다. 이어서 11시 반에 속개된 게임에서 태준에게 기어이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태준의 빠르고 코너웍 된 파워 드라이브를 막지 못했고 따라가지 못했다. 게임이 중간에 멈춘 탓에 다리가 굳어진 탓이다. 


이어진 본선 2차전(32강)에서 태준은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 명인 다른 탁구장 출신 정병중(6부)에게 패했다. 맞수인 영삼 형에게 전부를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전력을 다해 승리했지만 쉴틈도 없이 거대한 산이 앞에 섰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숨이 차 오를 수 없었다. (지난 디비전에서는 태준이 정병중을 꺾었다.) 역시 개인전은 대진운이 따라야 한다. 이렇게 우승후보인 영삼 형과 태준은 토너먼트 초반에 개인전을 마감해야 했다. 정병중은 최근 가장 많은 대회를 경험한 강력한 우승 후보다. 이따금 우리 탁구장에도 원정 와 게임 치르고는 했다. 


우리 탁구장 사람들이 경계해야 하는 타 구장 이름을 소개해본다. 

위에 영삼 형과 태준을 꺾은 정병중(공식 6부). 

앞서 우리 시 디비전에서 나와 태준과 규옥이를 모두 이긴 장재민(공식 6부). 

우리 탁구장 코치님과 탁구 생활을 같이 시작한 탁구 경력 30년 차 조현우(공식 6부). 

이러한 조현우와 같은 구장 젊은 피, 스피드 드라이브 유망주 박순성(7부)까지. 

그 외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지 않는 고인 물 고수들.




대진운이 거의 70%를 결정한다는 것을 병수 형이 몸소 보여줬다. 

병수 형은 2명뿐인 마지막 조로 배정받아 예탈 없이 1, 2위전만 치렀다. 한 게임 이기면 그대로 1위였다. 병수 형은 1위로 본선에 나가 다른 조 2위들의 게임을 심판 본 후 또 한게임을 이겨 16강에 들었다. 우리 탁구장에서 실력으로 보면 영삼 형과 태준, 나에게 다소 열세인 병수 형이었다. 그러나 영삼 형은 44강에서, 태준은 32강에서 탈락했으니 대진운이 크게 영향을 끼치는 걸 엿볼 수 있다. 물론 대진운이든 뭐든 그 모두를 압도하는 성준 형과 규옥이는 예외로 한다.



나는 조 1위로 32강에 진출해 다른 조 2위를 만났다. 

내 상대 분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병수 형과 같은 조 2위였다. 사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병수 형에게 진 조 2위 출신. 11시 반에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 분과 게임했다. 나는 3대 0으로 쉽게 이겼다. 살랑 쳐도 득점인데 몇 배의 힘을 쏟아부어 때렸다. 3세트 도합 5점도 주지 않았다. 어쨌거나 토너먼트 아닌가. 나보다 약자는 없다고 여겼다. 나와 상대하는 모두가 짐승으로 보였다. 한치의 틈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송구스럽다. 그분은 점잖은 분이었는데, 악착같이 승리만 추구한 것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어쨌거나 16강에 안착했다. 

여기까지는 나도 대진운이 좋았다. 2층 대기 장소에 가니 우리 탁구장 사람들이 응원하고 난리가 났다. 당연한 거지만 성준 형과 규옥이도 16강에 올라갔다. 얼핏 16강이라면 곧 만날 수도 있겠는데? 했다. 그래도 에이 생각하지 말자, 지금을 즐기자는 생각이 앞섰다. 우리 탁구장 사람들, 관장님, 형들, 누님들, 동생들이 잘했다며 신나게 축하해줬다. 

음료수를 너무 마셨나?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을 보다가 듣게 되었다. 화장실이든 어디 담배 피우는 구석이든 사람들 모인 곳에서 "성준과 규옥이를 피해야 해"라는 말이었다. 이미 타 구장 선수들도 성준 형과 규옥이를 경계하고 있었다. 마냥 웃겼다. 성준 형과 규옥이는 이미 우리 시, 탁구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인사였다. 탁구 좀 치는 이라면, c부(6,7부)라면 피할 수 없는 상대. 그런 이들이 나와 같은 구장이라니, 하는 자부심도 생겼다. 



