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는 자그마한 항구, 적량항이 있고 적량항에는 마을버스 주차장이 맨 앞에 있다. 주차장 앞에 초등학교 스쿨버스가 선다. 스쿨버스 운전석에는 바로 나, 내 뒤에는 학생들이 앉아있다. 적량은 스쿨버스가 서는 마지막 정류장이다. 마지막이라서 아침에는 맨 늦게 타고 오후에는 맨 늦게 내린다.
수년 전 적량 정류장에 처음 나타난 아이.
1학년 신입생 꼬마가 커다란 가방과 여러 준비물이 든 봉투를 들고서 서 있다. 버스 문 너머로 처음 눈이 마주친다. 넌 누구니? 왜 혼자 있니? 우리는 서로 바라본다. 버스 문이 열리자 낑낑거리며 봉투를 든다. 나는 얼른 내려가 아이와 봉투를 이끈다. 조그만 아이. 동민이다. 까까머리 어린 학생. 동민이가 처음 버스에 오른다. 아직 유치원생 같은 앳된 얼굴. 발그스레한 볼. 버스에 올라
"안녕하세요! 기사 선생님!"
하고 힘차게 인사한다. 나는 명단을 보면서
"그래, 안녕, 네가 동민이구나"
라고 답한다. 동민이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동민이는 자리에 앉아서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운전석 쪽을 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풍경이다. 보호 탑승자 선생님이 동민이를 챙긴다. 동민이에게 안전벨트를 매어준다. 찰칵! 소리가 나자 버스 문이 닫히고 핸들을 돌린다. 정류장 왼쪽으로 향한다. 왼쪽으로는 가파른 오르막이 있다. 적량 고개다. 산길을 오르는 길. 꼬불꼬불 한참을 올라 능선을 넘어 응달진 산길을 내려간다. 조심조심 한참을 달린다. 구불구불한 길을 다 내려가면 비로소 주위로 양지바른 논밭이 펼쳐진다. 스쿨버스가 힘차게 내달린다. 버스에 학생들의 숨결이 가득 찬다. 차창마다 하얗게 성에가 낀다. 동민이가 차창에 손가락을 대 그림 그린다. 동그란 원. 양쪽 위 다시 조그만 원. 그리고 커다란 원에 콕콕 두 점. 아래에 오목한 입모양. 곰돌이다. 곰돌이 입이 완성될 즈음 스쿨버스는 학교에 도착한다. 동민이는 1학년 입학하는 날부터 혼자다. 혼자서 영차영차 가방과 준비물을 들고서 교실로 향한다. 나는 서둘러 내려서 동민이의 가방을 대신 든다.
"자, 가자, 들어줄게."
내가 가방을 들자 동민이가 내 손을 잡는다. 손잡고 교실로 들어간다. 나는 담임 선생님에게, 부모님이 바빠 혼자 왔다면서 가방을 건넨다. 동민이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내게 꾸벅 인사한다. 나는 옅은 미소로 손 흔들며 나온다.
나는 초등학교 스쿨버스를 운전한다. 더러 아이들이 기사님, 주무관님, 선생님이라 멋대로 부르는데 보통 기사 선생님이라 많이 불린다. 기사 선생님은 하루 중 아이들을 가장 먼저 만나서 가장 늦게 헤어진다. 아이의 학교생활 중 처음과 끝을 함께한다. 만날 때마다 안녕, 어서 오렴, 인사하고 내려줄 때마다 잘 가, 내일 보자, 주말 잘 보내 하고 인사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동민이는 재잘재잘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준다.
"기사 선생님, 있잖아요, 오늘 글쎄 제가 상장을 받았는데요"
하면 나는 놀라면서
"그래? 대체 무슨 상을 받았는데?"
라고 묻는다.
"효도상이요"
라고 동민이가 대답한다.
"뭐? 효도상을 받았다고?"
라고 물으니 동민이가 말한다.
