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곳, 모리의 집 (작가 최여원 12살)
나는 지금 학교에 갈 것이다. 어디 보자. 지금 시각이...
"8시 30분!"
'8시. 8시. 8시'
8시라고 마음속으로 외칠 때마다 크고 무겁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살아오면서 지각을 한 적이 진짜로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이상해. 왜 하늘은 아직 컴컴한 걸까! 오전 8시인데 서늘한 바람이 느껴진다. 왠지 졸리지 않는다. 몸에는 식은땀이 난다. 왜일까. 뭐 불안한 일이 있었나?
"슈우욱~지지~지지직~"
"여기"
"땡!"
뭐였지? 이상한 환청이 들린다. 마지막에 어떤 누군가가 "여기"라고 했다. 그 목소리는 여성스럽지만 힘없고 걸걸한 목소리였다. 나는 멍 때리고 입을 벌리며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왠지... 그리워, 익숙해"
그때
"야, 이거, 비밀이야. 비~밀. 안녕. 여기서 기다릴 거야. 조금만 조금만 기다릴 거야."
"슈~~"
"헉!"
무슨 소리일까? 아까 "여기"라고 말한 그 소녀다. 여자 목소리. 왠지 아까보다 더 창백하고 걸걸한 힘없는 목소리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될까?
그러면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그럼 이만~
오늘은... 너무 많이 지났다. 저번에 예고한 날짜보다 꽤 지났다. 거기다 '그 소리'도 밀려서 아주 그냥 죽을 맛이다. 요즘 숙제와 학원 때문에 너무 바빴다. 안 그래도 나는 게으른 경향이 조금 있기 때문에, 학교 학원 갔다 오면 힘이 빠진다.
나는 원래 하도 열정이 없고 눈도 아주 죽은 눈처럼 처졌기 때문에 더 하기 싫었다. 그래서
"이런 씨..." (욕 아닙니다 ㅠ)
"이런 쓸데없는 숙제들은 왜 계속 내주냐고?"
나는 학교 숙제들을 죽일 듯이? 노려다 봤다.
"아오, 정말 짜증!"
나는 평소 혼자 있을 때는 이렇게 투덜거린다. 이제 해야 된다. 6일이나 늦었으니... 어쨌든 밀려버린 이 글을 재빨리? 올리려고 한다. 요즘 너무 열정이 없었다. 나는 공부가 정말 싫다. 정말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수도. 이제 천천히 한 글자씩 적어 나갈 것이다. 시간은 없지만 시간 따윈 무시하고 천천히, 한 글자씩. (그럼 안 되나?)
그 그림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바닥엔 피가 떨어져 있고 위에는 '모리'의 얼굴 비슷한 것이 떠 있다. 표현하는 것이 나한테는 어렵다. 그걸 계속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그런데 바로 꺼야 했다.
"으헉!"
누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눈뜨고 앞을 봤다.
"어라?"
그것은 나를 보더니 "깨어났다!" 하고 말했다. 목소리가 많이 탁했다. 그것을 자세히 봐야 되는데 안경이 없다. 거기다 그 알 수 없는 홀? 은 무척 춥고 검은빛이었다. 점점 그 홀은 하얀빛으로 변해갔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이렇게 얇은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렇게 추울 줄이야. 계속 멍 때리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나 봐. 깨어나고 싶어"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깰 거야. 눈을 감았다.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때 띵! 거친 종소리가 나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한참 뒤 눈을 떴다.
"흠!"
뭐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엔 물색 하늘에 햇빛이 밝게 빛났다. 주변엔 온통 초원이다. 나무도 건물도 집도 사람도 동물도 없다. 거기엔 나랑 잔디 그리고 하늘 그리고... 누군가 뿐이다.
"누구지?"
나는 위를 올려다보며 입 벌렸다.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짜증 나고... 거대한... 모리... 였다. 그때부터 후회했어야 했다.
.
.
.
딸아이 안경을 맞추려고 안과에 갔다. 시력 검사를 하니 의사가 몇 번이고 재고 재면서 하는 말. 처음 치고는 눈이 많이 나쁘네요. 너무 늦게 오셨네요. 좀 더 일찍 맞춰줬어야죠. 어이쿠 미련 곰퉁이. 관심이 없으셨남? 진작에 와서 안경 맞춰줘야지 거 양반 나쁜 아빠네, 라고까지 들렸다. 움츠러들었다. 버틸 때까지 버텼건만. 결국은 지나버렸다.
나는 왜 진작에 오지 못했나.
딸아이에게 안경을 씌우기 싫어서였다. 얼굴에 거추장스러운 걸 올리기 싫었다. 짐을 지게 하는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마치 치과에 가는걸 내내 미루는 것처럼 미루고 미뤘다. 내가 썼던 안경. 아내도 쓰는 안경. 딸아이만큼은 자유로이 보고 깜빡이길 기대했는데 현실은 '너무 늦게 온' 거였다.
안과에서 적어준 숫자를 안경점에 갖다 주니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너무 늦게 오셨네요. 처음치고 시력이 안 좋네요. 비싸지만 제일 가벼운 안경테와 알을 골라 쓰게 했다. 딸아이는 어지럽다고 했다. 어지러운 걸 쓴 딸아이의 얼굴. 안경 끼기 싫어요, 라고 아빠 편을 들다가 이제는 안경 끼는 걸 받아들이는 아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태. 자기만의 세계가 열려 그걸 두 팔 가득 안고 있느라 두 팔 너머를 보지 못한다. 너머에 내가 아무리 시선을 맞추려고 애써보아도 딸아이의 눈은 나를 향하지 않는다. 두 팔 가득 자기만의 세계만 볼뿐.
현관 앞에 옷가지가 잔뜩 보였다. 아내가 서랍 정리를 했다. 집어보니 딸아이가 어릴 적 입었던 내복 여러 벌이다. 딸아이가 입고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던 내복. 내복만 보고도 딸아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엉덩이 통통. 등더리 통통. 뱃살 통통. 아빠 위에 올라타 통통.
어릴 적 살내음이 가득 밴 내복들. 이걸 왜 버릴까? 당장 입지 못해도 그냥 한구석에 두면 안 될까? 지금 버려야 하나? 미루고 미루면 안 되나? 보관하면 안 되나? 아내는 그냥 버리라고 했다. 나는 재활용 통 앞에서 머뭇거리다 에잇! 하고는 '그동안 고마웠다, 잘 가라' 하면서 쏙 넣었다. 넣었는데 통 입구 너무 어딘가에 걸려 내복은 밑으로 통 사라지지 않고 매달려 있다. 미안, 이렇게 버리는 게 아닌데, 하면서도 나는 끝내 무정히 돌아섰다. 사라지고 사라진다. 딸아이 어렸을 '적'들이 모습들이 사라지고 사라진다.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다.
안경 안 쓴 딸아이의 눈빛과
통통거리던 내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