점심을 먹고 16강전에서 병수 형은 30년 차 조현우(6부)를 만났다. 조현우 형님은 30년 차 펜홀더 선수다. 쇼트가 일품이라 쇼트로 이쪽저쪽 코스 빼는 기술이 화려하다. 대진운은 여기서 끝. 16강에서는 더 이상 대진운이 작용하지 않았다. 병수 형은 2층 대기 자리로 향했다. "여기까지라도 잘한 거야." 구장 사람들이 모두 축하해줬다. 


영삼 형과 병수 형은 오후 단체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개인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16강에서 유망주 박순성을 만났다. 

그와 함께 본부 앞에서 만나 빨간 소쿠리를 들고서, 배정된 테이블을 찾아가는 동안 옆모습을 흘끔 보니 뭔가 자신감에 가득 찬 저 얼굴이란. 나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의 표정에 조금씩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나도 여기까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피 드라이브. 스피드 드라이브. 

앞서 디비전에서 내가 조현우 형님에게 깨질 때 영삼 형은 젊은 피 박순성에게 졌었다. 영삼 형이 깨끗이 진 박순성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박순성의 드라이브는 날카롭고 빨랐다. 한번 꽂히면 반드시 구석으로 날아왔다. 따라가 받기에는 공이 너무 빠르게 날아왔다. 태준의 드라이브보다 무게는 가벼웠지만 그보다 더 빨랐다. 공교롭게 심판도 박순성의 지인인 듯싶었다. 박순성이 잘할 때나 실수할 때나 뭔가를 코치하는 모습이 신경 쓰였다. 박순성과 심판은 당연히 이긴다는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나는 1세트에서 끌려갔다. 나는 박순성의 8강 제물이 되고 있었다. 그의 서브를 커트로 받으니 3구 드라이브가 날카롭게 들어왔다. 너무 빠르고 코스를 빼 받을 수 없었다. 1세트 스코어 4대 8까지 끌려갔다. 이대로는 안된다. 고개를 드니 2층의 우리 구장 사람들이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체육관 한쪽 구석진 곳 어둠이 깃든 테이블에서 지고 있었다. 이대로 무너진단 말인가. 이기면 8강 진출인데 이렇게 지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승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소리 없이 무너지는 것도 생각지 않았다. 저놈의 서브를 어떻게 받아야 하나? 일단 커트로 받으면 안 된다. 커트로 받으면 무조건 3구 드라이브를 맞는다. 그렇다면 돌아서서 드라이브로 받자. 그러나 드라이브로 받으니 커트량을 몰라 네트에 걸리거나 오버 아웃이 되었다. 안정감이 없다. 6대 10이 되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제 다시 서브를 받아야 할 차례. 커트도 안되고 드라이브도 안되고 그렇담 뭘로?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박순성이 서브 모션에 들어갔다. 젠장, 어떻게 받을지 준비도 안되었는데 공이 네트 위를 넘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나는 살짝 튕기기로 받았다. 라켓면을 열어서 네트를 겨우 넘어가게끔 아주 약하게 받았다. 때려라, 때리면 받아주마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박순성의 3구 드라이브가 오버 아웃이 되었다. 이어진 서브도 튕기기로 받으니 박순성의 공이 네트에 걸렸다. 내가 넘긴 공은 너클로 변했다. 이렇게 리시브가 되자 상대의 3구 공격도 저지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 나는 1세트를 듀스로 가져가 이겼다. 나는 여러 서브를 섞어 한방이 아닌 연결 플레이로 갔고, 박순성은 끝까지 한방 플레이로 갔다. 결국 세트 스코어 3대 0으로 내가 이겼다. 그러자 박순성과 심판이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내가 빨간 소쿠리에 기록지를 담아 본부석으로 가져가는데 뒤에서 심판이 박순성에게 뭐라 뭐라 야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만 놀란 게 아니라 나도 놀랐다. 저 박순성에게 3대 0으로 깨끗이 이기다니. 첫 대회에서 8강 진출이라니. 8강까지가 입상이라고 했다. 나는 입상한 것이다. 64명 중 8강. 공동 5위 확보. 이제 4강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박에 우승을 생각하게 되었다. 


4강 상대가 설마 규옥이가 되리라고는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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