"제가 동생도 잘 보살펴주고 엄마 아빠 오실 때까지 밥도 잘 챙겨 먹고 숙제도 열심히 하고 오시면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해서요"
나는
"어이쿠! 우리 동민이 정말 대단하구나, 학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장도 받고 정말 착하다, 에구"
라면서 호들갑 떨며 칭찬한다.
2년이 흐르고,
2년 전 12월 마지막 날.
겨울방학식 하던 날.
스쿨버스에 시동이 걸린다. 히터를 튼다. 따뜻한 공기가 뿜뿜 뿜어져 나온다. 평소 버스에 타는 학생들이 하나둘 탄다. 내일부터 스쿨버스는 얼마간 쉴 것이다. 쉬다가 방학 중 돌봄 교실에 나가는 1, 2학년을 태우러 운행을 재개할 것이다. 때문에 원래 스쿨버스에 타는 학생들은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방학중 방과 후 학습 때나 잠깐 만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을 끝으로 이 스쿨버스를 떠날 것이다. 다른 데로 발령 났기 때문이다. 작별의 시간, 이별의 시간이다. 오늘은 12월의 마지막 날이자 이 학교에서 운행하는 마지막 날이다. 아마 영원히 지금의 버스를 운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쉽고 아쉬운 날.
눈이 내린다.
남해 창선 적량 바닷가에 눈발이 흩날린다.
눈이 드문 남쪽나라인데도 딴에는 겨울이라고 겨울바다라고 눈이 내린다.
"와! 눈이다!"
하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나는 이미 초코파이를 돌렸다.
"얘들아! 마지막이야! 이제 볼 수 없어. 다음 주부터 다른 분이 오실 거야. 잘 지내라"
하면서 한 명 한 명 내릴 때마다 품에 꼭 안아주었다. 아이들은 안기며
"네! 기사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적량 앞바다, 마지막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한다.
동민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 안아주려고 내가 일어나는데 동민이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물끄러미 동민이를 내려다본다.
동민이는 고개 숙인 채 두 손을 꼭 쥐고 있다. 내가 말한다.
"동민아, 왜 안 일어나고 그러니?"
그러나 한동안 동민이는 대답이 없다. 이제 스쿨버스에는 다른 학생이 없다. 모두 내렸다. 마지막 주차장 마지막 학생, 동민이만 남았다. 그런 녀석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동민아~"
하고 다정히 불러본다.
그러자 꿍 앉아있던 동민이가 벌떡 일어나 내 옆으로 쏙 빠져나가 뛰쳐나간다. 마치 화난 것처럼 후다닥 내려버린다. 나는 쓸쓸함 속에 운전석에 앉는다. 버스 문을 닫고 천천히 출발한다. 버스 앞으로 동민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대로 가야 하나? 가야 할까? 망설여진다. 동민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가야겠지, 생각하며 좌회전하려고 핸들을 돌리는데 동민이가 돌연 돌아선다. 돌아서서 버스를 바라본다. 나와 눈 마주친다. 눈물 가득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놀라 버스를 세운다. 별안간 동민이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소리치며 큰 절을 한다. 동네가 떠나갈 만큼 우렁찬 목소리다. 버스 밖에서 주차장 앞에서 거리 위에서 도로 위에서 하얀 눈 위에서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곧장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절한다. 바닥에 엎드려 고개 숙인다. 그러고는 일어나 크게 손 흔든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눈물이 흘러내려 움직이지 못한다. 이내 버스 문이 열린다. 내려가 동민이를 안는다. 동민이는 품에서 흐느낀다. 나는 눈물로 얼룩져 선글라스를 벗지 못한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겨우 출발한다. 창밖으로 손 흔든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백미러 속에 동민이의 손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눈 내리는 적량 고개를 힘겹게 넘는다.
이후 차창에 그려진 곰돌이가 보고 싶어 두어 번 적량 마을에 갔지만, 눈 내리는 정경은 볼 수 없었다.